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중. 2016.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라틴아메리카연구』(한&
Asian Journal of Latin American Studies (2016) Vol. 29 No. 1: 189-216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김은중**1
단독/서울대학교
Kim, Eun-Joong (2016), “Latinamericanity from the Perspective of Constitutive
Theories”
ABSTRACT
This paper aims to elucidate Latinamericanity not from the
perspective of causal theories, but from the perspective of constitutive
theories. Causal theories seek to identify the mechanisms that lead
from X to Y, and where X and Y exist independently, where X
temporally precedes Y, and where without X, Y would not have
occurred. Constitutive theories illuminate how units like X and Y
came to be in the first place, and how they are constructed internally
and/or externally. In the perspective of constitutive theories,
Latinamericanity cannot be dealt with in isolation without including
and analyzing the project of modernity. Considering the contest over
the project of modernity as a crucial feature of the current conjuncture,
it is not surprising that we find problematic the move of another
intellectual project concerned with modernity, that of the
modernity/coloniality. Before we cast the project of modernity in
terms of reason, Enlightment, and secularism, it must be understood
as a power relation, that is, domination and resistance, sovereignty
and struggles for liberation. From the locus of enunciation of Latin
America and its critical perspectives, this paper draws attention to
Latin American historical experiences which have been the blind
spots of postcolonial theories.
Key Words: Latin America, Latinamericanity, constitutive theories, modernity,
coloniality
* This work was supported by the National Research Foundation of Korea Grant funded
by the Korean Government (NRF-2014S1A3A2043763).
** Eun-Joong Kim is HK professor in the Institute of Latin American Stud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Korea (Email: ocpaz@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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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년은 근대성이 ‘탄생한’ 해이다. 이것이 우리의 핵심 명제이다. 물론 이때
근대성이 탄생되었다고 하더라도 태아와 마찬가지로 자궁에서 성장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근대성은 자유롭고 창조성이 넘쳐나던 중세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연원했다. 그러나 근대성이 ‘탄생한’ 때는 유럽이 타자를 마주하고,
타자를 통제하고, 타자를 굴복시키고, 타자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였다. 또
근대성을 구성하는 타자성을 발견하고, 정복하고, 식민화하는 자아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던 때였다. 어쨌거나 저 타자는 타자로 ‘발견’된 것이 아니라
‘동일자’에 의해 ‘은폐’되었다. 따라서 1492년은 개념으로서의 근대성이 탄생한
순간이자 특유의 희생 ‘신화’, 폭력 ‘신화’가 ‘기원’한 순간이며, 동시에 비유럽적
인 것을 ‘은폐’한 과정이다.
—엔리케 두셀, 1492년, 타자의 은폐: ‘근대성 신화’의 기원을 찾아서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유럽중심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근대성, 근대 세계체제,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를 인과론(causal theories)의 관점이 아니라
구성론(constitutive theories)의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1 인과
론은 X(근대성, 근대 세계체제, 자본주의 세계경제)라는 사태와 Y(아메리카의
정복과 식민주의)라는 사태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X라는 사태가 Y라는
사태보다 시간적으로 선행하고, X라는 사태 없이는 Y라는 사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인과론과 달리 구성론은 X라는 사태와 Y라는 사태가
처음에 어떻게 동시에 발생했으며, 그 후에 어떻게 Y라는 사태가 X라는 사태의
내적 요소 그리고/혹은 외적 요소가 되었는지 설명한다. 구성론의 관점은
근대성과 관련된 사태들에 대한 인과론적 해석과는 몇 가지 점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첫째, 구성론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성은 유럽에서 출현하여 아메리카를
시작으로 ‘나머지 세계’로 퍼져나갔다는 유럽중심주의적 ‘터널 사관’과 ‘확산론’
은 잘못된 것이다. 근대성, 근대 세계체제,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아메리카의
정복/식민주의와 동시적이며 상호구성적이다(Quijano and Wallerstein 1992;
Dussel 1995; Blaut 2008; Negri and Hardt 2014).
둘째, 구성론은 근대성 자체에 대한 이해를 전면적으로 수정한다. 지금까지
1 15세기 말의 시점에서는 아메리카를 가리키고, 19세기 이후 북아메리카가 유럽의 헤게모
니를 대신하는 시점부터는 라틴아메리카를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라틴)아메리카로 표현
했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191
대부분의 경우에 근대성은 합리적 이성, 계몽주의, 전통과의 단절, 세속주의
등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네그리와 하트가 제국(Empire)에서 공통체
(Commonwealth)에 이르는 일련의 저작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구성론은 근대성
을 하나의 권력관계로, 즉 지배와 저항, 주권과 해방을 위한 투쟁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해, ‘근대성은 언제나 둘’이다(Negri and Hardt 2001, 111-138; 2014,
113-193). 근대적 주체는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자아’(ego cogito) 그리고/혹은
폭력적으로 ‘정복하는 자아’(ego conquiro)로 등장했다(Dussel 2011, 61-65).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합리적 명제와 ‘타자들은 생각하
지 못하거나 혹은 합리적으로 생각하지 못한다, 고로 타자들은 존재하지 않는
다’는 폭력적 반명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뇰로는 이렇게
주장한다. “식민성(coloniality)은 근대성을 구성하기 때문에 식민성이 없으면
근대성도 없다”(Mignolo 2010, 23). ‘식민성이 없으면 근대성도 없다’는 주장은
식민성이 근대성에서 파생된 것이나 근대성의 일탈이 아니며, 근대성에 앞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성은 언제나 둘’이라고 정의한 것은 합리성
을 내세우는 폭력적 근대성과 근대성에 저항하는 반(反)근대성이 서로를 구성
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식민성과 근대성은 동일한 사태를 구성한다. 이런
맥락에서 통상적인 관점에서 근대성, 근대 사회, 근대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탄생한 시점이 18세기 말, 곧 프랑스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과 계몽주의를
통해 보편적 인권과 시민권이 탄생한 시기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며 식민성을
은폐하려는 시도이다.
셋째, 식민주의(colonialism)와 식민성은 다르다. 식민주의가 외재적 형태의
지배라면, 식민성은 내재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을 통한 지배이다. 내재적 주체
화의 메커니즘은 저항하는 주체를 억압하기보다는 주체 내부에서 근대적
주체를 생성하는 지배 방식이다.2 식민성은 식민주의의 변형적 지속이다. 식민
지배에 저항하는 반근대성의 힘들은 근대성의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성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다시 말해, 반근대성은 근대성을 구성하는 식민
2 내재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이란 행위자들을 억압하거나 구속하는 것, 또는 어떤 행위들을
직접 금지하고 부정하는 대신에 행위자들의 행위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그것을 특정한
방향으로 한정하는 것이다. 푸코는 내재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을 ‘생명정치’(biopolitique)
로 불렀고(2004), 페루의 사회학자 키하노(Anibal Quijano)는 ‘권력의 식민성’(colonialidad
del poder)이라고 표현했다(2000). 네그리와 하트는 두 개의 개념을 섞어서 ‘삶권력의
식민성’이라고 불렀다(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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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대한 저항이다. 따라서 반근대성의 힘은 식민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유럽에도 존재했고 이러한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네그리와 하트가
지적한 것처럼 “너무나 자주 유럽 혹은 ‘서구’는 동질적이고 통일적인 것으로,
지배-피지배 관계 중 지배의 극(極)으로 묘사되며, 이는 유럽의 해방투쟁과
계급투쟁의 오랜 역사를 보이지 않게 만든다”(2014, 117).
넷째, 권력관계로 파악한 근대성은 초월적 선(善)이 아니며, 초월적 선에
도달하기 위한 미완의 기획도 아니다. 근대성이 미완의 기획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근대성이 야만과 원시, 비합리성 등으로 인식되는 전통과의 단절이며,
단절을 통한 진보의 과정이라고 본다. 그러나 ‘근대성은 언제나 둘’이며 이것이
권력관계로서의 근대성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야만과 원시, 비합리성은
반근대성으로 억압되거나 근대성의 외부로 배제될 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권력이 우선적이고 저항이 그것에 반작용한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저항이 권력에 우선한
다”(Negri and Hardt 2014, 133). 푸코가 주장한 것처럼 권력은 오직 자유로운
주체에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탈식민연구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지정학적 특이성은 구성론적 관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 경험과 유산은 인과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적 상황과 다르다. 본 논문에서는 구성론
의 관점에서 근대 세계체제와 자본주의 세계경제, 권력과 식민성과 유럽중심주
의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이는 구성론적 사태로 역사에 등장한 아메리카가
근대 세계체제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내적 요소 그리고/혹은 외적 요소로
변화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아메리카의 정복과 근대/식민 세계체제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고 하는 것’과 ‘어떤 일이 일어났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항상 동일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과 ‘어떤 일이 일어났
다고 이야기하는 것’의 간극에서 역사의 서사화가 발생한다. 역사의 서사화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에 포함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맥락을 단선적이고 연속
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적 ‘사실’은 통보리를 납작보리
로 눌러버리는 역사의 서사화를 통해 만들어진다(Trouillot 2011, 211-222).
멕시코 역사가이자 철학자인 에드문도 오고르만(Edmundo O’Gorman)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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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
1958년에 출간한 책 아메리카의 발명(La invención de América)에서 아메리카는
‘발견’된 것이 아니고 ‘발명’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492년 10월 12일 콜럼버스
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역사의 서사화라는
것이다. 그때까지 아메리카의 ‘발견’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상황에서
불거진 오고르만의 주장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기존의 유럽중심주의적인
제국주의 서사가 누락시켰던 관점을 공론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3 첫째, 콜럼
버스가 발견한 것은 ‘존재론적’ 관점에서는 바하마 혹은 엔틸리스 제도였고,
그 당시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의 상상력의 관점에서는 아시아였다. 콜럼버스의
항해 일지에 기록된 것처럼 콜럼버스는 1506년 죽을 때까지 자신이 아시아로
가는 서쪽 항로를 발견했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은
“아메리카 ‘아시아 존재’의 발명이다. 다시 말해서, 아메리카 대륙의 ‘아시아
존재’는 오로지 르네상스 시대 유럽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다”(Dussel
2011, 38).4
둘째, 아메리카는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텅 빈 대륙이 아니었다. 아메리카에
는 아나우악(Anahuac, 지금의 멕시코와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아스테카 문명과 마야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고 타완틴수유
(Tawantynsuyu, 지금의 페루와 콜롬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안데스 지역)에는
잉카 문명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발견’은 그렇게 묘사되고 있는 사건에 대한
미래의 서사들을 미리 틀 짓는 유럽중심적인 권력의 표현이다. 미셸-롤프
트루요가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발견’이라는 용어는 “정치적이고 지적인 이해
관계들을 재정의하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를 취해버린 것이다. 유럽은 ‘어떤
3 콜럼버스가 도착한 날로 추정되는 10월 12일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인종의 날’로, 미국에
서는 ‘콜럼버스의 날’로 기념된다. ‘인종의 날’이든 ‘콜럼버스의 날’이든 서사화된 역사를
기념식을 통해 제도화하려는 의도이다. ‘인종의 날’과 ‘콜럼버스의 날’이 국민국가 체제가
강화되었던 19세기 말에 스페인과 미국에서 제정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스페인은 아메리카 ‘발견’ 400주년이 되는 1892년에 대규모 행사를 통해 스페인의 과거의
영광을 전세계에 알리려고 시도했다. 스페인과 아메리카 대륙의 헤게모니 다툼을 벌이고
있던 미국은 1893년 시카고 ‘콜럼버스 세계박람회’를 통해 부상하고 있는 미국의 힘을
보여주려고 했다.
4 엔리케 두셀은 콜럼버스의 세계가 서지중해 마지막 상인의 세계이자 최초의 근대인의
세계였다고 말한다. “콜럼버스의 세계는 르네상스적 환상으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러나
더 이상 중세적이지 않은 세계였기에 콜럼버스는 3차 항해에서 남미 북부의 오리노코
삼각주가 지상낙원에서 흘러나오는 강의 하구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또한 베네치아,
아말피, 나폴리의 전통을 이어받은 상인의 세계였고, 메디치의 피렌체, 비오 2세의 로마,
그의 고향 제노바의 세계였고, 아프리카 북부의 이슬람 세계였으며, 투르크족과 대항하던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기독교 세계였다”(2011, 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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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일어났었던’ 중심이 된다”(2011, 215).
역사의 서사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다른 이야기들을 누락시키
는 것을 정당화하는 장치이다. 따라서 ‘발견’이 기록된 제국의 해석이라면
‘발명’은 누락된 식민지의 관점이다. 450년이 지나서야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
라는 인식의 전환을 제기한 것은 오고르만의 공적이었다.5
‘발견’과 ‘발명’은 단지 동일한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발견’과 ‘발명’은 두 개의 다른 패러다임에 해당한다. 두 개의 패러다
임을 구분하는 경계는 지식의 지정학(geopolitics of knowledge)을 구분하는
경계이다. 그것은 단순히 대화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용어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발견’이 유럽이 세계사를 인식하는 의기양양한 제국적 관점,
즉 ‘근대성’으로 불리는 성취를 전제한다면, ‘발명’은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난
채 자신들과는 무관한 역사의 진보적 성취를 따라잡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의
비판적 관점을 반영한다(Mignolo 2010, 39-40).
오고르만의 문제 제기를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시킨 것은 아니발 키하노와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1992년 공동 작업을 통해서 발표한 “개념으로서의 아메
리카-성(됨), 혹은 근대 세계체제 내의 두 개의 아메리카”(Americanity as a
concept, or the Americas in the modern world-system)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즉 ‘개념으로서의 아메리카-성(됨)’이란 명제는 아메리카가 ‘발견’된 것이 아니
라 ‘발명’된 것이라는 오고르만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아메리카가 근대
세계체제의 구성적 요소임을 드러낸다. 논문의 서두에서 키하노와 월러스틴은
아메리카와 근대 세계체제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근대 세계체제는 장기 16세기에 탄생했다. 지리-사회적(geosocial) 구축물인
아메리카도 장기 16세기에 탄생했다. 지리-사회적 실체인 아메리카의 창조
는 근대 세계체제의 구성적 행위였다. 아메리카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자본
주의 세계경제에 편입된 것이 아니었다. 아메리카가 없었다면 자본주의
세계경제도 존재할 수 없었다(549).
5 ‘발명’은 식민지의 관점이다. 그러나 식민지의 관점은 단일하지 않다는 것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식민지의 관점은 대별하자면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식민지 크리올의
관점, 아프리카계 주민의 관점, 원주민의 관점이다. 오고르만의 관점은 식민지 크리올의
관점이다. 오고르만의 책과 비슷한 시기에 출판된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의 식민주
의에 대한 담론(Discours sur le colonialisme, 1950)과 모국으로의 귀환(Retour au pays natal,
1956),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Peaux noires masques blancs, 1952)은 아프리카
계 후손의 관점이고, 파우스토 레이나가(Fausto Reinaga)의 인디아 아메리카와 서구(La
América India y Occidente, 1974)는 원주민의 관점을 보여준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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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하노와 월러스틴이 새롭게 제기한 문제설정의 바탕에는 ‘발견’이나 ‘발명’
보다는 유럽과 아메리카의 ‘마주침’(encounter)을 통한 구성적 창조라는 개념을
엿볼 수 있다. ‘마주침’은 타자의 주체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것이며, 구성적
창조는 주체들의 혼합과 상호변형을 의미하는 것이다. ‘발견’과 ‘발명’이 일방적
이라면 ‘마주침’은 쌍방적인 셈이다. 예를 들어, 카리브 해의 마르티니크 섬
출신의 시인이자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에두아르 글리상(Eduard Glissant)은
관계의 시학(Poetics of Relation)에서 ‘관계-정체성’을 제시한 바 있다. 글리상이
말하는 ‘관계-정체성’은 타자와의 쉼 없는 교환과 접촉을 통해 생성과 변화를
거듭하는 정체성, 다양한 접촉점을 향해 퍼져나가면서 타자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를 발견·창조해 나가는 역동적 정체성이다. 글리상은 ‘관계-정체성’을
통해 타자의 배제에 기초하는 정체성의 원리, 즉 유일한 ‘뿌리-정체성’의 원리를
비판하고 억압당한 타자의 목소리를 포함하는 관계의 총체를 제시한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전통적인 것과 근대적인 것, 야만적인 것과 문명화된 것 간의
이분법을 약화 그리고/혹은 소멸시킨다. 그러나 ‘마주침’이라는 시각에는 근대
성의 폭력과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간과하는 문제점이 노출된다.
월러스틴은 키하노와 공동으로 논문을 발표하기 전에 근대 세계체제
(I-III)을 출판했다. 월러스틴이 정의하는 근대 세계체제는 이전에 존재했던
정치적 단위의 제국이 아니라 이전의 세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종의
사회체제로,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도시국가, 민족국가, 제국 등으로 수렴되지
않는 경제적 실체이다. 월러스틴에 따르면, 예전에도 세계경제는 존재했지만
그것들은 제국으로 변형되었고,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발명한 것은 근대 세계
였다. 근대 세계는 하나의 ‘세계’ 체제로 등장한 것인데, 그것이 전 세계를
담고 있어서가 아니라, 사법상 규정된 어떤 정치적 단위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체제의 부분들을 잇는 기본적인 연결점이 경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의 ‘세계경제’이다. 더 나아가 월러스틴은 근대 세계경제가 제국으
로 변형되지 않고 세계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의
발전 덕분에 통일된 정치구조를 출현시키지 않고도 번영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
고 말한다.
월러스틴이 제시한 세계체제라는 개념은 대륙과 아대륙(subcontinent)의
지정학적 상상계에 국한되는 민족주의적 혹은 국민국가적 이데올로기에 갇히
지 않고 세계를 관계론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유용한 틀을 제공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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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근대 세계체제의 지정학적 상상계에는 근대성이
저지른 폭력과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월러스틴이
제시한 세계체제는 인과론적 관점이었고 구성론적 관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월러스틴이 구성론적 관점에서 세계체제를 재인식하게 된 계기는 키하노와의
공동 작업이었다.6 월러스틴과 키하노는 “개념으로서의 아메리카-성(됨), 혹은
근대 세계체제 내의 두 개의 아메리카”에서 예전에도 지금도 아메리카-성(됨)
은 근대성의 필수적인 요소임을 지적했고 아메리카-성(됨)의 중요한 요소로
식민성과 인종주의(racism)를 제시했다. 이것은 지식의 지정학의 측면에서
중대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마도 이러한 변화는 키하노의 지정학적
관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아메리카의 ‘발견’이
아니라 ‘정복’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장기 16세기 이후 근대 세계체제의
지정학적 상상계의 ‘내부’(=유럽)와 ‘외부-성(됨)’(=나머지 세계)으로 구축되어
왔다. 외부-성(됨)은 그 자체로 있는 외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가
만들어낸 외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외부-성(됨)은 타자의 공간으로 인식된
외부가 아니고 주체에 의해 내부화되는 외부이다.7 15세기 말까지 세계의
주변에 위치했던 유럽의 기독교는 야벳(Japhet)과 유럽을 동일시함으로써 유럽
을 아시아, 아프리카와 구별했다.8 16세기 초에 동시적으로 발생한 역사적
사건들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어족(Moors)의 패배, 유대인들의 추방, 대서양
상권의 등장— 이후에 무어인들, 유대인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근대 세계체제
의 지정학적 상상계의 외부-성(됨)이 되었다. 16세기 말에는 중국에 진출한
6 키하노와 월러스틴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을 1992년에 <국제사회과학잡지>(International
Social Science Journal)에 발표했던 시점을 전후로 페르낭 브로델 센터에서 공동연구를
진행했다. 1991년에 출간된 월러스틴의 또 다른 저서인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Historical Capitalism, with Capitalist Civilization)에도 키하노와의 공동 연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7 주체에 의해 내부화되는 외부는 “내부의 외부”(Kim 2012, 77) 혹은 “구성적 외
부”(constitutive outside)(Mitchell 2000, xiii)로 표현된다.
8 스페인 세비야(Sevilla) 출신인 이시도로(Isidoro)의 어원학 9세기 판본에 실려 있는
‘O 안의 T’(T-in-O)지도는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O 안의 T’(T-in-O)지도는 그
당시 유럽 기독교인들의 지정학적 상상계를 잘 보여준다. 지도에서 아시아는 원의 윗부분
을 차지하고 있고 유럽과 아프리카는 아래 반원을 서로 분할하고 있다. 서구 기독교인들은
세계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믿었고, 세 대륙을 노아(Noah)의 세 아들에게
배정했는데, 아시아는 셈(Shem)에게, 아프리카는 함(Ham)에게, 유럽은 야벳(Japhet)에게
주었다(Mignolo 2010, 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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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가 중국을 또 다른 외부-성(됨)으로 규정했다. 근대 세계체제의 지정학적
상상계에서 외부-성(됨)으로 규정된 타자들은 세계를 구성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의해 규정되었다. 잘 알려진 예가 ‘과연 무엇이 스페인의
아메리카 통치를 합법화하는가?’라는 문제를 놓고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
(Bartolomé de las Casas)와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Juan Gines de Sepúlveda)
사이에 벌어졌던 바야돌리드 논쟁이다. 정복사업에 개입한 수많은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내세워 식민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외부-성(됨)으
로 밀려난 원주민들은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었다. 정복자들의 군사적 정복에
반대하여 평화적 전교를 주장했던 라스 카사스에 대해서 당시 스페인의 뛰어난
인문주의자였던 세풀베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론과 정전론(正戰論)을
내세워 군사적 정복행위를 옹호했다. 세풀베다는 원주민을 타자로 인정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자연적 노예(natural slaves)로 태어난다는 아리스토텔레스
의 견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Rhee 1999). 라스 카사스와 세풀베다는 근대
세계체제의 지정학적 상상계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세풀베다가 근대성의
수사학의 대변자라면 라스 카사스는 근대성의 수사학이 은폐하고 있는 식민성
을 드러내는 목소리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스 카사스의 목소리는 근대성의
내부에 존재하는 차이로서의 반근대성의 목소리이다. 다시 말해, ‘인디오 보호
자’라는 칭호를 들었던 라스 카사스의 목소리가 원주민의 목소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근대 세계체제가 지식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세풀베다의 목소리와
라스 카사스가 대변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두 듣기 위해서는 근대 세계체제
는 근대/식민 세계체제로 개명(改名)되어야 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 밑에 감춰져 있는
제국적/식민적 토대를 발굴하는 것이며, 지금까지 근대성의 짝으로 역사에
서 언급되지 않았고 인정받지도 못했던 식민성의 관점에서 ‘지식의 지정학’
을 해명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식민성의 관점’이 의미하는 것은 관찰의
중심을 아메리카 대륙의 개념이 만들어졌던 식민의 역사에 두는 것이다
[…] 세계사는 근대성의 관점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서술되지만 식민성의
관점에서는 결코 서술되지 않는다 […] 식민성은 근대성의 서사에서는 부재
로 존재하기 때문에 식민성을 발굴하는 것은 근대성 프로젝트를 언급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나는 500년 전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만들어진
근대 세계를 근대/식민 세계로 규정하며, 식민성은 근대성을 구성하고 식민
성 없이는 근대성도 존재할 수 없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은 고립적으로 다뤄질 수 없으며, 근대/식민 세계의 관점은 세계체제에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 […] 아메리카의 발견, 그리고 원주민과 아프리카
198❙ AJLAS Vol. 29 No. 1
노예에 대한 학살은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명기보다 더 확실한 근대성의
토대를 이룬다. 다시 말하자면, 식민성은 근대성의 숨겨진 어두운 이면이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을 발굴하는 것은 서구가 어떻게 탄생했으며,
근대 세계질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이해하는 것이다(Mignolo 2010, 20-23.
강조는 필자).
‘(라틴)아메리카라는 개념’(the idea of [Latin]America)이 고립적으로 다뤄질
수 없다는 미뇰로의 언급은 (라틴)아메리카와 근대 세계체제의 구성론적 관계
를 강조한 것이다. 키하노와 월러스틴이 아메리카-성(됨)의 중요한 요소로
식민성과 인종주의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제목을 “개념으로서의
아메리카-성(됨) 혹은 근대/식민 세계체제 내의 두 개의 아메리카”로 붙이지
않은 것은 식민성을 근대성으로부터 파생된 것 그리고/혹은 근대성의 일탈로
보는 시각이 여전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뇰로는 근대성이 식민성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식민성이 근대성을 만들었기 때문에 식민성 없이는 근대성도
없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미뇰로는 식민성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을 고고학
(archeology)이라고 하지 않고 ‘발굴’이라고 부른다.9 근대성으로 식민성을 설명
하는 것이 아니라 식민성으로 근대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미뇰로와 함께 ‘라틴
아메리카 근대성/식민성 연구 프로그램’(The Latin American Modernity/
Coloniality Research Program)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엔리케 두셀는 다음
과 같이 선언한다.
스페인이 아메리카를 침략하면서 시작된 서양의 ‘근대성’은 대서양에 대한
유럽의 지정학적 ‘강탈’이었다.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느리고
위험한 육지가 아니라 바다를 통해) ‘세계-체제’를 시작하고 통제한 것이며,
300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정치경제적 균형이 주변적이고 고립되어 있던
구(舊)유럽에게 유리하게 이동한 식민체제의 발명이었다. 게다가 근대성은
동시에 (자본의 원시적 축적에 토대를 둔 초기 상업) 자본주의의 시작이고
발전이었다. 다시 말해, 근대성, 식민주의, 세계-체제, 그리고 자본주의는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으로 탄생했다(Dussel 1999, 155-156. 강조는 필자).
라스 카사스가 1552년에 쓴 인디아스 파괴에 관한 간략한 보고서(Brevísima
9 푸코는 고고학을 다양한 지식을 둘러싼 관계들의 역사를 밝히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특히 진리이자 과학이라고 평가되는 지식에 의해 가려진 침묵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어떻게 해서 침묵 속에 갇히게 되었나를 밝히는 작업이다. 고고학은 문학이나 예술
작품 속에 흔적으로 남아 있는 침묵의 소리를 찾아내는 것이다. 미뇰로가 식민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고고학이라고 하지 않고 발굴이라고 한 것은 근대성에 의해 식민성이
규정되기 이전의 식민성/근대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199
relación de la destrucción de las Indias)를 스페인 식민정책을 비난하는 근거로
활용하기 위해 소위 ‘검은 전설’(Black Legend)을 만들어냈던 영국, 그리고
프랑스가 19세기에 내세웠던 ‘문명화·의 사명’은 스페인이 내세웠던 ‘복음화의
사명’의 다른 판본이다. 근대 세계체제를 자본주의 세계경제로 개념화한 월러
스틴의 근대 세계체제에 복음화로 은폐된 식민성이 누락되어 있듯이, 조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의 장기 20세기(The Long Twentieth Century)에는 문명
화에 가려진 식민성이 누락되어 있다. 월러스틴이 “1450년 당시에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1999, 106)고 생각한 유럽으
로부터 근대 세계체제의 논의를 시작하듯이, 아리기도 유럽으로부터 유럽의
외부-성(됨)을 향해 논의를 진전시킨다. 세계체제론은 근대성과 진보를 동일시
하며 세계가 순차적 단계들을 거쳐 발전한다는 관념에 의존한다. 그 결과,
월러스틴의 관점에도, 아리기의 관점에도 식민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근대성에
대한 월러스틴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 대한 아리기의 논의도 유럽
내적 현상, 혹은 유럽으로부터 식민지로 확산되어 나가는 것으로 기술될 뿐
세계가 모두 참여하는 전지구적 현상으로 기술되지 않는다.
근대성은 마치 내재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었던 유럽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을 세계의 중심인 것처럼 서술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단순한
가정만으로 근대성에 대한 개념은, 그것의 기원과 발전, 그리고 현재적
위기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바뀌게 되고, 그 결과 탈근대성의 내용까지 바뀌
게 된다. 여기에 내가 첨언하고자 하는 것은 근대 세계체제에서 유럽이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중세에 유럽이 다른 문화들과 비교해 내재적인
우월성을 보여줄 만큼 많은 것을 축적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
는 아메리카를 발견/정복하고 식민화를 통해 통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인해 유럽은 오스만터키, 인도, 중국보다 상대적으
로 결정적인 이점을 가지게 되었다. 근대성은 이러한 사건들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따라서 유럽이 세계사에 대해 성찰적 의식 같은 것을 갖게
된 것은 세계체제 내에서 유럽을 구심적 위치에 놓았기 때문이다 […] 자본주
의 역시 유럽의 확장과 세계체제의 구심성이 결합된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Dussel 1995, 148-149. 강조는 필자).
미뇰로가 강조하는 것처럼, 근대/식민 세계의 관점은 세계체제에 소용돌이
를 일으킬 수 있다. 아메리카 정복과 식민주의,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 학살이
프랑스혁명이나 산업혁명보다 더 확실한 근대성의 토대를 이루며, 이를 통해
서구가 어떻게 탄생했고, 근대 세계질서가 어떻게 세워졌는지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200❙ AJLAS Vol. 29 No. 1
공산당 선언의 지리학과 자본주의 세계경제
오늘날의 세계화는 아메리카의 정복으로 막을 연 장기 16세기 이후 새로운
전지구적 권력 체계로 등장한 근대/식민-유럽중심주의적-자본주의(modern/
colonial-Eurocentered-capitalism)의 정점을 의미한다(Quijano 2000; Harvey
2001). 아메리카는 장기 16세기 이후 새로운 전지구적 권력 모델의 첫 번째
공간/시간으로 구성되었고, 이 때문에 첫 번째 근대적/식민적 정체성이 되었
다. 아메리카의 발견으로 대서양은 유럽과 대양의 서쪽 대륙 사이의 중심이
되면서 로마인들이 ‘우리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던 지중해는 절체절명
의 위기를 맞았고 1571년 레판토 해전과 더불어 주변부로 전락했다. 현재의
대서양은 1492년 마르틴 베하임(Martin Beheim)이 제작한 지구의에서 유일한
‘서쪽 대양’(Oceano Occidentalis)이었으며 앤틸리스가 한가운데에 있었다.
1513년 발보아(Vasco Nunez de Balboa)가 파나마 지협을 횡단하여 새로운
해양을 발견함으로써 비로소 ‘대양’은 남해(Mar del Sur, 후일 마젤란이 항해한
태평양)와 북해(파나마 북쪽의 카리브 해, 대서양)로 나뉘었다. 그리고 아메리카
는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발견한) ‘신대륙’으로 나타났다. ‘커다란 만’이라는
뜻의 시누스 마그누스(Sinus Magnus)는 조그맣게 그려졌는데 실제로는 거대한
태평양이었다. 이 사실은 그 당시에는 아무도 몰랐다(Dussel 2011, 39).
대서양 상용(商用) 순회로(the Atlantic commercial circuit)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의 상권과 아메리카의 아나우악과 타완틴수유를
연결시켰다(도판 1, 2참조). 그때까지 아나우악과 타완틴수유는 대서양 쪽으로
도 태평양 쪽으로도 지중해 상권과 연결되지 않았다. 이후 대서양은 세계
무역거래를 통제하는 본거지가 되었고 무역거래가 확장되면서 도시화가 촉진
되었다. 또한 아메리카로부터 유입된 귀금속이 화폐 자본이 되면서 이 지역의
시장들이 긴밀하게 통합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적으로 지중해와
이베리아 반도 해안 지역이 가지고 있던 헤게모니는 북서 대서양 해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유럽, 특히 서유럽이라는 지리문화적 정체성은 대서양 상권
이 등장한 이 역사적 시점에 구성되었다. 대서양 상권의 장악은 유럽이 전
세계 무역거래를 둘러싼 경쟁에서 이점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함축적으로 말하자면 신세계의 정복은 대서양 상권의 등장을 의미했고, 대서양
상권의 등장은 공산당 선언이 밝히고 있는 ‘공간적 조정’과 지리적 불균형발
전의 시작이었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01
아부-루고드는 13세기의 세계체제를 내적으로 연결된 8개의 하위체제들을 수반
하는 3개의 광역체제, 즉 서유럽, 중동, 극동으로 분류한다. 이들 지역은 14세기의
위기와 흑사병의 유행 등 번영과 역경을 어느 정도 공통적으로 겪었다(Abu-Lughod
2006, 59).
도판 1. 1300-1550년 사이에 존재했던 상권의 8개 순회로
대서양 상용 순회로는 도판 1에 나타나지 않았던 적어도 두 개의 상권을 결합시켰
다. 하나는 테노츠티틀란(Tenochtitlán, 지금의 멕시코)을 중심으로 하는 아나우악
(Anahuac, 지금의 멕시코에서 파나마에 이르는 지역) 상권이고, 다른 하나는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Cuzco)가 중심지였던 타완틴수유(Tawantinsuyu,
지금의 안데스 지역) 상권이었다(Mignolo 2000, 60).
도판 2. 대서양 상용 순회로
202❙ AJLAS Vol. 29 No. 1
아메리카와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으로 탄생한 자본주의는 역사적 자본주
의이다. 즉 장기 16세기에 등장한 자본주의는 무엇보다도 하나의 역사적 사회체
제이다. 자본주의라는 말이 자본에서 유래한 것인 만큼 자본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요소이다. 자본주의의 핵심적 요소인 자본이 축적된 부를 의미하고,
축적된 부가 오로지 더 많은 축적을 위해서 사용되는 자본순환과 자본축적의
과정을 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아메리카는 본원적 축적과 자본주의를 연결시키
는 매듭이다. 자본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primitive
accumulation)이라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했는데, 마르크스가 밝힌 것처럼 ‘본원
적 축적의 비밀’은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분리하는 것이었다. 본원적 축적의
내적 계기, 즉 유럽에서 자행된 본원적 축적의 방식이 엔클로저(enclosure)
운동과 공유재산의 횡령이었다면, 본원적 축적의 외적 계기, 즉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자행된 본원적 축적의 방식은 식민주의와 노예사냥이었다. “아
메리카에서 금과 은의 발견,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및
광산에서의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 전환, 이러한 것들이 생산의 자본주의적 시대를 알리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이러한 목가적인 과정들은 본원적 축적의 주요한 계기들이다”(Yi
2004, 310-311에서 재인용).
월러스틴은 근대 세계체제 I에서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확립되기 위해서
세 가지가 필수적임을 지적했다. 첫째, 문제가 되는 근대 세계의 지리적 규모의
확대이고 둘째, 세계경제의 서로 다른 생산품과 서로 다른 지역에 적합한
상이한 노동통제 방식의 발전이며 셋째,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핵심국가가
될 (유럽에서의) 비교적 강한 국가 장치들(state machineries)의 창조이다
(Wallerstein 1974, 38[근대 세계체제 1, 66-67]). 역사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근대/식민 유럽의 첫 번째 주변부가 된 아메리카는 대서양 상용 순회로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성립되는데 필수적인 처음 두 가지 요소를 제공했다.
무엇보다도, 본원적 축적을 가능하게 한 금과 은뿐만 아니라 훗날 상품 판매를
위한 광대한 지리적 공간을 제공했다. 대서양 상용 순회로의 장악으로 아메리카
에서 유입된 금과 은으로 자본 축적이 가능해지면서 유럽은 중국, 인도, 실론,
이집트, 시리아, 더 나아가 극동 지역을 포함하는 상거래를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아시아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유럽 경제가 근대의 여명기에
아메리카 대륙의 보물단지를 발견하는 행운을 누렸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03
사실이다(Day 1987; Gunder Frank 2003). 다음으로, 주변부로서 아메리카는
다채로운 노동통제 방식의 최선의 시험 장소를 제공했다. 키하노와 월러스틴이
지적하듯이, 장기 16세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주변부는 아메리카에만 한정되
지 않았다. 유럽에서도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그리고 남부 유럽의 일부가
세계경제의 주변부가 되었다. 그러나 유럽 내부의 주변부와 아메리카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했다. 이러한 차이가 앞에서 언급한 ‘개념으로서의 아메
리카-성(됨)이다. 유럽의 주변부에는 신생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저항하는 농업
공동체와 토착 귀족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에 주변화로 인해 발생한 경제적·정
치적 재구축 과정에서 문화적 저항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성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반면에, 아메리카의 주변부화 과정에서 멕시코와 안데스
지역 일부를 제외하고는 ‘무로부터의 창조’(ex nihilo)에 비교될 만큼 대부분의
원주민 문명이 처참하게 파괴되었고 원주민은 거의 전멸 상태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럽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조차도 아메리카 식민화의 첫 세기에
벌어진 원주민 대량학살의 원인을 정복의 폭력성이나 정복자들이 가지고
들어온 병균에 돌리고 있을 뿐 정복 이후 광범위하게 자행된 노동 착취에
대해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1492년과 1498년의 항해 이후 본격화된 교역과 이민은 세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처음 두 가지는 앨프리드 크로스비(Crosby 1972, 1986)의
용어를 빌리자면 균(菌)과 유전자의 ‘콜럼버스의 교환’(The Columbian
exchange)과 ‘생태제국주의’였다. 유럽인과 함께 묻어 들어온 균은 가장
강력한 정복무기나 다를 바 없었다 […] 카리브 해 일대의 경우 불과 50년도
못되어 토착원주민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다. 내륙에서도 전염병은 코르테
스와 피사로가 지휘하는 정복군보다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정복군은 자기들이 달고 온 병균이 자기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
로 내륙으로 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메리카 신세계가 입은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메소아메리카의 경우 아스테카 문명과 마야
문명은 1650년까지 인구가 2,500만에서 150만으로 줄어들었다. 안데스 산맥
의 잉카 문명도 900만에서 60만으로 인구가 급감했다(Crosby 1994, 22).
일각에서는 신세계의 인구가 1억에서 500만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Livi-Bacci 1992, 51)(Gunder Frank 2003, 137-138).10
10 콜럼버스의 교환의 두 번째 차원은 새로운 동물과 작물의 교환이다.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들어온 대표적인 동물은 말, 소, 양, 닭, 꿀벌이고, 작물로는 밀, 보리, 벼, 무, 배추 등을
들 수 있다.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간 대표적인 작물은 감자, 옥수수, 콩, 고구마,
담배, 초콜릿 등이다. 세 번째 교환의 차원은 아메리카에서 유럽으로 들어간 금과 은이다.
204❙ AJLAS Vol. 29 No. 1
근대 세계체제를 논하는 세계체제론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월러스틴이
지적한 세 번째 요소, 즉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핵심국가가 될 유럽의 비교적
강한 국가 장치의 등장이다. 조반니 아리기는 “자본주의는 그것이 국가와
동일시되었을 때, 그것이 국가일 때만 승리를 거둔다”(Braudel 1977, 64. Arrighi
2008, 47에서 재인용)는 브로델의 주장을 받아들여 자본주의를 국가와 자본의
독특한 융합으로 설명한다.
유럽 이외에 어디서도, 세계영토를 정복하여 막강하고 진정 전지구적인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형성하도록 유럽 국가들을 부추겼던, 이런 자본주의
세력들의 강력한 하나의 합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규명되어야 할 진정 중요한 이행은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아니라
분산된 권력으로부터 집적된 자본주의 권력으로의 이행이다. 이처럼 너무나
무시된 이행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국가와 자본의 독특한 융합인데, 유럽
말고 이것이 자본주의에 더 유리하게 실현된 곳은 없다(Arrighi 2008, 47.
강조는 필자).
아리기가 강조한 국가와 자본의 독특한 융합은 부르주아지 계급의 등장을
의미한다. 국가는 “탄생기에나 아니면 ‘정상적인’ 시기에나 다양한 출신을
갖는 부르주아적 층들 —봉건적 영주와 대토지 소유자들, 크고 작은 지주들,
상인이나 고리대금업자들, 식민주의적 약탈자들, 노예상인, 매뉴팩처 경영자
들 등— 을 하나의 계급으로 묶고 그것에 동질성을 부여하는 장치였다”(Yi
2006, 217). 따라서 강한 국가 장치는 본원적 축적의 내적 계기는 말할 것도
없고 외적 계기인 식민주의와 노예무역을 수행하기 위한 정치적 권력을 가리킨
다. 본원적 축적의 비밀이 생산자와 생산수단을 분리시키는 것이었다면, 본원
적 축적의 요체는 국가적 폭력을 이용한 대대적인 수탈이었다. 두셀이 근대성,
식민주의, 세계체제, 자본주의가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으로 탄생했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본원적 축적은 노동의 영역에서도 이루어졌다. 아메리카 원주민과 흑인
노동의 자본화는 전 세계 시장의 상업 자본, 노동, 그리고 생산수단의 통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근대 이전과 근대를 구분하기 위한 물질적 기반 중 하나는
시장을 위해서 생산을 조직화했던 사회들을 자본의 소유와 노동의 소유를
분리하지 않는 사회와 그것을 분리하는 사회로 나누는 것이다. 아부-루고드
(Abu-Lughod)에 따르면 이러한 기준은 근대를 구분하는 보편적인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아부-루고드는 13세기의 경제도 16세기와 마찬가지로 광범위했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05
고, 자유노동, 반자유노동, 노예노동이 혼재되어 있었으며, 유럽 최초의 은행가
들은 13세기 브뤼즈 또는 이탈리아 도시국가였다고 주장한다(29-30). 그러나
자본의 소유와 노동의 소유의 관계는 아메리카 발견/정복 이후 아메리카에서
생산되는 생산물의 전유와 분배 형태, 노동통제와 착취 형태에는 정확하게
적용된다. ‘콜럼버스의 교환’을 노동착취로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보자.
아메리카의 금과 은은, 엥겔스의 말을 빌리자면, 빈사상태에 있던 유럽
봉건사회의 모든 숨구멍에 부식산(腐蝕酸)과 같이 침투했다. 그리고 탄생하
고 있던 자본주의적 중상주의에 이바지하는 광산경영자들은 원주민과 흑인
노예를 유럽경제의 방대한 ‘외부적 프롤레타리아트’로 변화시켰다. 그리스·
로마시대의 노예제가 사실상 다른 세계에서 부활한 것이다. 스페인계 아메리
카에서 멸망한 여러 제국의 원주민의 비참한 운명 이외에 브라질과 서인도
제도에서의 노동을 위해 아프리카의 여러 촌락에서 끌려온 흑인들의 가공할
운명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라틴아메리카의 식민지 경제는
세계 역사상 일찍이 어떤 문명도 경험한 적이 없는 부의 최대한의 집중을
실현하기 위해 그때까지 알려져 있던 노동력의 최대한의 집중을 이용한
것이다. 탐욕과 공포와 사나움을 수반한 거친 파도는 원주민 대량 학살이라
는 희생을 불러일으켰다 […] 정복자들이 수평선상에 나타났을 때 아스테카,
마야, 잉카 사람들은 7천만-9천만에 달했다. 그러나 150년 후에는 모두
합해 겨우 350만이었다(Galeano 1999, 100-101. 강조는 저자).
정복자들의 노동통제 방식은 노예제, 농노제, 소상품 생산제, 호혜제
(reciprocity), 임금제 등을 포함했다. 그러나 아메리카의 노동통제 방식은 과거
의 형태를 단순히 연장한 것이 아니라 부의 최대한의 집중을 위해 역사적이고
사회적으로 온전히 새로운 방식의 강제노동이었다. ‘어떤 문명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식민지 강제노동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째, 아메리카의
강제노동은 세계 시장에 내다 팔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계획되고
조직되었다.11 둘째, 원주민과 흑인에 대한 노동통제 방식은 아메리카에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자본과 시장이 결합되어 전지구적인 새로운 노동통제
11 아메리카의 대표적인 노동통제 방식은 엔코미엔다(encomienda)와 레파르티미엔토
(repartimiento)였다. 엔코미엔다는 정복의 공로에 따라 초기 정복자, 스페인 왕실 공로자,
도시 창설자 등에게 토지와 그 토지에 속하는 원주민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엔코멘데로는 원주민의 교화와 보호를 조건으로 스페인 국왕으로부터 토지와 주민의
통치를 위임받아 원주민에게 강제노동을 부과했다.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엔코멘데로의
권리는 상속되었다. 레파르티미엔토는 가사노동, 수공업, 광업,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
특정한 숫자의 원주민 노동력을 배분한 제도였다. 안데스 지역에서의 레파르티미엔토는
식민 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미타(mita)제도와 혼용하는 방식으로 존재했다. 잉카 시대의
미타는 공적 분야에 개인적 노동을 제공하는 일종의 호혜제도였다(Kim 2014).
206❙ AJLAS Vol. 29 No. 1
방식이 되었고, 새로운 전지구적 권력 모델의 토대가 되었다. 셋째, 앞에서
언급한 것들의 결과로 각각의 노동통제 방식은 새로운 역사적-구조적 형태로
발전했다(Quijano 2000, 535). 이런 맥락에서 아메리카의 정복은 “신세계가
유럽을 향해 열린 것이 아니라 유럽이 신세계를 향해 열린 것이다!”(Dussel
2011, 45).
권력의 식민성과 유럽중심주의
키하노와 월러스틴은 아메리카-성(됨, americanity)을 무엇보다도 새로움
(newness)이라고 규정했다. 새로움은 아메리카가 역사에 등장한 그 순간부터
아메리카에 붙여진 훈장이자 십자가였다. 그리고 근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세계체제 전체의 모델이 되었다. 아메리카는 신세계(New World)였고, 세계체
제도 새로운 것이었으며, 근대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새로움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키하노와 월러스틴은 서로 간에 밀접하
게 연관된 사중(四重)의 새로움 —식민성, 종족성(ethnicity), 인종주의(racism),
새로움이라는 개념 그 자체(the concept of newness itself)— 을 제시한다(550).
식민성과 종족성, 인종주의가 아메리카라는 공간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다면
새로움이라는 개념은 근대적 시간 개념과 관련이 있다.
사중의 새로움에서 식민성은 본질적으로 위계적 층위의 국가-간 체제
(inter-state system)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출현을 의미한다. 식민지는 위계적
층위의 맨 밑바닥에 위치했다. 국가-간 체제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들은 장기
16세기 이후의 새로운 창조물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장치)는 본원
적인 자본의 축적과 집중을 촉진하는 가장 효율적인 지렛대였기 때문이다.12
역사적 자본주의하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정치적 투쟁을 수행했는가? 정치란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권력관계를 변경하고, 그럼으로써 여러 사회적
과정들의 방향을 바꾸려는 행위이다. 이런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이익을 거두게 해줄 변화의 지렛대를 찾아내야만
한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정치적 조정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지렛
12 국가장치와 자본의 축적과 집중의 관계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영토관할권이
고, 둘째는 영토적 관할권 내의 사회적 생산관계를 지배하는 규칙들을 결정할 수 있는
법적 권리이며, 셋째는 징세권이고, 넷째는 군사력이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07
대는 국가구조이기 마련이었는데, 그런 국가구조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
역사적 자본주의가 이루어낸 중요한 제도적 성취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
때문에 국가권력에 대한 통제가, 그리고 필요할 경우 국가권력의 강탈이
근대자본주의의 역사 전체를 통해 정치무대에서 활약한 모든 주역들에게
기본적인 전략목표가 되어왔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Wallerstein 1993,
49-50).
국가-간 체제에서 국가는 자율적인 정치적 실체가 아니었고 국가의 내적,
외적 경계는 끊임없이 변화되었다. 식민성은 국가의 위계를 결정하고 국가-간
상호관계를 지배하는 일련의 규범체계이자 이데올로기였다는 점에서 국가-간
체제를 유지하는 본질적인 요소였다. 따라서 국가-간 경쟁은 국가-간 체제의
여러 규칙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투쟁이었다. 국가-간 체제는
권력의 위계질서 아래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에서 국가를 구성하는
모든 경계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근대/식민 세계체제의 처음
3세기 동안 아메리카는 유럽에 정치적으로 종속된 식민지였다. 식민 기간
동안 식민성의 위계는 정치적, 경제적인 영역과 특히 문화적인 영역을 통치하는
기제였다. 아메리카의 독립은 이중의 과정이었다. 한편으로 식민 본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국가-됨(stateness)을 구성하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됨을
통해 국가-간 체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간 체제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들의 국가-됨은 장기 16세기 이후의 새로운 창조물이었다.
그리고 근대 세계체제의 국가-됨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는 종족성(ethnicity)이었
다. 종족성은 집단과 집단을 구분하는 공동체적 경계였고 영토 국가 내에서
정체성과 위계를 통해 국가-됨을 구성했다. 이 때문에 종족 집단은 때로는
자신의 역사를 주장하고, 때로는 자신의 역사를 창조했다. 종족성은 근대적
구축물이고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가-됨은 역사적
자본주의와 분리불가분의 관계이고 국가 내부의 종족적 갈등은 필연적이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종족성이 인종주의와 결합
되었다는 것이다. 인종주의는 식민적 상태가 종식된 이후에도 여전히 지속되는
사회문화적 위계를 통해 비(非)유럽인을 유럽인과 구별하는 것이었다.
인종 개념은 생물학적으로 우월함과 열등함의 순서를 추정하는 자연적
원리로 받아들여졌고 이에 따라 정복자와 피정복자의 차이를 성문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정복자들은 정복 이후의 지배 관계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로 인종 개념의 타당성을 주장했다. 새로운 권력 모델로 자리 잡은
208❙ AJLAS Vol. 29 No. 1
인종 개념은 아메리카 주민들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었고, 점차적으로 전
세계 주민을 분류하는 기준이 되었다. 또한 인종 개념은 자본과 세계 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노동을 통제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냈다(Quijano 2000, 533-534).
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기 전에는 근대적 의미의 인종 개념은 존재하
지 않았다. 따라서 종족성과 결합된 인종 개념은 아메리카-성(됨)을 구성하는
새로움의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였다. 인종의 범주에 따른 사회적 관계는
아메리카에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의 기원이 되었다. 그 이전까지 단순히 출신지
를 의미했던 스페인인, 포르투갈인은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으로 등장한 인디오,
흑인, 메스티소(mestizo)와 인종적 차이를 의미하는 말이 되었다. 인종적 차이를
의미하는 사회적 정체성은 사회적 위계와 역할을 함축하는 지배 관계의 표현이
었다. 즉 인종주의는 단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만이 아니라 근대성을 지탱하
는 물질적이고 제도적인 관행들의 체계로서 노예제가 사라진 뒤에도 근대성
안에서 다른 무수한 형태들로 모습을 바꾸어 가며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인종적 정체성은 근대의 기본적인 사회적 분류의 도구였다.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제국의 갈 길을 인도한 것은, 어떤 이들은 자유롭게
살기 위해 태어나고 다른 어떤 이들은 노예가 되기 위해 태어난다는 확신이었
다. 그러나 인종차별주의가 유럽의 배부름을 위해 도덕적 면죄 체계로 정립
된 것은 르네상스 시기와 신대륙 정복 때부터였다. 백인들은 식민지에 살던
다수의 사람들을 내쫓고, 소수자를 소외시켰다. 인종차별주의는 그때부터
세계를 지배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화약만큼이나 인종차별도 필요했다 […]
200년 전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바라볼 줄 알았던 독일의 과학자 훔볼트
(Humboldt)는 “피부색이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계급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동안 일어난 변화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의 발언은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아직도 상당히 잘 묘사하고
있다(Galeano 2004, 56-78).
종족/인종주의는 노동 분업을 위한 사회적 경계였다. 아프리카 흑인에게는
노예제도가 적용되었고, 원주민에게는 여러 가지 형태의 강제노동이 부과되었
다. 계약임금노동은 유럽에서 이주한 노동자에게만 해당되었다. 노동력의
인종집단화는 세계경제의 작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세 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인종집단화는 제각기 분수에 맞는 소득수준을 기대하는 여러 부류의
노동자를 공급하는 노동력의 재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둘째, 인종집단화는
인종집단 내에 분수에 맞는 노동력 훈련 기제를 마련하게 함으로써 고용자와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09
국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셋째, 인종집단화는 본래 그렇게 주어진 것이라는
합리화를 통해 직업적·경제적 위계를 정함으로써 전반적인 소득분배를 위한
규칙체계를 마련해주었다. 한 마디로 종족/인종주의는 노동력의 위계화를
위한, 그리고 지극히 불평등한 소득 분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였다
(Wallerstein 1993).
유엔 산하 라틴아메리카 경제위원회(ECLA)의 책임자였던 라울 프레비시
(Raúl Prebisch)는 중심부-주변부 이론을 통해 기존의 국제교역 메커니즘하에
서 라틴아메리카는 자신의 잉여가치를 선진국에 이전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발전을 위한 자본 축적에 실패했음을 역설했다. 그러나 프레비시는 교역조건
악화론을 내세워 비교우위의 고전적 국제교역이론을 비판했지만 새로운 전지
구적 권력 모델의 중요한 부분인 노동과 자원, 생산물의 통제를 가능하게
한 역사적 모델의 핵심을 간과했다. 다시 말해,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아메리카
와 동시적이고 상호구성적으로 탄생한 그 순간부터 근대적/식민적이며 유럽중
심적이었다는 것을 모르고/잊고 있었던 것이다. 종속이론가들은 라울 프레비
시와 ‘더불어’, 라울 프레비시를 ‘비판하는’ 새로운 이론을 주장했다. 주변부의
교역조건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산업화를
추진하고, 보호무역주의를 실시하며, 국제적 협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라울 프레비시와 달리, 종속이론가들은 주변부의 저발전이 발전으로 가는
전 단계가 아니라, 중심부의 발전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서 중심부의
발전과 근본이 다른 또 다른 발전 형태임을 주장했다. 이런 시각에서 대표적
종속이론가 중 한 사람인 안드레 군더 프랑크는 주변부의 발전을 ‘저발전의
발전’으로 규정했다. 종속이론가들은 근대-전통의 이분법이 추상적이고, 형식적
이며, 비역사적이라고 보았다. 즉 근대-전통 이분법은 발전과 저발전의 토대를
이루는 사회적 과정의 특징을 올바르게 제시하지도 못하고 적절하게 설명하지
도 못한다고 비판했다. 근대-전통 이분법은 라틴아메리카의 저발전의 원인을
낙후된 전통에서 찾음으로써 세계적 수준에서 벌어지는 지배와 착취 구조를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종속이론가들은 라틴아메리카의 저발
전을 설명하기 위한 올바른 접근법은 ‘구조적-기능적’(structural-functionalist)’
방법이 아니라 ‘역사적-구조적’(historical-structural)’ 방법이어야 한다고 주장
했다. 종속이론가들은 역사적-구조적 방법을 통해 라울 프레비시가 모르고/잊
고 있었던 장기 16세기 이후 근대적/식민적-유럽중심적 자본주의의 지배와
210❙ AJLAS Vol. 29 No. 1
착취 구조를 드러내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종속이론가들은 정통 마르크스주의가 비판받았던
경제적 환원주의를 재생산했다. 사회적 과정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측면에
우선권을 줌으로써 문화적이고 이데올로기적 결정요인들을 간과했다. 이러한
태도는 두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다. 첫째, 앞에서 강조한 것처럼 라틴아메리카
의 식민적/인종적 위계질서를 과소평가했고 둘째, 복합적인 정치적-경제적
과정에 대한 분석이 빈약했다. 대부분의 종속이론가들에게 경제는 사회분석을
위한 특권적 영역이었고, 인종 문제는 자주 무시되거나 계급이나 경제논리로
환원되었다.13 전지구적 자본주의를 지속시키는 역사적-구조적 지배의 두 축인
자본과 노동의 분리, 유럽인과 비유럽인의 분리 중 후자의 문제를 과소평가했다
는 것이다. 식민 시기로부터 독립 이후의 시기에 이르기까지 근대적/식민적-유
럽중심적 권력 관계는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고 백인 크리올(creoles) 엘리트들
은 종족/인종주의의 관점에서 ‘국민’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구축하고 재구축
해왔다. 이 과정에서 국민을 형성하는 구성원에게 부여되는 시민적 권리,
정치적 권리, 사회적 권리는 이등 계급 시민인 원주민, 흑인, 메스티소, 물라토
(mulato), 삼보(zambo)에게는 완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아메리카 역사에서
그들은 많은 순간 잊힌 존재였다. 많은 라틴아메리카 좌파 세력은 혁명을
조직하고 국가 권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비유럽계 주민에 대한 백인 크리올
엘리트들의 지배 구조를 그대로 재생산했다. 다시 말해, 라틴아메리카 좌파는
식민시기에 만들어져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근대적/식민적-유럽중심
적 권력의 식민성을 근본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인종주의나 ‘인종적 사고’(racial thinking)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간주될
때, 그것은 근대성의 일탈 혹은 실패로 제시되며, 따라서 널리 스며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로서의 근대사회로부터는 상대적으로 분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식민성과 마찬가지로 인종주의는 근대성에 내재적일 뿐
아니라 근대성을 구성하기도 한다 […] 근대성-식민성-인종주의의 복합체를
규정하는 권력관계는 기본적으로 앎(knowing)의 문제가 아니라 함(doing)의
문제이다. 따라서 우리의 비판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존재론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 근대성-식민성-인종주
의의 권력은 단 한 번도 단순히 상부구조적 현상이었던 적이 없다. 그것은
13 종속이론가 중에서 인종 문제를 천착한 예외적 인물이 아니발 키하노이다. 그러나 키하노
도 젠더와 가부장주의에 대해서는 깊이 있는 논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비판은
단지 키하노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11
오히려 피지배 주민들의 집단적 실존 전체를 가로지르는 가운데 그들의
몸에 삼투되어 내부에서 삶형태를 생산하는 물질적 장치이다(Negri and
Hardt 2014, 130-132).
종속이론가들의 경제 환원주의가 가져온 두 번째 문제는 흔히 유럽중심주의
로 이해되는 이데올로기적/상징적 전략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정치경제학을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한 것이다. 전지구적 상징적/이데올로기
적 전략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주변부 관계를 형성하는 핵심적인
구조적 논리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중심부로서 유럽은 세계시장을 통제할
뿐만 아니라, ‘나머지 세계’의 주민들의 ‘지구문화적’(geo-cultural)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했다. 오늘날 서구와 ‘나머지 세계’라는 이분법은 다양하고 이질적
인 문화와 역사가 유럽이 지배하는 단일한 세계로 동질화되었음을 의미한다.
‘나머지 세계’의 역사적-구조적 이질성이 서구의 구조적-기능적 동질성으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주민들이 원주민들의 터를 빼앗는 방식은 대체로 두
가지이다. 첫째는 폭력이고, 나머지는 합법적인 정당성을 부여받는 일이다.
역사 속의 정치와 종교는 이 두 가지 테크닉을 절묘하게 섞어 자신의 입지를
넓혀온 것이 사실이다”(Kim 1996, 15). 그렇다면 유럽은 어떻게 합법적인
정당성을 부여받았는가? 유럽이 내세우는 합법적인 정당성은 키하노와 월러스
틴이 언급했던 아메리카-성(됨)의 사중의 새로움 중에서 ‘새로움이라는 개념
그 자체’이다. 그리고 이 새로움의 개념은 두 개의 아메리카 중 라틴아메리카가
아니라 앵글로아메리카에 해당된다.
유럽인들은 역사를 새로운 시간 개념을 통해 인식했고 식민지 주민들, 그리
고 식민지 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유럽이 정점을 차지하는 역사적 궤적에
재배치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식민지 주민들은 유럽인들과 동일한 연속선
상에 있지 않고, 본래 다른 범주에 속했다. 식민지 주민들은 열등한 인종이었
고, 그 때문에 유럽인들과 비교해서 과거에 속했다. 근대성과 합리성이
오로지 유럽인들의 작품이고 경험이라는 상상은 이런 관점의 소산이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서구와 ‘나머지 세계’ 사이의 상호주체적이고 문화적
관계가 새로운 범주 —동양-서양, 원시인-문명인, 마술적/신화적-과학적,
비합리적-합리적, 전통적-근대적, 유럽-비유럽— 로 성문화되었다 […] 유럽
중심주의의 독특한 특징인 지식에 대한 이러한 이항대립적이고 이원론적인
관점은 세계에 대한 유럽의 식민 지배의 확장과 같은 경로로 전지구적
헤게모니를 장악했다(Quijano 2000, 541-542).
유럽인들이 근대성을 철저히 서구적인 개념으로 주장하는 것은 새로운
212❙ AJLAS Vol. 29 No. 1
시간 개념, 즉 역사를 직선적이고 불가역적인 시간 개념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다. ‘새로움이라는 개념 그 자체’의 새로움이 의미하는 것은 직선적 시간 개념이
며, 직선적 시간 개념은 변화를 의미한다. 즉 시간을 끊임없는 변화로 인식하는
것이며 변화를 진보와 동일시한다. 근대의 직선적 시간 개념은 유럽중심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두 가지 신화를 탄생시켰다. 첫 번째 신화는 근대 서구 문명이라
는 오직 하나의 문명만이 존재하며 다른 문명들은 근대 서구 문명이라는
유일한 모델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신화는 사회와 문화의 변화는
직선적이고, 진보적이며, 양적으로 측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서구
문명의 신화 앞에서 나머지 세계의 문명은 본래 열등한 것이며, 그 결과 근대
이전의 문명으로 격하된다. 요하네스 파비안(Johannes Fabian)은 이러한 유럽
중심주의적 근대성의 신화를 ‘동시대성의 부정’(the denial of coevalness)이라고
불렀다(1983). 근대 서구 문명과 다르거나(different), 떨어져 있거나(distant),
이질적인(heterogeneous) 문명은 열등하거나, 저발전이거나, 미개한 문명이다.
유럽인에 의한 아메리카의 발견이 ‘공간의 식민화’였다면, 진보와 동일시되는
직선적 시간의 발명은 ‘시간의 식민화’로 규정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이 글의 목적은 구성론적 관점에서 유럽중심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근대성,
근대 세계체제,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라틴)아메리카의 관계를 재해석하는
것이었다. 아메리카는 ‘존재’가 아니라 ‘개념’으로 세계사에 등장했다. 이 때문에
아메리카라는 개념은 ‘아메리카가 무엇인가?’라는 물음보다 ‘아메리카가 어떻
게 만들어졌는가?’라는 물음과 더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콜럼버스가 소위 ‘인종
의 날’ 혹은 ‘콜럼버스의 날’이라고 불리게 된 날 카리브 해의 어떤 섬에 도착했을
때 아메리카는 존재하지 않았고 19세기 중반에야 라틴아메리카라고 불리게
될 실체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 없는 사람들의 대륙’으로 취급된 아메리카
는 유럽인의 의식으로부터 만들어졌고 라틴아메리카는 유럽을 추종하는 식민
지 크리올의 의식 속에서 만들어졌다.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라틴)아메리카
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근대성과 관련된 사태들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동전의
양면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아메리카, 근대성, 근대 세계체제, 자본주의
구성론의 관점에서 본 라틴아메리카-됨
❙ 213
세계경제는 동일한 사태의 다른 표현들이다. 그러나 문제는 (라틴)아메리카의
위치에 보는 근대성은 근대성/식민성이며, 근대 세계체제는 근대/식민 세계체
제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노예사냥과 식민주의를 통한 본원적
축적으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자본을 자본주의로 이동시킨 것은 아메리카
였다. 그런데 통상적인 역사학의 관점에서는 근대성, 근대 사회, 근대인이
탄생한 시점을 프랑스혁명을 비롯한 시민혁명, 계몽주의를 통해 보편적 인권과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 18세기 말로 본다. 그 결과, 16-17세기는 누락되며,
근대성은 식민성을 은폐하고 이성과 과학으로 포장된다. 또한 계몽주의적
근대성은 유럽의 독자적 결과물이 되고 유럽과 나머지 세계의 위계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식민성은 근대성으로부터 파생된 불가피한
부작용이나 일탈일 뿐이며 완성해야 할 ‘미완의 기획’이다. 그러나 식민성은
성찰적 근대성이 완성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식민성 없이는 근대성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구성론은 근대성을 근대성/식민성으로 이해한다. 식민성은 식민주의가 아
니다. 식민성은 근대성이 만든 위계적 질서를 내재적 주체화의 메커니즘을
통해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기제이다. 식민성은 세계체제의 중심과 주변부에
모두 존재한다. 근대성을 근대성/식민성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근대성이 모두가 따라가야 할 최종적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성이 억압하고 배제하는 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근대성의 문제는
세계체제의 모든 부분이 개입된 전지구적 현상에 대한 이해이며 권력관계에
대한 성찰이다. 탈식민주의 연구에서 (라틴)아메리카가 보여주는 특이성이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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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 Received: 2016. 01. 04
Accepted: 2016. 02.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