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 2014.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현대정치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25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
정승현 |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 국문요약 |
이 글은 과거사청산론의 정의 개념을 둘러싼 찬반 논쟁 속에 담겨 있는 정치사상적 의미를
추적함으로써 한국 현대정치의 사상적 의미를 탐구하는 ‘사상화’ 작업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다. 첫째, 과거사청산론자들의 주장에 담겨 있는 정의 개념의 구체적 내용과 함의를 분석한
다. 둘째, 이들의 정의론의 배후에서 묵시적 가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근본주의 정서의 문제점
을 지적하고자 했다. 셋째, 보수언론과 보수주의 논객들의 문건을 토대로 과거사청산 반대자들
의 정의론을 ‘결과로서의 정의’ ‘실정법적 정의’ ‘상대적 정의’로 나누어 그 각각의 의미를 검토
한다. 넷째, 찬반논쟁이 정의 개념에 대한 심도 깊은 논구를 결여한 채 색깔론이나 정치적 음모
론으로 진행되었던 원인을 한국사회의 지적 풍토, 그리고 근본주의적 정의론의 유산에서 찾고
자 한다. 다섯째,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정의의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주제어
*
|
과거사청산, 정의, 보수주의, 저항담론, 실현가능한 정의
이 논문은 2011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사회과학연구지원사업비)으로 한국연구재
단의 지원을 받아 연구되었음(NRF-2011-330-B00010).
226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I.
1)
서론
한국 현대정치의 사상화
필자를 포함하여) 한국의 정치사상 연구자들은 지금까지 현대 한국정치 현실
(
에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보다는 서구 정치사상이 다루는 추상적 개념,
예컨대 정의, 공동체, 자유 등의 연구에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정치사상이 기본적으로 담론으로 구성되며, 담론의 중심축은 개념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둘 때 이런 시도가 일차적으로 선행되어야 함은 당연하고도 필수
적이라고 하겠으나, 필자는 한국의 정치사상은 우리가 처한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고 이를 극복하거나 타개하기 위한 이론적 논변이나 사상
적 비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한국정치에서 가장 쟁점이 되는 사건들
이 어떠한 사상사적 함의를 갖고 있으며, 그 사건의 주역들이 벌이는 논쟁 속에
서 담겨 있는 사상적 의미를 추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필자는 그것을 노
무현 정부에서 진행되었던 과거사청산 논쟁에서 찾고자 한다.
과거사청산은 진보와 보수의 권력투쟁인 동시에 근현대 한국사의 정당성을 둘
러싼 사상투쟁이었다.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하는 반대 진영, 진보
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결집된 찬성 진영은 여러 논리들을 동원하여 격렬하게 맞
섰다. 찬성 진영은 과거사청산이 정의와 진실을 회복하고 역사의 방향을 세우며
우리 사회의 양심을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했고, 반대 진영은 그것이 한국 근현
대사의 정통성을 파괴하고 미래를 위태롭게 만드는 무용하고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에서 과거사청산론자들이 가장 많이, 그리고 중요하게 제기
1)
했던 명분은 ‘정의의 실현’이었다. 이때 정의는 분배 차원의 용어가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 그리고 그 위에 축조된 정치사회질서가 정당한 것인지 묻는 질문이었
다. 반면 반대자들은 그러한 정의 개념에 반발하거나 혹은 과거사청산 속에 숨은
1)
과거사청산을 적극 주장하고 일선에서 실무 활동을 담당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적
극 지지했던 사람들을 묶어서 ‘과거사청산론자’ 혹은 줄여서 ‘청산론자’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진보진영이 대체로 여기에 속하지만 그렇지 않은 인물도 있기 때문에 이 용어가
무난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27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는 우회전략을 구사하였다.
대결은 치열했다. 그러나 그 초점은 색깔론이나 정치적 의도에 집중되었을 뿐
과거사청산의 핵심 논리인 정의 그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논쟁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자 시야에서 멀어졌고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나 논의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우리 사회에 큰 교훈을 주었거나 정신적 성
숙에 별로 기여한 것 같지도 않다. 필자는 해방 이후 진보진영의 오랜 염원이자
노무현 정부의 역점 사업이었던 과거사청산이 왜 그런 식으로 막을 내렸는지,
그 안에서 어떤 사상적 의미를 반추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의 사상적
성숙을 위해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모색하고자 한다.
기존 연구의 검토
–
필자는 이 문제를 두 가지 이유에서 제기하고자 한다. 하나
는 연구의 공백지대를 메우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존 연구를 보완하려는
것이다. 전자는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풍성한 논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사상적
함의를 탐구하는 노력이 없는 공백지대를 말하며, 후자는 한국사회의 정의론을
정립하려는 시도에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을 보태려는 시도를 말한다. 과거사청산
에 관련된 기존의 연구들을 대체로 다음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첫째, 김동춘(2004,
2006, 2013),
이이화, 서중석, 안병욱 등 과거사청산운동을
주도하고 실무 작업에도 참여했던 학자들의 글, 그리고 관련 학자와 언론인들의
좌담회(강창일 외) 등이 있다. 이 연구들은 대부분 과거사청산의 당위성과 필요
성을 강조하거나, 과거사청산의 이론적 쟁점 등을 분석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김동춘
(
2013;
ㆍ
이내영 박은홍,
2004).
대체로 이들은 도덕적 입장을 바탕으로
과거사청산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정의’의 이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몇몇 연구
를 제외하고는 이론적 기반이 허술하며, 각자의 논지에 따라 정의의 어떤 한 측
면을 부각시키고 있기 때문에 일관된 정의 개념을 찾기 어렵다.
둘째, 적극적 찬성의 입장에서 과거사청산을 ‘이행기 정의’ 혹은 ‘민주주의의
공고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논자들이 있다(이영재; 이재승; 정근식; 최정기;
한인섭). 과거사청산의 정의 개념에 관해서는 이 방면의 연구가 제일 많다. 이
글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자행되었던 불의를 시정하고 ‘사회정의’를 회복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룩한다는 문제의식, 그리고 ‘잘못한 사람은 처
228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벌을 받아야 한다’는 ‘응보적 정의관’을 공통으로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과거사
청산의 정의론의 중요한 측면을 보여주고 있지만, 보다 폭넓은 논의로 확장되지
는 못하고 있다.
셋째, 과거사청산에 반대하거나 혹은 찬성하더라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비
판적 연구들이 있다. ‘처벌과 숙청 위주의 과거사청산’을 비판하는 안병직, 민족
과 근대를 당위로 하는 친일청산의 한계를 지적한 윤대석, 과거사청산이 보여주
는 민족주의의 병리를 비판한 윤해동(2007a,b)이 대표적이다. 이 글들은 과거사
청산이 안고 있는 민족주의 혹은 ‘선악의 이분법적 시각’(안병직
에 비판의
37)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과거사청산의 정의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않았
다. 다른 한편 과거사청산 반대론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보수주의의 입장의
비판들은 복거일(2003,
이나 이영훈(2006,
2011)
2013)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 그
초점을 ‘색깔론’ ‘좌파의 정치 공세’ 등에 두었을 뿐 과거사청산의 중심 논리에
대한 본격적인 반론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보면 우리는 과거사청산에 관련된 연구의 압도적 부분은 그것
을 적극 지지하고 이끌어갔던 사람들에게서 나왔고 객관적 입장에서 이 문제를
접근한 연구자들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문제가 워낙 정치적
성격이 강해 학자들이 개입하기를 꺼려했던 탓일 것이다. 윤해동과 윤대석 등의
ㆍ
주목할 만한 비판들이 있지만 찬성과 비판은 진보 보수라는 이념 지형 위에서
자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공방으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승리감에 젖은 보수진영은 이 문제를 더 이상 다룰 필요를 느끼지 못했고 진
보진영은 분노를 곰씹으며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데 몰두했다.
그 결과 과거사청산이 우리 사회에 제시한 중요한 사상적 함의, 즉 정의론을 둘
러싼 사상 대결이라는 측면이 제대로 반추되지 못한 채 관심에서 멀어졌고, 공연
히 구설수만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민감한 문제를 어느 누구도 진지하게 논의하
지 않는 공백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ㆍ
연구의 보완이란 한국에서 정의 개념을 정립 모색하려는 작업들의 틈새를
메우려는 것을 말한다. 한국의 정의론은 대부분 롤스, 드워킨(R.
ㆍ
Dworkin)
등서
구 철학자들의 정의 개념을 원용 수정하거나 혹은 자유주의를 비롯한 정치이념
의 토대 위에서 다듬으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시도들은 서구의 정의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29
ㆍ ㆍ
개념들을 한국 상황에 맞게 수정 검토 보완하며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ㆍ
정의 개념을 정립하려는 데 초점을 두었고, 그 연구들을 통해 정의론의 철학적
이론적 쟁점과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작업이 보다
적실성을 가지려면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 속에 통용되고 있는 정의 개념을 파악
하는 일이 동반되어야 하며, 그러한 개념들이 표출되었던 구체적 사례를 과거사
청산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논거로 삼는 구체적 사례는 다르지만 이미 문지영,
윤비, 홍윤기 외의 연구들은 이러한 방향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는 그들
과 유사한 문제의식 아래 과거사청산에 나타난 정의의 다양한 내용을 밝히고,
그러한 정의 개념에서 받아들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보여줌으로써 한국의
정의론을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글의 전개
–
글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전개된다. 첫째, 과거사청산론자들의 주
장에 담겨 있는 정의 개념을 ‘역사의 원리로서의 정의’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의
정의’ ‘응보 원리로서의 정의’ ‘해원(解寃)으로서의 정의’ ‘자연법적 원리로서의
정의’로 구분하고 이 개념 규정들의 구체적 내용과 함의를 분석한다. 둘째, 이들
의 정의론의 배후에서 묵시적 가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근본주의 정서의 문제점
을 지적하고자 했다. 셋째, 보수언론과 보수주의 논객들의 문건을 토대로 과거사
청산 반대자들의 정의론을 ‘결과로서의 정의’ ‘실정법적 정의’ ‘상대적 정의’로
나누어 그 각각의 의미를 검토한다. 넷째, 찬반논쟁이 정의 개념에 대한 심도 깊
은 논구를 결여한 채 색깔론이나 정치적 음모론으로 진행되었던 원인을 한국사회
의 지적 풍토, 그리고 근본주의적 정의론의 유산에서 찾고자 한다. 다섯째, 우리
사회가 합의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정의의 기준을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필자는 여기서 스스로의 정의 개념, 혹은 실현 가능한 정의 개념을 제시하지
ㆍ
않는다. 필자가 정의 개념을 제시하고 여기에 따라 그 밖의 견해들을 평가 비판
ㆍ ㆍ
하려는 것이 아니다. 정의 평등 자유 같은 사회정치적 개념들은 추상적으로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견해와 사회정치적 실천이 충돌하며
비로소 그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 필자는 사회정치적 개념과 실천의 충돌
공간으로서의 과거사청산, 한국사회의 구성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정의 개념을
끌어내는 실천 장(場)으로서의 과거사청산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글은 한국 사
230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회에는 정의에 관한 다양한 견해들이 있으며, 이 다양한 관점들을 인정하고 현실
에서 실현가능한 형태의 정의론을 세우기 위해서는 정의에 관한 근본주의적 정
서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모두에게 외면 받았던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에 담긴 정의 개념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한다.
2)
2)
과거사청산론자의 정의 개념
과거사청산론자들의 논리 구조는 이렇다. 첫째,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못하며
민족에게 죄를 지은 친일세력들이 해방 이후에도 집권세력으로 남았다. 둘째, 이
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외세와 영합하여 분단세력이 되었으며
ㆍ
권위주의 정권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어 폭력 인권유린 등을 자행하였다. 셋째,
ㆍ
그들은 이러한 과거의 은폐 망각을 강요하며 ‘진실의 기록으로서의 역사’ 그
자체를 왜곡시킴으로써 한국사회에서 정의는 실종되었다. 넷째, 정의를 회복하
기 위해서는 이들이 자행한 범죄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며 관련 피해
ㆍ
ㆍ
자에 대해서는 배상(보상) 명예회복 기념사업을 추진함으로써 한을 풀어주고
떳떳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지위를 회복시켜야 한다. 다섯째, 이들의 죄에 대해
서는 사법적 처벌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진실의 기록
을 통해 역사적 처벌을 받도록 해야 한다. 여섯째, 각종 과거사 위원회의 활동에
는 폭넓은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은 국제법이나 자연법의
ㆍ
원칙을 적극 도입하여 공소시효에 관계없이 인권침해 범죄 전반을 조사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모든 주장의 제일 높이 서있는 원칙, 과거사청산의 명분으로 가장 강조되었
던 명분은 ‘역사의 정의’ ‘진실로서의 정의’ ‘사회정의’ 등으로 다양하게 변주되
2)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한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필자는 과거사청산의 세부 사항에 대해서
는 반대 의견을 갖고 있지만 큰 틀에서는 찬성하고 지지한다. 그리고 이 작업을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음을 항상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과거사청
산이 한창이던 시절에는 지금 다루는 문제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그것이 잘못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기회를 통해 밝히려는 것이다.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31
는 ‘정의의 실현’이었다. 즉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공고화, 미래의 올
바른 역사발전, 피해자와 가해자의 화해, 국민통합, 국민도덕 확립으로 이어지는
국가적 과제가 과거사청산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는 한국의 정치사회질서가
바람직한 것인지 판정하는 표석이자 역사와 사회의 기본원칙이었으며 사회구성
원의 도덕원리인 동시에 미래사회의 동력으로 제시되었다. “역사를 만들고 사회
를 이끌어가는 기본은 양심과 사회정의이다. 정의와 양심은 우리가 지향할 덕목
이자 성숙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양심과 사회정의가 법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바
로 인권”(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ㆍ ㆍ ㆍ
이라는 주장은 역사 사회 도덕 법
10)
질서를 정의라는 대원칙으로 묶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사청산론자들
은 이러한 대전제 밑에서 각자의 관심이나 전문 분야에 따라 정의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규정하였다. 이들의 정의 개념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역사의 원리로서의 정의. 과거사청산의 문제에서 가장 널리 등장하는 정
ㆍ ㆍ
의 개념은 ‘역사의 정의’, 곧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에는 정의가 관
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이
년
2003
절 경축사에서 밝혔듯 ‘정의는
3.1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를 청산하고 ‘정의와 진실이 흐르는 역사’를
다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르면 과거사청산은 단순히 지난 역사의
잘잘못이나 왜곡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재확립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올바로 이끌어나가는 중요한 계기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의와 양심이
살아 있는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때만이 그들이 올바른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
다. 우리 후손들이 정의와 양심이 실현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반드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는 주장
8)
은 이들에게 공리(公理)에 해당한다.
과거사청산에서 말하는 역사의 불의, 거짓의 역사, 왜곡된 역사란 일제강점기
의 친일파에 뿌리를 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 권력을 잡아서 거꾸로 양심세력
을 완전히 거세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정의의 수립을 방해하고 집단적 기억을 조
작해온 역사”(김동춘
를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의 정의는 지난 역사에
2006, 206)
서 벌어졌던 불의의 실체를 밝히고 반성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그 핵심은 일제강
점기 이래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하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분단과 독재에
영합해왔던 세력을 단죄하는 것이다. 그러나 친일파를 비롯하여 분단정부 수립
232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전후 및 전쟁 기간 동안의 민간인 학살을 주도한 인물들은 대부분 사망했거나
더 이상의 책임 추궁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의 진실’, 즉 그들의 불법 행위를
밝힘으로써 불의를 단죄하고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진실의
발견에 의해 “오랜 세월 침묵과 부정으로 일관해 오던 정부가 과오를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큰 효력을 지니게 되며
…
처벌이 유예되고 피해에 대한 보상이 충
분하지 못하더라도 과거사로 인한 갈등은 해소되고 사회정의가 확립되고 미래
지향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이라는 주장
162)
은 바로 그와 같은 생각을 대변해주고 있다.
‘민족정기’
등의 이름으로도 표현되는 역사의 정의는 기본적으로 ‘민족 앞에
서의 정의’, 즉 ‘민족의 이름으로 판정하는 정의’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저항과
애국정신’을 바탕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국가의 원리로서 확립되고, ‘민
족의 배신자’를 ‘진실의 기록’을 통해 단죄하며, 그 위에서 미래를 만들어나갈
때 정의가 실현된다는 뜻이다. “친일민족반역자 청산은 역사의 정의를 바로 세워
새로이 수립된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임과 아울러 민주주의 개혁의
출발점이었다는 점에서 독립운동 진영의 일치된 민족국가 수립의 기본방향이었
다”(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는 주장은 민족주의가 역사의 정의로 설
27)
정되어 있음을 잘 보여준다.
둘째, 사회의 기본 원리로서의 정의. 과거사청산론에서 흔히 사회정의라는 말
로 표현되는 이 정의 개념은 사람이 지켜야할 올바른 도리, 인간의 행위나 제도
의 판단기준,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추구하고자 하는 바르고 곧은 것, 인간으로
서 준수해야 할 도리 등을 의미한다. 청산론자들에 따르면 정의는 사회 내에서
신뢰의 회복을 위한 출발점이며,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본 요건이고, 과거를
ㆍ ㆍ
제대로 대면하거나 청산하지 않고 법과 정의를 말할 수 없다. 진상규명 처벌
ㆍ
명예회복 배상(혹은 보상)으로 이어지는 과거사청산의 일련의 과정은 “국가의
기본 방향 수립이며, 국가 주도의 조직적인 국민교육”, 진실과 정의를 통해 ‘도덕
적 허무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의 병을 치료하는 “국가적 정신치료”(김동춘
40, 41),
“국가의
2004:
기본원칙인 정의 수립”을 통한 ‘국가 바로 세우기, 국민 만들기,
법과 질서 만들기’(김동춘
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는 사회의 도덕성
2013, 198)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33
과 신뢰를 회복함으로써 국가를 바로 세우고 국민을 재교육하는 기본 원칙으로
제시되어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친일파가 지배층으로 자리 잡아 분단과 독재를 지탱하
는 핵심세력이 됨으로써 한국 사회에는 최소한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이 무너졌
다. 즉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식조차 부정”하게 만듦
으로써 “정의는 칼을 쥔 자의 것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편이라는 자조 섞
인 역사인식을 갖게 하였고,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마침내 잘못을 잘못으로서 인
정한 능력조차 상실한 사회가 되었다”(김민철,
는 것이다. 또한 친일파가 지
267)
배세력으로 군림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전도시켜 “사회정의를 추구하
고 공동체를 함께 가꿔나가는 것보다는 나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 힘센 쪽이
정의라는 잘못된 가치관이 득세하게”(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8)
되었다
고 주장한다. 심지어 김삼웅은 최근에도 대형 비리, 거대한 경제적 부정은 여전
히 친일파 후손에 의해 자행되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고 주장하며 한국사회의
“타락과
부패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친일파에 대한 역사적인 청산이 필요하다”
국회사무처, 2차 회의)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정의는 ‘한 사회가 가져야 할 올바
(
른 가치관’을 의미하고, 그 원칙에 입각하여 사회를 재구성할 때에만 올바른 미
래가 열릴 수 있으며, 과거사청산은 사회의 구성 원리인 정의를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셋째, ‘응보 원리로서의 정의’. 과거사청산은 크게 두 개의 상호연관된 과정으
ㆍ ㆍ
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은폐 왜곡 금기시되었던 과거사의 진상을
밝혀내는 작업이다. 이것은 당사자들이 사망하였거나 직접 책임을 묻기 어려운
친일파 관련,
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관련 사건의 실행 원칙이었다. 다른 하
6.25
나는 그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시행하는 작업이다. 후자에는 진상조사, 책임 규
명, 가해자 처벌, 피해자의 배상(보상)과 복권, 명예회복을 포함하는데, 그런 점에
서 사법적 또는 정치적 측면에서의 과거사청산인 셈이다. 김동춘은 과거사청산
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진실을 앞세울 것인가, 정의 즉 가해자 처벌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고 술회하며 정의 모델은 ‘과거사청산을 재판을 통해 진
행하는 것’(김동춘
이라고 규정했다.
2013, 199)
이러한 정의 모델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죗값을 치러야 한
234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다’는 인과응보의 정의관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서, 이
나라와 민족을 침략자에게 팔아먹었거나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부귀영화를 누렸
던 자들은 단죄되었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의이고 순리”(강창일 외,
라는 것이
13)
다. 대표적으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의 권고에는 “권위주의 통치기
에 자행된 인권침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일단 처벌이 가능해야 정의가 실현될 수 있으며 이를 전제로 화해를 위한 용서가
가능하다. 불처벌(immunity)이 전제되어 있는 상태에서 용서와 화해라는 것은 진
상에 대한 은폐이며 정의의 실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72)
하였다. 보고서는 거듭하여 과거 인권침해를 감행한 가해자와 여기에 책임
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권위주의 통치로 말미
암아 자행된 국가기관과 그 종사자들의 인권침해 행위는 마땅히 처벌되어야”(같
은 책,
278)
한다고 강조했다.
이 정의 개념은 주로 ‘이행기 정의’를 논하는 글들에서 등장한다. 이행기 정의
란 “독재정권 시절에 저질러진 잔혹행위들을 새로운 정부 아래서 어떻게 청산해
야 하는가의 문제영역”이다(이재승
2002, 47).
그런데 이 개념은 상당히 모호하
다. 과거사청산의 대체 개념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과거사청산 그 자체를 이행기
정의라고 사용하는 등 논자마다 제각각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내
과거청산의 대부분 논의들이 응보적 정의를 바탕으로 하는 이행기 정의의 본질
을 공유”(이영재,
하고 있다는 주장에서 보듯, 이들의 정의 개념이 ‘뿌린 대
147)
로 거두는’ 인과응보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영재는 과거사
청산의 대상자들을 “사회적 기초의 기둥인 정의를 위태롭게 하는 파괴자” 혹은
‘범죄자’(이영재,
라고 규정하며, 그들에 대한 처벌은 사회정의를 지탱하는
132)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응보는 법적 처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실의 규명에 일차적 목적을
둔다고 했던 친일파 문제 역시 도덕적 단죄를 통해서라도 응보의 원리를 실현하
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경상남도 지역의 친일파 문제를 연구하며 ‘밑으로부터
의 친일청산’을 적극 내세우고 있는 김경현은 진주 지역의 친일파 명단을 작성했
다. 그는 친일파의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이 책을 통해 후손 들 중 “자신의 영달
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에게 악행을 저지른 조상이 있다면 그 후손은 이를 부끄럽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35
게 여겨야 하고 민족 앞에 죄스러워 해야 함이 마땅할 것”(김경현,
이라고 강
56)
조했다. 이것은 ‘진실로서의 정의’를 지향했던 친일파 문제도 결국은 ‘도덕적 연
좌제’라는 형태로 응보의 원리를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넷째, 해원(解寃)으로서의 정의. ‘피해자의 한’을 풀어주어는 것이 정의라는 주
장이다. ‘한’이란 우리 문화에서 여러 의미를 갖고 있지만 일차적으로 ‘억울함’
‘피해’ ‘희생’
등의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김민철은 과거사청산의
목적 중의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죄를 다시 환기시켜 정의를 실현”하는 데서
찾고 과거청산과 법 제정을 통해 무엇보다 “피해자의 한을 풀어야 한다”(김민철,
고 강조했다. 한을 푼다는 것은 피학살 유족과 인권침해 피해자들이 받았던
251)
고통의 진실을 밝히고, 기본적 권리와 자유를 확대시킴으로써 명예를 회복하고
사회적 주체로 복원시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피해자가 직접 배상받는 것보다
더 정의로운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는(이재승
2005, 176)
주장은 해원으로서의
정의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섯째, 자연법적 원리로서의 정의. 헌법 위에 있는 “정의와 선 그리고 평화의
원리를 내용으로 하는 보편적인 법의 원칙이 존재하고 이를 자연법으로 부른다”
한인섭,
(
는 것이다. 여기서 정의는 실정법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판단하는
198)
상위의 규범이 되는데 주로 공소시효의 문제와 관련되어 제기되었다. 과거사청
산이 대상으로 하는 사건들은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공소시효의 문제가 걸림돌
이었는데 자연법이라는 보편 원칙을 내세우면 이 문제를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이
다. 대표적으로 이재승은 “국가범죄는 원죄와 같은 것이어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고(이재승
2005, 176)
하면서 ‘원죄’를
떨어내는 철저한 정의의 실현을 주장하였다.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이 소급입법
이기 때문에 무조건 틀리고 위헌적이라는 반대자들의 주장은 죄형법정주의가 보
호하려는 객체를 혼동한 것이고, 파렴치한 잔혹범죄자들에게 법치국가원칙 속에
피난처를 마련해주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 보고서는 권고사항에서 “정부와 국회는 반인륜적
범죄 또는 국가의 인권침해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조약에 따라 공소시효를 배제
하는 등의 입법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278) 주장했다. 또한 한상범 의문사진상
규명위원회장은 국회 ‘과거사진상규명에 관한 특별위원회’에 참석하여 친일파
236 현대정치연구
재산 환수에 대해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60년도
혁명 후의 부정축재 환수와 같은 이런 특별법이나
4.19
예외규정을 만드는 조치가 없으면 안 됩니다”(국회사무처, 2차회의)라고 발언했
다. 법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정의를 실현해야 하며, 거기에는 법리상의 문제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은 정의가 실정법 위의 자연법 원리로서 해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보았듯 과거사청산론에서 정의 개념은 명확한 규정을 결여한 채 과
거사청산의 구체적 문제와 관련하여 정의의 어떤 한 측면이 거론되는 형태를 취
하고 있다. 이런 식의 논리에서 가장 큰 문제는 정의 개념이 무한 확장됨으로써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구분되지 않고 과거사청산의 목적이 불명확하
게 된다는 점이다. 앞에서 설명한 과거사청산론의 정의론을 종합하면 정의의 실
현은 관련자와 관련기관의 책임 인정, 공식 사과, 관련자 처벌, 피해자 명예회복
과 보상조치, 국민의식 각성 등이 수반될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입법조치, 사법적
심판, 제도개혁, 의식개혁, 도덕적 각성이 함께 이루어져야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인데, 한국 사회정치구조의 광범위한 개혁이 정의 그 자체와 동일시되고 있다.
정의에 관한 개념 규정이 흐릿한 만큼이나 제도 개혁의 범위와 내용도 논자에
따라 무한정 확대될 수 있다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청산론자들의 본래 기획과
달리 정의의 실현은 아무리 애써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3)
과거사청산 정의 개념의 배경: 근본주의
한국의 과거사청산은 식민지 지배로부터 비롯된 반민족세력의 유산 청산, 분
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으로부터 비롯된 민족 내부의 갈등과 분단체제의 유산 청
ㆍ
산, 권위주의 정부들에 의해 자행된 반민주 반인권적 유산 청산이라는 3중의
과제를 안고 있다. 가까운 과거에서부터 비교적 먼 과거에 이르는 것을 망라했으
며, 그렇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처리방식이 다르다. 현재와 가까울수록 보다 정
치적으로 강력하고 법적 정의를 요구하며(사법적 정의의 추구), 현재와 멀어질수
록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강조점을 두었던 것이다(伸寃, 역사의 진실 추구). 이
런 점에서 한국의 과거사청산에 어느 보편적인 정의의 모델, 일관되고 보편적인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37
정의 개념을 적용하기 어렵고 사안에 따라 정의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러나 청산
론자들의 이 일관되게 견지하고자 했던 정의의 배경, 즉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경험과 학습을 통해 광범위하게 공유된 배경 인식 혹은 정서는 ‘정의 근본주의’
였다.
과거사청산 지지자들이 내세우는 정의 개념은 (좀 어색한 표현이지만) ‘포괄적
ㆍ ㆍ
개별 정의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정의가 정치 사회 역사의 포괄적인 근본
원리로 제시되면서도 정의 개념 그 자체는 논자들이 내세우는 과거사청산의 목
적에 따라 개별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앞에서 보았듯 과거사청산론자들이 내세
우는 사회구조의 민주적 개혁, 역사 만들기, 국민 만들기, 민주주의의 공고화 등
여러 목적의 뒤에는 정의가 기본 원칙으로 서있었다. 그러나 정의가 중심 가치인
지, 아니면 여러 가치들 중의 하나인지, 정의가 실현되면 다른 목적들이 저절로
성취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들이 먼저 실현되면서 따라 오는 것인지, 정의
가 무엇이고 불의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에 대한 인식을 찾기 어렵다. 과
거사청산이 이루어지면 한국사회의 모든 문제가 일거에 해결된다는 일종의 ‘과
거사청산 근본주의’를 보여줄 뿐이다.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명의로 출
3)
간된 포괄적 과거사 정리는 이러한 인식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과거사청산의 목적으로 불행한 역사의 극복, 민족정기의 확립, 국가권
위의 정당성 확보와 올바른 역사인식의 정립, 사회정의와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
새로운 미래의 방향 설계, 인권신장과 민주화를 열거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ㆍ ㆍ
대화 타협 상생의 성숙한 민주주의 문화 뿌리내리기, 국가기관의 자기반성을
ㆍ
ㆍ
통한 과오의 재발 방지, 민주사회의 윤리 가치관 진실성 확립, 동아시아 중심
국가로서 새로운 위상 확보 등등 좀 과장해서 말하면 ‘좋은 소리’는 모두 갖다
붙였다. 물론 정책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사회적 지지를 얻기 위해, 그리고 수사
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 표현되었다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의 개념의 명확한 규정 없이 과거사청산만 되
면 우리 사회의 문제가 단번에 깔끔하게 해결된다는 일종의 ‘과거사청산 근본주
의’를 나타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각종 근본주의 혹은 원리주의의 특징은
3)
과거사청산 근본주의라는 용어는 윤해동으로부터 빌려왔다(2007a,
291).
238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내가 옳다는 독단론, 타협이나 대화의 거부, 근본 원리의 철저한 관철을 내세우
며 현실을 경직되게 만든다는 점이다. 청산론의 정의 개념이 갖고 있는 문제점들
은 이 근본주의로부터 발생하는데,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자명한 정의론’. 과거사청산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정의 원칙
은 ‘진실 규명’이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 역시 제대로 진행되
기 어려우며, 피해자들이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각국의 진실위원회가 추구하
는 진실 규명은 대부분의 사람이 현재에 갖고 있는 상식과 판단기준으로 볼 때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차원의 진실을 말한다. 과거사정리는 “과거의 법률을
적용할 수도 없고 현재의 법률을 적용해 사법적으로 처리하기도 곤란한 문제들
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의 건전한 상식에 의거해서 지혜를 모아 비사법적으로
해결하려는 것”(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이라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사
161)
정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오늘의 건건한 상식’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이다.
건전한 상식이란 무엇인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과거사청산에서 정의의 문제
는 보편타당한 원리나 철학적 논변에서 출발하지 않으며, 또 그런 것을 내세우려
하는 사람도 없다. 정의의 문제는 개별적 사안과 관련하여 구체적 맥락 속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그런 만큼 상당히 현실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만, 정의에 대해
분명한 설명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더라도 사회의 도덕률이나 정치의
기본원리로서 한국에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정의의 원칙은 분명히 존재할 것이
다. 아마 청산론자들은 한국사회에 정의 개념에 관해 어떤 합치된 의견이 있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건전한 상식’이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정의론은 바로 그러한
상식에 비추어 자명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의 한상범 위원회장은 위원회의 활동은 “결국 정의의
편에 선 국민 성원과 여론의 힘이라는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명분 하나에
의지해 싸워나갈 수밖에 없었다”(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고 밝혔다. 이것은 국
6)
민은 정의의 편에 서있고,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여론은 정의의 표현이며, 자
신들은 국민의 성원을 받고 있는 정의의 대변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여론은 대단히 모호하다. 동아일보
2010/04/26
사설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39
에서는 진실위원회에는 ‘편향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지금까지 나온 각종 과거사위 결정 중에는 건전한 상식과 배치되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이것은 정의를 떠받치는 국민의 상식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과거사청산의 반대자의 명분도 간단
히 물리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도 전쟁이
6.25
라는 특수성을 강조하면 ‘범죄’보다는 ‘희생’에 가깝게 된다. 과거사청산의 지지
자들이 인권을 가치로 내세운다면, 반대자들은 국가안보나 ‘당시의 정황’을 내세
우고 있는데, 이것을 일방적으로 ‘불의’ 혹은 ‘허위’라고 매도하기는 어렵다. 국
가에 의한 폭력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반대자들이 주장하는 체제 수호
의 ‘정당성’이라는 관점 역시 쉽게 물리칠 수 없는 명분이고, 그 생각을 자신의
‘상식’으로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청산론자들은 자신의 정의론을 당연하다고 여길 뿐 그것이 어떤 근거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상식에 입각한 보편적인 정의의 원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는 별 다른 설명이 없는데, 이러한 태도는 근본주의적 정서에서 유래한다고 지적
할 수 있다.
둘째, ‘순수 정의론.’ 과거사청산론자들은 자신들의 정의 개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타협이나 절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종류의 근본주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러한 태도는 정의가 순수한 그
형태 그대로 실현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잘 나타난다. 청산론자들은 정치적 타
협을 통해 이루어진 과거사청산은 정의를 ‘올바로’ 실현하지 못했다고 비판하였
다. 예를 들어 이재승은 전체적으로 과거사 관련 법안은 국가폭력이나 국가범죄
라는 기본 시각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국가책임에 관한 명료한 규정은 찾기 어렵
다고 지적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사청산의 본질적 과제인 ‘정의구현 차원’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으며 가해자에 대한 처리 방침, 국가가 책임져야 할 피
해자에게 어떠한 배상이나 보상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다고 비
판했다. 그리고 “한국의 과거청산방식은
…
위령모델
…
진실규명이나 정의구현
차원의 과제들을 매우 피상적으로 이행하면서 위령공원이나 위령탑을 세우는데
집중하는 건설사업형 과거청산”(이재승
이라고 혹평했다.
2005, 162)
특히 과거사청산의 범위를 여야에 의해 합의된 법안에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240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는 주장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안병욱은 친일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
면서 ‘법률에 규정된 선정기준에 의거하여 대상자를 결정’하는 방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 시절의 어떤 활동과 행적이 친일반민족행위인지 조
ㆍ
사 규명하는 일이 친일청산의 주요업무인데, 오히려 그 사항을 미리 법률에 못
박아 두고 그에 해당하는 인물을 조사하라는 것은 “국회의원들이 정치적 흥정으
로 역사적 진실문제를 거래”(안병욱,
하는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이러한 관점
44)
에서 정의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스페인의 이른바 ‘망각 협정’ 방식을 비
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영재는 과거의 부정의에 대해 일체 책임을 묻지 말고
덮어두는 스페인의 ‘망각 모델’은 ‘정의의 지연이자 정의의 억압’이라고(이영재
2012, 135)
비판하였다. 또한 비교적 성공 사례로 손꼽히는 남아공의 과거사청산
도 그 이면에는 과거 인권침해행위와 같은 범죄행위의 진상을 명확히 공개하는
대가로 그 책임을 사면시켜주는 정치적 흥정이 이루어짐으로써 정의의 실현이
ㆍ
화해라는 정치적 목표를 위해 희생되었다는 비판(이내영 박은홍,
을 받기도
43)
한다.
과거사청산은 과거를 둘러싼 집합적 기억투쟁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공식적으
로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은 인위적이고 선택적일 수밖에 없으며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인 성격을 갖는다. 안병직(2005)이 잘 지적했듯 세계의 과
거사청산은 모범답안이 없으며 각 나라의 상황과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거기에 적용된 정의의 원칙도 모두 다르다(헤이너
2008).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합의된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은 그 시점에서
한국사회가 합의한 ‘실행 가능한 정의’에 해당한다. 그러나 청산론자들은 이 법
안들에 담긴 정의의 원칙을 면밀히 검토하여, 비록 제한적이지만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정의의 원칙을 정립하는 대신, 근본주의적 입장에서 관련 법안이 정치적
협상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역사의 ‘도덕적 정화’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과거사청산의 대상을 과거에 있었던 잘못된 행위 혹은 일(事)이라는 제한된 범위
를 벗어나 한국 근현대의 역사(史)에서 벌어진 모든 불의로 확장하고자 했다. 물
론 정치적 타협을 통해 자신의 주장이 축소될 것을 예측하고 그러한 논리를 내세
웠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이렇게 되면 논쟁은 도덕이나 윤리의 문제로
전이되고 상대방을 불의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주장은 격렬한 반발을 불러올 수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41
밖에 없다.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치를 과도하게 도덕화하는 것”(윤해
동
이라는 지적은 찬반론자 모두 현실에서 타협된 ‘실행 가능한 정의’
2007a, 308)
를 방기하고 당위론적 공방으로 일관했던 상황의 핵심을 잘 보여주고 있다.
4)
과거사청산 반대론자들의 정의 개념
과거사청산 반대 논거들은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학계에서 다양하
게 제기되었다. 이들의 논거를 완전하게 파악하려면 모든 보수언론의 논설과 기
고문, 관련 시민단체와 정당의 성명, 학계의 목소리를 모두 들어보아야 하지만
ㆍ
이 글에서는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사설 기고문,
보수주의 논객, 그리고 학계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두 신문의 경
우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과거사청산에 관련된 글들에 한정했고, 보수주의 논
객과 학계의 경우 김영삼 정부부터 이 문제를 언급해온 필자들을 대상으로 삼았
다. 보수주의자들이 과거사청산을 본격적으로 다룬 글이 거의 없어 시기적으로
폭을 넓혀서라도 검토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논쟁에서 과거사청산 반대자들은
청산론의 정치적 의도나 이념적 색깔을 공격하는 전략을 취하기도 했고, 혹은
자신들의 정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 논쟁을 통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정의론을 확인할 수 있다.
반대자들도 한국 근현대사에서 벌어진 인권탄압이나 독재 그 자체를 옹호하지
는 않는다. 신문에 게재된 각종 사설이나 기고문에서도 전쟁 기간 중의 민간인
학살, 권위주의 정권의 인권탄압 등에 대해서는 모두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 인
혁당 사건을 “정치권력이 법을 억압하던 시대의 산물”(조선일보
2007/01/24
사설)이라고 하거나, 조봉암의 사형에 대해 “정부는 재심 청구와 독립유공자 선
정 등 후속 조치를 서둘러야 한다”(조선일보
2007/09/29
사설)고 하는 등 인권
탄압과 전쟁 기간 중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서는 진실이 밝혀지고 피해자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최근의 보수주의 논객들도 이승만 정부의 민간인 학살, 친일파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영훈은 정부수립 전후, 그리고 전
242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쟁 중 무고한 양민들이 군경에 의해 학살된 사건들은 ‘인류의 양심에 반하는 범
죄’라고 규정하면서 “끝까지 진상을 조사하여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보상
을 행할 필요가 있다”(이영훈
고 지적한다. 그리고 반공전선의 강화를
2013, 45)
위해 친일파를 광명정대하게 처벌하지 못한 것은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도덕적
인 상처로 남았”(같은 책,
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확대하여 한국
175)
근현대사 전체를 재단하는 데는 반대했다. 정의 개념을 중심으로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첫째, ‘결과로서의 정의’. 청산론자들이 ‘정의가 패배했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한국 근현대사를 내세운다면, 반대자들은 ‘세계에서 유례없는 성과를 거둔 성공
의 역사’를 부각시켰다. 즉 전자가 건국의 출발점에서의 정의, 건국 과정에서의
정의를 논하는 반면, 후자는 건국의 ‘결과’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 달성한 압축성장의 대표적
인 나라다. 이는 역대 대통령의 긍정적 치적의 축적이 가져온 결과로 봐야 한다”
박범진 과거가 그렇게 부끄러운가
(
2004/09/23
동아일보)는 주장은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준다. 이들에게 과거사청산론이 내세우는 ‘역사의 정의’는 도덕적
선악 개념에 근거한 관념론에 불과하며 “관념론과 현실론의 어느 편이 발전적이
었는지는 결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남덕우 과거청산 역사가의 몫이다 동
아일보
는 것이다.
2004/09/17)
이 논리에 따르면 과거사청산론에서 주장하는 ‘불의’는 놀라운 성공을 거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시행착오’나 ‘선택’의 문제가 된다. 대표적으로
조갑제는 ‘광복 이후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대부분 학살사건에서 원인 제공자이
자 선제 공격자는 북한 공산당과 그들에 의해 조종된 세력’이었으며, 공산주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무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
잉방어였다고 보아야 할 것”(조갑제,
이라면서 학살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하
333)
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정부가 이룩한 경제발전의 이면에는 수많은 희생이 있었지
만, 그것은 경제발전이라는 “가치선택의 결단에 부수되는 불가피한 손실”(김일
영,
이라는 주장도 있다. 즉 우리가 발전이나 산업화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455)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초래되는 희생과 부작용은 어느 정도 감내할 수밖에 없
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지난 시절의 탄압과 인권유린은 바람직한 일은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43
아니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결과’를 만드는 데서 빚어진 불가피
한 일이거나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와 유사한 논리는 친일파 관련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박효종은 ‘민족정
기의 회복’을 외치는 과거사청산 지지자들에 맞서 “일본 육사를 나왔다고 해도
국가를 중흥시켰으면 민족주의자”이고 일제강점기에 신문사와 학교를 경영했더
라도 “민족혼을 불어넣는 데 일조했다면 민족주의자”(박효종 민족주의에 눈감
은 친일 발표 동아일보
라고 반박하였다. 박효종은 정의 개념을
2009/10/08)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민족주의를 정의로 내세웠던 청산론자들에 맞서 어느 한
사람의 행적은 그것이 ‘후일’ 민족의 발전과 국가의 중흥이라는 ‘결과’에 이바지
했다면 민족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이르면 민족의 이름으로 과
거의 역사를 단죄하고 정의를 세운다는 발상에 담긴 정의 개념의 문제점을 비판
하고 자신의 대안적 정의 개념이 제시될 법도 한데, 논의를 더 이상 확장하지는
않았다.
이 문제를 보다 깊게 다루며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문명사의 대전환’이라
는 관점에서 ‘역사의 정의’로 내세운 논객이 이영훈이다. 그는 자유와 이기심이
역사 발전의 기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선각자’들이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세웠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들의
나라 세우기가 처음부터 ‘정의’였던 것은 그들이 선택한 체제 원리로서 민주주의
와 시장경제가 현대 인류가 공유하는 기나긴 문명사의 경험에서 ‘정의’였기 때
문”(이영훈
이라고 하면서 ‘정의가 패배한 역사’를 주장하는 과거사청
2006, 63)
산 지지자들을 반박했다. 그러한 국가를 한반도 남쪽에 세운 이승만을 비롯한
‘소수의
선각자들’
–
일각에서는 친일파라고 하는 사람들
– 을 비롯하여 그 국
가를 발전시켜 물질적 풍요를 누리도록 해준 역대 권위주의 정권들은 ‘정의’의
실현자가 되는 것이다.
이영훈은 정의 개념 자체를 논하지 않으며 자신의 대안적 정의론을 짜임새 있
게 제시하지도 않아 더 이상의 유추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의 정의 개념이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성취라는 ‘결과물’에 기대 외재적 정당성을 확보하
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지적할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인권을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라는 시각에 입각하여 그 어떤 외적 기준과도 무관한 인권 그
244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자체의 정당성을 내세운다. 반면 이영훈은 서구문명의 폭력과 식민주의, 그 안에
내재한 인종주의와 서구중심주의에 일체 의문을 표하지 않으며 그것이 거둔 성
과에만 의존하여 ‘결과로서의 정의’를 내세울 뿐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근거
에서 정의의 원칙인지,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허다한 부정과 불의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자본주의
발전을 위해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권익을 침해했던 우리의 과거는 어떻게 정당
화될 수 있는지, 우리가 거둔 결과는 과정 중에 있었던 모든 정의롭지 못한 일들
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정의로운 것인지 등등 꼬리를 무는 의문에는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둘째, ‘실정법적 정의’. 과거사청산론자들이 자연법의 정의를 주장한다면 반대
론자들은 실정법 내에서의 정의를 내세웠다. 이것은 과거사 관련법의 법리를 따
지는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일보
일자 사설은 반인권범죄에 대
2005/08/17
한 공소시효 폐지를 언급한 노무현의 발언에 맞서 “현대 민주국가에선 정의를
세우는 일이나 불의를 응징하는 일이나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를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명심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반인권범죄에 공소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국제법의 원칙들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지, 국제법과 국내법의
정의 개념은 어떻게 다른지 간단한 언급이라도 하면서 논설의 설득력을 높여야
할 텐데 더 이상의 언급은 없었다.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 이후 사법부의 과거사청산을 비판했던 글에서는 이런
주장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군사독재시대라 하더라도 실정법을 우선해야 하는
당시의 법관들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심판했다. 과거사 반성의 대상은 ‘양심’에
반(反)한 판결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에 반한 판결이다.
…
양심 앞에 법을 버린
법관을 나무랄 수 있어도 법 앞에 양심을 버린 법관을 나무랄 수는 없다”(하창우,
사법부 과거사 정리: 국민 기대와 다르다
2005/10/3
조선일보)는 것이다. 한
국인의 보편적 감성에서 정의는 어떤 추상적 원칙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원초적 (혹은 내재적) 도덕감정과 양심의 요청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양심
이 없는 사람’은 학식이나 이론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
히 가지고 있는 도덕성을 결여한 사람이며, 인간으로서의 실격 요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양심 앞에 법을 버린 법관’은 양심이 요구하는 정의의 원칙을 지킨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45
사람일 텐데, 실정법과 양심의 충돌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실정법을 지킨 법관을 옹호하는 데 그치고 있다.
복거일은 친일파 문제에 관련하여 정의를 언급하며 이 문제를 보다 진지하게
다루었다. 복거일은 식민지 역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부분을 씻어내고자 하는 욕
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시 갖가지 제약 속에서도 반민법에 의한 사회 정화는
상당히 잘 진행되었다고 평가했다. 두드러진 친일파로서 지목된 사람들을 재판
에 회부했고, 대체로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재판들을 매듭지었다는 것이다. 그는
반민법이 소급입법이고 단심 재판이라는 이유에서 위헌이며, 민족에 대한 범죄
라는 개념을 도입해 실질적인 문제점들은 낳았는데, 이런 법을 엄격히 집행한다
면 “오히려 더 큰 비정의(injustice)를 낳을 위험이 있었다”(복거일
고
2003, 220)
주장하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를 비판하였다. 그는 이 위원회가 적법절차를 무
시한 수사, 위원회의 판결에 대한 상소나 재심도 허용하지 않는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하며, 그것은 ‘목적이 좋으면 헌법에 어긋나는 법도 선뜻 만들 수 있
고 적법절차는 무시할 수 있다는 풍조’, 즉 ‘비정의’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
다. 그는 정의가 무엇인지 명시하지 않고 ‘비정의’의 반대 개념으로서만 설정하
고 있는데, 정의는 ‘주어진 질서’ 안에서 실정법의 원칙을 준수하는 데서 성립되
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복거일의 이러한 정의 개념은 ‘자랑스러운 성공’으로서의 한국 근현대사와 자
본주의를 결합시키는 대목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인간의 정의감은 재산권과
관련된 ‘원초적 정의감’에서 진화되었으며 “개인들의 재산권을 핵심 제도로 삼
은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정의롭다”(복거일
고 주장한다. 그리고 해방
2011, 38)
이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한국에 건설된 국가질서는 민주
주의와 경제성장을 달성한 성공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이렇게 만들어진 ‘정의로
운’ 헌정질서에 따라 법이 운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 역시 조선, 식민통치,
해방, 전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재산획득 과정의 불의는 아주 널리
퍼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큰 도움이
될 말한 깔끔한 이론이나 현실 정책은 없으며 “과거의 불의들은 바로잡는 일이
워낙 어렵고 복잡하고 악용되기 쉬우므로, 현실적으로는 현재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그리 나쁘지 않은 길임을 가리킨다”(복거일
고 강변했다. 복거일
2011, 47)
246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은 ‘본질적으로 정의로운’ 자본주의의 현재 실정법에 따르는 정의, 즉 현행 사유
재산의 보장이 정의라는 결론을 내리며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 중의 하나였던 ‘친
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을 비판하였던 것이다.
셋째, ‘상대적 정의’. 과거사청산론자들은 인류의 규범으로서의 보편적 정의를
내세우는 반면 반대론자들은 북한과의 상대적 위치에서 정의를 거론한다. 반대
론자들이 즐겨 사용하는 비판 논리 중의 하나는 왜 북한에 대해서는 정의와 인권
을 내세우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쉽게 찾을 수 있다. 해방 이후의 과거
사를 정리하려면 “북한 정권이 저지른 만행과 인권 탄압의 죄상도 명백히 밝혀
져야 한다”(김철수 과거 청산 대상 문제있다 동아일보
들의 송환을 위해서도 온 힘을 쏟아야 한다”(조선일보
2004/08/16),
2005/06/07
“납북자
사설), 북한
의 인권 상황 개선을 촉구하는 유엔 인권위원회 결의안을 “우리 정부는 침묵으
로 일관”(동아일보
2005/10/03
사설), 북한의 남침,
1.21
사건,
기 폭파 등
KAL
은 “덮어둔 채 이쪽 과거사만 난타하는 것은 집권세력의 의도를 의심케 할 뿐”
류근일 이제는 대한민국이 양심수
(
조선일보) 등의 내용을 쉽게
2005/08/23
접할 수 있다.
이런 글들은 정의를 직접 거론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북한에
비해’ 보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을 정의의 편에 북한을 불의의 쪽에 세우고
시작한다. 정의 개념을 동원할 때 어쩔 수 없이 말려드는 국가폭력이나 인권의
문제를 회피하고, ‘남한이 북한보다 정의롭다’는 식의 논변을 입증하기에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권과 평화라는 정의의 중요한 세부 항목을 내세움으로
써 북한의 행태에 침묵하는 노무현 정부와 과거사청산론의 맹점을 공격하고 있
다. 한때 조갑제는 “후진국과 선진국을 가르는 중요한 조건 중의 하나는 그 사회
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양식과 용기를 가졌느냐의 여부”(조갑제,
라고
242-43)
하면서 상당히 주목을 끌만한 발언을 했다. 그렇지만 그의 정의론은 ‘정의로운
통일’과 연결되어 북한을 겨냥하고 있었다. “정의로운 통일이란 간단합니다. 김
정일을 법정에 세워 단죄할 수 있으면 정의가 구현되는 통일”(조갑제,
이라
242)
는 주장은 그의 정의가 철저하게 북한이라는 ‘불의’를 전제하고 ‘상대적 정의’를
주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4)
과거사청산론자들이 말하는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순수한 형태로 최대한 실현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47
되어야 하는 자연법의 원칙이었다. 반면 반대론에서 직간접적으로 내세우는 정
의는 국가건설이라는 근본적 정의 아래 평가되어야 하는 ‘하위 개념으로서의 정
의’, 북한과의 ‘상대적 정의’, 세계의 기적을 이룩한 자랑스러운 역사로 증명되는
‘결과적
정의’, 아무리 목적이 좋더라도 주어진 법의 한계 내에서 추구되어야 하
는 ‘실정법적 정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정의 개념이 면밀하게
제시되지도 않았으며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인 논객들도 찾기 어렵다. 보수언론뿐
ㆍ ㆍ
아니라 전반적으로 과거사청산 반대론은 정의 화해 화합 같은 과거사청산의
근본 가치를 언급하는 경우가 대단히 적었다.
5)
5)
정의 논의의 빈약성: 이념적 자화상
보수언론을 위시한 반대론자들은 노무현 정부와 청산론자들을 집요하게 공격
하였다. 이들의 공격은 좀 과장해서 말하면 ‘사흘 걸러’ 보수언론의 지면에 게재
되었다. 과거사청산 관련 위원회들이 설립되어 본격적 활동을 진행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부정적 주장들이 더 커지고 국민의 반대 여론이 높아진 원인을 “과거사
정리 작업의 처음부터 결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대하여 부정적,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였고 사회적 피로감을 높이는 데”(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159)
앞장섰던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탓으로 돌렸던 항변은 충분히 이해할 만
했다. 그렇다고 청산론자들이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자신에게 유리
4)
5)
–
이 글은 과거사청산 반대론자들의 정의 개념에 관해서는
할 말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지만
더 이상 비판하지 않겠다. 과거사청산을 통해 표출된 우리 사회의 (옳건
그르건) 다양한 정의 개념을 보여주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의 과거사청산 반대 논거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 국민들 사이에 갈등
과 분열을 조장하여 국론을 분열시킬 뿐이다, 경제발전 민생 양극화 등 지금 당장 해
결해야 할 시급한 문제를 방치하고 과거에 매달린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 주류세력
을 모독하고 교체하려는 정치적 의도의 산물이다 등등의 내용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좌파의 시각’ ‘친북좌경정권’ 등의 딱지를 붙이는 이른바 색깔론
과 ‘좌파의 정치적 음모’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런 비판에서는 정의론이 거론되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의는 생략하기로 한다.
–
ㆍ ㆍ
248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한 매체를 이용하여 논전을 벌였다.
한국사회를 두 쪽이라도 낼 것 같은 기세로 논쟁이 진행되었지만 기본 내용은
과거사청산의 정치적 의도와 색깔론에 초점을 맞춘 비판, 그리고 이에 맞서는
당위론의 공방이었다. 김동춘이 회고한 대로 보수세력은 과거사청산을 좌익의
음모로 몰고 갔고 반대쪽은 공세를 맞받아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지극히 단순
하고 원시적인 대립 구도가 계속되었던 것이다(김동춘
2013, 191).
김동춘은 그
이유를 기득권 세력에 대응하는 사회운동 진영의 논리 부족이나 철학 부재를 거
론하였지만, 입장을 바꾸어 보수세력이 과거사청산을 지지했다고 하더라도 논쟁
구도가 달라졌을 가능성은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그들 역시 상대를 설득할 만한
철학을 갖고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필자는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논쟁이
ㆍ ㆍ
정의 화해 화합 같은 근본 가치를 다루지 않고 색깔론, 예산 낭비, 국론분열,
정치적 의도를 공격하는 형태로 전개되었던 원인을 묻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 원인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벌어졌던 이념 논쟁의 익숙한 모습이 재
현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정치사상을 둘러싼 논
쟁들은 사상의 논리적 정합성이나 개념 혹은 근본적 세계관에 대한 논쟁이 아니
ㆍ
ㆍ
라 그 사상이 수행하는 정치적 사회적 계급적 역할을 지적함으로써, 그 배후
에 있는 숨은 동기나 의도를 파헤치고 비판하는 데 주력해왔다. 논쟁은 언제나
치열했지만 그 초점은 상대방의 ‘숨은 의도’나 ‘정치적 목적’ 혹은 ‘이념적 색깔
논쟁’에 있었을 뿐 자기 사상이 내세우는 중심 가치를 치밀하고 설득력 있게 제
시하지는 못했다. 이와 똑같은 현상이 과거사청산에서도 반복되었다. 과거사청
산을 둘러싸고 보수 진영은 상대방의 숨은 의도나 이념 정체성을 공격하였고,
청산론자들은 이를 받아치며 똑같은 논리로 맞서는 공방전이 되풀이되었을 뿐
과거사청산의 핵심인 정의 개념에 관해서는 별다른 논쟁을 벌이지 않았다. 한국
사회 이념논쟁의 익숙한 모습이 다시 반복된 것이었다.
두 번째,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청산론자들에게는 그와 같은 근본주의적 정의
론 외에는 그 어떤 사상적 유산도 없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
청산론자들의 정의 개념은 그동안 한국 사회를 풍미했던 저항담론의 정의론의
연장에 있었다. 문지영(2007)의 뛰어난 글이 보여주듯 지금까지 저항담론에서 민
ㆍ ㆍ
주주의는 정의 자유 평등을 포괄하는 거대한 이상을 의미했으며, 민주주의론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49
과 별도로 정의론이나 자유론이 발전할 여지가 거의 없었고, 민주주의가 실현되
는 사회가 곧 정의로운 사회로 이해되었다(문지영,
32).
즉 정의 개념 그 자체에
대한 사상적 탐구가 결여된 채 정의를 민주주의의 실현과 동격으로 보며 민주화
에 의탁하여 정의 개념을 이해해왔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자유와 정의를 그 누구보다 강조해왔던 대표적인 저항 지식인 장준하는
1959
년에 “해방 후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의 정치현실은 불행히도 혼란을 극하고, 타락
에 빠진 결과, 힘이 제일이요, 힘이 곧 정의요, 힘만 있으면 그만이라는 부조리하
고 불행한 사고방식에 빠지게 되었다”고 하면서 이 그릇된 사고방식부터 깨끗이
씻어내고 “정의의 지배가 군림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숭고한 비원(悲願)”(장준하
이라고 주장하며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요구했다.
175)
민투쟁위원회의 역사 앞에 선언한다 는 ‘박정희
년 3선개헌반대 범국
1969
년의 집권기록’을 “사회는
10
대체로 공법이 집권자의 도구로 악용되고 자금이 매수의 만능약으로 신봉되는
오염기류에 덮여
“선악의
…
정의가 침묵 속에 감금”된 시대로 묘사하며 3선반대 투쟁을
대결과 진부(眞否)의 결전”(김삼웅,
이라고 묘사했다. 이러
1984: 81, 82)
한 생각은 그대로 이어져서 유신에 저항하는 각종 시국선언서를 비롯하여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수많은 선언과 담화에는 ‘사회정의’ ‘정의’ 등의 구호가
빠짐없이 등장했으며, 그 끝에 가서는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였다. 유신이 막바
지로 치닫고 있던
년 신민당 총재직의 국회 제명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후
1979
김영삼은 박정권 타도 선언 을 발표했다. “정의가 우리 편에 있고 국민의 절대
적 지지”와 하나님의 보호가 있기 때문에 “민주회복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반드
시 성취될 것으로 확신하는바”(김삼웅,
요구했다.
라고 선언하며 ‘박정권 퇴진’을
1984: 323)
년대의 수많은 저항 문건들도 정의를 앞세우며 독재 타도와 민주주
80
의 실현을 요구하였고 그 결론은 전두환 정부의 퇴진이었다.
ㆍ
박정희 전두환 권위주의 정권에 저항하는 담론들을 분석한 윤비의 탁월한
글이 말해주듯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정치, 사회, 경제적 제 문제의
뿌리를 정치 지도자와 집단의 부정의에서 찾고”(윤비,
193)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생각의 핵심에는 정의롭지 않은 정치 지도자나 지배집단이 한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한국의 모든 중요 문제의 근원은 정의롭지 못한 정부에
서 비롯된 것이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어 정의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이 모든 문제
250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들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김영삼의
발언에서 볼 수 있듯 자신은 정의의 편이며, 정권 담당자는 불의이고, 국민의 절
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자명한 정의론’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과거사청
산론자들 바로 이러한 사고방식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일제
시대의 과거사를 정리하지 못함으로써 친일분자들이 주도한 민족분열과 한국전
쟁기의 집단학살과 같은 불행을 막지 못했고, 나아가 독재정권의 등장을 막지
못했다. 독재정권의 등장을 막지 못함으로써 국가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를 막지
못했다”(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는 것이다.
4)
청산론자들은 한국사회를 일그러지게 만든 근원으로서의 친일파가 단죄되면
앞으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이룩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청산론자들이 친일파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친일파는 민족
ㆍ
분열 반민주세력일 뿐 아니라 사회를 타락시키는 만악의 근원으로까지 설정된
다. “우리 사회는 이미 범죄왕국이란 오명을 들을 정도로
달리고”(민족문제연구소,
8)
…
정신적 타락의 극을
있는데 이러한 도덕적 타락을 비롯하여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불행은 바로 여기”(같은 책,
10),
즉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득권을 누리는 가해자 집단
인 한나라당과 역대 독재정권에 빌붙어 이익을 챙겨온 극우보수 언론사”들도(이
이화,
6)
직간접적으로 친일파를 계승한 세력에 들어가고, “일제가 뿌려놓은 반민
족의 씨앗이
…
일각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법조계의 일부도 해당된다.
6)
여기서 정의의 문제는 매우 단순해진다. 과거사청산은 일제강점기(친일파), 분
단과 냉전(전쟁 중 민간인 학살), 권위주의 정권(인권탄압)의 문제들이 복합적으
로 얽혀 있지만 일제강점기 이래 미국을 등에 업고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 세력으
로 자리 잡은 세력이 가해자이며 불의이고, 친일파의 계승자로서 불의의 화신인
권위주의 정권의 폭력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이 정의라는 아주 간단한 등식이
나오는 것이다.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지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미
민족과 역사의 법정 앞에 정의와 불의는 판가름되어 있으며 불의의 화신이 단죄
6)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을 과거사특별위원회에 반려하기로 한
국회 법사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김희선 의원의 반박 발언이다(국회사무처, 7차회의).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51
면 정의는 자동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됨으로써 친일파 청산을 필두
로 하는 과거사청산은 그 무엇보다도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도덕적 정언 명령
이 되었으며 ‘과거사청산 근본주의’라고 할 수 있는 정서까지 만들어내게 되었다
는 사실은 우리가 앞에서 확인했던 바이다. 이 근본주의는 불의와의 타협은 있을
수 없으며 정의는 순수한 형태로 최대한 실현되어야 한다는 거의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생각과 쉽게 결부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정의 관념이 불러온 가장 큰 문제점은 정의 그 자체에 대한 철학적 논
구의 빈약함이다. 한국에서 저항운동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며 부당한
권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정의 실현’의 운동으로 자신을 내세웠
다. 그들은 사회정의를 보편타당한 규범원칙의 발견이 아니라 현실 세계 속에서
자행되는 명백한 불의를 드러냄으로써 이해하고자 했다. 사회정의의 면모는 자
본주의 발전의 피해자인 노동자, 부당한 국가권력에 억압받고 희생당한 ‘억울한
사람들’을 조명하는 감정적 호소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들에게
정의는 현실의 너무나도 명백한 부정의와 대조되는 자명한 것이었다. “한국의
사회정의 개념은
…
이론가들이 이해하듯 그 스스로 혹은 이미 완결되어 존재하
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실의 부정의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반명제로 자신을 정
립”(최치원,
194)
했다는 지적은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상대방의 불의를 지목하며 피해자로서의 억울함을 드러내는 감성적 호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지만 정의 그 자체에 대한
탐구나 논리는 결여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민주화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정의를 부르짖는 구호는 무성했던 반면 정의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따지려는 시
도는 별로 없었다. 민주주의나 불의에 기탁하여 논의되던 정의론이
년대에
2000
들어와서는 과거사청산에 의탁했다는 점만이 다를 뿐이었다. 정의는 불의의 반
대였고, 논의를 따지기에 앞서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불의를 통해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감정적 차원의 것이 되었다. 청산론자들은 자신의 도덕적 우월성과
정당성을 당연히 전제하고 ‘역사의 정의’ ‘사회정의’ 등을 내세웠을 뿐 한국에서
ㆍ
정의가 무엇인지, 화해 화합은 정의 위에서만 성립하는지 등의 문제에 관해서
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논쟁에서 찬반론자 모두
정의 개념 그 자체를 논구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공방으로 일관할 수 있었던 것은
252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것은 비단 정의 개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과거사청산의 근본 목적은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용서와 화합, 국민 화합 등 이
른바 화합과 통합에 있다. 그런데 과거사청산에 참여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던
김동춘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 사회에는 정의의 발견을 통해 실현되는 화해에 대
한 입장이나 철학 자체도 없었다. 오랜 전통을 갖고 있는 한국 민주화 운동의
ㆍ
사상적 문화적 기반은 학생과 지식인의 강한 공인의식과 역사적 소명의식을 제
외하고는 별다른 사상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으며 어떤 철학자나 사회원로도 과
거청산과 화해의 문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김동춘
192).
2013:
이렇듯 과거사청산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철학 부재 현상으로 인해 보수세
력은 색깔논쟁이나 정치적 음모 같은 논리로 반박했고, 반대쪽은 공세를 맞받아
서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지극히 단순한 대립 구도가 계속될 수 있었으며, 혼란
스러운 정치적 공방의 와중에서 과거사청산의 교훈이 국민적으로 공유되었다고
말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것이 우리 사회의 이념적 자화상이었다.
6)
실현 가능한 정의 개념의 모색
한때 한국 사회를 뒤흔들 것 같은 파장을 일으켰던 과거사청산은 세인의 관심
에서 멀어져 있다. 한국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쉽게 달아오르고 빨리 잊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한 정부의 5년에 걸친 역점 사업이 별 다른 반향을 남
기지 않고 묻혔다는 것은 의외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념 대신 실용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의도적 방기, 사회 양극화나 북한 문제 같은 시급한 사회
현안의 대두, 언론의 고의적 무관심 등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과
거사청산이 눈에 뜨일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 같지도 않다. 진실의 규명이나 기
록은 되었을지 몰라도 이명박 정부 시절 용산 참사, 최근 국정원의 화교 출신
탈북자 간첩 조작, 국방부의 사이버 선거개입 의혹 등의 행태는 정부 기관들이
과거사청산의 교훈을 하나도 배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국민 일반이
과거사청산의 의의나 교훈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으며, 사회정의가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53
실현되었거나 한국인의 정의 의식이 높아진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피로감이 더 만연되지는 않았나 하는 우려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사청산론자들은 이런 현상을 놓고 아마 ‘올바른 청산이 되지 않아서’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과거사청산은 그 당시부
터도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다. 과거사청산 문제가 격렬한 쟁점으
로 떠올랐던
년 6월 ‘우리 사회의 해결 과제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2004
묻는 여론조사 결과는 남북 화해 및 한반도의 평화(
18.1%).
빈부 격차 및 계층
간 불평등 해소(79.7%)였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집중했으면 하는 분야’를 묻
는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 개혁 부패 척결(13.4%), 경제 민생 문제 해결(85.3%)로
나타났다(김헌태,
에서 재인용). 이를 두고 ‘민생 없는 개혁에 집착한 민주세
315
력의 패착’이라는 지적은(김헌태,
39-40)
일리가 있다. 혹은 적극적 홍보의 부족
이나 보수언론의 집요한 비판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문제를 정치사
상의 관점에서 접근함으로써 과거사청산이 한국 정치에 주는 의미를 보다 잘 파
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 이유를 윤비와 마찬가지로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정의에 대한 부풀
려진 기대감, 즉 “불의야말로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뒤흔드는 만 가지 고통의
원인이며, 오직 정의만이 개인과 국가 모두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신화적
정의관’(윤비,
의 붕괴 이후 한국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오히려 정의라는
197)
구호에 대한 거부감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한다. 이런 현상은 정의 개념
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민주화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민주화 근본주의,
통일이 되면 정치사회적 모순들이 일거에 해소된다는 분단 근본주의 등 그동안
저항담론을 이끌어왔던 근본주의 정서들이 한계를 드러내며 설득력을 상실했다
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윤비가 잘 지적했듯 민주화 이후
ㆍ ㆍ ㆍ
년대 후반의
90
경제위기를 겪으며 한국에는 정의 자유 인권 평등 따위의 가치로는 아무런
해결책도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정의를 근본 목표로 들고 나오는
지도자는 무능한 지도자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회의는 “나아가 정의라는 가치에 대한 집착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흐림으로써
궁극적으로 사회와 국가의 미래를 저해할 위험을 지닌 것으로까지 여기는 태도
가 널리 퍼져있다”(윤비
고 지적했다. 과거사청산의 국민적 파급력이 부족했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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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 원인은 한국 저항담론을 이끌어왔던 정의론이 그 배후의 근본주의와 함께 사
상적 기능을 멈추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ㆍ ㆍ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민주주의 불의 과거사
청산 등 다른 무엇에 기탁하지 않는 정의 그 자체에 대한 심도 깊은 논구가 필요
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근본주의에 입각한 과도한 요구를 멈추고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형태로 정의의 개념을 재조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정의는 순수하지도 철저하지도 않다. 그것은 주어진 시공간에서 정치적 역학관
계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조건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
론 그것은 ‘원론적’인 정의와 비교할 때 함량 미달이고 훼손되어 있기 마련이고,
그 ‘제한된’ 정의를 확대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먼
저 우리는 무엇이 정의로운 법이며, 무엇이 올바른 법 적용인가는 ‘인간의 결단’
에 따라 그 내용이 바뀌어 왔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정의는
자명하고 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지식인과 국민을 망라한 집단 지성이 함께 만들
어낸 숙고와 타협의 산물이다. 곧 서로 관점을 달리 하는 세력들의 다양한 정의
ㆍ ㆍ
개념이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논쟁을 통해 수정 보완 합의되는 과정을 거쳐
그 사회에 수용됨으로써 정의의 원칙이 마련된다.
정의를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 속에서 사회구성원의 합의와 집단적 지성의 산
물로 보는 인식은 여러 경로에서 나오고 있다. 문지영은 ‘국민 일반의 정의 이념’
에 비추어 조율된 정의 개념, ‘민주적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되는 “한
국적 정의론의 활성화”(문지영,
를 요구했다. 윤비는 ‘명분’의 차원을 넘어 보
53)
다 절실한 사회적 ‘필요’의 차원에서 정의에 접근하는 자유주의의 전통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상익은 서구 근대의 정의관과 전통적
정의관의 조화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의 개념을 다듬는 방법을 모색했다(이상익,
2006).
ㆍ
ㆍ
필자도 이런 견해들에 찬성한다. 정의 개념에서 초월적 신비적 종교적
색채를 지우고 현실적으로 이행 가능하도록 내려놓는 것, 정의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사회구성원들 사이의 합의점을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이 작업에는 찬반 양쪽 모두에게 외면당했지만, 사회적 합의를 통
해 도출된 ‘실행 가능한’ 정의, 즉 과거사청산 관련 법안에 담긴 정의 개념을 면
밀히 검토하는 일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은 당시의 정치적 역학관계, 국민 일
과거사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의 255
반의 정의 개념, 정의 근본주의가 어떤 형태로든 타협을 이룬 결과물이었기 때문
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사상적 과제이며, 과거사청산이 남
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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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일: 2014.04.07.
게재확정일: 2014.04.14.
258 현대정치연구
2014년 봄호(제7권 제1호)
【 ABSTRACT 】
Debate of Justice and its Implications of the Liquidation
of the Past
Jung, Seung Hyun
Sogang University
This essay is intend to enunciate the various concepts of the justice and
its implications on the politics of Korea in the controversy of the liquidation
of the past. First, I tried to show four concepts of justice and two problems
of their fundamentalist culture as a background or tacit knowledge in the arguments
of the liquidators. Second, I found three concepts of justice in the logic of
anti-liquidators. Third, I examined the origin of a fundamentalist culture of
the liquidators in the long tradition of protest discourses. Finally, I suggested
that we need a realizable and practical concept of justice out of the fundamentalist
or radical attitudes.
Key Words | liquidation of the past, concept of justice, conservatism, practical and
realizable just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