강정인. 2016.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강 정 인 (姜正仁) ┃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1)
<국문요약>
이 글은 광복 후 7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8·15가 지니는 의미를 ‘민족주의의
신성화 및 그 퇴조’라는 관점에서 논한다. 8·15와 함께 남한은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하에 들
어가면서 서구문명의 보편성과 우월성을 상정하는 서구중심주의를 급속하게 내면화해 왔고, 그 결
과 서구중심적 근대화의 과제를 열광적으로 받아들이고 돌진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신성
화된 민족주의가 서구중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이념적 기제로 일관되게 동원되었다. 하지만 경제
발전과 민주화로 상징되는 서구적 근대화를 성취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당혹스러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뒤이어 민족주의의 최종과제인 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신성화된 민족주의의 퇴조 또는 그것에 대한 반발을 두 가지 차원, 곧 현실
과 이론의 차원에서 목격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기가 점차 약화되는 것은 물론 통
일의 당위성이나 바람직함을 부정하는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은 먼저 남한의 근대화를 서구중심적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신성화라
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이어서 민족주의 신성화의 퇴조를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의 부상”이
라는 주제를 통해 검토한다.
Key Words ┃ 8·15, 서구중심주의, 서구중심적 근대화, 민족주의, 민족주의의 신성화, 탈민족주의
* 이 글은 2015년 8월 14일 한국방송통신대 통합인문학연구소가 “(해방과 분단 70년의 길목에서)
지금 한국사회를 말한다-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주제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필자가 “서
구중심주의, 근대화 그리고 민족주의의 신성화”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논문의 심사단계에서 진지한 자세로 예리한 논평을 해 준 익명의 심사자들에게 깊이 감
사드린다. 논평을 반영하여 최종 논문을 수정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원래 제목이 변경되었고
또 논문의 논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이는 그 분들의 탁월한 논평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
다.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성과를
출간한 것이다(NRF-2014S1A3A2043763). 또 부분적으로 서강대학교 2015년도 미래연구과제 및
2016년도 교내연구비 지원에 의해 수행된 연구성과이기도 하다(201610048.01).
** 저자의 주요 연구 분야는 비교 정치사상, 한국 현대 정치사상, 문화와 정치 등이며, 주요 저서로는
넘나듦(通涉)의 정치사상 (2013),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2014), Western-Centrism and
Contemporary Korean Political Thought (서구중심주의와 현대 한국 정치사상, 2015) 등이 있다.
134 ┃ ⓒNARI, 新亞細亞, 23권 3호 (2016년, 가을)
Ⅰ. 글머리에: 분단과 한국이라는 단어의 불편한 관계, 그리고
8·15의 이중적 의미
현대사에서 ‘8·15’만큼 한민족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숫자나
사건은 아마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사피 1945년 8월 15일 한민족은 일본 국왕의
항복선언과 함께 해방되었다. 그러나 한반도를 분할 점령한 미소의 치열한 대결
과 남북한 정치세력들의 극심한 분열로 인해 1948년 8월 15일에는 남한에 ‘대한
민국’이, 같은 해 9월 9일에는 북한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되는 것
으로 해방 국면이 마무리되었고, 이는 결국 거의 70년 가까이 지속될 민족분단의
시발점이 되었다. 먼저 분단국가를 수립한 남한 정부는 건국을 선언하는 날을 민
족해방일인 8월 15일로 정함으로써, 정부수립일에 민족의 해방이라는 후광효과
를 씌우는 효과를 거두었다,1) 그렇지만 민족해방일이자 정부수립일인 8·15에 후
일 분단의 의미가 추가적으로 덧씌워짐으로써 결과적으로 8·15는 민족의 광명인
‘해방’과 (일제강점기에 이어) 민족의 (새로운) 어둠인 ‘분단’이라는 이중의 의미
를 걸머지게 되었다.2) 어찌 보면 한민족은 70년 가까이 드리워진 일식(日蝕)에
의해 ‘되찾은 빛’(광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살아 왔다. 이로 인해 쌍둥이처
럼 동시에 태어난 ‘분단’과 ‘한국’은 현실적으로는 물론 언어적으로도 매우 불편
한 관계를 맺게 되었고, 또 이는 모순적인 일상적 현실로 빈번히 출몰해 왔다. 필
자는 우리 대부분이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이 ‘불편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명·공유하면서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의「후기」에서 ‘한국’이라는 단어가 주
는 고충에 관해 아래와 같이 토로한 적이 있다.
1) 이정식의 연구에 따르면, 스탈린은 1945년 9월 20일에 이미 38선 이북에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
할 방침을 북한의 소련군 사령부에 지시했고, 1946년 2월에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토지개
혁, 주요산업의 국유화 등의 조치를 단행함으로써 독자적인 사회주의 혁명의 단계에 진입했다.
안병직·이영훈,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서울: 기파랑, 2007). p. 262에서 재인용. 따라서
남한의 이승만 정부가 공식적인 정부수립을 먼저 선포하긴 했지만, 독자적인 국가체제의 수립은
북한에서 먼저 추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2) 이러한 이중적 의미로 인해 8·15는 우리에게 민족해방을 기념하는 날이자 동시에 분단을 상기하
면서 민족통일의 과제를 되새기는 날로 자리 잡게 되었다.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35
사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줄임말인 ‘한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개념으
로 통상 한(韓) 민족의 주 거주지인 한반도 전체를 관할하는 온전한 국가를
상상하는 한편, 이와 동시에 규범적으로 또는 사고의 편의상 분단을 부정하
거나 망각하는, 그리하여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존재를 말소해
버리는 모순적 현실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는 이승만 정권 이래 한국인
들[남한인들]에게 ‘한국’이라는 기표(記表)를 통해 남북한을 아우르는 온전
한 국가를 상상하도록 주입해 온 ‘국가이념’ 또는 ‘국가정체성’에서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여기에 분단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원초적인
민족주의적 열망 역시 가세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 달리 남과 북에 두 개
의 주권국가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정치에서는 ‘냉엄한 현실(stark
reality)’로, 남북한 관계에서는 ‘대세적 현실(prevailing reality)’로서 존속해
왔다. 우리는 그러한 괴리를 막연하게 의식하긴 하지만, 망각으로 버무린 습
관 속에서 이를 부정하는 ‘정신분열증적’ 또는 ‘이중적’ 현실을 살아 왔다.3)
이어서 필자는 그「후기」에서 이미 70년이 경과하고 있는 남북한 분단이라는
정치현실에서 일상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한국’이 남북한을 아우르는 온전한 한국
이 아니라 사실상 그 반쪽인 ‘남한’을 지칭하는 예가 더 많다는 지적을 했다. 영어의
‘코리아’(Korea)는 물론 ‘한국전쟁’, ‘한국인의 기원’ 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
국이 남북한을 통칭하는 용례에도 주목했지만 말이다.4) 이처럼 한국이라는 개념이
내포와 외연에 있어서 이중적이라는 언어 현실이야말로 우리의 분단 70년을, 알게
모르게,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알게’는 우리가 분단을 첨예하게 의식하고 있는 상
태를 의미하고, ‘모르게’는 우리가 이를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망각하고 있는 상
태를 지칭한다. 사실 인간은 대체로 감당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는 충격적 상처에
3) 강정인,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파주: 아카넷, 2014), p.364. 논문의 심사단계에서 한
심사자는 “국제정치에서 역사적으로 특정한 정치적 주체[국가]가 주장하는 바가 냉엄한 현실 혹
은 대세적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 예는 ‘한국’이라는 용어 이외에도 적지 않을 수 있다고 보인다”
라고 언급하면서 필자가 이를 “정신분열증적” 또는 “이중적” 수준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 과한 것
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다. 심사자의 예리한 지적은 매우 합당하다. 그러나 필자가 ‘한국’이
라는 개념의 이중성에 주목하면서 이를 “정신분열증적” 현실로 규정하는 이유는 단순히 국제정
치적 시각과 한국적 시각의 괴리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스스로도 ‘한국’이라는 기표를 통해 때로
는 ‘온전한 한반도 국가’를, 때로는 그 절반인 ‘남한’을 상상하는 이중성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이라는 용례의 경우 ‘보편성을 넘어서는 특수성’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4) Ibid., pp. 364-365.
136 ┃ 강 정 인
대해서는 자기보존을 위해 망각을 선택하는 심리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학술회의 주제가 그런 것처럼 ‘한국사회(한국정치, 한국의 여성문
제 등)를 말한다’라고 할 때, ‘한국사회’는 대부분 ‘남한사회’를 지칭하게 되었다. 다
시 말해 우리는 남한사회를, 전체를 지칭하는 한국사회라는 용어를 통해 상상하고,
그로 인해 분단과 북한의 존재를 망각·부정하고 남한사회를 자족적인 전체로 상상한
다. 필자가 이 글에서 제목의 일부로 사용한 “한국 민족주의” 역시 대체로 그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이러한 용례는 장차 통일된 한반도의 시각에서 볼 때 언젠가 타개·
극복되어야 할 ‘분단체제’와 남북한의 ‘결손국가’를 우리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
든 또는 비판적이든 무비판적이든, ‘자연적 질서’로 내면화하고 있다는 점을 단적으
로 증언한다.5) 이러한 불편함을 느끼면서 필자는 이 글에서 ‘한국사회’와 ‘한국 민
족주의’를 주로 남한 사회와 남한 민족주의를 염두에 두고 논하겠다.
8·15와 한국사회에 대한 이러한 논의를 염두에 두고 이 글은 한국사회에서 8·15
가 지니는 의미를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라는 관점에서 논하고자 한다. 먼저
8·15와 함께 남한은 지난 70여 년 동안 초강대국인 미국의 압도적인 영향력하에 들
어가게 되었고, 더불어 서구문명의 보편성과 우월성을 기조로 하는 서구중심주의를
급속히 내면화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남한은 서구중심적 ‘근대화’라는 과제를 열광적
으로 받아들이고 돌진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19세기 말이래 한국이 겪어
온 독특한 역사적 경험은 물론 서구중심주의의 내면화로 인해 초래된 신성화된 민족
주의가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이념적 기제로 일관되게 동원되었다. 그러나 경제
발전과 민주화로 상징되는 서구적 근대화를 성취한 1990년대 이후 한국사회는 당혹
스러운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말해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뒤이어 민족주의의
최종과제이자 지상과제(‘성업’)인 통일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한국사회는 신성화된
민족주의의 퇴조 또는 그것에 대한 반발을 두 가지 차원, 곧 현실과 이론의 차원에
서 목격하고 있다. 통일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기가 점차 약화되는 것은 물론 통일의
당위성이나 바람직함을 부정하는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이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
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 글은 먼저 남한의 근대화를 서구중심적 근대
화와 민족주의의 신성화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한다. 이어서 민족주의 신성화의 퇴조
를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의 부상”이라는 주제를 통해 검토한다.6)
5) 이처럼 분단체제가 자연화되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남한과 북한에 대해 식견 있는 지식을 골고
루 갖춘 학자가 드물게 되었다. 한국에 대한 연구는 대개 남한 전문가와 북한 전문가로 분화됨으
로써 분단체제가 학문적 분업으로 관철되고 있다.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37
Ⅱ. 서구중심적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신성화
남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대다수의 비서구 국가들과 달리 미국을 비롯
한 서구문명의 압도적인 영향력하에서 서구중심주의를 가장 강렬하고 급속하게 내면
화한 국가로 출발했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말이래 한국이 겪어온 독특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다수 남한 국민들은 19세기 말 개화기부터 형성된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 의식, 미국을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에 대한 긍정적 인
식, 서구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직접적으로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반서구
의식이 약했다는 점, 해방정국과 6.25전쟁 기간에 형성된 숭미(崇美)의식 등으로 인
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을 한국인(=남한인)의 구원자, 근대성의 시혜자로 상
상해 왔기 때문이다.7) 이에 따라 남한은 서구중심적 근대성8)을 보편적이자 유일한
근대성으로 물신화하여 이를 모델로 한 근대화를 분단 이후 70년 동안 가장 맹렬하
게 추진하게 되었고, 근대화에 있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둠에 따라 이제는 보기 드물
게 성공한 모범적 국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필자는 남한의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사상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비동시성의 동
시성’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남한 현대 정치사상의 구조적 특징으로 제시한 바
있다. 서구중심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사적 조건에서 세계사적 시간대와 일국사적 시
간대의 불일치로 인해 초래되는 구조적 특징이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면 민족주의
의 신성화는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19세기 말 이래 남한이 겪어온 독특한 역사적 경
험 — 19세기 말 자체적 근대화의 좌절, 일제 식민지 경험, 남북한 분단, 6·25 전쟁
등 — 이 한데 결합하여 빚어진 특징이라 할 수 있다.9) 이렇게 볼 때, 남한 국가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을 해소하기 위해 서구중심적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었고, 추진의
주된 이념적 기제로 이처럼 신성화된 민족주의를 활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영국과 프
6)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현실세계에서 목격되고 있는 “통일 민족주의의 약화”는 필자가 다른
글에서 이미 상세히 논한 바 있기 때문에 이 글에서는 중복을 피해 다루지 않겠다. 이에 관해서
는 Ibid., pp. 325-339를 참조할 것.
7) 유선영, “황색 식민지의 문화정체성: 아메리카나이즈드 모더니티,” 언론과 사회, 제18권 (1997).
8) 근래 서구학계에서 근대성은 종래 역사적 시기나 서구에 초점을 맞춘 역사적·지역적 초점을 벗어
나 지속적인 구조적인 특징을 중심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유연하게 정의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다중적 근대성’(multiple modernities) 이론에 따르면, 남한의 근대화는 서구중심적 근대성을 추구
한 것으로,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는 대안적인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추구한 것으로 이론화된다.
쉬무엘 N. 아이젠스타트, 임현진·최종철·이정환·고성호 옮김, 다중적 근대성의 탐구: 비교문명
적 관점 (파주: 나남, 2009); Johann P. Arnason, “Communism and Modernity,” in Shmuel N.
Eisenstadt, ed., Multiple Modernities (New Brunswick and London: Transaction Publishers, 2002).
9) 강정인, op. cit.
138 ┃ 강 정 인
랑스 등에서는 부르주아 계급이 자유주의(또는 공화주의)를 내세우면서 근대화를 추
진했다면, 남한은 국민을 대신하는 국가가 민족주의를 동원하여 위로부터 근대화를
수행한 셈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남한 현대사를 일별하면 ‘근대화의 기수’를 자처했던 박정희 대통
령은 5·16 군사쿠데타 직후 펴낸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이라는 저작에서 “지금
우리 민족은 근대화의 역사적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고 언명함으로써 위에서 언급
한 세계사적 조건을 일국적 조건으로 받아들이면서 근대화를 민족주의의 최우선적
과제로 선언했다.10) 이어서 그는 근대화의 핵심과제로 첫째 “반봉건적 (半封建的)
반식민지적 (半植民地的) 잔재로부터 민족[의] 해방”, 둘째 빈곤으로부터 민족을 해
방시키는 경제자립의 성취, 셋째 “건전한 민주주의의 재건”을 제시했다.11) 거시적인
역사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근대화의 과제로 자본주의적 경
재발전을 통한 경제자립의 성취에 집중했다면, 두 정권하에서 민주화를 위해 필사적
으로 투쟁한 저항세력은 민주주의의 쟁취에 몰두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상쟁하
는 세력은 경제발전을 추진하거나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
을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주의의 신성화에 편승하면서 민족주의를 최대한 동원하고자
했고, 이는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더욱더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12)
필자는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민족의 영구성’, ‘민족주의의 무오류성’, ‘민족주의
의 비도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개념화한다. 먼저 민족의 영구성은 해방공
간에서 박헌영을 비롯한 조선 공산당 세력을 제외하고 보수든 진보든 남한의 정치세
력에 의해 수용되어 왔다. 민족의 영구성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
로 시작하는 애국가는 물론 단군 이래 민족의 역사를 반만년으로 상상하는 한국인의
역사적 무의식에 의해 쉽게 확인된다. 해방공간에서 분단으로 치닫는 좌우익의 이념
투쟁을 개탄하면서 김구는 “혈통적인 민족만[이] 영원”하다고 하면서 모든 사상이나
신앙을 “영원한 혈통의 바다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풍파”에 비유했다.13) 박정희 역시
쿠데타 직후인 1962년에 발표한「연두사」에서 “하나의 민족이란 영원한 생명체”
라고 언급했다.14) 또한 1972년「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간의 대화를 북한에 제안
10)
11)
12)
13)
14)
박정희, 우리 민족의 나갈 길(개정 5판) (서울: 동아출판사, 1962), p. 128.
Ibid., pp. 128-130.
강정인, op. cit.
김구, 김학민·이병갑 주해, 백범일지 (서울: 학민사, 1997), pp. 370-371.
대통령비서실,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1권 (최고회의편: 1961.07-1963.12) (서울: 대통령비
서실, 1973), p. 158 (1962/01/01).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39
할 때, “이데올로기는 변해도 민족은 영원합니다”라고 언명함으로써 김구의 발언을
재확인했다.15) 유신체제 수립 직후인 1973년 1월에 행한 「연두기자회견」에서 박
정희는 “민족과 국가”는 “영생하는 것”이고, “<국가 없는 민족의 영광과 발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며 “<국가는 민족의 후견인>”이라고 강조하기도 했
다.16) 이처럼 박정희에게 민족은 물론 국가까지 영구적 존재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1993년, 이승만 이후 최초의 문민 대통령으로 선출된 김영삼 역시 「제14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북한의 김일성 주석에게 ‘언제 어디서라도 만나자’고 정상회담
을 제의하면서 ‘동맹’이나 ‘이념’보다 ‘민족’이 더 소중한 가치라고 선언했는데,17)
이러한 선언에 민족의 영구성이 함축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남한 정치인들의 이러한
발언은 일반 국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둘째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민족혼’, ‘민족정기’, ‘민족
의 양심’, ‘민족사의 정통성’, (부정적으로는) ‘민족반역자’ 등의 용어에 함축되어 있
기도 하지만, 주로 민족주의 연구자들, 곧 민족주의 원리주의자라 할 수 있는 학자들
의 글에서 명시적으로 발견된다. 특히 통일(지향적) 민족주의를 옹호하는 진보적인
국내학자들은 민족주의를 논할 때 민족주의의 내재적인 폐해나 과오를 인정하지 않
으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박호성은 남북한 민족주의를 논하면서 “민족주의는
창(窓)이요, 혹시 생겨날지도 모르는 민족주의의 폐해는 그 창에 낀 성에와 같은 것
일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18) 그는 민족주의의 폐해와 민족주의 자체를 이렇게 구분
함으로써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을 주장한다.
근래 출간된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2010)에 기고한 글에서 정수일
역시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을 주장함으로써 민족주의 원리주의자로서의 면모를 과시
하고 있다. 그는 “민족주의야말로 역사의 보편가치로서, 보편적 진보주의로서 정연
한 논리적 체계와 내재적 구조를 갖춘 이념”이라고 규정하는바, “역사적 및 진보적
보편가치로서의 민족주의는 그 고유의 속성에 반하는 보수성, 배타성, 폐쇄성, 반역
성 같은 부정적이며 비생산적인 악성(惡性)을 불허”한다고 단언함으로써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을 강변하고 있다.19) 이어서 이른바 ‘민족주의의 오류’에 대해 이렇게 반박
15) 대통령비서실,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4권 (제7대편: 1971.07-1972.12) (서울: 대통령비서
실, 1973), p. 264 (1972/08/15).
16) 대통령비서실,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5권 (제8대편 상: 1972.12-1975.12) (서울: 대통령비
서실, 1976), p. 20 (1973/01/12).
17) 김영삼, 1993.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1993. 2. 25,
http://www.pa.go.kr/online_contents/speech/speech02/1307797_6175.html# (검색일: 2016.8.12).
18) 박호성, 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 ‘한반도 민족주의’를 위하여 (서울: 당대, 1997), pp. 23-24.
140 ┃ 강 정 인
한다. “민족주의의 부정적 면이란 표현은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역사적 보편가치로
서의 민족주의 자체는 부정적 면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있다면 미숙한 민족주의
자가 민족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노정시킨 부정적 면일 것이다.”20)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을 이런 식으로 가정하면, 민족주의를 자처하는 정치지도자
가 대다수 민중의 수탈을 기초로 하여 경제발전을 추진하거나, 반공(국가안보)이나
경제발전을 이유로 인권유린 등 반민주적 통치를 감행하거나, 대북정책을 추구함에
있어서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분단체제의 지속이나 고착에 기여했다면,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들은 민족주의를 배반한 ‘반민족’ 또는 ‘반민족주의자’로 규정
될 공산이 커진다. 게다가 일제 강점기에 친일파로 활동했거나 일본이나 만주의 육
군사관학교를 졸업했거나 심지어 학병으로 징집된 경력을 가진 인사들 역시 씻을 수
없는 민족주의적 ‘원죄’를 범한 자들로서, 평생 ‘반민족’의 오명을 안고 살아야 한다.
민족주의의 이러한 무오류성을 염두에 두고 박명림은 ‘민족은 하나’라는 구호와 함
께 민족의 통일과 단결을 강조하면서도 분단을 획책하고 또 김구와 조만식 등 민족
주의 세력을 체계적으로 배제한 이승만과 김일성의 민족주의에 대해 “반민족주의적
민족주의”라는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했다.21) 그는 반공주의의 이름으로 민족주의
세력을 억압하고 탄압한 박정희 시기의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같은 표현을 사용했
다.22) 민족주의의 이와 같은 순정(純正)한 정의에 따르면 그러한 민족주의를 만족시
키지 못한 정치세력이나 정치인은 기껏해야 불완전한 민족주의자, 그리고 빈번히 반
민족주의자로 규정된다. 또한 무오류의 순정 민족주의를 대변한다고 자처한 남북한
정권과 그 정치지도자들은 상대방에 대해 곧잘 ‘반민족’, ‘괴뢰’, ‘꼭두각시’, ‘반도’,
‘역적 패당’ 등의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반민족주의자로 비난해 왔다.
셋째 민족주의가 다른 부정적인 이념이나 동기의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도구성의 원칙”이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구성한다. 김보현은 남한의 “진보적 민족
주의” 논자들이 제시한 민족주의관을 민족주의의 “신화화”라고 부르면서,23) 그 신화
화를 규정하는 민족주의의 요소로 네 가지 명제를 제시한 바 있다. 그는 ① 민족주의
가 ‘집권의 구실’, ‘국민동원의 방편’ 또는 ‘통치와 지배의 중요한 도구’여서는 안 된
19) 정수일,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 정수일 외, 재생의 담론, 21세기 민족주의 (서울: 통
일뉴스, 2010), p. 62, p. 49.
20) Ibid., p. 63.
21) 박명림, “분단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이해,” 『세계의 문학』 (1996 여름), p. 53.
22) Ibid., p. 66.
23) 김보현,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민족주의와 발전 (서울: 갈무리. 2006), p. 28.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41
다는 “‘비도구성’의 원칙”, ② 민족주의가 냉전주의의 산물인 반공주의를 수용하거나
“자신의 체제를 상대방에게 확대하려는 통일노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탈냉전
주의’의 원칙”, ③ “민족주의는 국가주의(statism)와 다르며 국가주의와 양립할 수도
없다”는 “‘비국가주의’의 원칙”, ④ 박정희 정권기 수출주도형, 차관의존형 경제개발
정책을 반민족주의적으로 규정하는 “‘내향적(inward-looking) 공업화 = 민족주의’란
원칙”을 네 가지 명제로 거론하면서, 이를 치밀하게 반박하고 있다.24) 그런데 오늘날
김보현이 제시한 네 번째 명제에 따라 민족주의 여부를 재단하는 학자는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제시한 앞의 세 명제는 전체적으로 비도구성의 원
칙으로 요약해도 무방할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원칙 역시 상위이념인 민족주의
가 그보다 하위이념인 반공주의나 국가주의와 결합하여 통치나 국민동원의 도구로
활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25) 지고지순한 민족주의가 그보
다 열등한 다른 이념이나 정책 및 집권자의 정치적 동기를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 봉
사한다면, 그것은 민족주의를 불순한 요소로 오염시킴으로써 민족주의의 신성성을 훼
손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강만길은 박정희의 민족주의 담론에 대해
“분단국가의 국가주의가 민족주의를 가탁한 것”26)으로 규정하면서 그 민족주의적 성
격을 부정하는 바, 이는 민족주의의 비도구성의 원칙에 근거하여 민족주의가 국가주
의의 도구로 남용되어 오염되면 안 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남한에서 신성화된 민족주의는 민족의 영구성, 민족주의의 무오류성 및
비도구성으로서 구성된 삼위일체의 표상으로 존재해 왔다. 또한 그것은 개인들에게
민족에 대한 소속감을 강화시키는 기제로 작용해 왔다. 동해물과 백두산처럼 영구적
으로 존재하는 ‘민족’에 귀의함으로써 개개인은 개체적 삶의 유한성을 넘어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족(주의)의 무오류성을 통해 민족의 성원들은
개개인의 인간적인 결함과 오류를 초월해서 민족의 이름으로 불가침의 정당성을 획
득하기 때문이다. 또 신성한 민족주의는 당연히 그보다 하위 요소인 다른 이념이나
세속적인 정치적 기제나 목표 — 반공주의, 국가주의, 통치의 정당화, 국민동원의 수
단 등 — 의 도구로 봉사해서는 안 된다. 신성한 민족주의가 열등하고 불순한 요소와
24) Ibid., pp. 31-49; 강정인 op. cit., pp. 182-183에서 재인용.
25) 그런데 오늘날 민족주의자의 전형으로 인정받는 김구 역시 분단 직전에 남북지도자 연석회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반공주의를 누그러뜨리는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독립운동 시절부터 그의 민
족주의가 반공주의로 무장되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6) 강만길, “한국 민족주의론의 이해,” 이영희·강만길 편,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과 민중 (서울: 두
레, 1987), p. 27.
142 ┃ 강 정 인
섞임으로써 오염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성화된 민족주의는 세속 종교처럼 남한 정
치에 군림해 왔다. 그 결과 특유의 이론내재적인 교조적 경향으로 인해 신성화된 사
회주의를 놓고 종래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배반당한 사회주의’, ‘변절자’, ‘수정주
의자’ 등의 표현이 빈번히 사용되어 왔듯이,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배반당한 한국민
족주의’, ‘민족 배신자’, ‘반민족(주의자)’이라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어 왔다. 이러한
표현이 자유주의나 보수주의에 대해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는 언어적 현실은 그만
큼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증언한다고 하겠다.
Ⅲ. 민족주의 신성화의 퇴조와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의 부상
그런데 우리는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가까이 근대화의 성공, 민주화의 성취, 북한
의 만성적인 정치적 불안 및 경제 침체 등에 힘입어 민족주의의 최종적 목표인 통일
을 목전에 남겨둔 상태에서 과거와 달리 통일에 대한 민족주의적 열기가 오히려 소진
되고 약화되는 역설적인 현상을 목격해 왔다. 남북한 간의 상대적 위상과 관계의 변화
이외에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발전을 추동하고 있는 지구화는 물론 4차 산업혁명
으로 불리는 IT 기술의 발전에 따라 더욱더 가속화되고 있는 정보화가 초래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거대한 변환에 의해서도 민족주의의 신성화는 물론 민족주의 역시 점차
약화되고 있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27) 이러한 현실의 변화와 맞물려 국내학계에서
도 최근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이 민족의 영구성, 민족주의의 무오류성 및 비도구성
을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의 신성화에 도전하고 이를 해체하려는 시도가 출현하고 있다.
물론 현실과 이론의 차원에서 최근 대두하고 있는 이러한 추세와 경향이 현재로서는
통일에 대한 민족적 열기나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무력화시킬 만큼 압도적인 것은 결
코 아니지만, 이러한 변화는 의미심장한 것으로서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다. 따라
서 이 장에서는 탈민족주의 담론의 도전을 좀 더 상세하게 논함으로써 신성화된 민족
주의의 이론적 퇴조를 탐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1990년대 이후 부상한 다양한 부
류의 탈민족주의 담론을 세 가지로 나누어 차례대로 검토하겠다. 그것은 각각 (자유주
의) 문명사관에 입각한 뉴라이트의 탈민족주의론, (부분적으로 탈민족주의를 지향하
는) 민족주의 재구성론, 그리고 탈근대론적 관점의 탈민족주의론이다.28)
27) 강정인, op. cit.
28) 이러한 분류를 함에 있어서 필자는 홍석률의 구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는 민주화 이후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43
1. 문명사관에 입각한 뉴라이트의 탈민족주의론
문명사관에 입각한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탈민족주의 담론에 관해서는 대표적 논
자들인 안병직과 이영훈을 중심으로 검토하겠다. 먼저 안병직과 이영훈은 『대한민
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29)에서 선진화를 위한 이념적 과제로 “과도한 민족주의”,
“무분별한 통일논의” 및 “집단적 평등주의”의 극복을 제기한다.30) 이영훈은 한국 민
족주의를 논하면서, 먼저 ‘민족’이라는 단어가 러일전쟁 이후 1904년에 일본에서 수
입되었다는 점, “민족이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널리 유포된 것은 1919년 최남선이 지
은 〈조선독립선언서〉를 통해서였다”는 점, 그리고 “민족은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인간 집단을 국가라는 정치적 질서체로 통합시킴에 요구되는 여러 가지로 고안된 이
데올로기” 중의 하나라는 점31)을 제기함으로써 민족이 민족주의를 발명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민족주의가 민족을 발명했다는 홉스봄(E Hobsbawm)식의 논변을 전
개한다.32) 이 점은 이영훈이 일제의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한민족[이] 일
제의 대립물로서 [비로소] 성립”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민족의 영구성을 사실상
부정하는 데서도 확인된다.33) 이영훈은 과도한 민족주의의 문제를 논하면서 “민족
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배타적인 소재로 하고 있는 민족주의 역사관”34)에 기초해
집필된 국사에 대한 투쟁을 심지어 민주화 운동의 차원에서 정당화한다. 즉 “역사를,
한국인들의 과거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체계를, 국사라는 신화로부터 해방시키지 않
으면 민주화운동이 완성되었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하면서 과도한 민족주의의 표상
인 국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35)
대두한 탈민족주의론을 “세계화론에 입각한 탈민족주의론”, “민족주의 재구성론”, “탈근대
론적 관점의 탈민족주의론”으로 나누어 고찰한 바 있다. 홍석률, “민족주의 논쟁과 세계체
제,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대응,” 역사비평, 제80권 (2007), pp. 151-152. 덧붙여 이 장
의 주된 목적이 다양한 탈민족주의 담론들의 이론적 논지를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관련시
켜 검토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담론들의 이론적 적실성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밝혀둔다.
29) 안병직·이영훈, op. cit. 이 책은 대담형식으로 출간된 것이다. 따라서 같은 책을 인용하더라도 두
대담자의 학문적 개성을 존중하여 개별 대담자의 이름을 밝히면서 인용하겠다.
30) Ibid., pp. 325-329. 이 글은 민족주의 및 통일에 대한 이들의 인식을 다루기 때문에 이하에서 ‘집
단적 평등주의’의 문제는 다루지 않겠다.
31) 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2006), pp. 32-33, p. 56.
32) Eric. Hobsbawm, Nations and Nationalism Since 1780. Secon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2), p. 10.
33) 이영훈, op. cit., p. 33.
34) 이영훈,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 임지현·이성시 엮음,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서울: 휴머니스트, 2004), p. 38.
144 ┃ 강 정 인
이영훈은 해방 후 남한의 국사학계를 지배한 민족사관 일반, 특히 1979년 이래
1980년대에 걸쳐 한길사에서 출판되어 진보진영의 열렬한 호응을 받은 해방전후사
의 인식 시리즈를 놓고 신성화된 민족주의에 맹공을 가한다.
나는 인간 개체의 역사, 가족과 친족의 역사, 촌락과 단체의 역사, 지방과 국가
의 역사, 사상과 종교와 예술의 역사 등 그 모든 역사를 제쳐놓고 민족만이 역사
쓰기의 유일무이한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법이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잘 알
지 못하겠다. 민족의 역사가 중요하다고 하나 다른 모든 역사가 그에 귀속하고
그에 복무해야 할 만큼이나 초월적인 지위에 있다고 어찌 말할 수 있는가?36)
이어서 그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집필에 참여하고, 1980년대에 사회구성체
논쟁에 적극 참가한 진보·좌파 민족주의 진영과 그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들의 “정
신세계와 집단심성의 바탕에는 민족을 새로운 태극으로 하는 근본주의적 사고방식과
종교적 선악사관이 흐르고 있다”고 강하게 비난한다.37) 이러한 사조에 반발하면서
“한국사회가 선진문명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대립과 갈등 지향의 국사를 신뢰와 통
합 지향의 문명사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38) 2006년에 뉴라이트 계열에
속하는 여러 학자들의 글을 모아 출간된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2권)에 편집자
중 1인으로 「머리말」을 쓴 박지향 역시 진보·좌파 진영의 민족주의를 염두에 두고
“민족주의는 본래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이념”이라고 규정한 후, “민족 지상주의는
민족이 다른 모든 가치들을 압도하고 지고의 가치로 부상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이영훈의 논지에 동조한 바 있다.39)
안병직은 통일논의를 “가장 큰 국론분열의 소재”로 규정하면서,40) 이를 피하기
위해 남북한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민족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파악할 것을 제안한다. 안병직은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서유럽 기원
35) Ibid., p. 37.
36) 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2006), pp. 42-43. 이 점에서 그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출간을 주도한 학자 가운데
1인인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을 비판하면서 그의 입장을 “민족지상주의”로 규정한다(Ibid., p. 42).
37) Ibid., p. 53.
38) 이영훈,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 임지현·이성시 엮음,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서울: 휴머니스트, 2004), p. 39.
39) 박지향, “머리말,”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2006), pp. 13-14.
40) 안병직·이영훈, op. cit., p. 242.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45
의 해양문명과 유라시아 기원의 대륙문명이 38선을 경계로 거칠게 충돌한 사건”으
로 이해하면서, 38선을 해양 “문명 전파의 북방한계선”이라는 식으로 “분단의 역사
적 의의를 재해석”한다.41) 여기서 해양문명은 인간의 자유·시장경제·법치·사유재산
제도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근대 서구의 자유주의-자본주의 문명을, 대륙문명은
이를 부정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동양적 전제주의가 접합”하여 형성된 “사회주의적
전제주의” 문명을 지칭하는바, 사회주의가 70년간의 실험 끝에 붕괴된 역사적 사실
이 보여주듯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진정한 대안이 되지 못했다고 안병직은 지적
한다.42)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하던 냉전체제를 이렇게 대비하는 안병직의 인
식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대결을 일종의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으로 특징짓
던 이승만 대통령의 발언을 상기시키기도 한다.43)
이런 시각에서 이영훈은 지금까지의 통일논의가 “분단이 지니는 이 같은 문명사적
의의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원초론적이고 유기체적 민족 개념에 기초해서 “원
래 하나였던 몸통을 다시 붙이는 식의 신체공학적인 발상”으로 통일에 접근하다 보니
“남한 내부에서 갈등”만 커졌다고 주장한다.44) 비슷한 관점에서 안병직 역시 제국주
의 시대에 식민지 민족이 독립을 열망할 때에는 “민족문제”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현
재의 남북한 관계를 볼 때, “남북이 제국주의 지배하에서 신음하고, 분단이 외세에 의
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게다가 남북한이 각각 독립국가로서 유엔에
가입함으로써 “같은 민족으로서 공동 운명”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통일
을 더 이상 민족문제로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45) 그러므로 이영훈은 문명
적 기초가 다르면 통합할 수 없다는 전제에 따라 통일논의의 허구성과 그것이 기초하
고 있는 민족주의의 위력을 “증명될 수 없는 신화의 괴력”이라고 비난한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바탕을 둔 남쪽의 국가와, 필자가 보기에 한국사가 일
찍이 경험했던 국가적 농노제의 재판(再版)과도 같은, 국가이성의 발달 수준이
지배계급이 수도에 집주한 고려시대로 후퇴한 듯까지도 보이는, 북쪽의 국가를
하나로 합치겠다는 그야말로 엉뚱한 국가공학(國家工學)이 국민대중으로부터
41) Ibid., p. 267.
42) Ibid., p. 265.
43) 다른 글에서 이영훈도 실제로 “… 북한의 수령 체제는 처음부터 인간 본성에 거슬리는 반문명이
었다”고 서술한다. 이영훈.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
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2006), p. 63.
44) 안병직·이영훈, op. cit., p. 268.
45) Ibid., p. 248.
146 ┃ 강 정 인
광범하고 헌신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음은, 어느 유능한 정치지도자의 교묘
한 대중조작의 탓일 수만은 없고, 유사 이래 한국인은 하나의 민족공동체였다
는 아무래도 증명될 수 없는 신화의 괴력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46)
이러한 논변에 입각해서 이영훈은 통일이 민족의 지상과제임을 당연히 부정하고,
선진화로 가는 길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
한다.47) 요컨대 안병직과 이영훈에게 남북한의 통일은 분단된 민족이 하나가 되는
민족문제가 아니라 문명사적 통합의 문제이다. 따라서 그들이 추구하는 통일이란
“시장, 법치, 사유재산의 문명적 요소가 북한으로까지 확산되어 정착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48) 이 점에서 이영훈은 “북한이 중국 수준으로의 개혁이라도 해야 [비
로소] 통일을 논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49)
그러나 안병직과 이영훈은 북한정권이 스스로 이러한 문명적 전환을 수행할 수
있는지, 다시 말해 개혁개방을 자발적으로 시도할 의지나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 있는지에 대해 지극히 회의적이다.50) 안병직은 북한정권이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
할 수 있는 이념이 결여된 결과 인민의 자발적인 복종을 끌어낼 수 없는 사태에 처
해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북한정권은 마피아집단과 유사한 형태로서 존속하고 있
으며 근본적으로 체제의 자기재생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체제가 “보스
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과 “배반자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을 조직 원리로 하고,
“마약·위조지폐·무기수출과 같은 악행으로 돈”을 벌거나 “이웃 나라를 협박하여 돈”
을 뜯어내며, “자기가 다스리는 인민의 굶주림에 대하여 일말의 동점심”도 없는 등,
“그들의 행태는 마피아집단보다 더 잔인”하다고 비난한다.51) 그렇다 하더라도 안병
직과 이영훈은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북한이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압박
하는 것이 북한체제의 붕괴 이전에 남한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대북정책이라고 보
는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안병직은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외하고는 중앙정부간의 교
류 협력에 있어서는 “원조를 할 때마다 인권의 개선이나 잘못된 정책의 수정과 연
46) 이영훈,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 임지현·이성시 엮음,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
(서울: 휴머니스트, 2004), pp. 95-96.
47) 배진영, “뉴라이트 연쇄 인터뷰: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민족주의로는 선진화 못 이뤄 자유
주의가 민족주의의 대안,” 월간조선, 2006년 8월호, p. 219; 안병직·이영훈, op. cit., p. 259.
48) Ibid., pp. 267-269.
49) 배진영, op. cit., p. 219.
50) 안병직·이영훈, op. cit., pp. 281-287.
51) Ibid., pp. 280-281.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47
계”하는 엄격한 상호주의적 원칙을 고수할 것을 주장한다.52)
지금까지 검토한 것처럼 안병직과 이영훈은 민족의 영구성이나 민족주의의 무오
류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오히려 과도한 민족주의나 소모적인 통일논의를 이유
로 민족주의의 폐기를 주장한다. 따라서 이영훈은 “민족주의로는 선진화로 나갈 수”
없고, “자유주의가 민족주의의 代案(대안)”이라고 주장한다.53) 남북한의 관계를 일
종의 ‘문명과 야만’의 대립으로 보는 그들에게 통일은 어떤 식으로든 흡수통일이 실
현가능성이 가장 높고, 또 바람직한 것으로 제시된다. 물론 통일은 민족주의에 입각
한 민족적 염원의 성취라기보다는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의 北方(북방)한
계선을 확장하는 의미에서의 통일”이라는 점에서 문명사적 통합이다.54)
2. 민족주의 재구성론
두 번째로 살펴볼 입장인 ‘민족주의 재구성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형성된 저항적 민족주의의 흐름을 계승·발전시키려는” 목적하에 “민주화,
탈냉전, 세계화라는 내외적 변화 속에서 원초적 민족주의, 혈통적 민족주의, 배타적
민족주의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개방적(열린) 민족주의, 시민적 민주주의를 수립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55)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논자들 역시 “민족주의 자체가 가
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국민국가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 필연
적으로 수반하기 마련인 민족주의를 “보다 민주적이고 인류공동체를 모색하는 방향
으로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56) 대표적인 논자로는 윤건차, 최장집, 김동춘 등이 거
론된다. 여기서는 최장집의 주장을 중심으로 재구성론을 검토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최장집은 1996년에 출간된 책에 수록된 글에서는 한국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
했지만,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6년에 출간된 책에 담긴 한 논문에서는 과거와 달
리 민족주의에 관해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함으로써 탈근대론자들의 탈민족주의론
에 접근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두 가지 입장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최장집은 1996년에 출간된 한국 민족주의에 관한 논문에서 민족주의를 비
판하는 서구의 이론가들과 달리, 서구의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민족해방
52)
53)
54)
55)
56)
Ibid., p. 292.
배진영, op. cit., p. 219.
Ibid.
홍석률, op. cit., p. 151.
Ibid., pp. 151-152.
148 ┃ 강 정 인
을 추구하던) 제3세계적 민족주의를 구분하고, 한국의 민족주의를 제3세계적 민족주
의 한 유형으로 파악한다. 이어서 제3세계의 민족주의가 “외세의 침탈과 억압으로부
터의 해방이고, 그 해방의 내용이 압도적 다수의 민중들이 수혜자가 되는 전근대적
이고 봉건적인 사회경제체제의 개혁이며, 민주적 권리의 확대를 수반하는 것이라고
할 때, 제3세계의 민족주의는 보편주의를 지향하고 인류평등원칙에 입각한 휴머니티
를 실현하는 이념이며 운동”이라고 언명하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57) 계속해서
그는 한국 민족주의가 지속될 수 있는 원천을 “민족문제의 미해결, 분단극복에 의한
민족통일의 문제에서 찾지 않으면 안 된다”58)라고 언급하면서 “민족의 정체성과 그
것에 기반하는 민족공동체의 복리를 증진하고 이러한 공동체의 토대 위에서 정치적
통일을 이루는 것을 핵심적 내용으로 하는 민족주의는 탈냉전시대에 통일을 가능하
게 할 수 있는 중요한 민족의 자산임에 분명하다”59)고 역설한다. 다만 국내외의 변
화된 역사적 상황에 맞추어 민족주의를 재구성할 필요성을 강조한다.60) 세계화 시대
에도 국제사회의 강력한 작동원리로 “건재하고 있는 민족(국가)주의를 하나의 실체
로서 인정하고, 그 위에서 가능한 보편적 인류공동체의 원리를 모색”하고, 또 종래
한국사회에 지배적이었던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인종적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민주주의와 평화의 결합을 가능
케 하는 원리”인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를 제시한다.61)
그러나 최장집의 이러한 입장은 『민주주의의 민주화』(2006)에 실린 “한반도
평화의 조건과 구조”라는 제목의 글에서 ‘통일론’과 ‘평화공존론’을 단절적인 관점
에 따라 논하면서 통일의 당위성과 한국 민족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정면으로 부정하
는 매우 파격적인 전환을 보여준다. 먼저 그는 통일론을 “최대강령적 통일론”과 “최
소강령적 통일론”으로 구분하는 바, 전자는 남북한이 각각 “자신의 이념과 체제”를
상대방에 일방적으로 부과하고자 하는 입장을, 후자는 “통일로 가는 과정에 있어 장
기간의 평화공존 과정을 설정”하는 입장을 지칭한다. 전자는 대체로 “강경정책”과
연관된 것이고, 후자는 “온건정책 또는 포용정책을 동반”한다.62) 최장집이 보기에,
장기적으로 “한국에서의 통일론은 최대강령적 통일론으로부터 최소강령적 통일론으
57)
58)
59)
60)
61)
최장집,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서울: 나남출판, 1996). p. 174.
Ibid., p. 189.
Ibid., p. 194.
Ibid., p. 191.
Ibid., p. 200. 그러나 위에서 인용한 내용을 제외하고 최장집은 시민적 민족주의가 어떻게 민주
주의와 평화의 결합을 가능케 하는지 등 그 내용을 더 이상 구체적으로 부연하지 않고 있다.
62) 최장집, 민주주의의 민주화 (서울: 후마니타스, 2006), p. 216.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49
로 변해왔다.”63) 그런데 최장집은 후자 역시 평화공존을 단순히 통일을 위한 ‘의도
적인(일시적인) 수단’이나 ‘과도기적인 과정’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평화공존이 통일
의 하위 가치로서 주변화되었으며, 이 점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공존론은 이제
껏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통일론’과 ‘평화공존론’을 이론적으로 독자
적인 범주로 설정하면서 명실상부한 ‘최종적 목표’로서의 평화공존론을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평화공존론이 “남북한 관계의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목표와 수단 모두
에 있어 공존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에 기초한 것이며, 이제 “최소
강령적 통일론으로부터 평화공존론으로 이행할 것을 요구한다.”64)
최장집은 “한 민족 두 국가를 설정하는 1960년대 말 서독의 빌리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을 평화공존론에 대한 “경험적 모델의 한 예”로 제시한다.65) “물론 평화 공
존이 목표이자 수단이 되었을 때, 이 평화공존의 긴 과정의 결과로 통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을 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라고 언급하면서 동서독의 통일이 평화공존 과정의
“의도된 목표 내지 결과”라기보다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점을 강조한다.66)
이와 달리 그는 종래의 통일론이란 “차이를 갖는 두 개의 정치단위가 궁극적으로 하
나의 체제, 하나의 가치로 통합되는 것을 통하여 평화를 성취하고자 하는 접근”이기
때문에, 통일론이 통일과정에서 폭력과 억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면서 이
를 거부한다. “통일을 지향하며 두 개의 차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쌍방은 서로 “우
위를 점하고자 시도”하고 “강한 쪽은 약한 쪽을 위계적으로 통합”하고 또 “차이를
위계적으로 질서” 짓고자 하는 반면, 약한 쪽은 이에 반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67)
이러한 논리에 기초해서 최장집은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이후 반세기 이상 증오
와 대립으로 점철된 적대적 관계를 발전시켜 왔던 남북한 체제”의 역사를 상기시키
면서 “한반도에서 남북한 관계의 이상적 형태”는 통일을 목표로 설정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체제가 어떻게 공존을 평화적으
로 관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최우선의 목표를 설정하고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
는 것”이라고 언급한다.68) 특히 “한국전쟁의 경험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민족주의
63)
64)
65)
66)
Ibid.
Ibid.
Ibid., pp. 216-217.
Ibid., p. 217. 이런 이유로 필자는 최장집이 통일과 평화공존론을 ‘이론적으로 독자적인 범주’로
설정한 것이라고 앞에서 서술했다. 그러나, 지금 인용된 것처럼, 최장집은 자신이 주장한 평화공
존론이 그 자체로 목적이지만, 현실에서 통일로 귀결되는 것을 배제하거나 반대하지는 않는다.
67) Ibid.
68) Ibid. 이어서 최장집은 “남북한 관계의 이상을 민족주의적 통일에 두는 것을 최대강령적 남북한
150 ┃ 강 정 인
가 남북분단과 전쟁을 막는 데 기여했다기보다 그 원인을 제공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관리하는 데 민족주의는 커다란 의미를 갖지 못한
다”고 주장한다.69) 나아가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관리하기 위해서 그는 “지난날의 이
데올로기적 갈등과 전쟁을 포함”한 “과거의 갈등적 역사”를 인정하고 그로부터 비롯
될 “예상키 어려운 갈등비용”을 줄임으로써 평화를 유지할 것을 주문한다.70) 나아가
평화공존은 당연히 체제상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바, “민주주의
라든가, 자유라든가, 인권이라든가 하는 가치를 북한에 부과하려는 유혹이나 시도”
를 해서는 안 된다고 추가한다.71)
최장집에게 이제 남북한 관계의 목표는 한일·한중 관계에서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한국 외교정책이 추구하는 최대의 가치인 국민국가들 사이의 평화공존임이 분명하
다. 최장집의 입장을 따른다면 남한정부가 북한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정책의 최대치
는 평화공존을 위해 인도주의적 원조를 조건 없이 북한에 제공하는 것, 상호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한 경제협력이나 문화교류를 활성화하는 것,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위
해서 미국이나 일본이 북한을 독립된 국가로 인정하여 관계를 정상화하고 적극적으
로 교류할 것을 촉구하는 것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만약 북한이 체제생존을 명분으로 하여 핵과 미사일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남한의
안보를 위협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72) 김정은 체제의 폭정과 경제실정으로 가령
대량의 희생자와 아사자가 발생하고 또 북한 주민이 대규모로 남한으로 탈출해 온다
면, 중국처럼 평화공존의 관리 차원에서 국제법상 ‘난민’으로 수용여부를 결정해야
하는지 아니면 민족주의에 따라 같은 민족으로 당연히 수용해야하는지 등의 문제들
이 제기된다. 아울러 평화공존을 일차적 목표로 하는 한중일 상호간의 관계에서도,
또 경제적·문화적 교류의 지속적인 확대에도 불구하고, 과거사 청산 및 영토분쟁은
물론 수시로 불거지는 정치적 갈등과 분란으로 인해 국제적 긴장이 고조되고, 이로
관계라고 한다면, 평화공존 자체를 목표로 하는 관계는 최소강령적 남북한 관계”라고 구분한다
(Ibid., p. 218).
69) Ibid.
70) Ibid.
71) Ibid. 이와 동시에 그는 “이 말이 북한사회 스스로가 민주화되고, 시장경제를 수용하고, 인권을
중시/실현하는 체제로 변하고 발전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인다(Ibid.).
72) 그런데 최장집은 다른 글에서 탈냉전 후 발생한 북핵위기로 상징되는 북한문제를 논할 때, 그 근
본적 원인을 탈냉전이후에도 부시 2기정부에 이르기까지 지속되고 있는 미국의 “경제봉쇄와 고
립화 정책을 통한 북한 압박”에서 찾고 있다(Ibid., p. 231). 따라서 최장집은 미국과 북한이 상호
인정하고 정상적인 국제관계에 들어서게 된다면 북핵문제가 해결될 것이기 때문에 필자의 이런
비판을 기우에 불과한 것이라고 반박할 법하다.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51
인해 동아시아 지역공동체의 전망이 쉽게 무산되어 버리곤 하는데, 남북한 관계에서
도 과거의 갈등적 역사와 심각한 체제상의 차이를 단순히 묻어버리는 것만으로 평화
공존이 정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최장집의 이처럼 파격적인 전환이 한국 민족주의에 대한
이전의 논문에 나타난 자신의 입장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은 분명하다. 그가 말한 최
소강령적 통일을 포함하여 통일은 이제 더 이상 민족주의의 ‘신성한 과제’가 아니라 단
지 ‘무모한 시도’일 뿐이다. 이전의 논문에서 최장집은 한국 민족주의의 지속적인 생명
력의 원천을 “분단극복에 의한 민족통일의 문제”에서 찾았는데, 이제 그는 통일의 실천
과정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위험과 병폐를 이유로 통일의 당위성은 물론 실효성마저
부정한다. 단지 평화공존만이 유일한 대안이다. 민족주의 역시 통일과 평화공존을 포함
한 남북한 관계는 물론 남한의 일상정치에서도 단지 위험하거나 무익한 이데올로기일
뿐이지, 민족지상주의가 상정하는 것처럼 순정한 무오류의 이념이 결코 아니다.73)
3. 탈근대론적 관점의 탈민족주의론
이제 마지막으로 탈근대론적 관점에 서 있는 탈민족주의론을 통일문제 및 민족
주의의 신성화와 관련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탈근대론자들은 다양한 “민족주의의 경
합과 차이를 넘어 민족주의 그 자체의 문제점과 한계, 위험성을 지적하며 해체하자”
고 주장한다.74) 대표적인 논자들로는 임지현, 윤해동, 권혁범, 조한혜정 등을 들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임지현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들의 탈민족주의론을 검토하겠다.
임지현은 군사독재 정권시절에 장준하, 강만길 등이 선도적으로 제기한 통일지상
주의적 통일 담론이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반공주의와 냉전논리”에 맞서 치열하게
투쟁해온 담론적 무기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모든 통일은
선이라는 사고 밑에는 통일이 한민족의 역사에서 선험적으로 주어진 역사적 당위라
는 인식”과 “민족이 초역사적인 실체적 본질이며 영속하여 흐르는 생명체라는 유기
체적 민족개념”이 깔려 있었다고 비판하면서 민족주의의 무오류성과 단일한 실체로
73) 최근 최장집은 “국가와 공동체에 대한 집단주의적 헌신을 강조하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는
현대의 대의민주주의가 중요시하는 정치적 의제들, 곧 노동문제를 포함한 “개인의 존엄성과 가
치”를 중시하는 “일상적인 삶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고 주장함으로써, 단순히 통일문제의 영역
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일반에 관해 민족주의의 부정적 영향력을 비판한 바 있다. 최장집.
2010. “민주-반민주 구도 넘어 ‘삶을 위한 정치’로: 기조강연”, 한겨레, 2010. 4. 1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32.html(검색일: 2016.9.1).
74) 홍석률, op, cit., p. 152.
152 ┃ 강 정 인
서 민족의 영구성을 공격한다.75) 따라서 지배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든 저항세력에 의
해 주도되었든 상관없이, 통일 담론은 “운명공동체적 단일성이라는 기치 아래 권력의
민중 동원체제를 정당화하는 잠재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76) 나아
가 그는 해방 후 남한에서 전개된 저항적 민족주의의 학문적 성과, 곧 분단극복의 의
지를 표명하는 민족주의 사학이나 민중해방을 추구하는 민중적 민족주의 사학에 대
해 그 실천적인 함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하지만,77) 궁극적으로 그 바탕에 깔
려 있는 억압적인 인식론적 전제(前提)로 인해 역설적이게도 분단을 재생산하거나 민
중 자신의 삶과 목소리를 배제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78)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제목으로 김동춘과 대담을 나눈 글에서 임지현
은 민족주의 재구성론의 입장에서 제시되는 “시민적 민족주의”나 “개방적 민족주의”
역시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하는 “폐쇄성”과 “배타성”이라는 민족주의의 본질적인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형용모순”이라고 공격한다.79) 임지현은 근래에 제시
된 “좋은 민족주의 대 나쁜 민족주의, 혹은 열린 민족주의 대 닫힌 민족주의”의 구
분에 관해 “민족주의 = 절대선” — 다시 말해 민족주의의 신성화를 구성하는 민족주
의의 무오류성 — 이라는 완고한 고정관념을 탈피한 흐름이라고 규정하면서 다행스
러운 현상으로 긍정한다. 그렇지만 그 구분에 깔린 “이항대립의 규범적 인식틀”이
여전히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암묵적인 구분에 근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80) 따라
75) 임지현,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p. 195. 권혁범 역시 통일당위론에 대
해 비슷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권혁범, “통일에서 탈분단으로 -민족주의 부국강병론을 넘어서
-,”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
판부, 2001), pp. 73-74.
76) 임지현, op. cit., p. 196. 임지현은 이러한 표현을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족주의를 염두에 두고
사용했는데, 필자는 통일 담론에 담긴 민족주의에도 적용된다고 보고 맥락을 바꾸어 사용했다.
77) 가령 임지현은 “억압적 국가권력에 맞서 싸우고 지배 헤게모니의 담론적 기제로 작동하는 민족
주의의 대안으로서 남한의 진보적 통일운동 또는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민중적 민족주의가 해온
역사적 역할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도덕성이나 정치적 선의는 물론이고, 민족과 민중을 양 축으
로 “반공 규율사회”의 틈새를 벌렸다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히 인정된다”고 언급한다. 임
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 비평, 제30권, 제3호, p. 195.
78) 임지현,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79) 김동춘.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서울: 도서출판 길,
2006), p. 505. 앞으로 이 대담에 나온 임지현의 발언을 적지 않게 인용할 터인데, 이 대담은 김
동춘이 2006년에 펴낸 책에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임지현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출처로 김동춘
을 밝힌 혼란스런 현상에 대해 독자들의 오해가 없길 바란다.
80) 임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 비평, 제30권, 제3호, pp. 184, p. 193. 이를테면
임지현은 “일본의 제국주의와 분단을 고착화하는 남한의 분단정권이 국가주의 = 나쁜 민족주의라
면,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저항 민족주의와 분단을 거부하는 민중적 민족주의는 좋은 민족주의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53
서 그는 “흔히 지적되는 한국인들의 폐쇄성이나 자민족 중심주의는 민족주의가 아니
라 국가주의의 소산”이라는 관점에 따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구분하는 김동춘의
논변에 대해 “한국에서 국가주의적 동원기제가 가능했던 것도 결국엔 담론적 차원에
서 작동하는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다시 말해 현실정치에서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한데 엮여 상호 구성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양자의 구분을 거부한다.81)
근대 국민국가와 민족주의의 접합양상에 관해서는 근대의 국민국가가 “인민주권론
을 국민주권의 사상으로 변형”시켜 “국민국가의 권력을 정당화하는 사상적 기제”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욕망을 지닌 구체적인 개개인을 단일한 집합의지를 가진 민족/
국민으로 추상화하고 권력의 의지를 국민 개개인의 의지로 내면화”한 것으로 설명한
다.82) 임지현이 보기에는, “민족이 민중을 전유하고 다시 국가가 민족을 재전유하는
전유의 연쇄고리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이어준다.”83) 이러한 임지현에게는 국민
주권의 탈을 쓴 국민국가 역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국가주의의 한 변형물에 불과할
뿐이다.84) 한마디로 그는 근대의 산물인 국민국가(국가주의의 한 변형물)는 물론 민
족주의를 개인을 억압하는 이념적 기제로 거부한다.
통일 담론에 대한 임지현의 비판과 대안을 검토해 보면, 그는 민족 동질성에 기
초한 통일 담론에 대해 “같은 핏줄이기 때문에 통일돼야 한다는 논리는 굉장히 위
험”하다고 하면서, 필요한 것은 “통일이 아니라 탈분단, 탈냉전”이라고 강조한다.85)
여기서도 다시 한 번 그는 “억압적 분단논리에 입각[한] 국가주의”와 “분단논리를
허무는 동력으로서의 민중적 민족주의”의 배타적 구분과 대비에 관해,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구분에 입각하여 통일이냐 분단이냐는 양자택일적 단순구도로 한반도의
정치현실을 이해하는 논리는 또다른 본질주의일 뿐”이라고 질타한다.86) 따라서 임
지현은 “하나의 국민국가를 당위로 전제하는 ‘통일’보다는 남북한간의 평화공존체제
를 지향하는 ‘탈분단’(혹은 탈냉전)으로 그 담론적/실천적 지향을 바꾸자”라는 조한
혜정, 권혁범 등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수용한다.87) 앞에서 검토한 바 있는 최장집의
라는 식이었다”고 언급한다(Ibid., p. 193).
81) 김동춘, op. cit., p. 508; 임지현,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
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p. 197 참조..
82) 임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 비평, 제30권, 제3호, pp. 186-87.
83) Ibid., p.194.
84) Ibid., p.187.
85) 김동춘, op. cit., pp. 510-511.
86) 임지현, op. cit., p. 198.
87) Ibid., p. 200.
154 ┃ 강 정 인
평화공존론 역시 이 지점에서 탈근대론적 탈민족주의 담론과 조우한다.
권혁범은 ‘통일’ 대신 ‘탈분단’이라는 개념을 선택한 이유를 체계적으로 밝히는데,
“‘통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통일을 해야 한다는 전제, 말 그대로 남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 다시 말해 강박감, 위압감 및 경직성을 포함하고 있어서 남북
한의 미래에 대한 다양한 구상을 담아낼 수 있는 개념적 유연성이나 포용성(“개념의
확장” 가능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남북한에서 역사적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그 개념을 남용하면서 그 개념이 오염되
었기 때문에 이를 대체할 새로운 용어로서 ‘탈분단’을 제시한다.88) 그는 통일 대신
‘평화’를 제안하고 지향하는 입장에 대해 “평화는 중요하기는 하지만, 너무 광의의
개념이며 한반도의 특수한 분단 상황에 대한 인식을 부분적으로만 반영하는 개념”이
라며 그 적실성을 부정한다. 그 대신 ‘탈분단’이라는 개념이 인권, 민주주의 등 보편
적 가치를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구조적인 왜곡의 상태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강하게 드러내고, 또 “통일이라는 의미가 주는 위압감과 강
박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용어”로서 적절하다고 주장한다.89)
이러한 탈분단의 관점에서 임지현은 “남북한 어디에도 동질성 같은 건 없다”고 단
언하면서, 권혁범과 마찬가지로 차이의 동질화를 전제하는 ‘통일’보다는 차이의 존중을
전제하는 ‘탈분단’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90) 이 점에서 논의의 초점을 “전체에 대한
개인의 예속관계를 전제”로 하는 유기체적 민족주의로부터 개인의 자유로 옮겨야 한다
고 역설한다.91) 따라서 탈분단의 관점에서 남북한 역시 “차라리 인권이나 민주주의, 인
간의 삶을 보장하는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짚어내고 이러한 사회를 공동으로 지향해나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92) 또한 단일한 국민국가를 지향하는 통일만이 유일한 해법이
아니며, “미래의 복합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 등 국민국가에 대한 대안적 경로를
해방시킬 것을 주문한다.93) 그리고 이러한 “복합적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은 동아시
아 지역공동체의 구상, 세계체제의 변혁 등에 열려 있는 비전이라고 덧붙인다.94)
88) 권혁범, op. cit., p. 76.
89) Ibid., p. 77. 이 점에서 권혁범이 제기한 “분단으로 인한 남북한의 구조적인 왜곡”을 어떻게 처
리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최장집의 평화공존론에는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90) 김동춘, op. cit., p. 512.
91) 임지현,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1), p. 201.
92) 김동춘, op. cit., p. 512. 그는 흔히 남과 북 사이에 존재하는 민족 동질성의 사례로서 유교적
예절의 존재, 가부장적 문화에 순종적인 북한 여성 등을 거론하는 것에 비판적이다( Ibid., p. 510).
93) 임지현,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 비평, 제30권, 제3호, p. 200.
94) Ibid.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55
Ⅳ. 글을 맺으며
지금까지 해방과 분단 이후 한국사회에서 전개된 서구중심적 근대화와 민족주의
의 신성화를 간략히 논하고, 이어서 1990년대 이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된 탈민족
주의 담론을 통일 및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관련하여 검토하였다. 검토된 논자들의
주장을 간략히 요약해 보면, 먼저 안병직과 이영훈의 경우, 통일은 ‘당위’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그것도 민족의 통일이 아니라 문명사적 통합
으로 개념화되어야 한다. 그것은 “시장, 법치, 사유재산”, 개인의 자유 등 “문명적
요소가 북한으로 확산되어 정착되는 과정”으로서 북한 스스로의 개혁개방에 의한 체
제수렴이든 아니면 남한에 의한 흡수통합에 의해 달성될 것이다. 그리고 과도한 민
족주의는 이제껏 무분별한 통일논의를 야기함으로써 소모적인 논쟁과 분열을 조장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문명사적 통합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최장집은 1996년에 발표
한 글에서 민족주의 재구성론에 입각하여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인종적 민족주의의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 시민적 민족주의를 제안했지만, 동시에 탈냉전시대에 통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민족의 자산으로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통일이 남북한의 차이를 통합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폭
력과 억압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는 탈근대론적 관점의 탈민족주의론을 수용하면서
이제 민족의 통일 대신 남북한의 평화공존을 주장한다. 통일은 더 이상 민족주의의
신성한 과업이 아니라 단지 무모한 시도로 인식된다. 나아가 그는 통일은 물론 평화
공존의 관리에서도 민족주의의 유용성을 더 이상 수긍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탈근
대론적 관점의 탈민족주의론을 제기하는 임지현은 민주화가 성취된 1990년대의 관
점에서 민중적 민족주의는 물론 재구성된 민족주의(‘시민적 민족주의’ 등)를 포함하
여 모든 민족주의를 단연코 거부한다.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억압
하는 폐쇄성과 배타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지현 역시 차이의 동질화를 수
반하는 통일을 거부하고 차이의 존중을 전제하는 탈분단을 제안한다. 그는 탈분단의
관점에서 남북한이 평화공존체제를 유지하면서 각자 인권이나 민주주의 등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는 사회를 공동으로 지향해나가면서 단일의 국민국가 대신 “미래의 복
합적 정치공동체” 등 대안적 경로를 상상할 것을 주문한다.
이제껏 논한 것처럼, 세 가지 입장을 대표하는 학자들이 제시한 탈민족주의 담론
들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하지만, 필자는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의미심장
한 두 가지 공통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인들이 오랫동안 당연시해온 ‘민족
156 ┃ 강 정 인
문제로서의 통일’은 잘못된 개념적 프레임으로서 인식의 지평에서 추방된다. 둘째,
민족주의는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이나 무분별한 통일논의를 야기하는 무모하고 위험
한 이데올로기이거나 아니면 민족 성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이(남북한 사이
에 존재하는 ‘이질성’ 역시 포함)를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강압적으로 동질화하려는
억압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최선의 경우에도 더 이상 신성시되
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폐기되어야 하는 그러한 이념이다. 신선하고 도발적인
이들의 주장은 우리 학계의 민족주의와 통일의 연구에서 과거의 오류를 바로 잡고
인식의 지평을 확대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또한 치밀한 비판을 필요로
하는데 이에 대한 연구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95)
분단 70년이 경과하는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지금까지 논한 것처럼, 남한은 서
구중심적 근대화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성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단위와 민족적 단위의 일치를 추구하는 민족주의의 기본 과제인 통일에 있어서는 여
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서구중심주의와 민족주의의 관계에서 남한의 정치적
경험이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은 민족의 자주성과 주체성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의 독
립·통일·발전을 추구하는 사상과 운동인 민족주의가 서구중심주의라는 프레임 내에
서 상상되고 추구되면서 서구중심적 근대화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역설이
다. 비록 성공적인 근대화는 물론 21세기에 직면하게 된 새로운 상황의 전개로 인해
민족주의의 신성화 역시 약화되고 있지만, 서구중심주의는 여전히 남한 국민의 의식
을 사로잡고 있다. 최근 인문사회분야의 학술연구지원이 서구적 이론과 구분되는 독
자적인 한국적 이론의 개발을 장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문제의
식이 감지되지만, 남한 사회에 만연한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해법이
나 대안적인 이론 제시는 여전히 부진한 상태에 처해 있다. 서구중심주의의 극복이
라는 과제는 민족의 독립, 산업화를 통한 경제발전, 민주주의의 성취보다 훨씬 더 어
려운 과제인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현실은 21세기 한국 민족주의가 쇄신하고 지향
해야 하는 지점과 방향을 시사해준다.
95) 학계의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서 주목할 만한 연구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 나종석, “탈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탈근대적 민족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인문연구 제57권 (2009); 나
종석,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헤겔연구, 제26권 (2009).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57
<참고자료>
강만길. 1987. “한국 민족주의론의 이해.” 이영희·강만길 편. 한국의 민족주의 운동
과 민중. 서울: 두레.
강정인. 2014. 한국 현대 정치사상과 박정희. 파주: 아카넷.
권혁범. 2001. “통일에서 탈분단으로 -민족주의 부국강병론을 넘어서-.” 한신대학교
개교60주년기획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
학교 출판부.
김구. 1997. 백범일지. 김학민·이병갑 주해. 서울: 학민사.
김동춘. 2006.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 서울:
도서출판 길.
김보현. 2006. 박정희 정권기 경제개발: 민족주의와 발전. 서울: 갈무리.
나종석. 2009. “탈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 탈근대적 민족주의 비판을 중
심으로.” 인문연구. 제57권.
나종석. 2009. “민족주의와 세계시민주의―자유주의적 민족주의를 중심으로.” 헤겔
연구 제26권.
대통령비서실. 1973.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1권 (최고회의편: 1961.07-1963.12).
서울: 대통령비서실.
대통령비서실. 1973.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4권 (제7대편: 1971.07-1972.12). 서
울: 대통령비서실.
대통령비서실. 1976. 박정희대통령연설문집 5권 (제8대편 상: 1972.12-1975.12).
서울: 대통령비서실.
박명림. 1996. “분단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이해.” 세계의 문학 (여름).
박정희. 1962.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개정 5판). 서울: 동아출판사.
박지향. 2006. “머리말.”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박호성. 1997. 남북한 민족주의 비교연구: ‘한반도 민족주의’를 위하여. 서울: 당대.
배진영. 2006. “뉴라이트 연쇄 인터뷰: 이영훈 낙성대경제연구소장: 민족주의로는
선진화 못 이뤄 자유주의가 민족주의의 대안.” 월간조선. 8월호.
아이젠스타트, 쉬무엘 N. 임현진·최종철·이정환·고성호 옮김. 2009. 다중적 근대성
의 탐구: 비교문명적 관점. 파주: 나남.
158 ┃ 강 정 인
안병직·이영훈. 2007. 대한민국 역사의 기로에 서다. 서울: 기파랑.
유선영. 1997. “황색 식민지의 문화정체성: 아메리카나이즈드 모더니티.” 언론과
사회. 제18권.
이영훈. 2004. “민족사에서 문명사로의 전환을 위하여.” 임지현·이성시 엮음. 국사
의 신화를 넘어서. 서울: 휴머니스트.
이영훈. 2006. “왜 다시 해방 전후사인가.” 박지향·김철·김일영·이영훈 엮음.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1). 서울: 책세상.
임지현. 2001. “민족의 역사학에서 인간의 역사학으로.” 한신대학교개교60주년기획
위원회 편. 한반도 통일논의의 쟁점과 과제. 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임지현. 2002. “다시,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창작과 비평. 제30권 제3호, pp. 183-201.
정수일. 2010. “민족과 민족주의, 그 재생적 담론.” 정수일 외. 재생의 담론, 21세
기 민족주의. 서울: 통일뉴스.
최장집. 1996.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 서울: 나남출판.
최장집. 2006. 민주주의의 민주화. 서울: 후마니타스.
홍석률. 2007. “민족주의 논쟁과 세계체제,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대응.” 역사비
평. 제80권.
Arnason, Johann P. 2002. “Communism and Modernity.” Shmuel N. Eisenstadt,
ed., Multiple Modernities, 61-90. New Brunswick and London:
Transaction Publishers.
Hobsbawm, Eric. 1992. Nations and Nationalism Since 1780. Second edi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김영삼. 1993. “제14대 대통령 취임사.” 2. 25,
http://www.pa.go.kr/online_contents/speech/speech02/1307797_6175.html#
(검색일: 2016.8.12).
최장집. 2010. “민주-반민주 구도 넘어 ‘삶을 위한 정치’로: 기조강연.” 한겨레. 4. 1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16132.html.(검색일: 2016.9.1).
8·15와 한국사회: 한국 민족주의의 신성화와 그 퇴조 ┃ 159
[English Abstract]
‘August 15’ and Korean Society: the
Sanctification of Nationalism and Its
Subsequent Decline
KANG, Jung In Sogang University
This paper investigates the meaning of August 15 (the day of national
liberation/division) in Korea in light of the sanctification of nationalism and its
subsequent decline. Under the overwhelming influence of the U.S., South
Korea rapidly internalized Western-centrism, positing the universality and
superiority of Western civilization since liberation by the Allied Powers at the
end of World War II. South Korea enthusiastically embraced and pursued
Western-centered modernization. In that process, nationalism was mobilized and
strengthened as an ideological mechanism to accomplish Western-centered
modernity. However, since the 1990s and just when it was about to undertake
the last and most cherished task of nationalism, national reunification, Korean
society witnessed the decline of and reaction to sanctified nationalism both in
theory and in reality. The national longing for reunification has been weakened
and discourses of postnationalism that deny the Sollen (the necessity) and
desirability of reunification have emerged during that time. These phenomena
pose a serious challenge to sanctified nationalism. This paper highlights the
sanctified nationalism accompanying the Western-centered modernization of
South Korea, and then it examines the subsequent erosion of such nationalism
by analyzing various postnationalist discourses.
Key Words ┃ August 15, Western-centrism, Western-centered modernization, nationalism,
the sanctification of nationalism, postnationalism
논문투고일: 2016.8.20 / 심사의뢰일: 2016.8.28 / 게재확정일: 2016.9.13
160 ┃ 강 정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