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후. 2017.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해: 촛불 시위의 사상적 배경 연구.”

제15권 제1호(2017) 39-77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해*1)
: 촛불 시위의 사상적 배경 연구
이관후(서강대)

Ⅰ. 정치, 폭력, 촛불시위
일반적으로 정치가 폭력에 덜 의존할수록 피치자의 동의와 협력에
기반을 둔 정당성이 높은 정치체제라는 관념이 존재한다. 국가를 합법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
임(NRF-2014S1A3A2043763).

적 폭력의 독점권을 가진 존재로 보는 입장에서도 그러한 폭력이 자
주 행사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보면,
사회적 갈등을 국가의 강제적인 힘보다 시민들 간의 자발적인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높은 정치적 정당성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근대 이후에도 폭력의 사용이 정치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가
에 대한 논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은 강압적이
거나 부조리한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의 과정에서 나타나는 폭력이다.
영국에서는 앨저넌 시드니(Algernon Sidney)와 존 로크(John Locke)가 부
당한 군주의 통치에 대한 인민의 저항권을 주창하면서, 압제적인 정치
권력에 대한 정당한 무력 사용의 이론적 기반을 마련했다. 또한 이러
한 영향을 받아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 과정에서 폭력을 수반
한 저항은 불가피하거나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그 전통은 사회
주의(공산주의) 혁명에서도 변혁 이론의 핵심을 차지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비폭력 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이
정치적 저항의 대표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고 확산되면서, 대항폭력이
바람직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약탈
적 금융자본주의가 야기하는 불평등에 반대하는 ‘월스트리트 점거운
동’ 과정에서도 이는 첨예한 논쟁의 주제였다. 이 운동이 폭력적으로
되어도 좋은가 아니면 비폭력으로 일관해야 하는가를 두고 논란이 벌
어졌다. 이 논쟁에서 비폭력을 주장한 사람들은, 폭력이란 본래 지배
자와 경찰의 것이라는 점, 폭력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점, 폭력
을 쓰는 한 운동은 정당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점, 폭력보다 더 유력
한 대안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비등점까지 폭력을 유보해야 한다는
점 등을 논거로 삼았다. 반대 측에서는 저항운동이 폭력화되는 것은
의제와 운동이 확대·발전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것이라
는 점, 그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점, 폭력 앞에서 비폭력을 외치는 것

자체가 폭력적이라는 점, 자기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주장했
다(이항우 2012, 279).
이러한 양상은 월스트리트 점거운동 이전에 이미 한국의 촛불집회
와 시위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1) 국제인권단체인 엠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는 2008년의 촛불시위가 경찰당국의 폭력진압에도 불구하
고, 시민들이 ‘자유발언대’를 통해 평화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소통을 통한 공론장의 형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전에 찾
아볼 수 없는 ‘새롭고도 성숙한 시위문화’라고 평가했다(채진원 2010,
198).
2008년 촛불시위의 이러한 특성은 2016~17년의 촛불시위에서도 재
현·강화되었다. 다수의 집회 참석자들은 원칙적으로 비폭력을 견지했
으며, 때로는 완강할 정도로 폭력시위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시
위참여자들은 스스로 먼저 비폭력을 외쳤고, 시위는 놀이 문화가 합쳐
진 일종의 ‘촛불 문화제’에 가까운 형태였다. 시위대를 가로막은 경찰
과 몸싸움을 벌이거나 경찰버스에 올라타려는 일부의 시민들을 비난
하고 제지했으며, 오히려 경찰버스에 꽃 모양의 스티커를 붙였다. 게
다가 이를 제거하는 경찰들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집회가 끝날 무
렵에는 이를 다시 떼어주기도 했다. 과거 집회의 중앙무대는 학생운
동·노동운동·사회운동 지도자들의 연설을 거쳐 투쟁결의문을 낭독함으
로써 물리적 저항을 선도했으나, 촛불집회는 시민 참여자들의 발언과
다양한 퍼포먼스의 장으로 변모했다. 분노와 정의감으로 광장에 나온
1)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집회란 ‘여러 사람이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일시적으로 모임’, 시
위란 ‘많은 사람이 공공연하게 의사를 표시하여 집회나 행진을 하며 위력을 나타내는
일’을 말한다(네이버 국어사전).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집회는 시위의 한 형태로서 행
진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이번 촛불시위에서는 광화문 광장과 같은 장소
에 모인 상황을 집회, 그 대열이 청와대 등으로 무리지어 향하는 것을 행진으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집회와 시위를 시민들의 집단적인 정치적 의사표현
의 방식으로 보고, 이를 시민적 저항(civil resistance)의 형태라는 측면에서 이해한다.

시민들은 오히려 해방감, 연대감을 맛보고 축제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
꼈다. 내외신 언론과 국민들은 이러한 변화에 대해 ‘민주화 이후 성숙
한 시민의식과 시위문화’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부 시민들은 비폭력 시위가 가진 한계, 혹은 비폭력이라는
프레임에 싸여있는 것 자체가 시위의 상상력을 제한한다는 주장을 제
기했다. 또한 촛불집회의 참여자들 중 일부도 청와대로의 행진에서 물
리적 수단을 회피할 필요가 없다면서 다른 참여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2) 투쟁의 문화화·축제화는 비폭력·평화의 이미지로 칭송을 받았
지만, 이를 통해 그러한 경향을 일방적으로 고무·재생산하는 효과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화에 대해 지배의 프레임에
갇혔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천정환 2017, 439).
만약 우리가 비폭력 시위문화를 성숙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
떤 점에서 그러한가? 일반적으로 폭력이나 강압과 같은 물리적 활동
이 아니라 대화라는 언어적 활동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어떤 문제의
결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 문명의 한 척도임에는 틀림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필요한 폭력을 최대한 자제하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
하려는 노력은 분명 그렇지 않은 태도보다 성숙한 것이라고 할 수 있
을 것이다. 반면, 그러한 비폭력성이 주체적이며 성찰적인 자의식
(self-consciousness)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강요되거나 이데올로기적으로
포획된 것이라면, 이러한 경우에 비폭력성 자체만을 놓고 성숙하다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비폭력이 시위의 핵심적 수단이자 의제로 등장하는 과정이 합리적
판단에 따른 합의보다 우연적이고 일방적인 맹신의 결과라면, 이는 그
것의 결과와 별도로 비판적 분석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보다 근본적
2)

한국일보. 2016. 11. 26. http://www.hankookilbo.com/v/a9c7e0531cfa46cc9af247fe10ae0594
(검색일 2017. 4. 2)

인 질문들, 곧 모든 시민적 저항은 반드시 비폭력을 전제해야 하는가,
혹은 비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적 저항보다 옳은가에 대한 의문
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는 비단 이론적 측면 뿐 아니라, 민주주의라
는 불완전한 정치세계에 살아가는 우리가 국가권력과 주권자들 간의
갈등에서 항상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현실적 측면에서도 중대한 문
제다.
정치와 폭력의 관계에 대한 국내의 기존 연구는 대부분 현실에서
벌어지는 국가폭력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자체가
전쟁과 깊게 관련되어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이데올로기 대결 과정에
서 과도하고 자의적인 국가폭력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특히 권력을 유
지하기 위한 구조적이고 체계화 된 국가폭력이 민주주의를 심대하게
위협했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이 부분에 집중했다. 반면 정치와
폭력 간의 본질적 관계, 혹은 공권력에 대항하는 시민적 저항에서 폭
력의 문제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다. 그나마 이를 다룬 경우에도 소로,
간디, 아렌트, 푸코, 발터 벤야민, 지젝 등 개별 외국 사상가들의 이론
을 소개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다.3) 따라서 이를 토대로
2016~2017년의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비폭력이라는 시위의 양태가 어
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살펴보기에는 충분치 않다.
이 글은 넓은 차원에서 시민들의 직접적 정치행위인 집회나 시위에
서 폭력의 사용 혹은 불사용이 어떠한 논리를 통해 정당화될 수 있거
3)

기존 연구를 개괄해보자면, 한국의 국가폭력에 관해서는 김동춘(2013) 등의 연구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에 조희연(2002) 등 반독재 민주화 과정에서의 국
가폭력을 다룬 연구들은 다수 있다. 개별 외국학자들의 정치와 폭력에 관한 이론을
소개한 연구들도 2000년 이후로 10여 편 정도가 확인된다. 이 부분은 논문의 참고문
헌을 참조할 수 있다. 정치와 폭력의 관계 및 시민의 비폭력 저항에 대해서는 연구가
많지 않다. 1977년 안청시의 연구 이후로 오랫동안 관련 연구가 보이지 않다가 강정
인(1993)이 정치참여에서 폭력의 문제를 다룬 바 있고, 이후 노동자와 대중운동을 다
룬 신진욱(2004a, 2004b), 김정한(2013) 등을 제외하면 촛불집회에 대한 스케치 수준
을 넘어서는 연구를 찾아보기 어렵다.

나 비판받을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2016~
2017년의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시민적 저항의 양상을 이해하기 위한
논쟁적 지점들을 정치사상적 측면에서 살펴보는데 목적을 둔다. 다만
이 논문은 폭력의 본질에 대한 정치철학적인 연구가 아니기 때문에
폭력에 대한 새로운 일반이론을 제시하고자 하지는 않는다. 또한 촛불
시위 참여자들의 인터뷰나 개별 사건의 구체적 정황을 기반으로 비폭
력 시위의 양태를 사실적으로 규명하는 데에도 목적을 두지 않는다.
이 글은 정치와 폭력의 관계에 대해 철학적 고찰과 사건사적 규명
이라는 양자 사이에서 시민의 비폭력 저항이라는 주제를 사상사적으
로 추적해보는 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정치와 폭력의 관계에서부
터 비폭력 저항에 대한 이론사적 배경을 넓은 수준에서 개괄하고, 차
츰 논의의 수준을 낮춰 작동 메커니즘과 실행전략까지를 전반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결론에서는 그러한 이론적 논의들이 한국의
촛불시위를 이해하는 데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는지를 간략히 검토
할 것이다.

Ⅱ. 정치적 저항과 폭력에 대한 세 가지 관점
정치적 저항과 폭력의 관계에 대한 관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폭력은 그 자체로 나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목적을 위해
서라도 용납될 수 없다는 입장, 둘째로 폭력이 그 자체로 나쁘다기보
다는 잘못된 결과를 낳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수단이라는 입장,
세 번째로 폭력은 그 자체로는 선악을 따질 수 없는 것이며 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어서 필요할 경우 적극적으로 그것을 이용해야 한
다는 입장이다.
첫 번째 입장은 폭력을 어떤 이유로도 일체 수용하지 않는 반면, 세

번째 입장은 폭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입장으로 서로 가장 크게
대립된다. 이 사이의 두 번째 입장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피치자들
의 저항에서 폭력이 수반되는 것이 정당하거나 바람직한가에 대한 이
론적 관점들이 양 극단의 스펙트럼 사이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특히 ‘특정한 상황에서 무장투쟁이 필연적이고 필수적인 투쟁형태인
가, 아니면 불가피한 상황의 우연적이고 예외적인 산물인가’(김정한
2013, 205)하는 쟁점에 따라 입장이 크게 달라진다. 여기서는 첫 번째
에서 세 번째 관점의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각각의 입장을 이
해해 보도록 하겠다.

1. 폭력의 윤리적 부정(ethical denial of violence) : 시민불복종
폭력을 원천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첫 번째 관점을 가장 강력하게
지지한 사람은 칸트(Kant)였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위
는 정언명법에 따를 때 가장 바람직한 행위가 된다. 나의 행위가 모든
다른 사람의 행위의 준칙이 될 때, 그 행위는 다른 목적이나 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옳은 행위가 된다. 칸트는 살인을 하지 않아야 한다
는 명제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에 동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물리력으로 굴복시키려는 폭력 역시 어떠한 경우
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간주할 수 있다(가야노 도시히토 2012). 그리
고 모든 사람과 국가가 이러한 정언명법에 따른 비폭력주의를 실현할
때 공존과 평화라는 이상이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비폭력주의는 폭
력이 그 자체로 정당화되지 않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으로,
일종의 근본주의적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칸트의 비폭력 철학은 비폭력 저항에 큰 영향을 주
지 못했다. 그의 근본주의적 입장이 폭력을 행사하는 타인과 국가권력

에 대항할 때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령 칸트는 살인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보
았지만, 살인을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동등성의 원리(동해응보의 원
리)에 따라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음을 또한 인정했다. 동등성의 원리
에 입각해 사형을 내릴 수 있는 형법 역시 하나의 정언명법으로 본 것
이다. 하지만 이 정언명법이 살인을 하면 안 된다는 또 다른 정언명법
과 충돌할 때 발생하는 모순점은 잘 해소되지 않았다(가야노 도시히토
2012, 46-52). 또한 철학자와 달리 비폭력 저항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철학적으로 얼마나 정당한가 뿐 아니라 비폭력
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싶어
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비폭력 저항의 이론 중에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칸트의 근본주의적 관점보다는,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적 신념, 인권과
헌법적 가치 등에 기반을 둔 윤리적 원리였다. 이러한 비폭력주의는
톨스토이(Tolstoy), 데이빗 헨리 소로(David Henry Thoreau)의 시민불복
종론과 간디(Gandhi),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저
항이론에서 확인된다.4) ‘시민불복종’ 개념을 중심으로 한 이 비폭력 사
상은 그 연결과 발전의 과정 자체가 동서양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일정
한 사상적 계보를 갖고 있다. 시공간의 변화는 근본 원리와 전략의 수
정을 요구했고, 그러한 이론적·실천적 변용이 운동의 성패를 결정했다.
이러한 점에서 윤리적 원리에 따른 폭력의 부정은 문명 수준의 교차와
횡단에 따른 사상적 유동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기도 하다.
시간 순서로 보면,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소로가 처음 개인의 양심
4)

톨스토이의 비폭력 사상은 비폭력 담론과 이론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지
만, 본격적인 정치사상으로 보기 어렵고, 종교적인 기반을 갖고 있는 다른 비폭력 저
항 담론들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논문에서는 다
루지 않았다.

에 기초한 시민불복종이 정당함을 주장하고 실천했으며, 20세기 초반
간디는 인도의 반제국주의 운동에서 소로의 사상을 실로 거대한 규모
로 실현시켰다. 그리고 이 비폭력 저항 운동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1960년대 킹 목사가 이끈 흑인 인권운동에서 시민적 저항의 핵심 원
리로서 구현되었다. 이를 통해 시민불복종은 인도라는 제 3세계가 아
니라 미국이라는 서구의 심장에서 성공한 시민 저항의 모델로서 보편
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분리
정책에 대한 투쟁을 비롯해 수많은 나라들에서 저항의 원리가 되었다.
소로는 구원과 개인의 윤리 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엄격한
칼뱅주의에 반발하며 인간 내면의 신성(神性)에 관심을 가진 초월주의
(Transcendentalism)의 신봉자였다. 그는 사람이 단순하게 살면서 윤리
적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 위해 외딴 오두막에 살았다. 소
로는 개인의 내면적 윤리 신념이 다른 어떤 외적 요인보다 우월한, 인
간의 존재론적 기반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정부나 법이 한 개인의 양
심적 판단보다 더 옳다고 확신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가 이러한 생각을 비폭력 저항의 원리로 제시하게 된 계기는
1848년 노예제 폐지운동을 위한 강연에서였다. 그는 이 강연에서 자신
이 노예제에 항거하는 의미로 인두세를 내지 않아서 감옥에서 보낸
일을 소개한다. 그리고 ‘정의롭지 못한 법이 개정될 때까지 준수해야
한다’는 대부분 사람들의 견해는 잘못되었으며, “몸으로나 재산으로나
정부를 지지하는 일을 지금 당장 그만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단 한명이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
이 있을 곳은 감옥 뿐”이라면서, 사람들이 이에 동참하기만 하면 정부
는 “정의로운 사람을 모두 감옥에 가두든지, 아니면 전쟁과 노예제를
포기하든지 양자택일을 해야 할 것”이며, 그 결과는 후자가 될 것이라
고 말한다. 또한 이러한 시민의 저항은 국가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

라 “더욱 더 완전하고 영광스러운 국가, 이제껏 상상만 했지 어디에서
도 보지 못한 그런 국가가 탄생하는 길을 열어준다(Kirk 2004, 52-74).”
그런데 사실 소로 본인은 한 번도 ‘시민불복종’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1848년의 강연록은 이듬해 뺷시민정부에 대한 저항(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뺸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가, 1866년 소로 사후
(死後)에 편집된 책에서 뺷시민 불복종(Civil disobedience)뺸이라는 이름
을 달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소로의 영향력은 대단히 미미했으며 사
람들은 곧 그를 잊었다. 그런데 수십 년 뒤 그의 이름은 간디를 통해
다시 언급되기 시작했고, 1960년대에 킹 목사가 이끄는 흑인 인권운동
에서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서 재등장했다.
서양의 지식인 소로가 주창한 불복종 사상의 첫 실천자는 동양의
현자 간디였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대규모의 특정한 불법행위를 감
행함으로써 지배체제 자체를 마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세에 항거하는 반대행진이었다. 이 행진은 폭력을
수반하지 않으면서 전국적인 수준에서 거대한 불복종의 동조자를 만
들고자 했던 간디의 전략에 가장 잘 부합했기 때문에 선택된 것이었
다. 그는 일체의 비타협과 비폭력을 동시에 천명했는데 이는 수세적이
라기보다 공세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힘과 정의의 싸움입니다. 모든
마을에서 불법적으로 소금을 만들거나 가져오게 하십시오. 학생들은
공립학교를 그만두게 하십시오. 공무원들은 퇴직을 하고 민중에게 헌
신하십시오.” 간디는 두 달이 되지 않아 승리를 거두었다(이정호 2005,
122-9).
그런데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사띠아그라하(Satyagraha)’에서 주목
할 만한 특성은, 이것이 개인의 양심을 넘어 신에 대한 믿음, 곧 종교
라는 정신적 기반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다(Paige 1993, 163).
간디는 언제나 신을 앞세웠다. 소금 행진을 시작할 때 그의 첫마디는

‘우리는 신의 이름으로 행진한다!’는 것이었다. 간디는 대중 앞에서 밤
새도록 기도했고, 행진을 시작하기 전 새벽에 그를 따르는 사람들과
공동으로 목욕재계 의식을 행했다(이정호 2005, 125).
이는 ‘사띠아그라하’라는 개념이 처음 탄생하는 장면에서도 분명하
게 드러난다. 비폭력 저항은 처음 1906년 트란스발 지역에서 영국의
인종차별적인 ‘인도인 등록법’에 저항하는 결의안 4조, ‘이 법령이 통
과될 경우 인도인은 복종하지 않고 그로 인해 당할 모든 고난을 참는
다는 선언’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당시 간디는 이 결의안을 신을 증인
으로 하여 통과시켜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역설했다. 간디는 ‘우리
모두는 같은 신을 믿습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에서 각각 신을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신의 이름으로 혹은 신을 증인으로 삼아
서약하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서약을 위반하면 신
과 인간 앞에서 죄인이 되기 때문’이라고 연설했다. 또한 실제로 회의
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일어서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신을 증인으로
삼아 법령이 통과되어도 복종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Gandi 2004,
125-33).
간디의 비폭력은 세속적 합리성이나 자율적인 개인의 내면세계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간디의 사상은 개인의 양심에 기반을 둔 소로의 시
민불복종 원리에서 자극받았지만, 인도적인 문제의식이 깊게 결합한
산물이었다. 이것은 보수주의적 칼뱅주의라는 종교 윤리에 반대하며
개인의 윤리에 착목했던 소로의 사상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었지
만, 인도에서는 너무나 잘 작동할 수 있는 원리였던 것이다. 소로가 종
교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적 배경에서 탈종교적이면서 내면적인 개인
윤리에 기초해서 제창한 시민불복종 개념은,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비
폭력 저항의 개념이 인도의 종교사상과 결합함으로써 마침내 그 첫
성공을 거둔 셈이다.

이러한 인도적 특성은 비폭력을 뜻하는 영어단어 ‘넌바이얼런스
(non-violence)’의 기원을 통해서도 잘 이해할 수 있다. 폭력의 반대어인
이 단어는 원래 영어에 있었던 단어가 아니라 1923년에 산스크리트어
인 ‘아힘사(ahimṣā)’의 번역어로 처음 등장했다. 고대 인도에서 ‘해치려
는 의도’라는 뜻을 가진 ‘힘사(himṣā)’의 부정어인 아힘사는 기원전의
문헌에서 이미 등장한다. 그래서 영어에서 현대 이전에 ‘violence’의 반
대 용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아힘사’는 ‘힘사’와 거의 같은
역사와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즉, 단순히 ‘힘사’에 반대되는 뜻
만을 가진 것이 아니라, ‘힘사’와 별개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진 독자적
인 하나의 개념이었다(Nagler 2008, 96).
간디는 아힘사를 늘 ‘진실(truth)’과 동격어로 사용하고, ‘사띠아그라
하’를 ‘영혼의 힘(soul-force)’이자 ‘진실의 힘(truth-force)’이라고 번역했
다. 그 두 단어가 항상 동전의 양면처럼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띠아그라하’는 아힘사의 실천을 뜻하며 이를 통해서만 진실에 다가
갈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의 핵심은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조차
도 그것을 인지하도록 하는 힘에 있다. 간디는 물리적인 힘, 곧 폭력은
항상 진실을 억압하며, ‘폭력을 통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은 실제적으
로 불가능(practically impossible)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May 2015,
73). 그러나 아힘사가 진실을 발견하게 하는 독자적인 힘을 갖고 있으
면서, 동시에 진실 그 자체라는 사실을 서구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간디가 이 사상을 인도의 독립운동에 적용했을 때 서구인들은
대단히 당황스러워하면서 이를 ‘non-violence’라는 다소 부적절한 용어
로 옮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5)
물론 간디의 사례에서 곧바로 모든 시민불복종이 종교적 기반을 가
5)

이러한 영어단어는 독자적으로 하나의 긍정적 개념을 구축하지 못했고, 우리말 번역
어인 비폭력 역시 그러하다.

져야 한다는 명제가 도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조건과 상
황의 구체성에 따라 비폭력의 근본 원리에서조차 다양한 변형태가 가
능하다는 논리를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마틴 루터 킹
에게서 정확히 재현되었다. 킹은 1960년대의 미국이라는 상이한 시공
간에서 간디가 활용한 비폭력 저항의 방식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또한 새로운 원리들을 추가했다.
우선 그가 흑인 교회를 중심으로 운동을 전개한 것은 간디의 종교
적 원리를 충실히 계승하고 발전시킨 점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 시민
불복종 운동의 대명사가 된 몽고메리의 버스승차거부운동을 살펴보면
이러한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최초의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1955년 12월 1일 흑인 여성인 로자 팍스(Rosa Parks)가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절하자 버스에서 쫓겨난 일이었다. 그리고 불과 4일 뒤인 12
월 5일에 버스 승차거부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곧바로 교회들에서 매일
집회가 열렸다. 이는 당시 신앙적 각성을 위해 주중에 주기적으로 집
회를 하는 것에 흑인 기독교인들이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Yoder 2014, 59). 정기적인 주중예배는 시민불복종 운동을 위
한 거점이 되었고, 이는 신속한 대처와 조직적 결속 및 지속적 실천이
라는 비폭력 저항의 핵심적 요소들을 담보해내는 기반이 되었다.
킹 목사가 개인들의 신앙심에 더해 새롭게 활용한 것은 가장 강력
한 합법성의 근거인 헌법과 그 속에 들어있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가
치였다(Yoder 2014, 58). 미국 독립혁명 과정에서 모든 인간의 천부인
권의 권리와 저항권을 명시한 문서들은 – 건국의 선조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 1960년대의 흑인들에게도 평등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할 법적·사상적 기반, 그리고 그것이 충족되지 않았을 때 저항할
수 있는 굳건한 근거를 명백하게 제공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약 100년에 걸쳐 윤리에 기반을 둔 비폭력 저항의 사

상과 실천의 역사가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그것은 개인의 내면적
양심에 기초한 소로의 사상에서 출발해, 경건한 신앙심을 강조한 간디
의 실천적 저항의 방식으로, 그리고 예배라는 방식을 통해 조직적 단
결을 추구했을 뿐 아니라 헌법적 기본권을 저항의 새로운 근거로 포
함시킨 킹 목사에 의해 변용되고 발전되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2. 폭력의 정치적 부정(political denial of violence) : 아렌트의
권력 이론
정치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지만, 그 원인
을 도덕원리,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적 원리 등에서 찾지 않는 입장이
있다. 이 입장은 폭력이 정치 자체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폭력의 정치
적 활용에 반대하는데, 대표적인 사상가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다. 무엇보다 아렌트는 시민불복종이 개인들의 양심에 기초하기 때문
에 정당하다는 관점을 거부하고,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전통적인 시민
불복종 개념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는 양심이 공적·정
치적 성격을 갖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양심이 본질적으로 순수하게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Arendt 2011, 102).
아렌트는 소크라테스와 소로의 사상이 시민불복종의 적절한 사례가
아니라는 반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시작한다. 아렌트가 보기에 소크라
테스는 법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시민불복종이라고 볼 수 없다.
또한 소로의 경우 법의 부당성에 항의하기는 했지만,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법이 자신을 포함한 개인들에게 불의
를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저항의 주요한 목적이 있었다. 개인의
양심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손에서 악을 씻어내는 의무, 자신의 악행에
도움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양심은 ‘비정치적’이라고 아렌트는 지적한다(Arendt
2011, 90-100).6)
그는 또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기쁘게 받아들이거나 그러기
를 열망할 경우에만 시민볼복종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관점도 거부
한다. 불복종자는 법이 부과하는 어떤 처벌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
는 자세를 보여줄 때만 동조를 얻을 수 있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아
렌트에 따르면 양심적 개인이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불복종은 개인의
불복종이지 시민불복종이 아니다. 때에 따라 그것은 단지 괴짜처럼 보
이는 행위에 불과하다. 시민불복종은 ‘양심에 따라 고독하게 내린 결
정’이 우연히 타인들과 일치할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시민불복종
이 개인적 양심에 달려있다면 신념에 찬 흑백차별주의자에 비해 킹
목사가 어떻게 더 나은지 이해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유의미한 시
민불복종은 관심의 공동체(a community of interest) 내의 다수에 의해서
만 가능한 것이다(Arendt 2011, 94-105).
그래서 아렌트에게 시민불복종의 정당성은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불복종하는 사람들의 수와 의견의 질에 근거한다(김선욱 2011, 22-3).
즉, 그것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보다는 그에 동조하는 의견의 수가
중요하며, 그것이 주장의 설득력을 중명한다.7)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아렌트는 소통하는 말과 공동의 행위로서의 ‘권력(power)’과 강압을 통
한 상대의 제압을 통해 의지를 관철하는 ‘폭력(violence)’을 구분한다.

6)

7)

이 점에서 시민불복종은 한 개인의 양심적 병역거부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물론 그
병역거부자가 거리로 나가 대중이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할 때는 다르다(Arendt
2011, 109).
여기서 동조하는 사람의 수는 절대적, 상대적으로 특정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며,
중요한 것은 시민불복종에 의미 있는 숫자(meaningful numbers)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권력의 극단적 형태는 한 사람에 반하는 모든 사람이며, 폭력의 극단적 형태
는 모든 사람에 반하는 한 사람(Arendt 1999, 71)’이라는 아렌트의 말은 정확히 이러
한 의미를 보여준다.

아렌트는 권력의 핵심을 인민의 역량 그 자체로 보고, 폭력이 지배하
는 곳에는 정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권력을 제공하는 것은
인민의 지지이며, 이러한 지지는 최초에 법을 생성시켰던 동의의 지속
이다(Arendt 1999, 70). 권력은 언어를 통한 교류와 토론, 이에 근거한
제휴와 연대에서 탄생하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은 평의회와 같
은 공적 영역이다(김정한 2013, 235). 여기에 폭력이 개입될 공간은 전
혀 없다. 그것은 정치의 적일뿐이다.
발리바르(Étienne Balibar)는 아렌트의 관점에서 더 나아가 비폭력이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추구되어야 한다고 주장
한다. 그는 비폭력을 근본주의나 개인의 양심의 문제, 혹은 헌법적 가
치나 효율성의 문제와는 다른 관점에서 긍정한다. 사실 그는 비폭력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이고 발본적인 차원에서 ‘반폭력(anti-violence)’을 주
장한다. 일체의 폭력에 반대하는 집단적 투쟁인 ‘반폭력’을 ‘시민다움
(civilité)’의 핵심가치로 보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소로우, 간디, 킹 목사의 불복종운동이 최종적으로 자기
수양이나 자기파괴를 지향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대항폭력에 대응되
는 비폭력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폭력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내용이 있는 정치의 형태를 확산시켜야 함을 주장한
다. 그가 제시하는 것은 정치에 대한 권리를 법적, 제도적 시민권으로
확립하는 인권의 정치이며, 인권을 확장시키고 그것을 시민권으로 발
명하는 정치, 기존의 사회질서를 항상 문제시하는 정치다. 그리고 이
것이 반폭력 정치의 모델인 시민다움을 형성하는 기반이다. 시민다움
의 정치는 정치적 시민권과 사적·공적 윤리를 결합하여 다양한 정체성
들 간의 갈등과 폭력을 해결하려는 정치다.
이러한 발리바르의 주장은 물론 시민성이 문명화와 관련되어 있다
는 고전적 명제를 다시 끄집어 낸 것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양심이나

종교, 혹은 폭력을 수단화하는 혁명이론에 모두 비판적인 아렌트의 입
장을 극적으로 강화시킨 논리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습속 윤리의
문명화’, ‘정치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고 폭력 그 자체의 역사화를 허용
하는 방식으로 정체화의 극단성들 사이를 벌려 놓는’ 것, 정체성들의
폭력 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정치의 타율성의 타율성’(김정한 2013,
233-9)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은 우리에
게 아직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3. 폭력의 수용(embrace of violence in politics) : 홉스와
마르크스주의8)
폭력을 정치에서 가능하고 필요한 수단으로 보는 세 번째 관점의
근대적인 기반은 홉스(Thomas Hobbes)에 있다. 그에 따르면 국가의 성
립은 폭력이 야기하는 공포에서 연원한다. 인간은 공동의 삶에 대한
희구나 더 많은 이익보다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회를 구성하
고 협력하는 것이다. 문제는 국가의 수립에 따라 그러한 폭력이 완전
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국가라는 통치 권력에 의해 독점되는 형태
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폭력이 국가 및 사회질서의 본질에서 연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질서를 포기하지 않는 한 폭력은 늘 국
가 안에 어떤 형식으로든 상존한다(Sofsky 2010, 33). 국가 내의 질서란
이점에서 ‘폭력의 체계화’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가 기구가 독점한
폭력은 합법적 외형을 띠기 때문에, 개인들이 이에 대항하는 것은 대
단히 어려운 일이다.
8)

마르크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라는 점에 유의할 것. 아렌트는, 마르크스 본인은 광
범위한 인간 변혁과 의식의 대규모적 산출을 이야기하지만 고립된 폭력 행동을 통한
개인의 해방을 이야기 하지는 않았다고 지적한다. 대신 폭력에 대한 찬미의 혐의를
사르트르와 파농에게 돌리며 비판하고 있다(Arendt 1999, 134-6).

이 시각은 아렌트의 권력/폭력 이분법을 승인하지 않는데, 이는 ‘폭
력’에 대한 영어와 독일어의 차이에서 잘 드러난다. 영어 단어 ‘바이얼
런스(violence)’에서는 아렌트가 바라보는 ‘부당한 방식의 물리적 강제
력’으로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영어 단어의 어원이 되는 라틴어에서
도 ‘어떤 강렬한 힘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 솟구친다’는 부정적 의미가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반면, 폭력의 독일어 단어 ‘게발트(Gewalt)’는
‘어떤 권한을 갖는 주체가 다른 주체를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보다 중
립적인 차원에서의 권력관계를 의미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는 일정한 정도의 ‘게발트’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다.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바로 이 독일어 개념을 따라 아렌트의 권력/폭력의 이원
론이 정치적인 것의 영역을 제한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정치가 나와
적의 끊임없는 투쟁이며, 기존 질서의 정치적 수단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결정적인 ‘예외상황’이 존재한다고 보는 칼 슈
미트(Carl Schmitt)나 샹탈 무페(Chantal Mouffe)의 입장에서 폭력은 정
치에서 필수적·필연적인 것이다. 바로 이러한 맥락을 따라 베버(Max
Weber)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현실에서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
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가야노 도시히토
2010, 20-24), 이러한 관점에서 보는 폭력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로서의
권력을 창출하고 그러한 권력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존속한다. 또한
‘정치에서 결정적인 수단은 폭력’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존
재할 뿐 아니라, 그러한 국면에서 폭력의 사용 여부는 인간의 통제를
곧잘 벗어난다(우에노 나리토시 2014, 97-8).
이러한 관점에 따르면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는 폭력은 언제나 일정
한 정당성을 갖는다. 특히 상대의 폭력이 너무나 거대할 경우에는 적
극적인 차원의 대항폭력까지도 정당화될 수 있다.9) 그런데 문명사회
에서의 거대한 폭력은 물리적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일 수도 있지

만, 일반적으로는 사회 전체에 하나의 시스템으로 구축된 구조적인 것
이다. 이러한 구조적 폭력에 대항하는 폭력의 정당성을 가장 적극적으
로 주장하는 집단은 특정 이데올로기를 통한 사회변혁을 추구하는 혁
명가들의 정당이다. 여기에는 극단적 인종주의를 중심으로 한 히틀러
의 나치즘과 마르크스주의 폭력 혁명이론이 동시에 포함될 수 있다.
이들의 핵심적인 주장은 더 큰 악에 대항하는 수단으로서의 폭력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에서 혁명적 활동은 정치 활동의 진수이며, 폭력
은 혁명의 정당하고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공산당선언>은 ‘국가는
지배계급의 조직된 폭력이며 노동계급은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존 국가에 도전해야 하고, 이는 대항폭력을 요구할 수밖에 없
다’고 주장한다(황광우·장석준 2010, 374). 폭력은 또한 자본주의를 일
소하는 문화적, 도덕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옹호되기도 한다.
‘폭력은 새로운 사회를 잉태하고 있는 모든 구 사회의 산파’로서 새로
운 사회 질서의 탄생에 방해가 되는 요소, 곧 구체제의 구조적 폭력을
제거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다(강정인 1993, 125).10)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위한 소극적인 차원에서의 대항폭력의 정당화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한 긴급하게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해서 현재의 큰 부정의를 일시적으로라도
중단시켜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경우, 언론과 집회의 자유가 억압되어 비판적 주장을
할 수 없는 경우 이를 공론화하기 위해 일정한 폭력적 수단(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것
을 포함하여)을 사용하는 경우도 해당할 수 있다.
10)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폭력혁명을 지속적으로 일관되게 옹호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존재한다. 이들이 <공산당선언>에서 대항폭력을 주장했을 때의 폭력은 변
변한 무기가 발전하지 않은 19세기 초반 거리의 가투전에 해당하는 것이었고, 본인
들도 막상 1848년 파리코뮌 이후에는 선거와 의회의 활용을 강조하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황광우·장석준
2010, 374-5). 이러한 맥락에서 아렌트는 마르크스 본인은 광범위한 인간 변혁과 의
식의 대규모적 산출을 이야기하지만, 고립된 폭력 행동을 통한 개인의 해방을 이야
기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신 폭력에 대한 찬미의 혐의를 프랑스의 낭만적 혁명
주의자들인 사르트르와 파농에게 돌린다(Arendt 1999, 134-6). 파농은 식민주의에 대
항하는 폭력을 옹호하면서 폭력이 보다 큰 폭력에 직면할 때만 비로소 물러설 것이
라면서, 민족해방을 위한 원주민들의 폭력을 옹호했다. 소렐 역시 폭력을 프롤레타
9)

같은 맥락에서 대항 폭력은 세계적 수준의 구조적 폭력에 대한 국
지적 저항의 경우에 옹호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 좌파들은, 1960
년대 미국 흑인들의 광범위한 폭력시위를 이 같은 논리로 방어했다.
이들은 당시의 폭력적 시위를 단지 국가내부에서 시민과 시민, 시민과
정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전 세계적 수준에서 백인으로 대표되는 제국
주의와 유색인종들 간의 투쟁으로 보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제
국주의라는 세계체제 하에서 고립되고 착취 당하는 식민지인과 미국
흑인들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지위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들의 대항폭력은 단순히 일국내의 반사회적 투쟁이 아니라, 식민지 모
국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 민족운동이나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투쟁과
마찬가지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보다 큰 범주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주의적 투쟁이기도 하다(Fogelson
1968, 32).
정치철학에서도 폭력을 옹호하는 논리가 제시된다. 지젝(Slavoj Žižek)
은 반폭력을 주장하는 발리바르와 달리 혁명적인 폭력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폭력의 사용을 지지하는 1차적 근거는 발
터 벤야민(Walter Benjamin)과 아감벤(Giorgio Agamben)의 ‘신적(divine)
폭력’개념이다.11) 벤야민에 따르면 법을 정립하거나 보존하여 사회질
서를 재생산하고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신화적(mythical) 폭
력’이 한편에, 이러한 폭력에 대항하는 주권자의 ‘신적 폭력’이 다른 한
편에 존재한다. 신적 폭력은 법의 효력이 일시 중지된 예외상태에서
법에 의거하지 않고 주권권력을 행사하며, 예외상태에 대한 최종해결
책으로서의 폭력은 그 순수한 본질을 드러낸다(우에노 나리토시 2014,

11)

리아의 신성한 불꽃으로 부르면서 이것이 타락한 부르주아 문화를 정화할 수 있다
고 보았다(강정인 1993, 125).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할 것은, 이들이 모두 폭력을 지칭하면서 ‘violence’가 아니라
‘Gewalt’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09-117). 아감벤에 따르면 이러한 예외상태는 의도적으로 지향되고
창출되어야 하는 목표이며, 잠재된 예외상태에서 진정한 예외상태로
들어가는 순간이 바로 신적폭력을 통해 메시아가 도래하는 시점이다
(김정한 2013, 243-6).
그런데 지젝은 이러한 신적 폭력 개념이 신비화되어 있고 수동적이
라고 비판하면서, 예외상태가 아니라 현실적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
으로 신적 폭력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즉, 지젝은 벤야민과 아감벤이
법이 중단된 예외상태가 곧 주권자의 권력이 작동하고 신적폭력이 허
용되는 시점이라고 보는 것에 반대하며, 법 외부에서 민중이 폭력적으
로 자기방어를 실천하는 일상적 상황 역시 신적 폭력에 해당된다고
본다. 가령, 대중이 자기 방어의 수단으로서 경찰의 정보원을 죽이는
행위는 누구도 비난할 권리가 없는 신적 폭력이라는 것이다(김정한
2013, 247-8). 문제는 지젝에게 허용되는 해방적, 혁명적 폭력의 기준가령 저항의 과정에서 경찰의 정보원을 죽일 수 있다는 판단-이 순전
히 주체의 판단에 맡겨지기 때문에, 이것이 대항폭력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논리로 회귀한다는 데에 있다(김정한 2013, 247-51).

Ⅲ.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론과 실제
위에서는 정치와 폭력, 그 중에서도 비폭력 저항을 중심으로 한 논
리들이 어떻게 펼쳐져 있고, 어떠한 대척점에 서 있는지를 살펴보았
다. 이중 앞의 두 관점이 현대 국가들에서 비폭력 저항의 주요한 사상
적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사상적 차원에서 이론적 차원으
로 한 단계 내려가서 비폭력 시민 저항이라는 주장이 어떻게 옹호되
고 그 실제는 어떠한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또한 최근 새롭게 대두되
고 있는 비폭력 저항의 담론과 전략 또한 검토해 볼 것이다.

1. 왜 비폭력 저항이 나은가?
우선 폭력을 수반하는 정치행위에 대한 반대론 중에서 가장 대표적
인 두 가지 주장을 살펴보자. 첫 번째는, 폭력은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
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폭력을 되풀이하여 낳는다는 악순환을 가
져오기 때문에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두 번째는, 비폭력 저항이 언제
나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첫 번째 논리인 폭력의 악순환론을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간디였
다. 사실 이 논리는 그의 비폭력 이론에서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윤리적·종교적 진리와 선함과 비교할 때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간디의 사상이 다양한 형태로 변주될 때, 이 주장은
특히 종교적인 차원에서 비폭력의 무조건적 정당성을 받아들이기 어
려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다. 악순환론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설
명될 수 있지만, 그 중 지난 수십 년 간 가장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두 가지 중 하나는 냉전시대의 국제정치적인 논리, 다른 하나는 대중
심리적인 논리다.
전자는 폭력의 재생산과 악순환 메커니즘을 국제정치 수준에서 설
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동아시아 냉전
에 지속적 관심을 보였던 글렌 페이지(Glenn Paige)는 간디에 대한 헌
사에서, 인권을 확보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인권을 항
구적으로 위태롭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유와 정의를 폭력적으로
추구하는 오늘의 투사는 내일 그것을 치명적으로 위협하게 할 것’이라
고 주장한다. 억압적인 폭력은 그것이 강하면 강할수록 대응폭력 역시
증가시키게 되고, 대응폭력이 반복될 경우 폭력의 ‘무한경쟁’에 돌입하
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폭력을 신봉하는 한 인류는 전쟁으로 분열
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Paige 1993, 160-162). 요한 갈퉁(Johan

Galtung)은 국제정치에서 이러한 폭력의 악순환을 제거하기 위해 1950
년대에 간디에 대한 연구를 시작으로 평화가 지속가능한 조건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제시했다.
폭력을 관습적으로 수용하는 문화 자체가 지구의 생존을 위협할 것
이라는 이러한 주장은 폭력의 세기였던 20세기, 그리고 냉전시대 핵무
기 경쟁이 지구의 존립을 위협하던 시기에 커다란 설득력을 얻었다.
게다가 냉전 이후에도 전쟁과 무력을 통한 갈등의 해결이 대체로 항
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더욱 일반
화 되었다. 이데올로기 대결이 종식된 이후에도, 쿠바에서의 혁명을
제외하면 인종, 종교, 경제적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대체로 실패한 반면, 인종주의에 대항한 만델라의 비폭력 저항, 철의
장막을 무너뜨린 소련과 동유럽에서의 평화시위, 한국과 대만에서의
민주화의 성공 등은 그와 대비되는 주목할 만한 성과였다.
국제정치 이론보다 일반인들에게 더 친숙한 것은 대중심리에 기반
을 둔 폭력 악순환론이다. 이 주장은 폭력 자체가 대단히 독특하고 강
렬한 수준에서 스스로를 강화시키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
한다. 예를 들어, 폭력이 반복적으로 행사될 경우 이 폭력은 이른바
‘순수 폭력’, ‘절대 폭력’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
은 어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정당
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 행위이며, 이 때의 폭력은 ‘잔혹성’ 그 자체 외
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광범위하고 잔혹한 강간과 학살 같은 전
쟁범죄들이 바로 그러한 예다. 처음에는 개별적 행위에 불과했던 것이
‘익숙해지면 수문을 열어 봇물이 터지게 되고, 금지의 한계가 사라지
면 마구 뻗어나가, 단 한 번에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상황’에 도달한
다.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도 초월’한다(Sofsky, 2010, 74-90). 이러한 폭
력에의 도취는 개인의 개별성을 해체하고 책임감을 무화(無化) 시키

며, 스스로를 거대한 대중심리 속으로 편입시킨다. 이러한 폭력은 전
쟁 상황, 곧 적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경우에 가장 잘 드러나며, 여기에
서 각 개인은 폭력행위에 대한 동참이나 그로부터의 피해를 공유함으
로써 일체감을 형성한다(김동춘 2013).
이러한 두 가지 폭력의 악순환론 이외에 비폭력 저항이 더 효율적
이라는 주장이 최근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간디와 킹 목사 이후 비폭
력 저항의 효율성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많은 사례가 보고되었음에
도, 여전히 그것은 하나의 믿음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은 통계적 분석을 통한 경험적 연구였
다. 2012년 출간된, 에리카 체노베스(Erica Chenoweth)와 마리아 스테판
(Maria Stehphan)의 ‘Why Civil Resistance Works: The Strategic Logic of
Nonviolent Conflict’는 간디의 비폭력 저항 사상을 경험적으로 증명한
종합적 연구라는 평가를 받았다.12)
이 책에서 저자들은 1900~2006년 사이에 자료가 수집 가능한 시민
혁명 사례 323개를 대상으로 다루면서, 200 여개의 폭력혁명과 100 여
개의 비폭력 시위로 구분해서 분석했다. 그 결과, 폭력적 시민저항의
성공률은 26%, 비폭력의 경우는 53%였다. 주목할 점은, 폭력시위가
성공하더라도 이후에 다시 독재로 돌아간 경우가 많았던 반면에, 비폭
력 시위로 성공한 경우에는 민주주의가 안착된 사례가 많았다는 것이
다. 비폭력으로 탄생한 민주정부가 5년 동안 유지된 확률이 40% 이상
이었던 반면, 무력을 통한 경우에는 5% 미만이었다. 비폭력의 경우 10
년 안에 내란을 겪은 확률이 28%, 폭력을 통한 경우에는 43%였다. 또
한 기존 연구에서는 시민저항이 성공하는 경우의 최소 참여인원을 전
12)

이 책은 미국정치학회의 ‘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상’을 수상하면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 상을 수상했다는 것 자체가 이후 비폭력 저항 운동의 확산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체 인구의 5% 이상으로 보았지만, 이들의 조사에서는 국민의 3.5% 이
상이 시위에 참여한 경우, 그 시민혁명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무력
을 사용한 저항운동은 참여자가 5만 명을 넘지 못했다(Chenoweth and
Stephan 2011).
저자들은 비폭력 저항이 성공한 이유에 대해, 첫째로 비폭력이라는
시위의 형태가 더 많은 참여자들을 불러 모으는 효과가 있었고, 두 번
째로 더 많은 참여자들이 이끌어낸 시민 혁명은 참여자들을 각성시키고
지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저항이 끝난 다음에도 민주주의
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논거를 제시한다(Chenoweth and
Stephan 2011).13)
물론 통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연구결과는 명확한 인과관계
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연구결과는, 비폭력 시위도 47%는 실패했
으며, 폭력적인 수단을 통한 혁명도 26%는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다. 또한 참가자가 3.5%에 이르지 못했던 많은 시민저항도 성공했다.
기실 모든 시위가 단순히 한 번의 사례로 카운트되는 이러한 계량적
방식의 분석은 여러 질적인 변수에 의한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또
한 어떠한 폭력 시위가 나중에는 다수가 참여하는 비폭력시위의 원동
력이 되어서 결과적으로 그 저항을 성공으로 이끌었는지에 대한 구체
적 관계 등을 설명하지 못한다. 비폭력 저항이 폭력을 수반한 저항보
다 더 성공확률이 높기는 하지만 모든 비폭력 저항이 다 성공하는 것
은 아니었고, 비폭력 저항 중에서도 여전히 어떤 비폭력 저항이 다른
비폭력 저항보다 성공확률이 더 높은 이유는 규명되지 않았다. 이는
비폭력 저항 안에서도 모종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13)

2016년 한국의 촛불시위에서는 필자가 이 연구를 소개하면서 소위 ‘3.5%의 법칙’이라
는 용어가 언론과 SNS를 통해 유행처럼 번졌고, 실제로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 중 일
부는 이 연구를 참여의 동기로 제시하기도 했다. 아마도 2016년 촛불시위는 체노베스
와 스테판의 연구가 직접적으로 비폭력 저항의 성공에 기여한 중요 사례일 것이다.

2. 비폭력 저항의 실제와 전략
비폭력 저항의 전략에 대해서는 체노베스와 스테판의 연구 이전에
도 비폭력 시위의 전략적 효율성에 대해 구체적인 수준에서 관심을
가진 연구들이 있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은 특히 천안문 광장의 저
항은 왜 실패했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1960년대 이후 비폭력 저항이
소련과 동유럽,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여러 곳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
둔 데 반해 중국에서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저항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이를 분석한 사람들은 천안문 광장의 실패가 체제의 차이나
국가의 대응방식보다는 정부의 탄압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전
략적 실수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어, 당시 시위를 주도하고 다른 주동자들의 미국 망명을 도
왔던 센통(Shen Tong)은 시위 과정에서 ‘목표의 상실’이 실패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의 원래 계
획은 대학과 학생조직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지속하고, 언론을 통해
이를 알려서 인민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지켜지지 않았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단
번에 모든 것을 얻어내려고 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개혁을 추진하고자 했던 정부의 타협안에 대해, 학생들은 더 많은 것
을 요구하며 비타협으로 일관했다. 광장은 고립되었으며, 주도권을 잡
게 된 정부 내의 강경파는 인민의 지지가 느슨해지는 순간 이들을 일
망타진했다. 비폭력 저항 연구의 권위자인 샤프(Sharp)는 이 과정에서
결여되었던 것이 원칙과 리더십, 핵심 이슈를 주도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할 전략적 목표와 행동이라고 지적
한다(Sharp 1994, ⅺ). 비폭력 저항은 전략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최근 30년 간 이 방면에서 가장 선구적이면서 종합적인

연구는 에이커만과 크루글러(Ackerman and Kruegler 1994)의 것이다.
이들은 20세기의 비폭력 저항들 중에서 성공했던 수십 가지의 사례들
을 검토하고 이에 기초해서 3가지 분야에서 12가지의 핵심적 전략 원
칙을 제시했다.

발전을 위한 원리
1. 실용적 목표의 설정
2. 조직적 역량의 강화
3. 핵심적 물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 확보
4. 외부 지원의 개발
5. 제재 방식의 확장
개입에서의 원리
6. 통제를 강화하려는 상대의 전략 공격하기
7. 상대의 폭력적 무기의 효과를 잠재우기
8. 지지기반으로부터 상대를 분리하기
9. 비폭력 원칙을 견지하기
계획구상에서의 원리
10. 전략적 의사결정의 차원에서 사건과 옵션을 대하기
11. 참여자의 상대적 취약성에 따라 공세와 수세를 적절히 활용하기
12. 제재, 수단, 목표 간의 연속성 유지하기

세 분야에서 각각 구체적으로 이 원리들의 작동방식을 살펴보면, 먼
저 발전을 위한 원리에서 첫 번째 ‘실용적 목표의 설정’은, 저항의 목
표가 적절히 선택되고 분명하게 정의되어, 사람들이 그것을 잘 이해하
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 같은 지나치게 일반적이고 광
범위하며 추상적인 목표는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

14)

Ackerman and Kruegler 1994, 23.

단히 비효율적이다. 목표는 아주 구체적이고 일정한 기간 내에 달성이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폭력적 수단을 선호하는 사람들에 비해
비폭력 저항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담겨
있으며, 저항의 이슈에 관련된 사람들은 물론 그 이외의 사람들까지
포함해 가능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목표가 좋다. 둘째
로 조직역량의 강화는 비폭력 저항에서 특히 중요하다. 탁월한 개인들
보다는 다수의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조직역량을 강화시키는 방
법은 개개의 상황마다 대단히 다양하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리더십,
참여자의 협력, 광범위한 시민들의 지지가 각각 잘 구성되고 조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비폭력 저항에는 다양하고 많은 물적 자원이 필
요하며, 이러한 부분이 얼마나 잘 준비되느냐가 비폭력 저항을 지속할
수 있느냐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 노조가 파업기금을 준비하듯이, 상
대적으로 힘이 강한 적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비폭력 저항 역시 금전
적, 물질적 준비가 필요하고, 의료품, 식료품, 이동 장비, 선전의 도구
등 저항의 핵심적인 자원들에 대해서는 항상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하
고 확실한 통로를 개척해 놓아야 한다. 넷째, 외부의 지원을 확보해 놓
는 것은 앞서 언급한 3가지 원리들에 모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또
한 폭력적인 수단으로 비폭력 저항을 억압하는 적에게 외부의 제 3자
들이 제재나 압박을 가함으로써 이를 제한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
다. 예를 들어, 상대가 정부인 경우 국가 내의 핵심적 기구나 부문이
저항세력에 지지를 표시하기 위해 동조파업 등을 벌일 수 있다. 다섯
째, 상대에 대한 제재방식의 확장은 다양한 비폭력 저항의 수단 중에
서 가장 쉽고 효과적이면서도 많은 참여자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필요하다. 때로 그 수단들은 창의적인 방식으로 다양
하게 결합되기도 하고 유연하게 바뀔 수도 있어야 한다(Ackerman and
Kruegler 1994, 23-35).

두 번째 분야인 ‘개입에서의 원리’를 살펴보면, 여섯째로 억압을 지
속하고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상대의 전략에 대한 공격이 필요하다. 상
대는 계엄령 선포와 같은 직접적인 강압 수단을 통해서 복종을 강요
할 수 있으며, 복종하는 사람들에게는 강압을 해제할 수도 있다. 저항
의 동조자들이 돌아설 수 있고, 위협에 굴복할 수도 있다. 비폭력 저항
은 이에 대비한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일곱째로, 상대의 폭력적 무
기를 침묵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상대는 다양한 전략들이 통하지 않을
경우 폭력적 수단을 택할 것이며, 이는 비폭력 저항에 빠른 시간 동안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상대가 폭력적 수단을 사용할 때 비폭력 원
칙을 견지할 수 있는 일종의 사보타주 전략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덟
번째로, 상대의 잠재적 지지층을 분리해야 한다. 잠재적 지지 세력은
국가기구 내부나 전통적 지지층에 존재할 수도 있고, 갈등 이슈와 관
계없는 제 3의 부문에 존재할 수도 있다. 이들이 상대에 쉽게 동조하
지 못하도록 하는 정치적 고립전략이 필요하고, 때로는 동조에 들어갈
비용을 높이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불매운동과 같은 경제적 제재
수단이나 대외적 제재 등도 유용하다. 아홉 번째는 비폭력 원칙을 견
지하는 것이다. 상대가 폭력적 강압수단을 활용할 때 비폭력 원칙을
견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비폭력 저항의 단기적인 효과
를 기대하는 개인 참여자들에게는 특히 쉽지 않다. 동료의식을 갖고
조직적인 차원에서 장기적이고 다양한 비폭력 저항의 효과를 공유하면
서 당면한 고통을 함께 견디는 것이 필요하다(Ackerman and Kruegler
1994, 36-45).
세 번째 분야인 ‘계획 구상에서의 원리’로서, 열 번째 전략적 의사결
정의 차원에서 사건과 옵션을 대하는 것은, 말 그대로 비폭력 저항에
서 모든 사안을 전략적인 측면에서 검토하고 결정한다는 뜻이다. 비폭
력 저항은 전략과 무관한 도덕적 순수성을 지향하거나 선함을 증명하

기 위한 것, 혹은 불가피하게 선택된 것이 아니다. 마치 거대한 군사작
전에서 각각의 작은 전투들이 제한적인 의미를 갖듯이, 비폭력 저항이
라는 큰 그림에서 각각의 행동들은 전략적인 판단을 통해 진퇴를 결
정해야 한다. 열한 번째로, 비폭력 저항은 다양한 참여자들이 어떤 부
문에서 강하고 취약한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게 공세와 수세를 전략적
으로 선택해야 한다. 상황에 맞게 특정한 이벤트에 참여자의 숫자를
늘리거나 줄이는 것, 제재를 강화하거나 늦추는 것, 공세의 이슈들을
조정하는 것을 유연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 열두 번째로 제재
나 수단, 목표에서 지속성을 갖추는 것은 비폭력 저항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샤프(Sharp)에 따르면, 비폭력은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으
며, 상대는 이로써 강력한 압박을 느끼고, 종래에는 그들을 정치적으
로 해체시킨다. 이러한 최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비폭력 저항
이 충분한 지속성과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Ackerman and Kruegler
1994, 46-51).
이러한 전략들이 실제로 잘 적용된 최근의 사례는 1998년 세르비아
에서 밀로셰비치를 무너뜨린 ‘오트포르!(Otpor!)’다. 오트포르는 세르비
아어로 ‘저항’이라는 뜻을 가진 비폭력 저항 운동단체이자 그 단체가
전개한 운동을 지칭한다. 이들이 독재자 밀로셰비치와 싸울 때 가장
먼저 확정한 원칙은 철저한 비폭력주의를 견지하는 것이었다. 운동의
지도자였던 포포비치(Srdja Popovic)는 수만의 경찰, 수십만의 군대, 숫
자를 가늠할 수 없는 폭력배와 싸우면서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한다는
것이야말로 어리석은 일이었기 때문에 철저하게 비폭력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경찰들 역시 일시적
구타나 체포 이외에 더 이상의 처벌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웠고, 저항
운동이 지속될 수 있었다(Popovic and Miller 2016, 23). 에이커만과 크
루글러가 지적한, 계획구상에서의 원리들인 전략적 판단과 수세와 공

세의 선택을 적절히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또한 비폭력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다양한 표현거리, 웃음거리를 만들었다. 오트포르를
상징하는 주먹을 쥔 모양의 그라피티를 하루 밤새 수십 개씩 도시에
그렸고, 독재자의 얼굴을 그려놓은 드럼통을 만들어 놓고 사람들이 그
것을 두드리면서 기분을 풀도록 유도하고, 시위과정에 칠면조를 동원
하기도 했다. 일반인들에게 정치란 무기력하고 지겹고 두려운 것이었
기 때문에 그들은 웃음을 대항의 무기로 삼았다. 폭압 아래서 고통 받
는 사람들 사이에서 운동을 조직할 때 핵심은 삶과 저항을 재미있게
만드는 것이었고, 이 원칙은 실제로 잘 작동했다(Popovic and Miller
2016, 26-7).15) ‘개입의 원리’가 또한 적절히 적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포포비치는 이러한 방식이 자신들이 새롭게 개발한 것이 아니라 과
거의 비폭력 저항에서 성공했던 것들을 충실히 모방한 것이라고 말한
다. 가령 포포비치는 간디가 소금행진을 통해 최초의 승리를 이끌어내
고 인도 전역에서 독립운동의 희망을 품게 한 사례를 들면서 이길 수
있는 작은 전투를 찾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Popovic and
Miller 2016, 57-60). 또한 보통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관심을 끊
게 만들고, 심지어 정치에 혐오를 품게 하는 방식은 대중적 지지를 얻
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역설한다. 포포비치는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의 지도자이자 감리교 목사였던 제임스 로슨의 경우를 사례
로 제시하는데, 그는 시위에 나갈 때 학생들에게 격식을 차려 옷을 입
고 신사·숙녀처럼 행동할 것을 제안했다. 이는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두려움을 없애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의도였고 결과적으로 성
15)

포포비치는 이 원리에 대해 이집트 혁명가들에게 말하면서 ‘무바라크를 이기기 위해
무바라크보다 더 나은 브랜드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설명한다(Popovic and Miller
2016, 36)

공했다(Popovic and Miller 2016, 67). 포포비치와 제임스 로슨이 선택한
방식은 스스로에 대한 존중을 통해 타인으로부터도 존중을 받고자 한
것이었고, 나아가 그것을 보는 사람들의 동조를 구하는 데에도 유용한
저항의 방식이었다.
기실 무장투장을 통해 직접 권력을 장악하는 혁명을 목표로 하지
않는 경우라면, 폭력을 수반한 시민적 저항에서 대부분의 목표는 대중
의 관심과 동조를 얻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을 동원하는 이유는
억압적 상대와의 투쟁이 절실하다는 것을 보이는 데에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 비폭력 저항이 더 많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포기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16)

Ⅳ. 나가며 ; 왜 촛불이었나?
2016년 11월 이후 약 4개월 남짓 진행된 한국의 촛불집회와 시위는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시민의
직접적 정치 행동의 사례였다. 한편으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가
품고 있던 과거의 비민주적 유산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는 ‘한 세대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혐오가 유례없이
극심한 시기(Stefan and Mounk 2016)’에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희망
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한 점에서 촛불집회는 단순히 한국

16)

2016년 봄에 포포비치가 쓴 책의 번역서인 『독재자를 무너뜨리는 법』이 출간되자
도서평론가 로쟈는 ‘독재 타도에 있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한국인들 앞에서 세르비
아인들이 감히 뭔가 아는 척할 거리가 있다고? 가소로운 기분이 들 수 있겠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한국인들의 영광은 이미 옛 것이 되었고, 독재 타도의 최신 트렌드는
세르비아인들이 선도해 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재 타도 시장에 한류 열풍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도 한때는 독
재를 무너뜨린 전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적이란 말인가. 아, 옛날이여…’
라고 평했다. 물론 우리가 알다시피 한국인들은 불과 1년 만에 영광을 되찾았다.

의 정치사적인 분석을 넘어서 민주주의 이론, 특히 민주화 이후 시민
적 저항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사례로서 검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민주주의를 단순히 추격하는 것에서 의미를
찾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민주주의의 내용과 실천 양식에 대한 잠재
력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것 역시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지면의 제한으로 인해 본론에서 다룬 사상적·이론적
궤적들을 실제 2016년 촛불집회에 적용하여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작
업을 수행하지는 못하였다. 결론에서는 이를 활용하여 향후의 연구에
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는 점들을 확인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먼저 본 논문에서 제시한 비폭력 시민 저항의 여러 사상적 배경을
통해서, 촛불에 참여한 다양한 주체들의 정체성과 참여 동기, 행동양
식, 가치와 비전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종교인과 평화주의
자, 8~90년대의 운동권과 노동자·농민 등 조직된 단체를 통한 참가자,
한 번도 시위에 나와 보지 않았던 시민이나 중·고등학생들, 그리고 정
당에 소속된 사람들과 정치인들은 모두 서로 다른 이유로 집회나 시
위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들이 참여한 이유는 칸트의 근본주의에서,
소로나 간디의 윤리적 시민불복종, 아렌트의 권력 이론 등 다층적인
차원에서 분석될 수 있다. 또한 그에 따라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행
태, 그들이 관심을 가진 사안이나 시위의 형태에 대한 입장의 다양성,
광장에서 벗어난 이후의 삶에서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우리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
이 어떠한 바람을 가지고 나왔고, 앞으로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어떠한
방식으로 나타날지, 그리고 지식인들과 시민사회는 그 시민들에게 무
엇을 제공해야 할지에 대해 모종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향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해야 하는지, 가

령 현재의 대표제민주주의를 내실화 할 것인지, 아니면 ‘시민의회’와
같은 대안적 대표제를 추진해야 할 것인지, 혹은 ‘민회’ 등의 직접 민
주주의적 수단을 강화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참고할만한 내용들을 알
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비폭력 저항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가’ 하는 보다 구체적인 수준
에서는, 이번 시위의 양태가 왜 촛불이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어떻게
해서 그것이 성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전략적인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에이커만과 크루글러, 포포비치가 제시한
전략들 중에서 어떤 것들이 이번 촛불시위에서 성공의 요인이었는지,
혹은 새로운 변수들이 등장한 것은 없는지를 밝히는 것은 촛불시위는
물론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일반 이론에도 기여할 수 있다. 가령 ‘핵심적
물적 자원에 대한 접근성 확보’의 경우,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서울시
의 행정적 뒷받침이라고 하는 과거에는 기대하기 어려운 지원이 확보
된 측면이 있었다. 시위대가 비폭력 원칙을 견지할 때 공권력의 폭력
과 대비되는 효과가 나타난 데에는, 백남기 농민의 사망 사건을 다룬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이 촛불집회 직전인 10월 22일에
방영되었다는 우연이 기여한 바도 있을 것이다.
또한 ‘장수풍뎅이 연구회’, ‘혼자 나온 사람들’ 등 ‘깃발’로 대표되는
운동권 문화에 대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축제를 즐기는 광장의 분위
기는 기존 시위 문화에 대한 전복적 저항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러한
시위 문화의 변화는 2002년 첫 촛불집회에서 2008년을 거쳐 2016년에
이르는 동안, ‘깃발’로 상징되는 연단 중심의 조직적 운동권 문화와 ‘촛
불’로 상징되는 자율적이고 비조직적인 참여 문화가 빚었던 오랜 갈등
의 현 단계적 결말로 볼 수 있다. 이것은 단지 시위의 양태가 변화했
다는 수준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시간적 변화에 따라 한국의 시민들
이 갖게 된 민주적 참여의 가치와 문화의 변화를 말해주는 것이다. 또

한 향후 펼쳐질 한국의 시민사회에 대한 청사진도 여기서 그려볼 수
있다.17)
이 글은 그러한 구체적인 분석에 앞서 큰 틀에서 비폭력 시민 저항
에 대한 사상적인 배경과 이론적 틀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한국적인
맥락에서 이러한 논의를 충분히 진행시키지 못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향후 촛불에 대한 연구의 사상적 서장(序章)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
의를 찾고자 한다.
(2017년 4월 10일 접수, 4월 28일 심사완료, 4월 29일 게재확정)

17)

운동권을 비하하는 소위 ‘꿘충’이라는 용어는 이 논쟁의 핵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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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lbo.com/v/a9c7e0531cfa46cc9af247fe10ae0594 (검색일. 2017. 4. 2)

The relationship between political resistance and violence can be
classified into three categories : ethical denial of violence, political denial of
violence, and embrace of violence in politics. The first is argued by Thoreau,
Gandhi, and Martin Luther King, Jr., the second by Arendt, the third by
Hobbes and Marxists. And the first two views seem to be the theoretical
foundation for non-violent civil resistance. On this basis, a claim for a
vicious cycle of violence is supported by the theories of international politics
and psychology. Recently, the argument that nonviolence resistance is more
efficient is defended by empirical researches, and a variety of strategies and
practical action plans have been suggested and exercised. This theoretical
background would be helpful for the understanding of the candle light
protest of South Korea in 2016.
Key words : violence, non-violence, resistance, candle light protest, civil
disobed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