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2016.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가라타니 고진의 『제&

역비논단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조경란

1. 무엇이 중국의 자기인식을 방해하는가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2014년 『제국의 구
조―중심·주변·아주변』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이 책에서 중화
제국 시대의 제국의 원리를 가지고 미국으로 상징되는 네이션=국가의 연
장인 제국주의의 원리를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 저서는 왕후이
(汪暉)와의 학문적 교감 속에서 나온 것이다.001

왕후이는 티베트, 류큐(琉球,

지금의 오키나와), 최근에는 타이완까지, 중화제국 시대의 ‘경계’에 대한 작업

에 집중해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제국’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
지만 그 서술방향은 매우 강하게 중화제국의 정당성을 강조하는 쪽이다.
왕후이는 사실상 중국의 사상가 중에서 제국론을 현정부와 관련성을 의식
하면서 매우 일찍부터 그리고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는 사상가라는 점에서
이들의 공감대는 제국론에 대한 동의를 전제로 한다고 해석해도 무방할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4S1A3A20437
63).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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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펼치는 21세기의 제국론에는 공히 ‘근대 극복’이라
는 20세기의 낯설지 않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에 따라 왕후이와의 교
감 속에서 형성된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론에 대한 일본 지식계의 갑론을
박 또한 뜨겁다.
그렇다면 왜 지금 제국 논의가 중일 양국을 대표하는 지식인 사이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이 의문은 중국이 제국인가 아닌가 하는
것에 대한 시시비비는 당연히 아니다. 중국은 규모나 다민족 구성이라는
점에서 존재 그 자체로 ‘제국’이다. 일본에서도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
가 2000년대 초반에 일본인을 향해 중립적 입장에서 ‘신조공체제’의 출현
을 예고한 바 있고,002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등 유명 학자도 중국의 경
제적 부상이 현실화되면서 ‘제국의 역사적 회귀’ 또는 ‘중국적 제국의 현
전’이 목전에 있다는 의식을 보여주었다.003 실제로 페어뱅크도 인정한 바,
정치가 문화이고 문화가 정치인 것이 중국의 특징이며 이것이 2000년 동
안 지속되어왔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도 그 논리가 지
배의 정당성이라는 명분 아래 지속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제국론은 그 물
질적 기반과 현실성을 엄연히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근대가 서구 선진국을 따라잡으려는 압축 근대의 모습을 띠고 진행되어왔
다는 점을 의식하면, 근대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 전통 시기 제국론으로
올라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시도는 상당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중화제국의 언설 자체가 국민국가체제를 본류로 하는
‘근대’의 이념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제국』의 저자 뮌클러에

의하면, 패권적 우위와 제국적 지배 사이의 전환은 유동적이지만, 패권은
형식적으로 평등한 정치적 행위자들로 이루어진 집단 내에서의 우세함인
데 반해, 제국은 이 최소한의 형식적 평등마저 없애고 약한 국가들의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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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를 종속국이나 위성국으로 낮춘다.004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정한 거리가 있는 일본과는 달리 전통 시기 조
공체제 안에 깊숙이 들어가 외신국(外臣國)으로 존재했던, 그리고 갈수록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관계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한국의 경우, 제
국론의 수용이든 거부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에서
중국의 제국론을 펼치고자 할 경우 제국의 역사적 의미와 그 고찰의 동기
를 더욱 가혹하게 또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즉 과거 제국의 역사를 살펴
봄으로써 그것의 한 측면만 미화할 것이 아니라 시행착오의 측면은 없었
는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동아시아 여러
지역, 그리고 다민족사회에서의 공존의 방법과 다원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중국의 지식인을 향해 ‘중국의 자기인식은 가능한
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질문은 “과연
중국의 세기는 가능한가”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연동되어 있다고 보기 때
문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적·윤리적 연계와 무관하게 중국의 세기는 가능
할 수도 있다. 제국의 부상은 지정학적 조건을 제외하면 많은 경우 우연히
이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적 가치’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자기인식이 가능할 때 비로소 중국의 세기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자기인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경제성장의 역설성, 즉 그 어두운
면에 귀기울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지금 중국의 자기인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경제발전이다. 그리고 담론상에서는 경제발전을
토대로 한 제국론일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일각에서 일고 있는
제국론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담론이지만, 그것이 중국의
현실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논의되지 못하는 순간 그것은 현실정치에 이용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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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가능성과 더불어 반서구중심적 중국중심주의로 떨어질 위험성을 안고
있다. 거기다 제국론에 또다시 서양을 극복한다는 ‘이념의 과잉’이 부착되
는 순간 중국의 자기인식은 더욱 요원해지고 말 것이다. 더구나 중국의 굴
기는 세계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으로서는
대안이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것은 중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도 문제
지만, 주로는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21세기 자체가 대안이 보이지 않
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005 이런 상황에서 누구든 대안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한 행위로 여겨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심하게는 자기기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다만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을 버리지 않되 이 시대의 아포리아를 깊이 자각하는 가
운데 자기가 처한 곳에서 할 수 있는 한 행동하는 것이다.
필자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식계는 이제 20세기의 관성이 되다시피 한
근대 극복이라는 ‘이념의 과잉’에서 벗어나 21세기의 달라진 문제적 상황
을 냉철하게 직시하고 새롭게 문제화할 수 있어야 한다. 동아시아 지식계
는 ‘서구의 근대 보편’과 ‘중국의 단일권력’ 사이에서 자신의 균형점을 찾
는 힘겨운 시도를 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었다. 특히 한국의 지식계는 ‘역
전의 역전’의 상황을 맞아 100년 전에 겪었던 딜레마를 현실에서 다시 체
감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이 글에서는 가라타니 고진의 중국 관련 제국
론의 타당성에 대해 네 부분으로 나누어 비판적으로 논의할 것이다. 첫째,
그의 중국 제국론의 이해가 지나치게 이상화된 것은 아닌가. 둘째, 이상화
된 ‘제국의 원리’를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실현할 수 있는가. 셋째, 제
국에 관한 논의에서 이른바 지배의 정당성과 국민국가 개념 사이의 긴장
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넷째, 가라타니의 제국론이 ‘근대 초극론’과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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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떤 연관이 있는가.
이 글은 일본 지식계의 논의를 참고하면서 진행할 것인 바, 이 논의 구
도를 파악하는 것은 성격은 다르지만 아쉬운 대로 중국에서 제국 관련 논
쟁의 부재를 메꾸어주는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제국론에 대한 우리의 판
단 기준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리라 기대한다.006

2. 『제국의 구조』와 이상화된 중화제국의 원리?
가라타니는 자신이 중국의 제국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를 아래와
같이 말한 적이 있다. “2011년 왕후이가 일본에 와서 도쿄대학 고마바(東大
駒場)

캠퍼스에서 함께 강연을 했는데 그때 나는 제국에 대해 말을 했었다.

그 다음 해에 『세계사의 구조』의 중국 출판에 맞춰 그것을 해설하는 형태
로 2개월간 청화대학에서 강연을 했다. 그때 왕후이 씨와 다른 교수들이
내 수업을 매회 들었다. 그 강연록을 일본의 잡지 『현대사상』에 “중국에서
읽은 『세계사의 구조』”라는 제목으로 5회에 걸쳐 연재했다. 이를 저본으로
단행본을 기획하면서 내용을 전면적으로 고치고 표제도 바꾸었다. 이 책
에서 생각한 것은 역시 구제국의 문제였다. 책의 제목을 ‘제국의 구조’라
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근대국가는 구세계제국의 해체로 생겨났기 때문
에 구제국은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비춰진다. 그러나 거기에는 근대국가
에는 없는 요소가 있다. 진정 근대국가를 초월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새롭
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구제국이 품고 있는 가능성을 여러 가
지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007 가라타니는 또 자신이 중국의 제국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중국의 문제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고 중국의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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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을 생각하지 않으면 제국 일반을 이해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008 세계 제국의 역사에서 중국이라는 제국이 차지하는 위치에 주
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속에 ‘바람직한’ 제국의 원리가 숨어 있
기 때문이며, 이는 중국사를 일국사의 시각이 아닌 세계의 제국사 안에서
읽을 때 포착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가라타니의 이런 발상에 대해 고야스는 시종일관 비판적이다. 그는 ‘제
국의 구조’라는 책의 내용으로 들어가 논하기에 앞서 그것이 구상된 장소
의 맥락을 문제삼는다. 고야스는 『세계사의 구조』를 ‘중국에서 읽는다’는
것은 다만 중국에서 읽히는 것, 말해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고 지적한다. “중국에서 읽은 『세계사의 구조』”라는 것은 ‘중국’이라는 거
대한 세계사적인 ‘제국적’ 경험에 의해 비로소 읽혀진 『세계사의 구조』를
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009 『세계사의 구조』가 아직은 중국을 말하기 위
해 쓴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고야스는 그것을 중국에 가서, 그것도 왕후
이같이 제국의 실제적 재현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 앞에서 강의하
고 교감하는 과정에서 그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는 『제국의 구조』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될 수 있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왜 이렇게 중국의 제국에 주목하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세계공화국에 대한 전체 구상을 간단하게나
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라타니는 기본적으로 자본=민족=국가010의 요
소로 구성된 근대사회는 지속불가능하다고 본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근
대체제는 빈부격차를 끊임없이 확대할 뿐 아니라 생태환경 문제와 민족
간의 분쟁을 심각하게 유발한다, 따라서 이 삼위일체를 무너뜨리고 개인
들의 자립적이고 대등한 네트워크로 구축된 어소시에이션을 구성원리로
하는 대안적 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 세계공화국의 실현을 위해서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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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국의 원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근대로 오면서 해체되었던 제국의 역사를
다시 관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제국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했던 중국의
제국사에 주목해야 한다. 거기에는 근대를 극복할 요소가 담겨 있기 때문
이다.
이러한 큰 구상 아래 가라타니는 먼저 1990년대에 코뮤니즘의 붕괴와
아메리카의 승리를 의미했던 프란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주목
한다. 이 선언이 나온 때부터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그의 인식이다. 그는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언’을 말한 것은
말하자면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구도를 궁극적인 사회형태로 보고 그
이상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다고 선언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역사의
종언’을 뛰어넘는다는 것은 자본=네이션=스테이트를 초월하는 것을 의미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고 하는 삼위일체의
시스템을 잘 파악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자본·네이션·국가를 상호연관적
체계 속에서 잘 포착한 사람이 있을까. 가라타니는 그가 바로 헤겔이라고
본다. 헤겔은 이 체계를 변증법적으로 잘 파악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
게 말한다. “헤겔은 『법철학』에서 프랑스혁명에서 제창된 자유, 평등, 우애
를 이론적으로 통합하려 했다. 첫째, 감성적 단계로서 시민사회 혹은 시장
경제가 제시된다. 그것은 프랑스혁명에서 말하는 ‘자유’이다. 둘째, 오성적
단계로 그러한 시장경제가 가져온 여러 모순을 시정하여 ‘평등’을 실현하
는 것으로서 국가(관료)가 발견된다. 마지막으로 이성적 단계로서 ‘우애’가
네이션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이 해서 헤겔은 자유, 평등, 우애라고 하는
세 가지 계기 혹은 자본주의 경제·국가·네이션이라는 세 개의 계기를 어느
것도 배척하지 않고 통합하려고 했다.”011
가라타니에 의하면 헤겔에서 자본=네이션=스테이트의 구도가 확립된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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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는 이미 근본적인 혁명은 없다. 헤겔에서 ‘역사의 종언’이라는 말은
바로 그런 의미이다. 물론 헤겔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에 의한 러시아혁
명과 중국혁명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다른 곳은 자본=네이션=스테
이트의 강화였다. 변화가 있었어도 미미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법철
학’은 아직도 유효하다. 때문에 진정 ‘역사의 종언’을 부정하려 한다면 자
본=네이션=스테이트를 초월하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헤겔의 삼위일체 구도를 근본적으로 무너트릴 필요가 있다.012
가라타니가 보기에, 이 구도를 파괴하려 했던 사람이 마르크스이다. 하
지만 마르크스의 헤겔 비판은 문제가 있다. 마르크스는 네이션=스테이트
를 상부구조로, 자본을 하부구조로 파악했다. 하부구조를 바꾸면 네이션=
스테이트는 자동 소멸한다는 구도다. 하지만 국가나 네이션의 능동적 주
체성을 무시한 이런 견해는 마르크스주의 운동에 다양한 실패, 즉 스탈린
주의와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다주었을 뿐이다. 자본주의를 초극하려던 운
동은 국가와 네이션을 해소하기는커녕 그것들의 강화로 귀결했다.013 가라
타니는 따라서 생산양식=경제적 하부구조라는 도식은 이제 폐기해야 한
다고 주장한다.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으로 보아야 제국을 하나의 카
테고리로 다룰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가라타니가 말하는 제국과 교환양식은 무엇이고, 그 양자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그는 먼저 교환양식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교환양식
A(호혜-증여와 답례)는 부족사회에서 지배적이다. 국가사회, 즉 계급사회가

시작되면 거기에는 교환양식 B(약탈과 재분배-지배와 보호)가 지배적이 된다.
게다가 교환양식 C(상품교환-화폐와 상품)도 발전한다. 이것이 지배적인 사회
는 자본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교환양식 A는 억압되지만 소
멸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억압된 것의 회귀로 회복된다. 그것이 교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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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D이다. 교환양식 D는 교환양식 A의 고차원의 회복이다.014

가라타니에 의하면 제국은 다수의 국가 사이에서 생겨난다. 그러나 그
것은 단순한 국가의 확대가 아니다. 제국은 단순한 군사정복에 의해 형성
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단순히 ‘폭력적인 강제’만으로 성립될 수 없다. 제
국은 다수의 공동체=국가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적극적
으로 복종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교환양식 B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015 여기서 교환양식 B는 피지배자가 지배자에게 복종
함으로써 보호를 받는 그러한 교환관계이다. 국가는 이러한 교환양식 B에
기초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관계이다. 그러나 피지배자는 지배자에
대해 세금 또는 공물을 바친다. 그런 점에서 이것은 경제적 관계이기도 하
다. 이 교환은 폭력적 강제에 의한 것이지만 단순한 약탈은 또 아니다. 지
불한 만큼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역시 교환이다. 또 피지배자는 지배자에
의해 강제적으로 과세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공공사업, 복지 등을 통해
‘재분배’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이는 복종-보호라는 의미의 교환에 해

당한다.016
가라타니 고진이 말하는 제국의 원리는 다수의 부족이나 국가를 복종
과 보호라는 ‘교환’에 의해 통치하는 시스템을 의미한다. 제국의 확대는
정복에 의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것은 정복된 상대를 전면적으로 동화
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복종하고 공납만 하면 된다. 이에 비해 제국주의는
네이션=국가의 확대인 것이다. 그것은 교환양식 C(상품교환-화폐와 상품)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타국에 그것을 강제한다. 제국주의도 종종 정복과 약
탈을 수반하지만 제국의 확대와는 차이가 있다. 제국주의가 타국에서 빼
앗는 것은 주로 관세권이다. 따라서 미국의 제국주의는 외견상 자유민주
주의를 장려한다. 교역의 자유만 있으면 정복이나 약탈을 하지 않고도 이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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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을 얻는 것이 가능하고 그 나라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의 팽
창이 교환양식 B에 기초한 것인 데 반해 제국주의적 팽창은 교환양식 C에
기초한 것이다.”017 가라타니는 교환양식 B와 C를 대립시켜놓고 이를 각각
중국의 제국과 미국의 제국주의에 등치시킨다. 제국주의와 대비되는 제국
의 원리는 결국 느슨한 형태의 방목 통치 시스템을 말하는 것이고, 그 역
사적 구현태는 바로 조공책봉 시스템을 가리키는 듯하다.018 이는 왕후이
가 근대 국민국가의 극복태로 제시한 바 있는 조공체제와 그 업그레이드
판인 트랜스 시스테믹 소사이어티(跨體系社會)와 많은 부분 유사하다.019
가라타니는 교환양식 B를 제국의 원리로 파악한 다음, 그것을 중국
의 제국에 적용하여 이해한다. 그에 의하면 진제국이 전국시대에 종지부
를 찍고 통일을 이룬 것은 단순히 군사적 정복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진
이 최초의 제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리적 의미의 자연을 지배하는 기술
보다도 인간사회를 의미하는 자연을 통치하는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고 본다. 그 기술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사상’으로서 나타난다. ‘사상’이
인간을 통치하는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이 기술이 호혜의 원
리, 즉 혈연이나 지연에 의한 공동체의 지배에 작동하는 원리인 교환양식
A를 극복한 형태로서 나타날 수 있었음을 강조한다. 결국 호혜성(reciprocality)

을 극복할 수 있었던 주체가 바로 제자백가라 불리는 ‘사상가’였다는 것이
다.020 가라타니는 자본=국가=민족의 원리를 초월할 수 있는 것으로서 유
교를 구성원리로 하는 중국 역대왕조의 ‘제국’의 통치원리를 높이 평가한
다. 제자백가 중에서도 도가와 법가를 포함한 동중서(董仲舒) 이래의 유교
적 통치 시스템이 제국의 원리가 실현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에서 가라타니의 제국론을 살펴본 바, 이를 토대로 먼저 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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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두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도록 하자. 하나는, 중국의 제국으로부터 도출
된 제국의 원리가 교환양식 B로만 제시되어 있지 그것이 가라타니 본인이
제시한 평등한 개인의 어소시에이션으로 구성된 세계공화국과 어떻게 연
결되는지에 대한 구체상이 하나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른 하
나는, 미국의 제국주의와 중국의 제국을 선악의 대립구도로 파악함으로써
그 구도 안에서 중국의 제국은 이상화될 수밖에 없고 미국의 제국주의는
악마화될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써 양쪽 국가사회의 파악에서 연역적 자
의성이 노출될 공산이 매우 크다. 이는 중국의 제국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를 극복해야 한다는 과도한 목적성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가지타니 또한 중요한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가라타니
의 ‘제국의 구조’는 칸트나 라이프니츠 유래의 서양사회에 있어서 권력의
분립에 근거해 지탱되는 개인의 인권, 그것이 있어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세계공화국’의 구상과 그러한 배경을 갖지 않는 전근대 중국에서의 ‘제국

의 원리’의 무의식적(또는 의식적) 혼동 위에서 성립한다고 본다. 그 때문에
가라타니는 논리적으로 딜레마에 빠지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021

3. 중화인민공화국과 ‘선한 제국’의 원리
가라타니는 앞 장에서 본 것처럼 복종과 보호의 ‘교환’에 의해 통치하
는 시스템을 제국의 원리라 부르고 네이션=국가의 연장인 제국주의의 원
리와 명확히 구별 짓는다. 그런 다음 제국의 원리를 중국의 제국에서 발견
하려 한다. 그리고 거기서 발견된 제국의 원리가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에서 재구축되기를 기대한다. 이 기대가 난망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 그는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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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을 연 마오의 혁명에서 마르크스적 요소를 삭제하고 농민
혁명적 요소를 강조하고자 한다. 가라타니의 다음 기술에 그런 기대가 투
영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오의 혁명정책에는 단순히 마르크스주의에 기초하지 않은 두 가지
의 ‘정통성’이 있다. 하나는 역성혁명(易姓革命), 즉 천명=민의에 기초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청조의 판도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 의
미에서 마오의 사회주의는 애초부터 ‘중국적 특색을 갖는 사회주의’인 것
이다. 왕조의 교체기에는 반드시 농민, 유민의 반란이 있었고 이들의 지지
를 받는 토지개혁(균분화)을 내걸음으로써 새로운 황제가 나왔는데, 마오의
혁명도 이처럼 천명, 즉 민의에 기초해 있었고 청조의 판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가라타니는 마오의 혁명이 제국의 경험에 입각해있다고 보았다.
가라타니는 바로 이 두 가지 정통성 때문에 소련과 달리 1990년대에 중
국 체제가 붕괴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본다. 여기서 핵심 포인트는 중화인
민공화국이 다민족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에서 청조가 시행했던 정책을 계
승했다는 데 있다. 가라타니는 티베트와 위구르 등 주변을 번부로 끌어들
여 자치구로 만들고 우대와 원조를 했다고 보았다.022 하지만 마오가 스탈
린과 비교하여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와 비교했을 때 소수민족 우대정책을
쓴 것은 맞지만 청조를 잘 계승했느냐에 대해서는 토론의 여지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역사자료를 조금만 찾아보면, 개혁개방으로 자본주의가 들
어온 이후에야 비로소 소수민족 지역의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마오 시기의 소수민족지구 자치 문제를 이처럼 단순화해서
서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는 다분히 공산당의 시선으로
평가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덩샤오핑 정권이 경제성장에는 성공했지만 서로 다

330

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른 계급 사이에, 도시와 지방 사이에, 제민족 사이에 격차가 발생했고 그
러한 문제 때문에 소수민족의 독립 요구가 생겼다고 진단한다. 그런 후 그
는 다음과 같이 매우 결정적 발언을 하는데 이 부분이 가라타니의 중국 제
국론 중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023
현재 “중국에 필요한 것은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 고유한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국을 재구축하는 것이다. 만일 중국에 자유민
주주의적 체제가 만들어진다면 소수민족이 독립할 뿐 아니라 한족도 지역적인
여러 세력으로 분해되어버릴 것이다. 아무리 민주주의적이려 해도 그러한 사
태를 초래한 정권은 민의를 얻지 못한다. 즉 천명=민의에 기초한 정통성을 갖
지 못한다. 때문에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방향
을 취하는 것은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아도 어리석은 것이다.”024

가라타니는 중국에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만들어지면 소수민족은 물론
한족도 분열할 것이기 때문에 중국 일국 차원에서도 지배의 정당성을 갖
지 못할 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유익하지 못하다고 본다. 때문에 현재
의 중국 정부로서는 ‘제국의 재구축’이 제일 중요한 급선무이다. 그런데
가라타니에게 ‘제국의 재구축’을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 조건은 두
가지다.
“경제발전과 사회주의적 평등이다. 그러나 경제발전과 사회주의는 서로 근

본적 배반관계에 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않으면 다른 나라에 종속되고 왕
조로서 정통성을 잃는다. 다른 한편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계급적 지역적 불평
등이 생긴다. 그것은 다민족의 불평등으로 귀결되고 민족의 자결, 제국의 해체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331

를 가져온다. 이로써 왕조의 정통성을 상실하게 된다. 중국공산당은 정권을 장
악한 초기부터 이 모순된 두 가지 과제에 직면했다. 처음 10년간 현저한 경제
성장을 했지만 계급의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 제민족의 격차가 초래되었다.
이에 대해 마오는 ‘계속혁명’을 제창하고 급진적 평등화를 꾀했다. 그것이 ‘문
화혁명’이다. 이 ‘계속혁명’은 단순히 트로츠키 내지 마르크스주의자의 계속혁
명의 관념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에서의 역성혁명 전통에 근거한
것이다.”025

가라타니는 위에서 마오의 문혁을 격차 해소를 위해 평등을 추진했던
것으로 해석함으로써 그것이 민의에 기초한 것이었음을 우회적으로 주장
한다. 즉 문혁이 제국의 경험에 입각해 있었다는 것이다. 가라타니의 이런
해석에서 문제는 문혁이 일어나게 된 상황과 관련하여 당시의 국내적·국
제적 역학관계가 모두 거세되어버리고 마오의 선택은 모두 도덕적인 것
이 되어버린다는 데 있다. 마오의 혁명과 사회주의 경험을 온전히 중국의
전통 역사 시스템 안에서 해석하려다 보니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른다. 이는
제국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려다 나타난 문제겠지만 이러한 거대담론이
또 다시 당시의 역사적 팩트와 복합적 해석을 가로막는 것을 허용하면서
진행되는 것이라면 문제가 있다. 가라타니의 이런 해석에서 우리는 두 사
람의 강한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왕후이의 문혁에 대한 무조건
적인 긍정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의 현대를 당시 국제공산주의 등
다른 요소들을 모두 거세하고 전통 시스템 안에서 해석해야 한다는 미조
구치의 주장이다. 가지타니 카이(梶谷 懷)는 가라타니가 대약진이나 문화혁
명 등 마오시대에 있었던 참극이나 현재 심각도를 더해가는 민족 간의 대
립 등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데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332

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의도적으로 언급을 회피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이런 지점이 오히려 가
라타니의 주장에서 약점이 드러나는 곳이라고 지적한다.026
제국의 조건으로 앞에서 가라타니가 지적한 경제발전과 평등성의 문
제에서, 일단 중국이 어느 정도 경제발전에 의한 자본축적을 이루어낸 것
으로 본다면, 남는 문제는 평등성의 확보이다. 그러나 중국의 현실이 보여
주는 지표상의 불평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해
야 할 것은 지금의 중국 현실이다. 왕샤오밍은 빈부격차가 1949년 이래 현
재 가장 심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027 북경대학 중국사회과학조사센터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2012년 가계의 순자산보유액의 지니계수는 0.73에 달
하고, 1%의 부유층이 중국 전체 자산의 약 1/3을 보유하고 있다.028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능력이 아닌 ‘특권’이라는 데 있
다. 이러한 구도가 만들어낸 격차는 단순한 불평등이 아니라 시정되어야
할 ‘불공평함’으로 사람들의 눈에는 비쳐진다.029 이러한 불평등한 사회구
조의 변화는 그나마 사회구성원의 정치적 권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물
론 보통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는 것처럼 정치가 변화한다고 해서 경제
의 변화가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민주에 대한 의식 없이는 민
본조차 제대로 획득되기 힘들 것이다.
가라타니는 계속해서 중국 제국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현재 세계의 모
든 곳이 소규모의 국민국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EU의 형
성은 이런 점을 의식하여 ‘제국’의 원리를 회복하려 한 결과였다. 이제 EU
에 대응하여 세계 각지에서 블록이 만들어지고 있고, 그 대부분이 과거의
세계제국 아래 형성되었던 문화적 동일성에 기초하여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 아래 가라타니는 중국만이 오로지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으
며 현상태에 대한 깊은 자각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333

“중국만은 특히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청조라는 제국이 분절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규모에 있어서도 중국은 각지의 국가연합체를 초월해
있다. 중국에 필요한 것은 그 자체를 자각하는 것이다. 즉 국민국가의 관념을
넘어서 적극적 의미에서 ‘제국’을 창출하는 방향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030

이 서술 바로 뒤에 가라타니는 제국주의의 가공할 결과를 배치한다. 제
국의 원리를 갖지 않은 광역국가, 즉 헤게모니 국가는 반드시 제국주의가
되고,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와 몰락이 진행되면 이는 세계전쟁으로 발전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가지타니 카이는 아메리카를 네이션=국가의 연장으로 광역을 지배하
는 제국주의 국가에 지나지 않는다고 파악하며 전근대의 중국(중화제국)의
통치에서 선한 제국의 원리를 발견하고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에 그 재구
축을 기대하는 바로 그곳에서 가라타니 인식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말한
다.031 그는 그러나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선한 제국’의 원리 실현을 위
한 구체적인 달성 요건―국민국가 원리의 달성요건으로 근대적 헌정이나
의회의 성립이 주장되는 것에 대응하여―을 하나도 제시할 수 없다는 것
이라고 지적한다.032
필자가 보기에 가라타니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은 교환양식 B와 A
의 극복태로서의 D이다. 즉 이것이 바로 선한 제국의 원리이며 이는 정복
만 하고 동화시키지 않는 지배와 복종의 교환관계이다. 가라타니에게 세
계=제국은 그 제국 내의 공동체나 소국가 간 교역의 안전을 보장하는 시
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중국(제국)에서는 책봉체제와 조공체제로서 존재한
다. 이것들은 제국에서 종주국과 각 번령(藩領)·번역(藩域)의 지배관계, 또 번
령·번역 간의 상호관계와 동시에 교역적 관계를 보장하는 제국적 체제 원

334

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리였다.033 가라타니가 보기에 이 체제는 국민국가들로 구성된 자유민주주
의체제와 다르다. 관세 장벽이 없다. 자유교역이라는 미명하에 제국주의
가 타국에서 빼앗은 것은 주로 관세권이다. 그런데 가라타니가 현대중국
을 제국주의와 차별화하여 제국이라고 하는 것은, 다수의 이민족과 그 문
화공동체를 포괄하여 지배하고 있는 ‘중화제국’적 광역지배를 지속시켜온
중화인민공화국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고야스는 이 부분에서 현대중
국의 ‘제국’적 현상이 ‘제국’적 지배인지 ‘제국주의’적 지배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034
여기서 가라타니가 중국 사회의 성격을 무엇으로 보는지가 매우 궁금
해진다. 정치는 사회주의체제지만 경제는 신자유주의가 국가제도의 틀을
통해 전사회적으로 관철되고 있는 곳이 중국이다. 그렇게 본다면 현재의
중국의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에서 가라타니가 말한 제국의 원리인 교환양
식 B는 어떤 식으로 재맥락화되어 실현될 수 있을까.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역시 중국의 사회주의 30년과 개혁개방 30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
제가 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4. 지배의 정당성과 ‘근대적’ 가치의 긴장
중국의 제국 담론의 주체들은 한국을 포함하여 세계를 설득하기 위해
서는 중국에서 민주가 아니라 왜 제국인가라는 질문에 타당한 답을 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근대국가에서 지배의 정당성은 민주주의에서 찾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 중국에서 민주의 정치체제는 수립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정치적 요소가 강한 근대에도 지배자는 문화적 요소가 강한 왕조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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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탄생했던 카리스마적 ‘역사의 법칙’에 의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지배의 정당성은 바로 대일통(大一統)을 주내용
으로 하는 제국적 중화(Imperial China)를 달성하는 것이다.035 이것은 국민국가
시스템의 형성을 목표로 했던 중국 근현대 100년을 이해하려 할 때 매우
중요하다. 이 말은 중국에서 제국성의 전통은 2000년의 시공을 관통하는
고유의 구조와 논리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 이는 우리가 중국
의 지식인을 포함한 지배자층의 사상과 행동을 이해할 때도 중요하다. 신
해혁명으로 공화제가 시작된 이후에도 쑨원이 ‘왕도’를 그렇게 강조한 것
역시 바로 이 제국성의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중국이 패도가 아닌 왕도를
구비했기에 주변국이 자발적으로 조공을 하러 온다는 논리였다.
선후로 따지면 국가는 민주 이전에 존재한다. 만일 국가의 존재형태
가 애초부터 제국이었다면 그 제국도 민주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다. 중국
의 입장에서 보면 이 경우 국가의 민주의 문제 이전 단계에서 그 안정성의
기초를 문제 삼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대전제로 다민족으로 구성
된 ‘중화제국의 통일체’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접근하면 중화제국의 이
데올로기로서 중화주의를 상대화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는 별도로, 그것이
왜,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지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가 중요해진다. 즉 중국인이 중화주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존재론적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에 지극히 당연하다 할 수 있다. 따라서 우
리가 문제 삼아야 할 것은 그들이 그것을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 중화주의를 상대화해서 볼 수 있느냐의 여부이고 이 둘은 명확히 구분
해야 한다.
가라타니는 서구열강이 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 민족자결
이라는 이데올로기였다고 본다. 그런데 중국에서 민족자결을 실행하면 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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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조는커녕 명조도 성립할 수 없었다. ‘한족’ 그 자체가 이미 다민족이기 때
문이다. 때문에 청조가 무너졌어도 다민족을 통합한 ‘제국’은 유지하지 않
으면 안 된다. 청조 말기의 사상가들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036
예컨대 쑨원은 ‘제국’적 사고형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
을 했다. “우리 4억인은 매우 평화로운 민족일 뿐 아니라 매우 문명적인 민
족이다. 중화제국의 전통이 지켜져서 [明代에] 동남아시아의 소국들은 조공
하러 왔으며 중국에 귀화하고 싶다고 하였다. 이는 그들이 중국의 문화를
흠모하고 스스로 귀화를 원하는 것이다. 중국이 무력으로 그들을 압박한
것은 아니었다.”037 그는 예전 중국의 일부였고 언젠가 중국의 지배하에 돌
아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역으로 티베트, 몽골 외에 타이, 버어마, 부탄,
네팔 등 중국이 직접 통치하지 않았던 나라들을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확
실히 쑨원이 중국 왕조 시대의 다중형 제국구조 그 자체를 상상하고 있었
음을 보여준다.038 왕커의 다음 분석을 보면 쑨원같은 정치지도자나 지식
인들이 왜 그렇게 제국성에 집착했는가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중화제국 지배의 문화적 확증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변민족에

대한 지배’라고 하는 시점이 빠져서는 안 된다. 중국어에서는 ‘고금동서’라고
하지 않고 ‘고금중외(古今中外)’라고 한다. 중국에는 ‘천하’의 공간을 지리적으로
중·외로 구분하는 독특한 사고방식이 존재했다. 그 ‘외(外)’는 외국이라기보다
오히려 다른 가치관과 사고형태를 가진 이문화집단을 가리킨다. 중화왕조와
중화제국의 공간적 구조는 다르지만 그 구별은 ‘외’라고 하는 이문화집단을 포
함하느냐의 여부, 특히 동서남북의 사방을 포섭하느냐 마느냐로 결정된다. 모
든 중화왕조가 제국적 구조를 목숨을 걸고 구축하여 중화제국으로 변신하려
노력한 이유는 천하사상의 틀로 자신의 정당성이 찾아지기 때문이다. 즉 주변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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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지배라고 하는 사실은 ‘제국’으로서 지배하는 주변민족의 지역으로부터
정치적·경제적 이익을 얻는다기보다 ‘왕조’ 권력이 정당성을 갖는지 여부를 중
국 자체의 문화적 가치관에 의해 확증받아야 하는 것이었다.”039

왕커의 이 기술은 중화제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중’과 ‘외’로 구성되
어 있으며 이 구성이 두 가지 신화, 즉 ‘중화제국이라는 통일체’와 ‘제국의
밖에 대한 우월성’에 의거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제국성을
확보하는 것이 지배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모든 중화왕조
는 예외 없이 제국을 목표로 했으며 제국성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중화왕조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은 ‘대일통’, 즉 천하통일로 얻어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다. “중국에서 지배의 정당성은 지배
자의 민족적 출신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대일통’을 실현한 왕조야말
로 ‘정통’의 중화왕조라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다. 그리고 ‘정통’의 근원은
‘천’이라는 ‘중화’적 정치신화에서 유래한다. 즉 천이 하나, 천하가 하나, 천

자도 한 사람이다. 때문에 천하의 민은 모두 천이 선택한 자신의 대변자인
천자에 복종해야 한다.040 동중서(董仲舒)는 이른바 ‘천 → 천하 → 민 → 천
자’, 반대로 ‘천 → 천자 → 민 → 천하’로 이루어지는 천하사상에 의한 지배
정당성 탄생의 사이클을 완성함으로써 중화제국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완
벽하게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다. 동중서에 의해 완성된 천인감응설은 천
이 자연질서뿐 아니라 인문질서도 주재하기 때문에 인간세계의 선악에 관
련되지 않을 수 없다.041
가라타니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제국의 사상을 기초한 인물로서 동중
서에 주목한다. 그가 천명 관념으로 왕조의 정통성을 만들었으며 다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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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사회를 포섭하고 통치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인 제국의 원리를 만들었고
이것이 이문화를 포섭하는 시스템이 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 상식적
인 이야기지만 이것이 관료제의 기반을 확립했고 왕조가 무수히 바뀌어도
유교적 관료제는 살아남아 이전의 시스템을 복원하는 기제로서 역할해왔
다는 점에 주목한다.042 이를 통해 가라타니는 현대중국에서 제국의 원리
가 재구축되는 데서 그 내러티브로서의 유학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유교를 내용으로 하는 ‘제국’의 통치원리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제국이라는 지배의 정당성과 ‘근대적’ 가치의 긴장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제국은 그 안에서 근대극복의 어떤 요소를 발
견할 수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위계를 상정할 수밖에 없는 구
조이다. 도일(Doyle)에 의하면 제국이란 두 개의 정치체 사이에서 결탁된 지
배와 피지배의 관계 혹은 관계의 시스템이다.043 제국적 지배라고 하는 것
은 국가 간의 비대칭적인 권력 행사의 한 형태이다.044 중화제국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천자를 정점으로 하는 유사봉건관계, 즉 조공관계
였다는 점045에서 근대 민족국가의 개념과 거리가 있다. 독일 학자 뮌클러
에 의하면, 앞의 서론에서 지적한 제국의 특징 말고도 여러 가지 비대칭
성이 제국의 경계를 국가의 경계와 구분한다. 제국은 자신과 동등한 존재,
즉 동등한 권리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는 이웃을 가지지 않는다. 그 이웃
국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중심부에 대해 뚜렷하게 의존적이다.046
물론 제국론이 근대 국민국가 간의 분쟁이나 관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환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은 근대국가가 힘들여 획득한 절차적·형식적
평등이 무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형식적
평등이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그것을 뛰어넘어 실제적 평등을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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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유우조(山本有造)에 의하면 제국은 기본적으로 이민족을 통치·
통어하는 정치 시스템으로서 기능한다. 따라서 제국은 다민족적 정치공동
체이고 그 내부는 많은 경우 에스닉 내셔널한 상위를 가지고 복수의 영역
으로 분할되어 그것들 사이에 계층적 질서가 형성되어 있다. 복합적이고
계층적인 제국은 균질적이고 비계층적인 주권국가인 국민국가와는 다른
원리에 기초한 국가 시스템이다. 제국 권력은 안을 향해서는 중앙집권이
라고 하는 구심성을 보여주지만, 밖을 향해서는 영토 팽창이라는 형태로
확산성을 보여주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제국은 본질적으로 자기중심적이
면서 자기팽창적인 존재이고 그 최주변부는 ‘미개’와의 사이에 애매한 프
론티어를 형성한다. 따라서 제국의 대외관계는 본질적으로 복수의 주권국
가가 상호인정하는 ‘국경’에 의해 그 경계를 설정하는 국민국가 시스템과
는 다른 원리에 의해 규율된다.047 제국의 확장과 유지는 일반적으로 ‘문명
화 사명’ 담론에 의해 이루어진다. 중국의 경우에도 근대 이전에는 화이사
상에 근거한 문명화 과정이 존재했고, 근대 이후에는 서구의 사회진화론
을 받아들이면서 문명화의 강도가 좀 더 강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소수
민족의 국민화 작업에서 확연히 드러났다.048
하지만 과거 조공체제 안에 ‘상황의 정당화 체계’라는 요소가 있었다고
해도 중국이 전통적으로 서방의 제국주의와는 다른 성격의 제국의 양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체제하의 제국 운영
방식에서도 그런 전통을 지키고자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러나 경
제력·군사력과 기술합리화라는 하드파워가 모두 구비되더라도 중국이 이
전과 같은 느슨한 형태의 제국성을 유지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대내외
적 변수와 상황의 제약성이 전통 시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상황에서 장담하기 힘들다. 더구나 동아시아는 EU와는 달리 규모의 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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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칭성이 너무 심하다. 규모의 비대칭성은 파워의 비대칭성과 관심의 비대
칭성을 가져올 수밖에 없고 그 외 다른 분야에서 비대칭성을 양산한다. 이
미 우리 생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경제분야에서 이 비대칭성
의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은 이미 시장경제의 깊숙한 곳에 진입해 있고
거기서 나타나는 문제가 너무도 많은 데다가 전근대 시기와 달리 미국이
나 유럽 등 복잡한 국제관계에 둘러싸여 있다. 국내적으로는 이미 교환양
식 C가 지배적이 되었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있다. 복잡한 국내
외적 상황에서 오는 제약성을 뚫고 가라타니가 말한 교환양식 B를 원형으
로 하는 변형된 지배와 보호관계가 어떻게 재구축될 수 있을까. 이런 모든
것을 다 고려했을 때 제국 일반의 성격, 즉 파워의 비대칭성에 근거하여
자기중심적이며 또 자기팽창적인 속성에서 중국이 과연 예외적일 수 있을
까.
이러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중국에서 ‘선한 제국’의 원리를 복원하고자
한다면 가장 큰 단위의 행위주체라 할 수 있는 당국체제가 그에 대한 의지
와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즉 응답형 민본을 실천하면서도 민의의 기입
공간에 대해 열린 사고를 해야 한다. 중국의 현실에서 민본과 민주의 문제
를 서로 대립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지배의 정당성과 민주주
의도 양자를 대립시켜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로 보아서는 안 된
다. 이 두 원리는 긴장관계 속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지배의 정당성도 민주도 확대될 수 있다.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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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근대 극복론에 포획된 제국론
이 글은 가라타니 고진의 제국론을 중심으로 한 최근 일본에서의 갑론
을박을 필자가 파악하는 범위 안에서 살펴보았다. 일본에서는 벌써 소련
이 망하고 나서 제국론 연구가 시작되었으니 이미 30년이 되어간다. 그만
큼 제국론의 축적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 자체가 제국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관적 조건이 있었겠지만, 또한 중
국의 부상으로 제국에 대한 기획 연구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는 20세기
초반 아시아주의 논의가 중국에서는 거의 없었던 데 비해 일본에서 번성
했던 것을 기억하면 이해가 쉽다. 중국은 그 자체로 아시아를 포괄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럴 필요성을 못 느꼈겠지만, 일본은 아시아주의를 담론화함
으로써만 아시아의 맹주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라타니의 제국론 또한 100년 전과는 달리 역전을 당한 입장, 즉 중국
의 부상이라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의식한 담론이며, 그런 면에서 제국의
구조를 중심, 주변, 아주변으로 나누고 그 지정학에 주목했다. 그리고 브
로델의 견해에 근거해서 세계=제국과 세계=경제를 구별하고 세계=경제는
세계=제국의 주변, 더욱 정확히 말하면 아주변에서 성립했다고 본다. 그것
이 유럽에 세계=경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전했던 이유이다.049 그리스
는 이집트나 페르시아라는 제국의 아주변이었다. 유럽은 로마제국의 아주
변이었다. 주변부는 중심에 종속되지만 아주변은 그렇지 않다. 아주변은
선택적 태도가 가능하다.050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이라는 제국
의 아주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선택적일 수 있다.
가라타니에 의하면 세계=제국에 있어서 주변은 중심에 의해 정복되고
흡수된다. 주변은 주로 중심에 동화되지만 중앙이 주변에 침입당해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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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변은 제국=문명과 직접 접하는 주변과 달리 제
국=문명을 선택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지역이다. 이 말은 주변의 경우 중
앙으로부터의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한다. 중국을 중심
으로 했을 때 한국은 주변이고 일본은 아주변이라는 것을 여기서 굳이 확
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중심, 주변, 아주변이라는 지정학적 구조
에서 주변과 아주변은 ‘중심’인 중국 문명의 변화와 어느 정도 운명을 함
께해야 한다. 인접한 ‘주변’인 한국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재와 미래에도
어떤 식으로든 ‘중심’인 중국과 직접적 관계맺기를 통해 살아가야 한다.
결론을 대신할 이 장에서는 가라타니의 제국론을 일본 지식인의 중국
인식이라는 계보 속에서 간략하게 짚어보고 중국의 제국을 국민국가의 대
안으로 제시하려는 그의 문제의식이 근대극복론에 포획되어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자 한다. 일본 지식인의 중국인식을 도식화하면 좌우파 양극의
오리엔탈리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의 지식인들이 지적하는 바
와 같이 일본의 좌파 계열 지식인의 중국인식에 대해 보다 깊이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후 일본 지식인이 타자로서의 ‘중국’을 어떻게 체험했는가, 그
중에서도 특히 ‘문혁’을 어떻게 체험하고 그것을 어떻게 마주했는가를 알
아야 한다.051 가지타니 카이는 가라타니가 중화제국의 구성 원리를 높이
평가하는 배경에 미조구치의 중국관이 있다고 보고 있다.052 미조구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중국을 국제공산주의라는 차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전통적 역사 시스템 속에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053 그는 서방의
근대와 다른 중국의 독자적 근대가 있다고 본다.
미조구치의 중국관은 비단 일본의 후배 학자에게만이 아니라 왕후이
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왕후이는 『사상공간으로서의 중국』이라는
책의 일본어 번역본 자서에서 일본의 중국 연구자와의 교류로부터 자신이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343

영향을 받았음을 밝힌 바 있다.054 고야스 노부쿠니는 왕후이가 중국사의
내재적 이해에 바탕한 자기인식상(自己認識像)의 구성에서 미조구치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고야스에 의하면 미조구치와 그의 영향권 아
래 있었던 소위 혁신적 중국 연구자들은 중국 연구에서 방법적으로 ‘외부
성’을 부정하고 내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로부터 미조구치에서 보이는 것처럼 중국인보다도 훨씬 깊은 ‘중국적인
것’의 인식자, 혹은 중국적 동일성의 인식론적 구성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고 주장한다.055 이렇게 본다면 가라타니의 『제국의 구조』는 미조구치의 중
국관을 베이스로 하여 최근의 왕후이와의 교감을 통해 좀 더 강화되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2007년에 나온 『중국사상사』 재판에서 미조
구치의 다음 발언은 이를 뒷받침하기에 족하다.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
은 소위 국민국가를 목표로 하여 건국되었다고 해도 좋지만 중국이 ‘국민
국가’을 표방하는 것이 아시아의 주변국에 있어서 바람직한 것인지 어떤
지는 21세기 아시아에 있어서 작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056
혼마 츠기히코(本間次彦)라는 학자는 “미조구치는 도래해야 할 중국학에
스스로 일보를 내딛었다는 것을 사명으로 느끼고 있었고 그것이 그를 예
언자적으로 만들었다. 또한 과격하게도, 반시대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중국학 원리주의자가 되었다”라고 평가하면서도 고야스의 의견에
조심스럽게 단서를 붙인다. 미조구치가 전개하는 중국의 역사인식론은 그
대로 현대중국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변증론이라는 고야스의 평가057에 대
해, 혼마는 “미조구치가 증명하려 한 것은 ‘현대중국의 정당성’ 그 자체라
기보다는 ‘우리의 중국학’이 제시하는 ‘현대중국’ 상(像)의 ‘정당성’이었던
것처럼 생각된다. 다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가설적 사실’로서이다”058라고
말했다.

344

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그런데 사실 일본의 좌파 지식인의 중국을 주내용으로 하는 아시아의
식의 역사적 연원은 매우 깊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해온 바와 같이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한 속죄의식에서 비롯된다. 그 속죄의식은 주로 ‘침
략일본’의 비도덕성과 ‘혁명중국’의 도덕성 사이의 대립으로 이미지화되
어 인식되었고, 그 기원을 만든 지식인의 자리에 바로 다케우치 요시미(竹
內好)가 있다. 다케우치의 경우 ‘침략일본’의 비도덕성을 ‘혁명중국’의 도덕

성으로 구제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강하게 깔리면서 그의 중국의식이 강
화되는 측면이 있다. 이 대립구도에서는 일본의 비도덕성이 강화될수록
중국의 도덕성도 강화되어야 한다. 사실 일본의 좌익이 직면한 아포리아
의 근원은 바로 이 양자의 함수관계에서 비롯된다. 일본 좌파 지식인의 중
국인식은 중국 자체로서보다는 이처럼 일본인식의 종속변수로서 존재한
다. 일본의 도덕적 구제라는 목적에 종속되어버린 중국인식, 즉 자신들의
좌절된 ‘근대초극’의 희망을 중국의 사회주의, 그중에서도 문화대혁명의
이상에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상을 때에 따라서는 동아시아
문명론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중국은 일본의 도덕적 주체 형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그리고 반드시 도
덕적이어야 한다는 다케우치의 욕망이 지배하는 한에서 현실과는 동떨어
진 이상의 ‘중국’으로 재구성되어야 했다. 중국은 근대극복의 대안으로 존
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에게서도 중국이라는 제국은 미국이
라는 제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인식되는 한에서 이상화될 소지
를 다분히 안고 있다. 다케우치처럼 가라타니의 제국론도 그 안에 미제국
주의의 대안적 요인이 들어 있어야 한다는 과도한 목적성이 내재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일본의 우익에게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들 좌익에
게도 객관적인 학문적 분석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이상화된 중국은 의도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345

된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일부 지식인들에게 여과없이 받아들여져 중국의
자기인식을 가로막고 있다. 사실 역설적으로 중국 지식인들이 시도하고
있는 탈서구중심주의의 대응에서 딜레마는 오히려 담론 주체들이 자신들
의 눈으로 보는 중국을 통해 중국 내부에서 출구를 찾으려 하기보다는 일
본이나 서구의 좌파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중국 개념에 기대서 자기를 인
식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중국의 제국론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은 국가의 제도와 결합한 신자유주의 논리가 횡행하는 중국의 현실을 직
시하는 가운데 그것을 뚫고 ‘제국의 원리’가 어떻게 관철될 수 있을 것인
가를 설명해내야 한다. 현재 중국은 격차 문제, 소수민족 문제, 부정부패
문제, 생태 문제, 그리고 종교 문제 등 다원성과 공존의 문제를 위협할 수
있는 일들이 발생해도 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는 상황이다.
가라타니가 말하는 제국의 원리가 가치의 다원성이 지켜지는 가운데 공존
이 허용되는 사회를 상정하고 제시된 것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면 제
국론 안에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자신의 문제로 포용해서 논의할 것인
가를 고민해야 한다.
대안을 섣불리 말할 수 없는 시대에 중국의 제국론으로 국민국가의 체
제로부터 나오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단정하는 것은 20세기에 형성
된 근대극복이라는 ‘이념의 과잉’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
여주는 것이다. 가라타니는 중국의 제국론에 자신을 기탁함으로써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세계공화국의 논리적 파탄을 가져오는 결과를 초래했다
고 할 수 있다.
21세기 가치가 상실되고 위기가 팽만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문제의 원

점으로 돌아가 오래되었지만 새로운 문제인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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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보편적인 문제란 소여된 어떤 보편성이 아니
다. 끊임없이 자기부정을 통해 가까스로 담보되는 그런 보편성이다. 현재
적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지식인에게 필요한 것은 세상에 대한 책임이라는
우환의식의 과잉에 대한 반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자기가 처한 상황
을 명료하게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경란
현재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대 중국 사상을 전공했고, 중국의 유학 부흥 현상
과 동아시아 공존의 문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가 최근의 관심 주제이다. 대표논저로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중국 탈서구중심주의 담론의 아포리아―20세기 국민국가와 중화민족 이
데올로기의 이중성」 등이 있다.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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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세계사의 구조』, 도서출판b, 2012.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제국―평천하의 논리』, 책세상, 2015.
미조구치 유우조(溝口雄三), 『중국의 충격』, 소명출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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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 『제국』, 小花, 2014.
전인갑, 『현대중국의 제국몽』, 학고방, 2016.
조경란, 『국가, 유학, 지식인―현대중국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책세상, 2016.
강해수, 「다케우치 요시미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와 ‘조선’이라는 토포스」, 『일본공간』
18호.

조경란, 「중국 탈서구중심주의 담론의 아포리아―20세기 국민국가와 중화민족 이데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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溝口雄三·池田知久·小島毅, 『中國思想史』, 東京大出版部, 2007.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石井知章, 『中國革命論のパラダイム轉換』, 社會評論社, 2012.
汪暉, 村田雄二郞 외 譯, 『思想空間としての現代中國』, 岩波書店, 2006.
子安宣邦, 『帝國か民主か―中國と東アジア問題』, 社會評論社, 2015.
子安宣邦, 『日本人は中國をどう語ってきたか』, 靑土社, 2012.
柄谷行人, 丸川哲史, 「帝國·儒敎·東アジア」, 『現代思想』 2014年 3月號.
梶谷 懷, 「‘帝國論’の系譜と中國の擡頭―‘舊帝國’と‘國民帝國’のあいだ」, 石井知章 編,
『現代中国のリベラリズム思潮』, 藤原書店, 2015.
本間次彦, 「もう一つの近代と溝口中國學の改革開放」, 『現代思想』 2014年 3月號.
山本有造, 「‘帝國’とはなにか」, 山本有造 編,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003.
王柯,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の視線」, 山本有造 編, 『帝國の硏究』, 名古
屋大學出版會,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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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001 가라타니는 왕후이(汪暉)의 책 『世界史のなかの中國』(靑土社, 2011)의 일본어판 서

평(『아사히신문』 2011. 3. 6)에서 왕후이를 “가장 신뢰할 만한 중국의 사상가”라고 하
면서 그가 제시한 ‘탈정치화’라는 개념(이 개념은 이탈리아의 좌파 사상가 알렉산드
로 루소의 용어이다)을 높이 평가했다. 石井知章, 『中國革命論のパラダイム轉換』,
社會評論社, 2012, 266~267쪽.
002 미조구치 유우조, 『중국의 충격』, 소명출판, 2009.
003 子安宣邦, 『帝國か民主か―中國と東アジア問題』, 社會評論社, 2015.
004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제국―평천하의 논리』, 책세상, 2015, 30~34쪽.
005 이 글의 서론은 최근 나온 필자의 저서 『국가, 유학, 지식인―현대중국 보수주의와 민

족주의』(책세상, 2016) 서문의 문제의식과 동일하다.
006 한국에서도 중국 관련 제국론을 펼치는 논자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백영서(『핵심현

장에서 동아시아를 다시 묻다』, 창비, 2013)와 전인갑(『현대중국의 제국몽』, 학고방,
2016), 이삼성(『제국』, 小花, 2014) 등이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지면관계상 이들을

다루지 못했다. 이후 왕후이를 중심으로 한 제국론을 다룰 때 함께 검토할 것이다.
007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257~258쪽(이 논문을 쓸

당시에는 이 책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본어 원문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다).
008 위의 책, 102쪽. 이런 인식은 가라타니 고진과 대담한 중국 연구자 마루가와 데츠지

(丸川哲史)도 비슷하게 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는 복수(複數)의 제국이 존재하고 그

복수의 제국끼리 비교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그럼으로써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
엔탈리즘』에서 만들어놓은 인식론적·존재론적 분할을 동요시킬 필요가 있다고 본
다. 柄谷行人, 丸川哲史, 「帝國·儒敎·東アジア」, 『現代思想』 2014年 3月號, 31쪽.
009 子安宣邦, 『帝國か民主か―中國と東アジア問題』, 社會評論社, 2015, 64쪽.
010 가라타니에 의하면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진행되면 반드시 계급격차 등 여러 모순

이 생겨난다. 그러면 국가는 그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규제나 원조로 그 모순을 완화
시키려 한다. 가라타니는 이런 체제를 자본=네이션=스테이트라 부른다. 柄谷行人,
11쪽.
011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1~13쪽.
012 위의 책, 13~14쪽.
013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세계사의 구조』, 도서출판b, 2012, 33쪽.
014 위의 책, 40쪽.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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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73쪽.
016 위의 책, 24~25쪽.
017 위의 책, 86쪽.
018 한 연구자에 의하면 ‘캔톤 시스템’처럼 자유로운 무역이 이미 17세기 명 말기부터 행

해질 여지가 생겨나고 있었다고 한다. 이는 서양 제국을 대상으로 조공적인 의례를
동반하지 않는 무역이 꽝조우에서 일찍부터 행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의
자유무역’을 실현한 청조의 통상질서를 ‘조공 시스템’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대해서는 근년 많은 전문가로부터 비판적인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籠谷直入, 「十九
世紀アジアの市場秩序」, 籠谷直入·脇村孝平 編, 『帝國とアジア· ネットワーク―長

期の十九世紀』, 世界思想社, 2009, 11쪽(梶谷 懷, 「‘帝國論’の系譜と中國の擡頭―‘舊
帝國’と‘國民帝國’のあいだ」, 石井知章 編, 『現代中国のリベラリズム思潮』, 藤原書
店, 2015, 375쪽에서 재인용).
019 이에 대해서는 조경란, 「중국 지식인의 현대성 담론과 아시아 구상」, 『역사비평』 2005

년 8월 참조. 왕후이의 이런 주장을 일본의 이시이 토모아키(石井知章)는 왕후이 레
토릭에 잠재된 전근대 은폐의 논리라고 비판한다. 石井知章, 『中國革命論のパラダ
イム轉換』, 社會評論社, 2012, 266쪽.
020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03~104쪽.
021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311쪽.
022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69~170쪽.
023 가라타니를 비판하는 데 일본 학자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학자도 가세했다.(강해수,

「다케우치 요시미의 ‘방법으로서의 아시아’와 ‘조선’이라는 토포스」, 『일본공간』18

호). 하지만 가라타니가 제국의 재구축을 위해 필요조건으로 제시하는 경제발전과
평등에는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024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71쪽.
025 위의 책, 170쪽.
026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308~309쪽.
027 王曉明, 「百年轉型之社會焦慮」, 『當代文化硏究』 2011. 10. 17.
028 趙婀娜, 「報告称我國頂端1%的家庭占有全國三分之一以上財産」, 『人民網』 2014年 7

月 26日(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246에서 재인용)
029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248쪽.
030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72쪽.
031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306쪽.
032 위의 책, 309쪽.
033 子安宣邦, 『帝國か民主か―中國と東アジア問題』, 社會評論社, 2015, 74쪽.

350

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034 위의 책, 75쪽.
035 王柯,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の視線」, 山本有造 編,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003, 220쪽.
036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62쪽.
037 손문, 『삼민주의』 중에서 ‘민족주의’ 제4강, 1924.
038 역사상 중화제국은 구조상에서 정치, 문화, 그리고 지역적으로 ‘多重型’과 ‘多元型’이

라는 두 종류의 유형으로 구분된다. 한인 지배에 의한 중화왕조는 ‘일원적 천하’, ‘삼
중적 구조’, ‘주변의 四夷’라고 하는 세 가지 요소를 구비한 제국구조를 지칭한다. 이
민족 지배에 의한 중화왕조는 스스로를 정통 중화왕조라 주장하면서도 민족적 성격
을 버리지 않고 ‘중화’ 외에 정치적 자원으로서 순수한 ‘민족’의 근거지를 보지하려
하는 다원적 제국구조를 목표로 했다. 王柯,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
の視線」,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003, 200~201쪽.
039 王柯, 「帝國と民族―中國における支配正當性の視線」,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

版會, 2003, 219~220쪽.
040 위의 글, 206쪽.
041 하지만 동중서는 천의 윤리적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미신화했기 때문에 후한의

王充같은 합리주의자에게 신랄한 공격을 받았다. 민두기, 「중국의 전통적 정치질서

의 특질」, 『중국근대사론』, 지식산업사, 1976, 96쪽.
042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112~113쪽. 가라타니는 유

학에 주목하면서 논조가 약간 바뀐다. 2010년에 나온 『세계사의 구조』(402쪽)에서는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지 않았다. 경제적 우위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그 사이에 다른 무언가로서 유학을
발견했기에 2014년에 나온 『제국의 구조』에서는 이제 중국이 헤게모니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단언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그가 다른 곳에서 제국을 제국주의와
차별화하여 중국과 등치시켰던 것과는 어긋나 있다.
043 야마모토는 이 논의를 Doyle, Michael, Empires, Cornell University Press, 1986에서 가져온

다. 山本有造, 「‘帝國’とはなにか」, 山本有造 編,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003, 5쪽.
044 위의 글, 6쪽.
045 민두기, 「중국의 전통적 정치질서의 특질」, 『중국근대사론』, 지식산업사, 1976, 91쪽.
046 뮌클러 지음, 공진성 옮김, 『제국―평천하의 논리』, 책세상, 2015, 30~34쪽. 뮌클러는

바르샤바 조약기구에서의 소련과 나토에서의 미국의 지위를 제국과 패권으로 구분
한다. 그리고 그는 제국의 힘을 태양과 위성들에 비유하는데, 이는 군사적 속성이기
보다는 경제적 속성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중국은 ‘제국의 원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가라타니 고진의 『제국의 구조』에 대한 비판적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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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7 山本有造, 「‘帝國’とはなにか」, 山本有造 編, 『帝國の硏究』, 名古屋大學出版會, 2003,

10~11쪽.
048 조경란, 「중국 탈서구중심주의 담론의 아포리아―20세기 국민국가와 중화민족 이데

올로기의 이중성」, 『중국근현대사연구』 68집, 2015년 12월.
049 柄谷行人·丸川哲史, 「帝國·儒敎·東アジア」, 『現代思想』 2014年 3月號, 31쪽, 柄谷行人

의 발언.
050 柄谷行人, 『帝國の構造―中心·周邊·亞周邊』, 靑土社, 2014, 77쪽.
051 梶谷 懷, 『日本と中國, ‘脫近代’の誘惑』, 太田出版, 2015, 311쪽.
052 위의 책, 307쪽. 가라타니의 아시아적인 것에 대한 재평가의 배경에는 전전·전후 일본

마르크스주의의 주류를 형성했던 강좌파에 대한 반발이 있다고 본다.
053 미조구치 유우조, 『중국의 충격』, 소명출판, 2009, 36~37쪽. 왕후이는 미조구치와 결

론에서는 비슷하지만 국제공산주의에서 중국의 역할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차이
가 있다.
054 汪暉, 村田雄二郞 외 譯, 『思想空間としての現代中國』, 岩波書店, 2006, 서론.
055 子安宣邦, 『帝國か民主か―中國と東アジア問題』, 社會評論社, 2015, 30쪽.
056 溝口雄三·池田知久·小島毅, 『中國思想史』, 東京大出版部, 2007, 234쪽.
057 子安宣邦, 『日本人は中國をどう語ってきたか』, 靑土社, 2012, 304쪽.
058 本間次彦, 「もう一つの近代と溝口中國學の改革開放」, 『現代思想』

2014年 3月號,

176~177쪽.

접수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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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16 · 2016 가을

수정 2016-08-12

게재확정 2016-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