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익·정승현. 2014.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동양문화연구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이 상 익
(부산교육대학교 교수)

정 승 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1. 서론
2. 근대에 있어서 경쟁론의 두 기원
3. 경쟁론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
4. 결론:

反競爭論의 함의

※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사회과학연
구지원사업비)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
(NRF-2011-330-B00010).

90

東洋文化硏究 第17輯
<국문 요약>

本考에서는 근대 서구사회에서 競爭論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경쟁론
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고, 경쟁론에 대한 근래의 여러 비판들을 두루
살펴본 다음, 그들의

反競爭論이 함축하는 바를 정리해 보았다. 오늘날

우리가 경쟁론을 지양시키고자 한다면, ‘사회복지의 당위성’과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는 물론 ‘올바른 세계관의 정립’ 문제가 긴요한 것이요,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문제도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碩學들의 反競爭論이 중요한 의의를 지니는 것이
라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전통 유교의 名分論에 대해서도 새롭게 인
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 한국의 근대화 과정은 전통적 名分論을 타파하
고 서구의 競爭論을 도입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데 한 때는 진보의
본고에서 살핀 여러

원동력으로 기능했던 경쟁론이 이제는 숱한 폐단을 낳고 있다면, 우리
는 전통적 사회운영론의 의의를 되돌아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주제어: 경쟁론, 반경쟁론, 사회진화론, 자유주의, 제 3의길, 명분론.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91

1. 서 론

近代化는 자유경쟁론․생존경쟁론의 도입으로부터 시작되
었다. 개화파는 名分論이 지배하던 구시대의 틀을 깨고, 새롭게 競爭의
우리 한국의

관념을 주입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예컨대 ‘개화의 선구자’로 칭송되는
유길준은 경쟁을 ‘문명진보의 원동력’으로 예찬한 인물이기도 했다. 유

競爭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길준은 < 人生의 萬事가 競爭을 依持하지 아니한 者가 없으니 大한 則 天下國家의 事 로부터 小한 則 一身一家의 事에 이르히 悉皆 競爭을 因하야 始能進步하는 者 이라 만일 人生이 競爭하는 바가 없으면 何物로써 其 智德과 幸福을 崇進함을 得하며 何物로써 其 光威와 富强을 增進함을 得하리오 1) 西遊見聞 제4편 <人世의 競勵>에서는 “各其 自己의 職分을
務하며 自己의 好惡를 從하야 自己의 趣意를 欲達함으로 先을 爭하나니
此는 卽 世人의 相競相勵하는 事라 人間의 美利公益이 此道를 由하야 成
就하고” 라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개화란 기존의 명분론적 사회운영원
유길준의 

2)

리를 폐기하고 우리 사회를 경쟁의 체계로 개편하는 것이기도 했다.3)
개화파 이래, 우리 한국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근대화에 매진하
여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한국은 ‘모범적인 개화국’으로 자타가 공인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눈부신 성공’의 이면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좌절과 절규가 숨어있다. 예컨대 ≪조선일보≫ 2013년 1월 1일자 신년특

兪吉濬全書 제4권, 49쪽.
兪吉濬全書 제1권, 150쪽.
3) 조선시대는 儒敎的 名分論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유교의 명분론은 유기체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모든 구성원들의 몫을 골고루 보장하자는 것이었다. 그런
데 조선 후기의 탐욕스런 勢道政治는 명분론적 운영원리를 외면하여 계급갈

1) 
2) 

등(농민반란)을 증폭시켰고, 그 결과 조선은 내부적으로 스스로 붕괴할 위험
에 처했던 것이다.

92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집 기사에서 대학생 박종찬(고려대 제45대 총학생회장) 군은 기성세대를
향해 다음과 같이 하소연한 바 있다.
그토록 바라던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경제성장도 이룩했는데도 고통을 받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비싼 등록금으로 빚더미에 앉은
친구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아르바이트 인생으로 전락한 친구들, 먹고살기
위해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친구들…. 오늘날 2030세대가 안고 사는 비애는 선
배들이 겪어보지 못한 일들이 아닐까요? 요새 대학은 선배들이 대학생이던 시
절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성의 요람이자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이 그저 취업
만을 준비하는 학원이 되었어요. 학점 관리와 스펙 쌓기에 열중하느라 선후배·
동기 간 유대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동아리·학생회를 하려는 이들도 별로 없어
요. 낭만이 사라진 자리에 경쟁만이 남았습니다. 이렇게 팍팍한 대학 생활을 거
치고도 취업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위의 인용문은 여러 논점을 제기하고 있는바, ‘청년실업’ 문제도 그 가
운데 하나이다. 경제학의 고전적 상식은 ‘성장이 고용을 늘린다’는 것이
었다. 그런데 근래에는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말이 자주 회자되는바,
‘청년실업’은 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한 경쟁을 통해 생산성이 고도
로 높아지면서, 한편으로는 ‘고용 없는 성장’을 초래하고, 한편으로는 ‘잉
여인간’을 산출하여, ‘청년실업’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다.4)
경쟁론이 단순히 청년실업 문제만을 야기한다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無限競爭과 適者生存’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시
달리면서, 스스로는 견디기 힘든 긴장을 겪게 되고, 남에게는 살벌한 敵意
오늘날 현대인들은 ‘

를 품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의 경쟁은 우리들 각자의 내면을 파
4) 조한혜정은 “잉여가 되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청년 세대의 걱정은 이전 세대
가 경험하고 있는 걱정과는 다르다. 그간
라는 를 계속 달리게 하고
속력을 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는 바우만
의 말을 소개하고, “이제 우리 사회는 청년실업문제가 잉여인구를 양산하는
근대의 구조적 산물이자 후기 근대사회가 풀어내야 할 핵심적 과제라는 점
을 명확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연세대학교 학술위원회
편, 경쟁과 공존, 오래, 2011, 250쪽 참조).

近代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93

괴함은 물론, 우리들 사이의 건전한 인간관계도 파괴한다. 그리하여 근래
의 여러

碩學들은 이미 과도한 경쟁이 야기하는 여러 심각한 부작용들을

직시하면서, 경쟁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本考에서는 근대 서구사회에서 競爭論이 등장하게

된 배경과 경쟁론의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고, 경쟁론에 대한 근래의 여
러 비판들을 두루 살펴본 다음, 그들의

反競爭論이 함축하는 바를 정리

해 보고자 한다.

2. 근대에 있어서 경쟁론의 두 기원
1) 자유주의의 자유경쟁론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준거로 삼는 이념 체계
이다. 자유주의에 있어서 자유는 목적적 의미와 수단적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자유는 그 자체 삶의 최고 목적이요 가치라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일임하면 대부분의 사회 문제들이 순조롭게
해결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지대한 의미를 지니는
바, 그렇다고 자유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무제한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몇 가지 원칙으로 자유를 제한하는바, 그것은
둘로 요약된다. 첫째는 나의 자유로운 행위가 남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無害原則’이며, 둘째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자유를 누리
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公正原則’이다.
된다는 ‘

자유주의는 사회를 ‘교환의 체계’라는 관점에서 이해한다. 자유주의에
입각하면, 개인은 본래 독립적 존재이기에, 사회생활을 영위할 필연적
이유가 없다. 그런데 개인들이 계약을 통해 사회를 건설하는 이유는 교
환을 통해 각자 서로 필요한 것들을 획득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자유
주의자들이

金科玉條로 내세우는 ‘무해원칙’과 ‘공정원칙’은 바로 사회적

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원칙이었다.

94

東洋文化硏究 第17輯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는 본질적으로 ‘분업과 협동의 체계’이
다. 분업이 존재하면 반드시 그 결과를 교환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적
교환은 동서고금에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인바, 따라서 사회를 ‘교환의
체계’로 보는 것은 자유주의만의 독특한 관점이 아니다. 자유주의의 특
징은 사회를 ‘교환의 체계’로 규정함에 있지 않고 ‘사회적 교환의 본질’
을 ‘자기 이익의 최대화’ 즉 ‘이기적 경쟁’으로 규정함에 있다. 자유주의
의 이러한 입장은 인간은 본래 ‘합리적 이기주의자(rational egoist)’라는 인
식에서 도출된 것이다.
‘합리적 이기주의’라는 말에서 주목할 것은 ‘합리적’이라는 용어이다.
이는 ‘이성을 통해 이기적 욕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방
법을 모색한다’는 뜻으로서, 두 맥락을 포함한다. 첫째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도구와 기술을 찾아냄으로써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투쟁)을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공정한
방법을 찾아냄으로써 불필요한 손실을 감소시키는 것이다.5) 이러한 맥
락에서,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합리성(rationality)’은 두 의미를 지닌다.

效率性’ 과 무해원칙과 공
정원칙 등 이성이 제시하는 自然法을 준수한다는 ‘公正性’ 이 그것이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산출한다는 ‘

6)

7)

5) 갈등(투쟁)은 대개 협력(평화)보다 많은 비용을 초래하므로, 갈등을 피하는 것
도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방법의 하나이다.
는 종종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낳는데, 갈등을 회피하거나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의 역할인 것이다.

利己主義

理性

6) 흄은 “이성은 정열의 노예요, 오직 노예여야만 한다. 이성은 정열에게 시중들
며 복종하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직분도 절대로 가질 수 없다.”고 선언한
바 있는데(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ited by L. A. Selby-Bigge,
London,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415쪽), 이는 ‘가장 효율적으로’ 정열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
의 직분’이라는 의미였다.

理性
7) 홉스는 自然法을 ‘理性이 알려주는 법’으로 정의하고, 자연법의 제1조항은 ‘평
화를 얻기 위해 노력하라’는 것이요, 제2조항은 ‘나도 남이 누리는 만큼의 자
유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Thomas Hobbes,
Leviatha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C. B. Macpherson, Penguin Books, London,
1985, chap.14, 188∼190쪽 참조).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95

자유주의의 ‘자유’란 실로 여러 의미를 지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개인들이 각자 자신의 이기심을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
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발적으로 노력한
다. 따라서 이기심을 승인하면 각자의 삶이 개선될 것이요, 각자의 삶이
개선되면 결국 사회도 발전한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지론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이기심이 사회적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었는데,

理性(自然法)에 의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맨더빌(Bernard de Mandeville)은 ‘私惡이
바뀌어 公益이 된다’고 설파하면서 개인이 ‘正義의 원칙 아래 마음껏 자
신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自由’를 외쳤던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을
正義와 결합시키면 인류의 樂園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맨더빌의 지론
이 또한 이기심과 동행하는

이었다.8)
맨더빌은 개인의 이기심을 옹호하면서도 정의라는 원칙을 외면하지 않
았는데, 이는 이기심에 대한 일반적 우려를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
이다. 그러나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을
끌어들여 이기심에 대한 일말의 우려마저 완전히 불식시키려 했다.
사실 그는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한 것도 아니며 그가 얼마나 기
여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 그는 오직 자신의 안전을 의도한 것이고 (…) 오
직 자신의 이익을 의도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다른 많은 경우와 같
이]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목적을
증진시키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여 반드시 [의도했을 경우에 비
해] 사회에 보다 적게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
으로써 종종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9)

神的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을 일치시켜주는 ‘

8) 맨더빌, 최윤재 역, 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문예출판사,
2011, 120∼121쪽 참조.

國富論 上, 동아출판사, 1993, 434쪽.

9) 스미스, 김수행 역, 

96

東洋文化硏究 第17輯

存在’로서, 스미스는 이러한 개념을 통해 개인의 도덕적 부담이나 책임
을 감면시켜준 것이다.10) 이제 개인은 자유롭게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면
될 뿐, 나머지 문제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豫定調和). 이러한 맥락에서 밀도 ‘상품의 저렴한 가격과 탁월한 품질이

(

가장 효과적으로 제공되는 방법’은 ‘생산자와 판매자 모두에게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라 주장할 수 있었다.11)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또 남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고자 하는바, 이러한 맥락에서 ‘이기심의 자유로운 충족’
은 ‘자유경쟁’과 표리를 이룬다. 자유주의자들은 이기적 경쟁을 자연스
러운 사실로 받아들임은 물론, 사회발전의 적극적 계기로 인식했다. 경
쟁은 사회적 효율성의 원천이므로, 진보와 발전을 위해서는 각 개인의
이기적 경쟁심을 적극 북돋아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사회의 체계가 기
능을 발휘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주의․이기주의․탐욕을 조장할
필요가 있으며, 이것은

調和와 平和로 이르는 길”

12)이라는

생각, 즉 예

정조화설에 근거한 자유경쟁론은 근대 자유주의의 오랜 지론이었다.

2) 사회진화론의 생존경쟁론
서구 사회에서 자유경쟁이 예정되어 있다던 조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富益富 貧益貧’으로 인한 각종 폐단을 드러내고 있을 무렵, 사상계의 한

쪽에서는 자유주의의 그러한 폐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 또 다른 이론이
등장하고 있었다. 스펜서(Herbert Spencer, 1820∼1903)의 사회진화론이 그
것이다.
사회진화론은 스펜서를 비조로 삼지만, 맬서스(Thomas Malthus)의

人口

論, 다윈(Charles Darwin)의 進化論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먼저 이 문
10) 박순성, 아담 스미스와 자유주의, 풀빛, 2003, 211쪽 참조.
11) John Stuart Mill, On Liberty, edited by Elizabeth Rapaport, Hackett Publishing
Company, Inc., Indianapolis, 1979, 94쪽 참조.
12) Erich Fromm, To Have or To Be ?, Harper & Row, Publishers. 1976, 3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97

제를 살펴보기로 하자. 다윈은 자신이 진화론을 구상하게 된 계기를 다
음과 같이 회고한 바 있다.
1838년 10월, 그러니까 체계적인 탐구를 시작한 지 15개월이 지난 어느 날

人口論을 재미삼아 읽게 되었다. 나는 동물과 식물의

나는 우연히 맬서스의 

습성을 오랫동안 계속 관찰해 왔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진행되고 있는 생존을
위한 투쟁을 이해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때문에 맬서스의 책을 읽으면
서 나는 즉각적으로 경쟁의 상황하에서는 유리한

變異들이 보존되고, 불리한

것들은 사라지는 경향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 때문
에 새로운

種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나는 마침내 내가 적절히 활용

할 이론을 발견하게 되었다.13)

위의 인용문이 시사하듯이, 다윈의 진화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

種의 출현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다윈은 생존경쟁을 좌우하는 요인으로 變異를 주목했다. 동일한 種 내
의 개체들이라도 서로 조금씩 다른 형질을 지니는데, 그러한 差異(變異)
는 개체들 사이의 생존경쟁으로 새로운

가 생존경쟁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유리한 형질을 가
진 개체는 생존하여 번식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그 개체는 자신의
형질을 다음 세대로 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바, 이러한 방식으로 새로

種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14)

맬서스의 인구론은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다만
스펜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인구 압력의 결과로 진보가 이루어
진다’고 보아, 맬서스와 달리 낙관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과도한 인구의
압력은

適者生存을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요, 적자생존은 결국 ‘인류의

진보’ 또는 ‘사회의 진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있

던 스펜서는 다윈의  의 기원이 출간되자(1859년) 그에 열광했고, 다
윈 역시 스펜서를 ‘나보나 몇 배나 나은 선배’라고 칭찬함으로써, 두 사
13) 레이첼즈, 김성한 역,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 나남, 2009, 61쪽.

14) 다윈, 송철용 역,  의 기원, 동서문화사, 2013, 139쪽 참조.

98

東洋文化硏究 第17輯

람은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교류하게 되었다.15) 요컨대 맬서스의 인구론
을 모태로, 스펜서는 사회(인류)진화론을 구상하고, 다윈은 자연(동물)진
화론을 구상한 것이며, 각자의 연구 결과에 대해 서로 공감한 것이다.
사회진화론은 ‘자유주의의 변종 이론’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실제로 스
펜서는 정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유방임주의를 옹호했다. 그런데 자유
주의와 사회진화론은 ‘경쟁을 통한 진보’라는 관념을 공유하면서도, 경쟁
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 한다. 자유주의에서는 무해원칙
이나 공정원칙 등 경쟁의 규칙을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전반적

調和’를

優勝劣敗’를 통한 ‘適者生存’을 상정한다. 따라서
사회진화론에서의 경쟁은 말 그대로 弱肉强食의 生存競爭이 된다.
‘適者生存이 進化의 원동력’이라는 사회진화론이 등장한 이후, 생존경쟁
상정하나, 사회진화론은 ‘

론은 한동안 기존의 자유경쟁론을 압도하면서 맹위를 떨쳤다. 예컨대 당시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Andrew Carnegie)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커다란 불평등을 받아들이고 환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소수가 장
악하는 사업, 산업과 상업의 집중, 그리고 이들 간의 경쟁 규칙들이 미래의 인
류 발전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필수적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유는 오직
자본주의만이

適者生存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16)

위에 보이듯이, 카네기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는 생존경쟁이 필수적

富를 축적하고, 그 富를 다시 자선
사업에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사회진화론이 본래 이처럼 慈善을
이라고 옹호했다. 카네기는 악착같이

옹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진화론의 원조 스펜서는 오히려 빈민의
구제나 사회복지 등

慈善을 극렬하게 비판했다. 그것은 적자생존의 법

社會思想史
用不用說
自然淘汰說

15) 코저, 신용하․박명규 역, 
, 일지사, 1985, 156∼173쪽 참조. 코저
에 의하면, 스펜서는 본래 라마르크의
을 지지했었는데,  의
을 읽고 다윈의
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코저는 또 스펜서의 주요
학설은 다윈의 진화론이 발표되기 전에 이미 정립된 것이므로, 스펜서를 ‘사
회적 다윈주의자(Social Darwinist)’로 부르는 것은 분명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16) 레이첼즈,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 15쪽.

種 起源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99

칙을 무시함으로써 인류를 퇴보시키게 된다는 것이다.
사물의 자연적 질서 하에서 사회는 병들고 열등하며 느리고 우유부단한 신
념없는 자들을 끊임없이 배제시켜 나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 마음은 좋
으나 생각이 모자란 사람들이 (정부의) 간섭을 찬양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간섭은

淨化 과정을 중지시킬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淨化를 무효화시킬 가능성

도 지니고 있다.17)

貧民에 대한 동정심을 지닌

‘마음은 좋으나 생각이 모자란 사람’이란 ‘

사람’을 뜻하고, ‘정부의 간섭’이란 ‘빈민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정부
의 개입조치’를 뜻한다. 위에 보이듯이, 스펜서는 빈민이 도태되는 것을
‘인류의

淨化’로 인식했다. 이러한 淨化의 과정을 거쳐서 사회가 進化된

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윤리적 관점에서 논하자면, 사회진화론은 생존경쟁․약육강식을 강조
함으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보존하고 자신의 의지나 세력을 관
철하게 하는 이기주의를 조장한다. 여기에는

人間愛를 위한 어떠한 여

지도 없고, 강자의 권리만이 인정될 뿐이다. 약자는 스스로의 무능력 때
문에 패배한 것이므로 동정할 필요가 없으며, 약자의 파멸은 자연의 법
칙이기 때문에 또한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18)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진
화론은 국내적으로는 착취와 수탈을 정당화하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
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기능했다. 코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適者生存에 대한 그의 학설은 (…) 벤담주의보다 훨씬
더 貪慾的 個人主義의 정당화에 봉사했던 것 같다. (…) 그는 열심히 ‘快樂’을 극
스펜서의 가르침, 특히

대화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사람은 그의 그러한 행위로 인해 의식적이지는 않더

最大幸福과 그 진화적 발전에 공헌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줌
으로써 오로지 자신의 個人的 利益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변명을 제공
라도 인류 전체의
해 주었다.19)

社會思想史, 158쪽 참조.

17) 코저, 

18) 전복희, 사회진화론과 국가사상, 한울, 1996, 28쪽 참조.

100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오늘날 이런 식의 사회진화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지만, 자
유주의 이론을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경쟁과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현
대판 사회진화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하이에크(F. A. Hayek)이다. 그는 ‘점
진적으로 진화해온 인간행위의 규칙들’, 즉 개인의 소유물, 정직, 계약,
교환, 무역, 경쟁, 소득과 개인의 자유를 다루는 규칙들이 문명을 만들어
냈다고 본다. 이 변화의 과정은 “일반적으로 자원의 효용을 최대한 높이
는 방향으로”20) 일어나는 진화론적 변화를 따라 이루어졌으며, 그리고
바로 그것이 인류가 현재와 같은 규모와 구조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
었다고 주장한다.
하이에크가 보기에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는 “동일한 선택의
원리, 곧 생존이나 번식의 이로운 점에 의존하고 있다. 변이, 적응과 경
쟁은 특별한 구조, 특히 번식과 관련된 구조에서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종류의 과정이다. 모든 진화는 경쟁에 의존하고, 끊임없는 경쟁
은 기성의 성취를 보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역설한다21). 그리고
“바퀴처럼 진화의 과정 속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강조한다.22) 이러한 주장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환경 적응과
생존력을 높이는 진화의 산물로서 도덕적 가치를 갖고 있으며, 그 어떤
추상적 원칙에 입각하여 이 사회의 작동 원리인 경쟁을 깨뜨리는 것은
잘못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나쁘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진화를 판정하는 기준은 환경에 대한 적응, 그리
고 생존이나 번식에 이로운 것인가 하는 여부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환
경에 제일 잘 적응하고, 자원 사용의 효용성을 증가시키도록 만드는 원
천은 경쟁이며, 이 규칙에 따른 인간들만이 생존하고 문명을 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문명이란 사유재산, 경쟁, 시장 등이 포함되어 있

社會思想史, 193쪽.

19) 코저, 

20) 하이에크, 신중섭 역, 치명적 자만, 자유기업원, 2005. 42쪽.
21) 하이에크, 치명적 자만, 61쪽.
22) 하이에크, 치명적 자만, 62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01

는 자본주의 사회제도를 말한다. 이 전통을 버리고 사회주의적 계획이
나 혹은 어떤 도덕적 원리에 입각한 사회개조 같은 시도는 생산성을 떨
어뜨리고, 인간문명의 수준을 하락시키거나 혹은 멸망하게 만들 것이라
고 주장한다.
사회진화론은 그 자체로도

反倫理的 성격을 지니고 있거니와, 人種主

義 등과 결부되어 여러 불미스러운 세계사적 사건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오늘날 ‘學問의 영역’에서는, 하이에크 등
예외는 있지만, 사회진화론이 거의 극복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日常
의 영역’에서는 사회진화론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요즈음도 많은
사람들이 ‘생존경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이 그 증거이다.

3. 경쟁론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근대문명이 이룩한 성과는 실로 눈부신 것이었
다. 그러나 자유경쟁은 빈부의 격차 등 많은 폐단을 낳기도 했다. 자유
경쟁의 폐단이 점차 심화되자, 한편에서는 사회주의(공산주의)가 등장하
여 자유주의(자본주의)를 대체하고자 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진화론
이 등장하여 자유경쟁의 폐단을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실로 정당화했다.
이렇게 본다면 사회주의는 자유경쟁론에 대한 비판의 효시가 되는 셈이
다.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약 2세기 동안 서로 각축했거니와, 그 정황
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을 ‘개인(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으로 간주하고,

自助의 원칙’과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자유경쟁의 공

개인의 복지는 ‘

간(시장)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보았다. 이들은 자유로운 경
쟁이 보장된다면 결국 모두가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예정되어 있다던 조화는 결코 실현되지 않았다. 개인들 사이에
는 능력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바, 따라서 경쟁이 아무리 공정하게

102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진행되더라도 자유경쟁은 결국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하는 것이다. 더군
다나 시장에서의 경쟁도 불공정하게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하여
개인책임의 원칙은 결국 약자들의 생존권을 실질적으로 부정하는 논리

市場의 실패’로 규정했다.

가 되고 말았는데, 사회주의자들은 이를 ‘

사회주의자들은 인간을 ‘상호 의존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이로부터

弟愛의 당위성을 도출했다. 모든 인간은 서로 형제처럼 보살펴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무엇보다도 형제애를 社會權으로 탈바꿈시킨
데 있다. 형제애가 사회권으로 탈바꿈되자, 약자들은 평등하게 복지를

누릴 권리를 지니게 되었고, 사회(국가)는 약자들에게 복지를 제공할 책
임을 지게 되었다. 그런데 약자들의 복지가 개선될수록 약자들은 도덕
적 해이에 빠지고, 부자들은 무거운 세금을 피하기 위해 재산을 은닉시
키며, 복지 제공을 위해 비대해진 국가의 기능은 한편으로는 개인의 자
유를 침해하고 한편으로는 부정부패의 소지를 더욱 확대시키게 된다.
사회책임의 원칙도 결국 다양한 폐단을 야기하고 말았거니와, 자유주의

國家의 실패’로 규정했다.

자들은 이를 ‘

이처럼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를 두고 서로 공방하는 가운데, 자
유주의적 경쟁론에 대한 비판도 더욱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경쟁론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은 크게 네 유형으로 분류된다. 첫째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지양시켜 ‘경쟁의 효율성’과 ‘사회복지의 도덕성’을 조화시키
자는 것으로서, 기든스나 칼레츠키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는 협력이 경
쟁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에서 협력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것
으로서, 프랭크나 액설로드 등이 이에 속한다. 셋째는 새로운 물리학과
새로운 생물학 등 현대 과학의 성과를 토대로 협력과 공존의 필연성을
강조하는 것으로서, 카프라나 최재천 등이 이에 속한다. 넷째는 ‘본능적
삶’과 ‘본성적 삶’을 대조하고 본성적 삶의 가치를 각성시키는 것으로서,
프롬이나 홍승표 등이 이에 속한다. 이제 이 네 부류를 간단히 살펴보기
로 하자.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03

1) 기든스의 ‘제3의 길’과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
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하면 시장의 실패에 빠지고, 사회주의 원칙에
충실하면 국가의 실패에 빠진다는 점은 서양의 근현대사를 통해서 충분
히 확인된 사실이다. 이러한 딜레마는 근본적으로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길항 관계에서 유래하는바,23) 그렇다면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와 평
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모두 근본적 한계가 있는 것인바, 이를 직시하
는 학자들은 자유주의나 사회주의 어느 한쪽에 매달리지 않고 양자를
초극하거나 절충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근래의 대표적인 예로
는 기든스(Anthony Giddens)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 칼
레츠키(Anatole Kaletsky)의 자본주의 4.0 등을 들 수 있다.
기든스는 자신이 추구하는 ‘제3의 길’은 “구식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
주의를 뛰어넘는 시도”라고 해명한 바 있다.24) ‘구식 사회민주주의’란
1945∼1975년의 시기를 주도했던 서구의 복지국가 이념을 말한다. 이는
‘케인스 이론’에 입각하여 국가가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자유경쟁의 폐단
을 보정하려는 것이었는데, 결국 ‘국가의 실패’를 초래했다. ‘신자유주의’
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로 대표된다. 이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한
으로 제한하고 시장의 자유경쟁을 촉진함으로써 경제적 효율성을 달성
하자는 것이었는데, 역시 시장의 실패를 면치 못했다. 기든스는 신자유
주의의 대표적 폐해로 경제적 양극화와 생태계의 파괴 등을 주목하면
서,25) 특히 자유경쟁이 초래한 실업 문제를 중시했다.
많은 사람들은 강요된 실업의 결과로 직장생활을 중단해야 한다. 혹은 실업
이 전체 계급 중에서 하층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경
23) 자유(소극적 자유/적극적 자유)와 평등(기회의 균등/결과의 평등)을 어떻게 해
석하든지 간에, 개인의 자유를 강조할수록 사회적 평등은 약화되고, 사회적
평등을 옹호하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게 마련이다.
24) 기든스, 한상진․박찬욱 공역, 제3의 길, 생각의 나무, 1999, 62쪽 참조.
25) 기든스, 김현옥 역,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한울, 1997, 115쪽.

東洋文化硏究 第17輯

104

쟁이 전 지구화된다면 그리고 기술혁신이 가속화된다면, 실업상태의 경험은 모
든 직업영역에서 공통적인 것이 될 것이다.26)

기든스는 경쟁을 통한 기술혁신이 결국엔 실업자를 양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술혁신의 결과로 ‘강요된 실업’이란 이른바 ‘고용없는 성장’

不姙 자본주의’와 궤를 같이 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든스는 ‘제3의

또는 ‘

길’이 추구하는 가치를 ‘평등, 약자 보호,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책임 없
이 권리 없다, 민주주의 없이 권위 없다’는 등의 말로 요약했다.27) 이 가
운데 ‘평등, 약자 보호, 자율성으로서의 자유’ 등은 사회주의자들이 애용
하는 구호로서, 이를 통해 자유경쟁이 야기하는 폐단을 예방하고 치유
하자는 것이다. 요컨대 기든스의 ‘제3의 길’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지
양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주의에 보다 중점이 있었다.
반면에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은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절충을 모색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19세기 초엽부터 1930
년대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고전적 자본주의(제1세대 자본주의)는 성장에
초점을 둔 자유방임주의였던바, 이는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종말을 고했
다. 이후 뉴딜과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태동하게 한 케인스의 경제
학(제2세대 자본주의)은 균등분배에 초점을 둔 수정자본주의였던바, 이
는 ‘국가의 실패’로 인해 종말을 고했다. 1979∼1980년 대처-레이건의 정
치혁명으로 탄생한 신자유주의(제3세대 자본주의)는

市場을 이상화하고

정부(국가)를 불신하는 것인바, 이는 2007∼2009년의 세계적인 금융위기
로 그 한계를 드러냈다. 그리하여 칼레츠키는 ‘제4세대 자본주의’를 제창
하는 것인데, 이는 결국 국가와 시장 사이의 새로운 절충(균형)을 추구하
는 것이다.28)
기든스의 ‘제3의 길’도 그랬지만,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도 우리 사
26) 기든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162쪽.
27) 기든스, 제3의 길, 113쪽 참조.
28) 칼레츠키, 위선주 역, 자본주의 4.0, 컬처앤스토리, 2011, 63∼78쪽 참조.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05

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조선일보≫의 다음과 같은 칼럼을 보자.

本紙가 ‘자본주의 4.0을 열자’ 시리즈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 2일이었다.
그 후 1년 동안 우리 사회는 많이 변했다. 우선 경제 민주화가 대세가 됐다. 도
전하려는 젊은이에게 기회조차 주지 못하는
으로 얼룩진

不妊 자본주의, 편법 상속과 반칙

近親相姦 자본주의, 터무니없이 벌어진 격차를 줄일 수 없는 정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크게 높아졌다. 해결책을 찾으려는 다양한 방책도
제시되고 있다. 우리가 터전 삼아 살고 있는 경제 시스템과 자본주의 운영 원리

本紙가 자본
주의 4.0 시리즈를 통해 강조한 핵심은 경쟁과 배려가 공존하는 共生의 생태계
에 대해 이처럼 근본적인 토론이 많이 일어난 적은 일찍이 없었다.

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혁신과 경쟁, 배려와 공생, 시장과 상호 작용하는 효율
적인 정책, 반칙을 용납하지 않는 엄중한 원칙이 자본주의 4.0의 핵심이다.29)

不姙 자본주의, 近親相姦 자본주의, 정글 자본주의’ 등
은 모두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는 自由競爭 내지 生存競爭의 생
위에서 말하는 ‘

생한 단면들을 묘사하는 용어들이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경쟁 체계가
초래한 이러한 폐단들은 마침내 ‘경제민주화’ 열풍을 일으켰고, 많은 사

共生의 생태계’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칼레츠키는

람들은 이를 통해 ‘

“유능하고 적극적인 정부가 있어야만 시장경제가 존재할 수 있다”30)고
역설했는데, 이는 바로 ‘정부가 경쟁을 적절히 통제해야만

共生의 생태

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2)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과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
프랭크(Robert H. Frank)는 승자독식사회와 경쟁의 종말(The Darwin
Economy) 등을 통해서 오늘날의 경쟁 체제가 야기하는 근본 문제를 해
명했다. 프랭크의 경쟁에 대한 비판은 크게 두 맥락에서 전개된다. 첫째
는 오늘날의 경쟁이 점점 더 승자독식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점이요, 둘
29) 김덕한, <‘자본주의 4.0’, 그후 1년>, ≪조선일보≫ 2012년 8월 28일자 칼럼.
30) 칼레츠키, 자본주의 4.0, 246쪽.

106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째는 이기적 경쟁이 많은 경우 사회의 해악을 초래한다는 점이다. 프랭
크는 이 두 측면에서 스미스의 예정조화설을 비판하고, 경쟁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논의했다.
우선 승자독식사회를 살펴보자. 프랭크와 쿡에 의하면, 승자독식은
원래 연예계나 스포츠계에서만 통용되던 원리였는데, 이제는 투자금융
시장, 법률시장, 의료시장, 경영자시장, 교육시장 등 우리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1등과 2등의 차이는 간발의 차이에 불과한데도, 오늘날
대부분의

市場은 1등에게만 부와 권력을 몰아주는 것이다. 이처럼 승자

독식 현상이 심화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더욱 치열하게 경쟁에 매달려
서, 한편으로는 사회적 재앙을 초래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삶을 황폐
하게 만든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은 시장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결과들을 낳는다고 주장한
다. 반면, 우리는 승자독식 시장이 너무나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비효율
적인 소비와 투자를 조장하며, 우리의 문화를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대가를 피하려면, 기업과 개인은 기존의 이윤창출 기회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행동을 어느 정도 자제해야 한다. 그렇다고 세부적이고 처방적인 정
부규제가 모든 사회악을 치유해준다는 의미는 아니다.31)

승자독식 시장은 ‘경제적 낭비’와 ‘문화적 악영향’을 야기하므로, ‘개인
의 자제’와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특히 정부의 규
제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거로

公共善을 들었다.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

지역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면, 똑같은 논리에 의해 지역사회는 승자독
식적인 보상체계를 개선할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32)
다음 경쟁의 종말을 살펴보자. 프랭크는 이기적 개인들 사이의 자
유경쟁이

公共善을 실현시키지 못할 때도 있다는 점을 간파하고, 스미

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했다. 프랭크는 오히려 경쟁에 대한 다윈의
31) 프랭크․쿡, 권영경․김양미 역, 승자독식사회, 웅진지식하우스, 2012, 39쪽.
32) 프랭크․쿡, 승자독식사회, 40쪽 참조.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07

통찰을 주목했다. 다윈이 분명하게 인식했듯이 때로는 개인의 인센티브
가 낭비적인 군비경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오늘날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로 잘 알려져 있다. 그를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이 원리는 ‘비인격적인 시장의 힘에 의해 탐욕스러운 개
인의 행동이 모두를 위한 최선의 결과를 낳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 그들
은 자유 시장의 힘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에
규제는 불필요하다고 믿는다. 경쟁 과정에 대한 다윈의 견해는 근본적으로 다
르다. 그의 관찰에 의하면 개별 동물의 이해관계는 때로는 종족 전체의 이해관
계와 크게 상충한다.33)

경쟁의 승패는 능력이나 성과 등의 ‘절대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고, ‘상대적’ 기준에 의해 결정될 수도 있다. 예컨대 ‘90점 이상 합격,
90점 미만 불합격’은 절대적 기준에 속하고, ‘1등부터 3등까지 합격, 4등
이하 불합격’은 상대적 기준에 속한다. 그런데 개인에 대한 보상이 상대
적 기준에 달려 있는 경우,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는 종종 상충하게 된
다. 프랭크는 다음과 같은 수컷 말코손바닥사슴의 예를 들었다.
이들의 뿔은 외부 포식자에 맞서는 무기가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경
쟁에 쓰이는 무기다. 이런 싸움에서는 뿔의 상대적인 크기가 중요하다. 돌연변
이를 통해 큰 뿔을 가지게 된 수컷들은 경쟁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이런 돌연변이는 빨리 퍼져간다. 즉 이들은 암컷을 얻기 위한 경
쟁에서 승리하므로 그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이런 돌연변이가 여러
세대에 걸쳐 누적되면서 마치 국가간의 군비경쟁과 같은 상황을 일으킨다. (…)
이런 돌연변이가 개별 말코손바닥사슴의 번식 적합성은 높이지만 종족 전체에
는 참담한 결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뿔이 커지면 숲이 우거진 지역에서 기동
력이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늑대에게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아진다.34)

프랭크는 위와 같은 맥락에서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상충할
33) 프랭크, 안세민 역, 경쟁의 종말, 웅진지식하우스, 2012, 46쪽.
34) 프랭크, 경쟁의 종말, 51∼52쪽.

108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로부터 경쟁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을 도출
했다. “규제가 필요한 진정한 이유는 서로 간의 과잉경쟁으로부터 우리
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35)
프랭크는 적절한 규제의 예로 세금 정책을 들었다. 누군가 승자독식
시장에 뛰어들어 엄청난 소득을 올릴 경우, 그 소득에 높은 세금을 부과
하면, 과잉유입 문제가 완화된다. 그 결과 우수한 인재들이 다른 분야로
진출해서 세상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도 있으며, 정부는 이때 발생하
는 조세수입으로 꼭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36)
이제 액설로드(Robert Axelrod)의 협력의 진화를 살펴보자. 액설로드
는 인간 사회의 이해관계를 두 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체스나 축구
와 같은 ‘제로섬(zero-sum) 게임’으로서, 여기에는 승자의 몫만 있고 패자
의 몫은 없다. 따라서 양쪽의 경기자들이 서로 있는 힘을 다 쏟아 경쟁하
게 되며, 양자 사이에 협력의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둘째는 국가들
사이의 안보 문제나 무역 문제, 일상생활에서의 동료들 사이의 관계 문
제,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는 기업들 사이의 관계 문제 등과 같은 ‘비제로
섬 게임’으로서, 여기에서는 각자의 몫이 차등적으로 분배된다. 그런데
액설로드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 보다 흔한 이해관계의 유형은 비제로섬
게임으로서, 이 경우에는 상호협력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게임 이론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는
여러 유형의 비제로섬 게임을 단순하게 모형화한 것이다. 죄수의 딜레
마 게임의 두 당사자는 각자 자유롭게 ‘협력’이나 ‘배반’을 선택할 수 있
다. 하지만 서로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배반이 협력보
다 더 많은 보수를 받는다. 그런데 딜레마는, 두 사람 모두 배반을 선택
하면 모두 협력을 선택할 때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두 사람이 모두 협력을 선택하면, 두 사람 모두 ‘상호협력에 대한 보상’
35) 프랭크, 경쟁의 종말, 60쪽 참조.
36) 프랭크․쿡, 승자독식사회, 40쪽 ; 프랭크, 경쟁의 종말, 264쪽 참조.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09

으로 3점을 받는다. 한 사람은 협력을 선택하고 다른 사람은 배반을 선
택하면, 배반한 사람은 ‘배반의 유혹’으로 5점을 받고, 협력한 사람은 ‘머
저리의 빈손’으로 0점을 받는다. 두 사람 모두 배반을 선택하면 ‘상호배
반에 대한 처벌’로서 둘 다 1점을 받는다.37)
액설로드는 우리의 삶을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계속 반복하는 것’으
로 간주하고, 두 차례의 전략(프로그램) 대회를 개최하여 ‘반복적 죄수의
딜레마 게임’에 대처하는 최선의 전략이 무엇인지를 찾아냈다. 1차 대회
에는 15개의 전략이 참여하고, 2차 대회에는 63개의 전략이 참여했는데,
그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다음의 두 전략이다. 첫째는 올디(All D :
all defect) 전략으로서, 이는 ‘항상 배반의 원칙’을 구사하는 전략이다. 둘
째는 팃포탯(Tit For Tat) 전략으로서, 이는 첫 판엔 협력하고 그 다음 판
부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선택(협력/배반)에
따라 자신도 그대로 대응하는 전략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 상대방이 어떤 선택을 하든 상관없이 자신은 배
반을 선택하면, 자신이 상대방보다 크거나(5점) 같은(1점) 점수를 얻게
된다. 올디는 이러한 맥락에서 항상 배반을 선택함으로써 항상 상대방
보다 크거나 같은 점수를 얻자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올디가 거둔 성적
은 매우 초라했다. 요컨대 올디는 ‘자신은 5점, 상대방은 0점’이 되기를
꾀한 것이나, 둘째 판부터는 상대방의 응징(배반)에 따라 ‘자신도 1점, 상

共滅’에 빠진 것이다.

대방도 1점’이라는 ‘

반면에 팃포탯은 ‘상대방의 협력에는 협력으로 대응하고, 배반에는 배
반으로 대응함’으로써 다만 상대방과 같은 정도의 점수를 얻자는 것이었
을 뿐, 결코 상대방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자는 전략이 아니었다. 그런
데도 불구하고 팃포탯이 두 차례의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팃포탯은
배타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시도하지 않고, 다만 ‘자신도 3
점, 상대방도 3점’을 얻는 것에 만족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협력
37) 액설로드, 이경식 역, 협력의 진화, 시스테마, 2009, 28∼31쪽 참조.

110

東洋文化硏究 第17輯

共榮’을 이룬 것이다.

을 통한 ‘

팃포탯 전략이 상대보다 결코 더 잘하지 못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성공한다는
사실에 중요한 교훈이 담겨 있음도 알았다. 팃포탯은 상대방을 패배시킴으로
써 성공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성공을 거두었
다. 우리는 축구나 체스처럼 오로지 한쪽만 이기고 한쪽은 지는 식의 경쟁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실제 세상은 그렇지 않다. 광범위하고 다양한 상황에서
상호협력이 상호배반보다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될 때가 더 많다. 좋은 성과를
올리는 비결은 상대방을 누르고 이기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서 협력을 유도
하는 것이다.38)

액설로드는 위와 같은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인간 사회에
서 협력은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보았는바,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협력의 진화’이다.

3) 카프라의 ‘유기체론’과 최재천의 ‘호모 심비우스’

新科學運動의 기수 카프라(Fritjof Capra)는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
환(The Turning Point)에서 ‘기계론적 세계관’과 ‘경쟁을 통한 진보’라는
근대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그 대안으로 다시 전근대의 유기체론을 제
창했다. 근대적 세계관은 ‘우주는 기본적 물질 구성체로 만들어져 있다
고 하는 기계론적 우주관, 사회 속의

生을 생존경쟁으로 보는 견해 및

경제적 기술적 성장을 통한 무제한의 물질적 진보에 대한 신념 등’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모든 아이디어와 가치는 극히 제한된 것이며 근
본적인 재평가를 필요로 하는 것임이 최근 몇십 년 동안에 드러났다”는
것이다.39)
카프라는 물리학과 생물학(생태학) 두 측면에서 현대과학의 새로운
38) 액설로드, 협력의 진화, 223쪽.
39) 카프라, 이성범․구윤서 공역,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범양사출판부,
1991, 30∼31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11

성과를 소개하고, 그 함의를 논의했다. 우선 물리학에서의 혁명을 살펴
보자. 카프라는 현대물리학의 대표적 성과로

相對性理論과 量子論을 소

개한 다음, 그 혁명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현대물리학의 두 개의 기본 이론은 이리하여 데카르트적 세계관과 뉴우톤 물
리학의 근본적인 면을 초월하였다.

量子論은 아원자 입자는 독립된 물질의 낱알

이 아니라 확률의 모형이며 분리될 수 없는 우주적 그물 속의 상호연결이고, 이
그물 속에는 인간 관찰자와 그의 의식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對性 原理는 이 우주의 그물이 본래적으로 역동적이며, 이 활동성이 그 존재의
본질 자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우주의 그물에 말하자면 생명을 부여한
것이다. 현대 물리학은 우주가 분해될 수 없고 역동적인 전체이며, 이 전체의 각

宇宙的 過程의 모형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고 하는 견해에 의해서 機械的 宇宙像을 초월한 것이다.
부분은 본질적으로 상호 관련되어 있고,

40)

카프라에 의하면, 현대물리학은 우주가 본래 ‘상호 관련된 관계의 그

力動的’이라는 점을 밝혀주었

물( )’이요, 이 우주적 그물은 본질적으로 ‘

다는 것이다.41) 이는 데카르트-뉴우톤의 기계론적 세계관이 더 이상 타
당하지 않다는 뜻이요, 동시에 전근대의 유기체적 세계관이 오히려 이
세계의 참 모습과 더 잘 부합된다는 뜻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물리학은 몇 가지 개념적 혁명을 겪었으며, 그 개념혁명
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유기
적, 생태적 세계관으로 유도되는 이 세계관은 모든 시대와 전통 속의 신비주의
자들의 견해와 크게 유사하다. 우주는 이제는 무수한 분리된 객체로 구성된

械로 보여지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분할할 수 없는 全體로 보여진다. 그것은
40) 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87∼88쪽.

41) 우리는 보통 돌이나 금속 등은 수동적이고 불활성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죽은’ 조각을 확대해 보면, 그 속에서는


등각
종 미립자들이 빛처럼 빠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서 ‘자연의 안정성’은 ‘
안정성’이 아니라 ‘역동적 평형’의 상태라는 것이
다(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83∼84쪽 참조).

電子 陽子 中性子

靜的

112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역동적인 관계의 그물이며 그 그물 속에는 관찰하는 인간의 의식까지도 근본적
으로 포함되고 있는 것이다. (…) 과학이 지배하는 문명에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를 설득하기가
용이한 것이다. 이것이 물리학자가 지금 해야 할 사명인 것이다.42)

카프라에 의하면, 현대물리학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분명히
밝혀주고, 우리를 다시 ‘유기체적 세계관’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카프라는 유기체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새로운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오늘날 과학자들의 사명이라고 지적하고, 자신이
그에 앞장 선 것이다.
카프라에 의하면, 현대물리학이 부활시키고 있는 유기체적 세계관은
그동안의 생태학적 연구 성과와도 잘 부합하는 것이다.
과거 수십년 동안의 생태계 연구는, 살아있는 유기체 간의 대부분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공존과 상호 의존, 여러 가지 정도의

共生을 특징으로 하는 협력적

인 관계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경쟁도 있지만 그것은 더 큰 시스템이 균
형을 유지할 수 있는 광범위한 협력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직접적인 피약탈
자에게는 파괴적인 약탈자-피약탈자 관계일지라도 일반적으로는 그 두 종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 통찰은, 생을 순전히 경쟁과 투쟁, 파괴로만 보는 사회
적 다윈주의자(Social Darwinist)들의 관점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43)

카프라는 생태학적 측면에서 유기체적 세계관을 다시 확인하고, 그
함의를 논했다. 그 함의란 요컨대 생태계에는 경쟁도 있지만, 그것은 보
다 큰 협력의 틀 안에서 전개되는 경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陰陽
陽的인 것
이요, 협력은 陰的인 것인데, 陰․陽이 상보적 관계이듯이 경쟁과 협력도
카프라는 ‘경쟁과 협력’을 ‘ ․ ’의 관계로 파악했다. 경쟁은
상보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44)
42) 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46∼47쪽.
43) 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264쪽.
44) 카프라,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38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13

한편, 오늘날의 진화생물학자 최재천도 ‘생명체의 진화 과정’은 ‘경쟁
의 과정’인 동시에 ‘협동의 과정’이라는 점을 역설한 바 있다. 근래의 생
태학 연구 결과는 “자연계의 생물들에게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
만 무조건 남을 제거하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것”
과 “무모한 전면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생물들보다 일찍이 남과 더불어
사는 지혜를 터득한 생물들이 우리 곁에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화론적 생태학자들은 자연계의
모든 것이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고, 다른

種과의 경쟁에서 이긴 種

들만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으로 이해했었는데, 최재천은 이를 ‘다윈
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라 비판했다.45)
최재천에 의하면, “자연은 언뜻 생각하기에 모든 것이 경쟁으로만 이
루어져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은 무수히 많은 다른
방법으로 제가끔 자기 자리를 찾았다”는 것이다. 최재천은 이를 ‘니치
(niche)’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니치는 환경에서 생물이 차지하고 있는 다차원 공간을 뜻한다. 생물은 누구
나 환경 속에서 자기만의 독특한 공간, 즉 역할이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니
치의 개념은 원래 경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정확하게 동일한 또는 너
무 비슷한 니치를 지닌 두 생물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 기본적인 생
태계 구성 이론이다. 이른바 ‘경쟁적 배제 원리’에 따르면 두 생물이 환경에서
추구하는 바가 너무 지나치게 겹치면 함께 살 수 없고 반드시 한 종이 다른 종
을 밀어내게 된다. 그래서 지구의 생물들은 그 오랜 진화의 역사를 통해 서로
간의 유사성을 줄여 공존할 수 있도록 변화해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는 이 엄청난 생물다양성이다.46)
45)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이음, 2012, 89∼90쪽 참조. 같은 맥락에서, 싱어
(Peter Singer)도 다윈의 진화론이 스펜서에 의해 ‘사회진화론’으로 응용되면서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변질되었던 것을 비판하고, 진화
론에 대한 최신 연구결과에 의하면 협동과 경쟁은 더 이상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싱어, 최정규 역, 다윈주의 좌파 : 변하지 않는 인
간의 본성은 있는가?, 이음, 2011, 23∼25쪽 및 72∼73쪽 참조).

114

東洋文化硏究 第17輯

‘경쟁적 배제 원리’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생태계는 생존경쟁의

場인

것이다. 그런데 최재천에 의하면, 생명체들이 진화해온 역사란 각각의

種들이 서로 다른 니치를 확보함으로써 공존해온 역사이기도 하며, 그

결과 오늘날과 같은 생물다양성이 출현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서 최재천은 인간의 삶도 ‘공존’이라는 맥락에서 해명하면서, ‘호모 심비
우스(Homo symbious, 공생하는 인간)’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호모 심비우
스’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인간일 뿐만 아니라, 다른

種들과 공존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추켜세운다. ‘현명한 인류’라고 말이
다. 나는 우리가 두뇌회전이 빠른, 대단히 똑똑한 동물이라는 점에는 동의하지
만 현명하다는 데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진정 현명한 인류라면 스스
로 자기 집을 불태우는

愚는 범하지 말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지구에 더 오래

살아남고 싶다면 나는 이제 우리가 호모 심비우스로 겸허하게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호모 심비우스는 동료인간들은 물론 다른 생물 종들과도 밀접한 관
계를 유지한다. 호모 심비우스의 개념은 환경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이기도 하
다. 호모 심비우스는 다른 생물과 공존하기를 열망하는 한편 지구촌 모든 사람
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47)

위에서 말하는 ‘스스로 자기 집을 불태우는

愚’란 인간이 스스로 자기

의 생태환경을 훼손함을 뜻한다. 최재천은 이제까지는 자연을 보호하면
서 살아온 인간보다 자연을 착취하면서 살아온 인간들이 더 번성했을
것이라고 인정한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착취하고 훼손할 자연이 남
아있지 않으므로, 따라서 “하나밖에 없는 지구에서 모두 함께 사는 방도
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재천은 “인간에게 주어진
조건은 경쟁을 넘어선 협력을 강요한다”고 설파하고, 앞으로는 “협력하
는 인간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전망했다.48)
46)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105쪽.
47)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108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15

對待論’

4) 프롬의 ‘존재양식’과 홍승표의 ‘

현대의 사회심리학자 프롬(Erich Fromm)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近代의 특징’으로 파악했다. 中世의 경우 길드(guild)를 통해 경쟁

경쟁을 ‘

을 통제하고 상호간의 협력과 사회적 안정을 추구했는데, 근대 자유주
의는 효율성이라는 명목으로 경쟁을 옹호했다는 것이다.49)

富益富 貧益貧을 초래한다는 것은 경쟁론을 비판할 때
흔히 지적되는 내용이다. 프롬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경쟁이 孤獨과 不
安을 심화시키고, 끝내는 모든 인간을 疎外시킨다는 점을 주목했다.
경쟁은 결국

근대인의

孤獨感과 無力感은 그의 모든 인간관계가 가지고 있는 성격으로

말미암아 훨씬 더 증진되고 있다. 개인과 개인과의 구체적인 관계는 직접적이
며 인간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교묘한 속임수와 수단이라는 정신으로 가장
되게 되었다. 일체의 사회적 및 개인적인 관계에 있어서는 시장의 법칙이 지배
하고 있다. 경쟁자들 사이의 관계는 상호간의 인간적인 무관심에 근거해야 한
다는 것은 명백하다. (…) 그들은 자기네들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 가기 위해
서로 상대방을 이용한다. 그들의 관계는 그 어느 편도 모두 목적에 대한 수단
의 관계이며, 서로가 타자의 도구로 되고 있다. (…) 이와 같은 수단과 소외의
가장 참혹한 실례는 아마 개인의 그 자신에 대한 관계일 것이다. 인간은 단지
상품을 팔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팔며, 마치 자기 자신을 하나의 상품과 같
이 생각한다.50)

칸트는 ‘모든 사람의 인격을 목적으로 대우하라’고 했다. 그러나 경쟁
이 지배하는 현실에서는 그러한 주장이 공허하게 되어, 실제로는 서로
가 서로를 수단으로 대하게 된다. 프롬에 의하면, 자유는 무자비한 경쟁
을 낳고, 경쟁은 소외를 유발하며, 소외는 고독과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
리하여 사람들은 마침내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꿈꾸게 된다는 것이다.
48)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110∼112쪽 참조.
49) 프롬, 이극찬 역, 자유로부터의 도피, 전망사, 1980, 60∼65쪽 참조.
50)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136∼137쪽.

116

東洋文化硏究 第17輯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는 경쟁과 탐욕을 ‘소유양식(having mode)’
의 산물로, 협력과 공유를 ‘존재양식(being mode)’의 산물로 규정하여, 각
각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소유양식에 있어서 인간관계의 근본적 요소는 경쟁․대립․공포이다. 소유관계
의 대립적 요소는 소유관계의 본질에서 파생된다. 만약 소유가 자신의

正體性

의 근본이라면, ‘나’란 바로 ‘내가 소유한 것(what I have)’인 셈이니, 소유하려는
소망은 필연적으로 많이, 더 많이, 가장 많이 소유하려는 욕망으로 유도된다.

貪慾’이 소유지향의 자연스런 결과가 된다.
존재양식에서는 私的 所有가 정서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다. 무엇을 즐기

다시 말해서 ‘

51)

기 위해, 심지어는 그것을 사용하기 위해, 내가 그것을 소유할 필요가 없기 때
문이다. 존재양식에서는 한 사람 이상의 사람들(사실상 수백만 명)이 같은 대
상을 함께 즐길 수 있다. (…) 이는 투쟁을 피하게 하는 동시에, 가장 심오한 행

共有의 즐거움’을 낳는다. (…) 공유의 경험은 두 개인 사이

복 가운데 하나인 ‘

의 관계를 활발하게 만드는바, 이는 모든 위대한 종교적, 정치적, 철학적 운동
의 기초이다.52)

自我’를 ‘자신이 소유한

프롬에 의하면, 소유양식에 지배되는 사람은 ‘

것(what I have)’과 동일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유양식은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려는’ 경쟁심과 탐욕을 유발하고, 결국 우리의 삶을 피로 물

共有(sharing, 함께 함)의 즐거움’을 깨닫

들게 한다. 반면에 존재양식은 ‘

게 하여 협력과 공존의 길로 안내한다.
대체로 말해, 전근대의 철인들은 존재양식에 입각한 삶의 길을 제시
했으나, 근대인들은 소유양식에 경도되어 소유양식이야말로 인간의 본
성에서 우러난 삶이라고 인식했다. 근대인들의 이러한 인식에 대해, 프
롬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생존의

所有樣式이 인간의 본성에 뿌리박고 있고, 따라서 사

51) Erich Fromm, To Have or To Be ?, 112쪽.
52) Erich Fromm, To Have or To Be ?, 114∼115쪽.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17

실상 변화시킬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인간의
본성 속에는

所有樣式과 存在樣式이 모두 잠재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우리의

생물적 충동은 소유양식을 더욱 진전시키려는 경향을 갖지만, 이기성과 나태성
이 인간이 타고난 유일한 성향인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우리의 능력을 발휘
하고, 능동적이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기주의의 감방으로부터 벗어
나려는 뿌리 깊은 존재의 욕망을 지니고 태어났다. 이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는
한 권의 책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다.53)

프롬은 ‘인간의 본성에는 소유양식뿐만 아니라 존재양식도 함께 잠재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프롬이 말하는 ‘인간의 본성’이란 인간의 ‘육체
적 본능’과 ‘도덕적 본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프롬은 소유양식을
‘생물적 충동’과 연결시켜 설명했는데, 생물적 충동이란 바로 ‘육체적 본
능’을 말한다. 또 프롬은 ‘우리의 능력을 발휘하고, 능동적이고, 다른 사
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기주의의 감방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의 욕망’
을 ‘남에게 무엇인가를 주고, 남과 함께 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려는 의
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인간의 ‘도덕적 본성’으로부터 우러난
것이다. 요컨대 프롬에 의하면, 소유양식은 육체적 본능으로부터 유래하
고, 존재양식은 도덕적 본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프롬이 이러한
분석을 전개한 취지는 물론 ‘탐욕스러운 경쟁에서 벗어나 함께 함의 즐
거움을 누리자’는 것이었다.
한편, 오늘날의 사회학자 홍승표는 깨달음의 사회학에서 “현대인들
의 삶은 견디기 힘들 만큼 긴장과 적의에 차 있으며 끝없는 경쟁의 연
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집단 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개인
뿐만 아니라 이익집단이나 국가들까지도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서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54)고 지적한 바 있다. 홍승표 역시 ‘현대
인의 삶’을 ‘경쟁에 찌든 삶’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는바, 인간의 삶은 결국 ‘나와 너’의 관계 속
53) Erich Fromm, To Have or To Be ?, 100쪽.
54) 홍승표, 깨달음의 사회학, 예문서원, 2002, 128쪽.

118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에서 이루어진다. 문제는 자신이 상대방을 어떤 관점에서 인식하는가 하

敵對的 대립’과 ‘對待的 대립’이

는 점이다. 홍승표는 ‘나와 너’의 관계를 ‘

라는 두 유형으로 대별했다. 홍승표는 ‘마주하고 서 있는 두 나무의 관계’
를 인식하는 방식에 비유하여, 양자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敵對的 對立觀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대립물들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상대편을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모든 대립물들은 살아
남기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마주하고 서 있는 두 나무는 서로
더 많은 햇빛을 받기 위해서 다른 나무의 가지와 잎을 제치고 자신의 가지를
뻗고 잎을 내려 한다. 더 많은 수분과 땅 속의 영양분을 차지하기 위해서 다른
나무보다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리려고 한다. 적대적 대립 속에서 각각의
존재는 자신의 삶을 확보하기 위해서 상대편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

對待的 對立觀의 관점에서 보면, 이 세상에 어떤 존재도 홀로 살아갈 수 없

다. 모든 대립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근원적으로 하나이다. 사막 위에 홀
로 서 있는 나무를 상상해 보자. 그 나무가 잘 자랄 수 있겠는가? 그 나무는 강
렬한 햇빛에 견딜 수 없어 말라 죽어갈 것이고, 뿌리를 내릴 곳이 없어서 조금
만 바람이 불어도 쓰러져 버릴 것이며, 땅 속의 수분이나 영양분도 다 증발해
버려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삶은 너의 삶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며,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삶은 하나이다.55)

對待的 대립관은 “이 세상에 어떤 존재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 모든
대립물이 서로 의존하고 있으며, 근원적으로 하나이다.”라는 것인바, 이
는 ‘나와 너’를 ‘상호 의존하는

一體’로 간주하는 것이다.

56)

반면에

敵對的

대립관은 ‘나와 너’를 ‘서로 분리된 독립적 존재’로 간주하는 데서 출발하
는 것이다. 홍승표는 “개인을 다른 인간이나 사회와 분리된 독립적 존재
로 간주했을 때, 자기 바깥의 세계는 근본적으로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게 되며, 이 세계는 오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물로만
55) 홍승표, 깨달음의 사회학, 127∼128쪽.

對待的
對待論
學 易學思想

相補的

易學 陰陽
歷史哲

56) 홍승표의 ‘
대립관’은 대립물을 ‘
관계’로 인식하는

에 입각한 것이다.
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상익, 

, 성균관대출판부, 1996, 130∼135쪽 참조.

陰陽對待論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19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마주하고 있는 모든 존재는 개인이 자신의 욕
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극복하거나 이용해야 할 대상이 된다.”57)고 했
다. 이렇게 본다면, 치열하게 지속되는 오늘날의 각종 경쟁은 바로 적대
적 대립관의 산물인 것이다.
홍승표의 적대적 대립관과 대대적 대립관은 사실 프롬의 소유양식․존재
양식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프롬은 소유양식에 집착함으로써 온갖 갈
등과 투쟁이 야기된다고 했는데, 홍승표도 갈등과 투쟁을 적대적 대립관
의 산물로 규정했다. 또한 프롬의 존재양식은 ‘공유(sharing, 함께 함)’로 표
출되는데, 마찬가지로 홍승표의 대대적 대립관도 ‘나와 너의 하나됨’을 추
구한다. 홍승표는 현대인들에게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삶은 하나임’을 깨
달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 깨달음은 소유양식에서 벗어나 존재양식을
추구하고, 본능적(육체적) 삶에서 벗어나 본성적(도덕적) 삶을 추구함과 같

克己復禮’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은 맥락일 것이요, 이를 공자는 ‘

4. 결론 :

反競爭論의 함의

이상에서 경쟁론에 대한 오늘날의 비판들을 네 유형으로 분류하여 살
펴보았거니와, 이제 결론적으로 그 함의를 정리해 보기로 하자.
기든스의 ‘제3의 길’과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은 자유주의(자본주
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양시켜 ‘경쟁의 효율성’과 ‘사회복지의 도
덕성’을 조화시키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상호

沈 과정을 ‘時宜’의 관점에서 해명하고, 역시 ‘時宜’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경쟁론을 초극하거나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과연 그동안 근현대 문명은 경쟁을 통하여 놀라울 만큼 기술을 혁신시
켰다. 그리하여 이제는 많은 분야에서 ‘효율성의 부족’보다 ‘효율성의 과
잉’이 문제되는 것이다. 과도한 효율성은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앗아가
57) 홍승표, 깨달음의 사회학, 129쪽.

120

東洋文化硏究 第17輯

‘잉여인간’을 산출하고, 청년실업은 주요 선진국들의 공통적 문제가 되었
다.58) 뿐만 아니라, 경쟁이 초래하는

富益富 貧益貧 역시 사회의 안정성

을 해치고, 아울러 막대한 복지비용을 야기하고 있다. 요컨대 경쟁이 야
기하는 여러 부작용과 부대비용까지 고려한다면, 경쟁은 사실 효율적인

時宜’의 관점에서

발전의 수단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는 ‘

경쟁에 대한 예찬을 멈추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프랭크의 ‘경쟁의 종말’과 액설로드의 ‘협력의 진화’는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저절로 합치된다’는 예정조화설의 허구성을 해명함으로써
경쟁을 통제해야 하는 당위성을 제기하고, 협력이 경쟁보다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입장에서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요컨대 이들은
경쟁론을 옹호하던 기존의 두 가지 논거(예정조화와 효율성)를 모두 논파
하고, 대신 협력의 도덕적 당위성과 경제적 필연성을 옹호한 것이다.

富益富 貧益貧 등 경쟁의 부작용이 두루 확인된 오늘날, 누구도 더 이

상 예정조화설을 내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경쟁이 협력보다
효율성이 높은 것도 아니라면, 경쟁을 옹호할 수 있는 논거가 더욱 허약
해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경쟁에 대한 맹신을 벗어나, 협력
의 의의를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59)

58) 루소는 “모든 동물은 자기 보존에 필요한 능력만을 가지고 있다. 인간만이
잉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여분이 그의 불행의 도구라는 사실이
정말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라고 갈파한 바 있다(루소, 김중현 역, 에밀,
한길사, 2011, 141쪽)
59)

或者는 ‘협력이 경쟁보다 더 효율적이므로,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①)과 ‘오

늘날의 경쟁사회에서는 효율성의 부족보다 효율성의 과잉이 더 큰 문제이다’
라는 주장(②)을 상충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
야 할 것은 ①의 ‘협력의 효율성’은 ‘협력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그 결과를
골고루 누리는 효율성’이요, ②의 ‘경쟁의 효율성’은 ‘패자의 몫은 없고 승자
의 몫만 있는 효율성’이라는 점이다. 승자독식사회에서는 효율성의 제고가
‘고용없는 성장’이나 ‘잉여인간(청년실업)’ 문제를 야기하므로, 효율성의 과잉
이 문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 결과를 골고루 누리는 효율성’
이라면, 그러한 효율성은 높을수록 좋은 것이다.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21

카프라의 ‘유기체론’과 최재천의 ‘호모 심비우스’는 현대 과학의 새로
운 성과를 토대로 협력과 공존의 필연성을 강조한 것이다. 19세기의 물
리학은 기계론적 세계관과 표리를 이루어 개인주의를 옹호했고, 19세기
의 진화론은 생존경쟁론과 표리를 이루어

弱肉强食을 정당화했었다. 이

에 대해, 카프라나 최재천은 20세기의 새로운 물리학과 새로운 생태학을
소개하면서, 기계론적 세계관이나 약육강식론이 모두 세계에 대한 잘못
된 이해에 근거한 것임을 밝힌 것이다.
카프라나 최재천은 현대 과학의 이름으로 ‘유기체적 세계관’을 옹호했
다. 근대인들은 전근대의 유기체적 세계관을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불
합리한 위계질서를 옹호하는 낡은 세계관으로 지목하여 폐기처분했었다.
그런데 유기체적 세계관이 다시 이 시대의 화두인 협력과 공존을 상징하
는 세계관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제는 점차 많은 사
람들이 ‘나와 너’가 협력하고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사람다
운 삶’의 길인 동시에 ‘지속가능한 발전’의 길임을 깨달아 가고 있다.
프롬이 말하는 ‘소유양식’은 육체적 본능을 추구하는 삶이었고, ‘존재
양식’은 도덕적 본성을 추구하는 삶이었다. 또 홍승표가 말하는 ‘적대적
대립관’은 프롬의 ‘소유양식’과 상응하고, ‘대대적 대립관’은 ‘존재양식’과

상응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롬의 ‘존재양식’과 홍승표의 ‘

待論’은 근원적으로 ‘본능적 삶’과 ‘본성적 삶’을 대조하고, 본성적 삶의

가치를 각성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경쟁과 협력의 문제는
삶의 외면적 양식의 문제인 동시에 우리들 자신의 내면적 태도의 문제
이기도 함을 확인할 수 있겠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경쟁론을 지양시키고자 한다면, ‘사회복지의 당
위성’과 ‘경제적 효율성’의 문제는 물론 ‘올바른 세계관의 정립’ 문제가
긴요한 것이요, 뿐만 아니라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문제도 매우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다. 홍승표가 ‘깨달음의 사회학’을 제창했듯이,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깨달음이 긴요하다. 홍승표는 ‘이
세계는 본래 통일체’라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을 강조했고,60) 싱어(Peter

122

東洋文化硏究 第17輯

Singer)는 “모든 사람들이 이웃을 따라잡고 앞서려 하는 사회에서는 결코
대부분의 시민들이 행복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깨
달음을 강조했다.61) 같은 맥락에서, 강수돌은 경쟁은 우리를 ‘합리적으
로’ 분열시키는 메카니즘이라고 규정하고, 소통과 연대를 통해 ‘더불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부자되기’가 아니라 ‘소박하게 살기’가 삶의
새로운 비전으로 공유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62)

反競爭論이 지니는 함의를 정리해 보았다. 본
고에서 살핀 여러 碩學들의 反競爭論이 외면할 수 없는 의의를 지니는
것이라면,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전통 유교의 名分論에 대해서도 새롭
이상에서 근래의 여러

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본고의 서론부에서 밝혔듯이, 우리 한국의 근대
화 과정은 전통적

名分論을 타파하고 서구의 競爭論을 도입하는 과정이

기도 했다. 그런데 한 때는 진보의 원동력으로 기능했던 경쟁론이 이제
는 숱한 폐단을 낳고 있다면, 우리는 전통적 사회운영론의 의의를 되돌
아보아야 마땅한 것이다.
우리의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지식인들은 ‘전근대적 명분질서’에 대해

自由․平等을 부정하는 권위주의적 체계’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전근대적

명분질서는 ‘권위주의적 체계’이기 전에 일정한 ‘깨달음의 체계’였던 것
이요, 그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만인이 서로 자제하고 서로 배려하는 삶
의 양식을 권장했던 것이다. 유교의

名分論은 禮讓論과 표리를 이룬다

는 점이 그 증좌이다. 우리가 진정 경쟁론을 초극하고자 한다면, 전통적
명분론에서 여러 훌륭한 지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63)

60) 홍승표, 깨달음의 사회학, 63∼70쪽 참조.
61) 싱어, 최정규 역, 다윈주의 좌파, 이음, 2011, 78쪽 참조.
62)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돌베개, 2008, 47∼49쪽 참조.
 접수일: 14.03.15/ 심사개시일: 14.04.08/ 게재확정일: 14.04.25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23

<참고문헌>
강수돌,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돌베개, 2008.

兪吉濬全書, 一潮閣, 1996.

유길준, 

박순성, 아담스미스와 자유주의, 풀빛, 2003.

歷史哲學과 易學思想, 성균관대출판부, 1996.

이상익, 

전복희, 사회진화론과 국가사상, 한울, 1996.
조한혜정, <낯섦의 두려움, 캥거루족 사회>, (연세대학교 학술위원회 편, 경
쟁과 공존, 오래, 2011).
최재천, 호모 심비우스, 이음, 2011.
홍승표, 깨달음의 사회학, 예문서원, 2002.
버나드 맨더빌, 최윤재 역, 꿀벌의 우화 : 개인의 악덕, 사회의 이익, 문예
출판사, 2011.
로버트 액설로드, 이경식 역, 협력의 진화, 시스테마, 2009.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권영경․김양미 역, 승자독식사회, 웅진지식하우스,
2012.
로버트 프랭크, 안세민 역, 경쟁의 종말, 웅진지식하우스, 2012.

社會思想史, 일지사, 1985.

루이스 A 코저, 신용하․박명규 역, 

아나톨 칼레츠키, 위선주 역, 자본주의 4.0, 컬쳐앤스토리, 2011.

國富論, 동아출판사, 1993.

애덤 스미스, 김수행 역, 

앤서니 기든스, 한상진․박찬욱 공역, 제3의 길, 생각의 나무, 1999.
앤서니 기든스, 김현옥 역,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한울, 1997.
에리히 프롬, 이극찬 역, 자유로부터의 도피, 전망사, 1980.
장 자크 루소, 김중현 역, 에밀, 한길사, 2011.
제임스 레이첼즈, 김성한 역, 동물에서 유래된 인간, 나남, 2009.

찰스 다윈, 송철용 역,  의 기원, 동서문화사, 2013.
피터 싱어, 최정규 역, 다윈주의 좌파, 이음, 2011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 신중섭 역, 치명적 자만, 자유기업원, 2005.
David Hume, A Treatise of Human Nature, edited by L. A. Selby-Bigge, London,

124

東洋文化硏究 第17輯
Oxford University Press, 1958.

Erich Fromm, To Have or To Be ?, Harper & Row, Publishers. 1976.
John Stuart Mill, On Liberty, edited by Elizabeth Rapaport, Hackett Publishing
Company, Inc., Indianapolis, 1979.
Thomas Hobbes, Leviathan, edited with an introduction by C.B. Macpherson,
Penguin Books, London, 1985

競爭論에 대한 근래의 비판들과 그 함의

125

Abstract
Contemporary Anti-competition Theories and Its Meaning / Lee Sang
Ik⋅Jung Seung Hyun
In this paper, we have inquired two modern competition theories(Liberalism &
Social Darwinism), and also have inquired various anti-competition theories.
Anthony Giddens’ The Third Way and Beyond Left and Right, Anatole
Kaletsky’s Capitalism 4.0, Robert H. Frank’s The Winner-Take-All Society and
The Darwin Economy, Robert Axelrod’s The Evolution of Cooperation, Fritjof
Capra’s The Turning Point, Jae C. Choe’s Homo Symbious, Erich Fromm’s To
Have or To Be ? are the most famous contemporary anti-competition theories in
Korea. According to these guidance, if we want to overcome competition
theories, we should consider economic utility and social welfare at the same
The process of modernization is also the process of breaking Confucian right
name theory and introducing western competition theories in Korea. Competition
theories which have operated as the mainspring of progress at one time give rise
to us many various problems now. In this context, we need to understand
Confucian right name theory newly.
Key words: competition theories, anti-competition theories, liberalism, Social
Darwinism, the Third Way, Confucian right name theory(
).

名分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