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성. 2017.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내재된 서구중심주의 비판
‘Decentered Subject’, or the emergence of the ‘Consuming Subject’ – Critique on the Western-Centrism inherent in
Postmodern Feminism 저자
(Authors)

최일성
Choi, Il Sung

출처
(Source)

정치사상연구 23(1), 2017.5, 31-49 (20 pages)

발행처
(Publisher)

한국정치사상학회
Korean Society For Political Thought

URL

http://www.dbpia.co.kr/Article/NODE07165033

APA Style

최일성 (2017).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정치사상연구, 23(1), 31-49.

이용정보
(Accessed)

한서대학교
203.234.78.***
2017/05/24 09:44 (KST)

The Korean Review of Political Thought 23(1), 2017.5, 31-49 (20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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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내재된 서구중심주의 비판 * 1)

최일성
한서대학교

‘주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페미니즘의 영역 안팎에

적 시각 속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서 다양한 수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

사회이론가들에게 매력적인 언술로 다가오는 ‘탈중

다. 물론 억양과 논조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이론

심화된 주체’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설이 실상

의 차원에서 그 비판은 아마도 ‘해체’를 통한 ‘해방’이

은, 혹은 적어도 사회이론의 수준에서는, 그러한 주

‘무엇을 의미하는가(인식론적 차원)’ 그리고 그것이

체의 해방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옥죄

‘의미 있는 사회변혁을 유인하는가(사회이론적 차원)’

고 억압하는, 따라서 기존의 서구중심적 ‘주체/타자’

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의 위계적 이항대립을 해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고

일부의 학자들─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을 위시하

히 하는 서구중심적 기획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드러

여─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포스트모더니

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즘의 ‘주체’에 관한 가정을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주제어: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모던 페미니즘, 모더니즘, 주체, 탈중심화된 주체, 신체적 주체, 소비주체, 욕망

I. 서론: 해체와 해방
사회이론들 가운데 ‘포스트모더니즘’1)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아마도 페미니즘
일 것이다. 사실 페미니즘은 현실 사회의 변혁에 관여하기 때문에 거대담론의 해체를 주장하는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4S1A3A2043763)
1)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문명사가
토인비(A. Toynbee)가 역사의 연구(1934~39)에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적 혼란상을 두고 사용한 말인
데, 이것이 데리다(J. Derrida)에 의해 주창된 이른바 ‘해체주의’의 이론틀과 결합되면서 근대성에 대한 비판담론으
로 정착된 것이다(영 2008, 109). 이 이론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비판이 깔려 있으며, 이것이 확대되어 서구
적 근대성, 즉 ‘모더니즘’에 대한 해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학자들에 따라 분석의 대상과 관점이 상이하
겠지만 이러한 입장을 수용하는 이들은 모더니즘으로부터 벗어난 탈중심, 탈경계 그리고 의미의 비결정성과 불확
실성 등과 같은 주요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흔히 ‘포스트모더니스트’로 분류되고 있다.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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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더니즘과 상충관계에 놓일 수 있다. 그러나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주체’의 문제와 관련
하여 그것의 역사성, 억압성, 보편성의 신화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연대를 모색하기도

한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 물론 그들이 전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그들이다. 본론에서 보다 자세히 다루겠지만 이들은 기존의 페미니즘이 주
로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성성’이라는 인위적인 개념에 의존하였고, 따라서 여성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차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무관심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주체들 사이의 차이와 이질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성성이라는 개념을 대신하여 포스트모더니
즘의 해체관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이동수 2004, 49-50). 예를 들어 크리스테바(J.
Kristeva)는 “‘여자’는 ‘존재’할 수 없다”2)고 하면서 ‘남성/여성’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대한 해체
를 주장하며, 스피박(G. Spivak)은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정한 한계를 지닌 것은 분명하지만 ‘중

심/주변’의 경계를 해체한다는 측면에서 젠더의 위계를 문제 삼는 페미니즘에 유용 그러나 궁

극적으로 그녀의 논의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있다(스피박 2003, 164-194) 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김경섭 2008, 118-124). 한편 식수(H. Cixous 1975; H. Cixous & C. Clément
1975)는 기존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남성중심주의적 상징체계를 해체하고 다원성과 다의성이

보장되는 새로운 인식론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여성적 글쓰기’(L’écriture féminine) 으로의
여정을 제안한다.
사실 이론의 영역에서 ‘주체’ 개념은 중세의 신적 세계관을 문제 삼기 시작한 이른바 ‘모더
니즘’의 태동과 함께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주체’ 개념이 홀로 독립적으로 고
민되어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로 그것의 상대개념, 즉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혹은
‘타자’의 요청 속에서 그래왔다. 이러한 사고의 충실한 기획은 17세기 철학자 데카르트(R.
Descartes)에게서 발견된다. 그는 사유적 존재(res cogitans)로서의 ‘영혼’과 연장적 존재(res

extensa)로서의 ‘물체’라는 ‘영혼/물체’의 상대성에 대한 이원론적 실체관을 자신의 철학적 토대
로 삼았다(홍경실 2004, 218). 이를 바탕으로 그는 영혼에게 능동성을, 물체에게 수동성이라는
상대적이고 대립적인 본질을 부여한다. 영혼과 물체라는 두 가지 실체에 관한 데카르트의 이원
론은 인간의 경우 ‘이성/신체(감성)’라는 이른바 ‘심신이원론’으로 연장된다. 그에게서 인간의
주체성은 능동적 사유의 본질인 ‘이성’에게, 반면 타자성은 영혼의 수동적 껍데기에 불과한 ‘신
체’에게 할당되는바, 양자의 개념은 서로의 관계적 대립적 위상 속에서, 혹은 상대의 개념을 필

2) Julia Kristeva, “Woman Can Never Be Defined”; 캐롤린 제이 알렌, “페미니스트 비평과 포스트모더니즘”, 이소영・
정정호 공편,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 새로운 문화 정치학을 위하여, 한신문화사, 1992, 186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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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연구 제23집 1호, 2017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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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으로 요청하면서 각자의 충실한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영혼/물체’ 혹

은 ‘이성/신체’의 대립에 대한 이분법적 원리 속에서 모든 실체 신의 영역을 포함하는 를 지
배하는 법칙, 즉 ‘변함없는 계율’ 혹은 ‘영원한 진실’을 마련하고자 한다(이환 1993, 241-242).
고전적 모더니즘은 이러한 ‘주체/타자’의 이원론에 보편성의 가치를 부여해 왔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주체’의 영역에서 일반적으로 여성, 유색인, 비서구의 영역은 제외되어 왔
던 것이 사실이다(스피박 2003; 모한티 2005, 329-371). 그러므로 모더니즘의 정치적 역학은 주
변적인 요소들, 즉 타자성을 배제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이유로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것을 제안한 것이
고, 이를 바탕으로 모더니즘에 만연한 보편성 가설을 뒤집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면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듯이 ‘타자’ 역시 그것의
타자, 즉 ‘주체’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나 타자의 개념이 이미 상대개념에 필연적으로 혹은 불가피하게 억압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축
하는 것이다. 따라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그것의 핵심 개념인 타자가 ‘해체’를 통해 ‘해방’에 이
를 수 있다는 주장은 사실은 모순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모순을 논증하는 것, 그리고 그 모

순이 인도하는 결과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가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 글의 핵심적
인 과제가 될 것이다.
‘주체’의 문제와 관련하여 페미니즘의 영역 안팎에서 다양한 수준의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억양과 논조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이론의 차원에서 그 비판은 아마도
‘해체’를 통한 ‘해방’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인식론적 차원)’ 그리고 그것이 ‘의미 있는 사회변화
를 유인하는가(사회이론적 차원)’의 문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특히 포
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주체의 해체에 관한 가정을 ‘서구중심
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속에서 다뤄보고자 한다.3) 그것은 구체적으로 사회이론가들에게 매
력적인 언술로 다가오는 ‘탈중심화된 주체’에 대한 그들의 가설이 실상은, 혹은 적어도 사회이

3) 사실 서구중심주의는 다층적인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개념이다. 서구중심주의의 개념적 다층성에 대해서
는 특히 강정인의 두 논문, 즉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시론적 고찰(2000)”과 “서구중심주의의 이해: 용어 및 개념 분
석을 중심으로(2003)”를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는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개념적 논쟁보다는 그것을 관통하고 있
는 정치사상적 문제의식에 주의를 집중하고자 하는데, 그것은 바로 서구의 문화(문명)가 인류의 역사발전단계에
최고의 단계에 도달했으며 따라서 그것이 모든 문화(문명)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체계로 이해된다(월러스
틴 2008, 64-65). 본고는 특히 오늘날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후기자본주의적 문화현상’과 관
련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이 그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정당화하고 있다는 제임슨과 하비의
논지(특히, 하비 1994, 87-93 참고)를 토대로 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서구중심성을 문제 삼고자 한다.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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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의 수준에서는, 그러한 주체의 해방으로 이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옥죄고 억압하는,

따라서 기존의 서구중심적 ‘주체/타자’의 위계적 이항대립 특히 ‘서구/비서구’의 위계적 이항

대립 을 해체하기보다는 공고히 하는 서구중심적 자본주의의 논리, 즉 오늘날 서구사회를 중
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후기자본주의 문화논리’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이
될 것이다.

II. 해체를 통한 해방 기획: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의 등장
20세기 말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기존 질서의 불평등한 관계를 문제 삼아 왔던 일군의

페미니스트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은 각자의 영
역에서 ‘해체’를 통한 ‘해방’의 기획에 동참하였다. 사실 그 동안 페미니즘은 여성계 안팎에서 다

양한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특히 남성중심적인 문화에서 만들어진 여성의 정체성 여성성

이 보편적이고 단일하다는 가설을 그대로 받아들인 채, 단지 그것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탈바꿈시킴으로써 사회변혁에 이르기를 요청했다는 것이다(프레이저 & 니콜슨 1993,
128-140). 이론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의식은 두 가지 문제제기로 세분화될 수 있다. 하나는 본
질주의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로, 모더니즘이 ‘타자로서의 여성’을 정의할 때 동원했던 ‘자연으
로서의 여성’, ‘신체로서의 여성’, ‘감정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본질주의적 시각 그 자체를 문제
삼기보다는, 단지 그것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전환하는데 만족하는, 따라서 기존
의 ‘주체/타자’의 이원론을 지탱하는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오히려 페미니즘이 강화하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그것이다(보르도 1992, 320).다른 하나는 근본주의 시각에 대한 문제제기로, ‘남성/
여성’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종, 계급, 문화, 성적 취향 등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비판이 그것이다(박이은실 2010, 261).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에게 ‘해체’는 이 두 가지 딜레마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처
럼 보였다. 먼저 생물학적 본질주의를 다루는 그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초도로우(N.
Chodorow)의 모성의 재생산(1978)에서 절정을 이루는 여성성에 대한 찬미주의는, 오히려
정반대의 의미에서 ‘타자로서의 여성’을 강조해 왔던 모더니즘만큼이나 본질주의적이라는 문
제의식을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보기에 초도로우와
같은 급진주의자들이 당면한 문제는 여성들이 남성들과 구분되는 선천적이고 본질적인 본성을
공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남성과 구분될 수 있는 이른바 ‘자매애’와 같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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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연구 제23집 1호, 2017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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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만의 공통된 이해가 존재한다는 역전된 생물학적 본질주의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이다(모한티 2005, 164-189). 그러므로 이들이 이끌 사회변혁의 모습은 다음의 두 방향, 즉 ‘아

버지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부인 레즈비언 하거나 혹은 ‘어머니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옹호

─미혼모─하는 방향 가운데에서 결정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진단인 것이다(크리스테바 1993, 279-280). 이러한 모순된 가치에 대한 해체는 따라서 긴급하
고도 절박한 것이었다. 여성성은, 그것이 모더니즘에 의해 타자성으로 폄하되었건 혹은 급진주
의자들에 의해 숭고한 것으로 찬미되었건 간에, 사회적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만
들어진 이데올로기, 즉 ‘가면 속의 허상(하트니 2003, 53)’처럼 받아들여졌으며, 따라서 여성성
은 실재가 없거나 적어도 정의할 수 없다는 시각이 새롭게 제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사
회 문화적 근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는, 주

로 인식론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모더니즘의 근본주의적 가정 즉 단일성 보편성 신화 에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동안 페미니즘은 남성을 ‘주체’나 ‘이성’으로 규정하고 여
성을 ‘타자’ 또는 ‘신체(감성)’로 규정하던 모더니즘의 보편성 신화를 의심하고 공격해 왔지만,

이러한 수고는 역으로 여성의 지위 ‘타자성’으로 정의되는 에 대한 단일하고 보편적인 이미
지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들이 공격하고자 하는 남성성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그들이 새롭게 정의하고자 하는 여성성에 대해서까지도 인종, 사회, 문화, 계급, 국가, 성적 취
향 등을 추상화 단순화하는 근본주의적 시각을 오히려 강화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해
체’는 이러한 딜레마를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컨대 주체로서의 남성에
대한 보편적 시각 못지않게 타자로서의 여성에 대한 추상적 시각 역시 해체할 수 있고, 따라서
페미니즘 내에서조차 소외되어 왔던 흑인,4) 성소수자,5) 제3세계 여성들6)의 다양하고 다차원
적인 시각들을 담아낼 수 있는 새로운 페미니즘에 대한 기대감을 그들에게 안겨주었다는 것이
다(이동수 2004, 50).
이러한 시각을 바탕으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은 중요한 가설 하나를 공유하는데, 그것
은 바로 모더니즘 혹은 모더니즘 계열의 페미니즘을 극복하기 위해 이른바 ‘탈중심화된 주체’를
새로운 대안적 가설로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주의가 인

4) Bell Hooks, Ain’t I a woman?: Black women and feminism (1981). New York & London: Routledge.
5) Judith Butler, Gender trouble: feminism and the subversion of identity (1990). New York: Routledge; 조현준
역, 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2008), 서울: 문학동네.
6) Gayatri C. Spivak, IN OTHER WORLDS: Essays in Cultural Politics (1987), New York: Routledge; 태혜숙 역, 다
른 세상에서: 문화정치학 에세이(2003), 서울: 도서출판여이연.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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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론의 차원을 넘어 존재론의 차원 혹은 사회이론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
여준 학문적인 성취로 언급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
해서는 좀 더 세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에 의하면 고전적 모더니즘은 궁극적인 본질을 미리 전제한 상황

에서 ‘본질/형상’, ‘정신/물체’, ‘이성/신체(감성)’, ‘남성/여성’, ‘주체/타자’ 등의 이원적 위계성

데리다(J. Derrida)의 용어에 의하면 ‘폭력적 위계(데리다 1992, 65)’ 을 강조해 왔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당면과제라고 할 수 있는 ‘주체’의 문제에 대하여 제대로 된 해석을 제시하지 못했
다고 평가된다. 그들이 보기에 이러한 사고틀은 ‘남성중심적’이며 게다가 ‘유럽(서구)중심적’이
다(재거 & 영 2005, 120; 모한티 2005, 340-343). 그런 이유로 이들은 모더니즘의 중심성과 단
일성의 신화를 거부하고 바르트(R. Barthes 1997, 27-35)가 언급한 ‘저자의 죽음(La mort de
l’Autheur)’과 함께 이른바 ‘주체의 죽음’ 혹은 ‘탈중심화된 주체(들)의 등장’을 선언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버틀러(Butler 1990)는 여성이라는 범주가 어떠한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될 수 없
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여성이라는 범주를 넘어서서 소수자의 영역으로까지 주체의 범위를 확
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이동수 2004, 59-63), 무페(Mouffe 1993)는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본
질주의적 관념을 대신하여 사회적 관계의 복잡성에 따라 주체가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되는 방
식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장미경 1997, 183-184). 한편 식수(Cixous 1975)는 그동안 여
성적 쾌락(Jouissance)이나 욕망을 배제 소외시켜왔던 남성중심적 욕망의 구조를 해체하고,

그들의 욕망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글쓰기, 즉 ‘여성적 글쓰기’ 그동안 배제되어

왔던 표시하기, 낙서하기, 휘갈기기, 메모하기 등을 포함하는(김선희 2009, 137) 의 주체가 되
어야 한다고 주장하며(이현연 1998, 49), 이리가레이(Irigaray 1985)는 여성적 욕망의 대상이
오로지 팔루스(남근)라는, 따라서 여성은 영원히 남성적 욕망의 상징인 팔루스의 대상(타자)에
불과하다는 라캉(J. Lacan)식의 남성적 상징질서를 거부하고 여성 역시 자유롭고 다양한 욕망
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개진한다(김선희 2009, 139-141).
이들의 주장은, 물론 세부적인 차원에서는 논점의 차이가 존재하겠지만, 과거 고전적 모더
니즘에 의해 숭배되었던 ‘본질’, ‘정신’, ‘이성’ 등과 같은 관념적 정신적 요소를 대신하여 ‘욕망’,
‘쾌락’, ‘감성’ 등과 같은 비관념적 신체적 요소들을 강조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모더니즘이 내
세웠던 보편성 신화 이면에 그릇된 고정관념이 존재한다는, 따라서 이러한 고정관념을 해체하
여 새로이 ‘탈중심화된 주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혁신적인 사회이론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판
단된다(플렉스 1992, 153). 이제 주체는 ‘남성/여성’으로 고착화 보편화 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
한 욕망 쾌락 감성 속으로 흩어지며, 여성성 남성성이 고정된 관념으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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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상연구 제23집 1호, 2017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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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변화하는 일종의 ‘떠도는 기표(캘리니코스 1994, 249)’가 되어 기존의 상징체계 외부
를 떠다닌다. 그런 의미에서 타자화된 여성들은 그동안 욕망의 대상으로 지배되고, 명명되고,
정의되고, 임명되어왔던 과거의 굴레를 벗어날 준비를 마치게 되며(재거 & 영 2005, 120), 비로
소 ‘욕망의 대상’이 아닌 ‘욕망의 주체’로 거듭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가능성을 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을 앞서 실천적으로 예시한 사람들은 일군의 페미니스트 예술가들이었다.7)
그들은 모더니즘에 의해 부각되었지만 동시에 타자화 되었던 여성의 성적 매력을 거부하거나
삭제하는 방식의 표현예술을 추구함으로써 남성 중심의 가치체계에 의미 있는 도전을 시작하
였다(하트니 2003, 54). 그러나 이러한 예술적 실천이 사회변혁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해

서는 좀 더 신중한 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표현예술 그러한 예술적 실천을 포함하여

은 많은 부분 형이상학적 인식론의 수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사회이론이 필요로 하는 존재론
적 가설의 재료로는 미약한 것이기 때문이다.8) 이 단계에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이목
을 끌었던 것이 바로 ‘욕망’, ‘쾌락’, ‘감성’ 등의 담지자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신체’였다. 그들은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뿐만이 아니라 여성들 사이의 차이에 대해서도 설명할 필요

성을 인식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욕망하는 신체’는 존재론적 다원성 달리 말해 ‘남성/여성’

으로 이원화된 주체 개념의 해체 을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면서도 매우 효과적인 원천으
로 파악되었다. 왜냐하면 욕망이라는 것은 그 자체의 변덕스러운 속성 덕분에 남녀를 가로질러
누구나 다르고 따라서 다양한 것으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욕망은 남성과 여성의 전유물
이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신체들의 소유물로 파악되며, 따라서 고전적 모더니즘이 주창해 왔
던 남성성 여성성에 대한 가설들이 ‘욕망하는 신체들’에 대한 가설들로 대치될 수 있는 가능성
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론적인 관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단일성이 다양성으로, 다시 말해 ‘주

체/타자’ 혹은 ‘남성/여성’이라는 보편적 이항대립이 ‘타자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주체들’이

되는 이라는 다양성과 복수성으로, 따라서 ‘정신/신체’의 위계적 이항대립이 ‘신체(욕망)의 다
양성’에 토대를 둔 사회이론으로 전환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적 기반을 갖추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의식적 주체와 정신의 우위성에 억압되어 있던 신체 여성 타자들이 비로소 해방될

7) 포스트모던 미학이론 및 사례에 대해서는, 브랜든 테일러, 김수기・김진송 역,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리얼리
즘 – 미술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시각(1987), 서울: 시각과언어, 1993, 51-84 참고.
8) 모라프스키(S. Morawski 1972)에 따르면, 몇몇 예술가들이 정치적인 활동의 일환으로 작품활동을 한 것은 분명하
지만 예술가와 정치가는 서로 다른 사회적 기능과 역할이 있다고 본다. 즉 예술과 정치가 서로 분리되어 있을 때 진
정한 예술적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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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III. ‘신체’ 혹은 ‘욕망’으로의 탈주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에게 ‘해체’는 정신, 의식, 이성 등이 강조되던 ‘모더니즘
적 주체’가 해체되어 다양하고 변덕스러운, 따라서 하나의 고정된 정의를 거부하는 이른바 ‘신
체적 주체’로 탈중심화 됨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은 것이다. 그 동안 모더니즘 사조 내에서 신체
는 거의 압도적으로 생물학적인 혹은 해부학적인 개념에 의해 정의되어 왔고, 데카르트의 기계
론에 의해 철저히 ‘수동적인 물체(김성환 1994, 325)’로서 폄훼되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의 등장과 함께 신체는 이제 생물학적인 질곡을 넘어 ‘욕망’이라는 변덕스러운 개념을 담아낼
수 있고 바로 그 변덕스러운 ‘욕망’의 개념을 바탕으로 남녀의 차이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의 차
이까지도 설명해낼 수 있는 주체의 권위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신체적 주체’의 함의는 무엇
인가?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공유하고 있는 신체에 대한 입장을 이론적으로 정리하는 것
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구하는데 있어 매우 유효할 수 있다. 아마도 식수(H. Cixous)의 ‘여성

적 글쓰기’는, 그녀 스스로가 그러한 글쓰기를 ‘신체(욕망)’의 행위 ‘정신’이나 ‘이성’의 행위가

아니라 로 정의한다는 측면에서(Cixous & Clément 1975, 175-180), 게다가 그것을 바탕으로

진정한 사회변혁 “근본적인 정치적 변화(Cixous & Clément 1975, 153)” 을 모색한다는 측
면에서 신체에 대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을 추적할 수 있는 가장 충실한 사례들 가
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데리다에게 ‘글쓰기’는 대체 불가능한 역사적 실천으로 이해된다(데리다
2001, 16-29; 최일성 2016, 581-584). 그렇다면 도대체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글쓰기는 무엇인가(Cixous 1975, 42)?” 사실 식수는 이것을 정의하기
를 주저한다. “여성적 글쓰기를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이
다. 왜냐하면 이 행위는 결코 이론화되거나, 어떠한 틀에 갇히거나, 약호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Cixous & Clément 1975, 180).” 분명한 것은 그러한 글쓰기가 일반 대중들이 통속적으로 이해
하는 이른바 ‘생물학적 여성들’의 글쓰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며, 또 그렇게 이해되어서도 안 된

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자체가 출발에서부터 생물학적 이원론 ‘남성/여성’

을 넘어서고 있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그러한데, 그 때문에 모든 여성들이 여성적인 글을 쓴다
거나 혹은 쓸 수 있다는 가설은 적어도 포스트모더니즘 내에서는 의미를 상실할 수밖에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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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이다(윤학로 2003, 195). 보봐르(S. de Beauvoir)에 대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비판
은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휴스턴(N. Huston)은 보봐르가 임신, 출산 등과 같은
신체로서의 여성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오히려 그로부터 해방되기를 꿈꾸면서 정신의 기능에
도달하려는 글쓰기를 수행했다고 비판하는데, 그 때문에 그녀의 글쓰기는 여성들의 문제에 대
한 한 여성의 글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적인 글쓰기가 아니라 그녀의 연인 사르트르(J. P. Sartre)
의 철학을 그대로 답습하는 남성적인 글쓰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본다.9) ‘이성/신체’를 가르는
고전적 모더니즘의 위계성이 보봐르의 기념비적인 저작 제2의 성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식수는 인류의 역사가 남성중심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역사의 기반
인 타자에 대한 배제, 특히 여성에 대한 억압은 무엇보다도 여성의 신체에 각인되어 있다는 의
견을 개진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의 문화체계는 여성의 신체에 여러 가지 금기를 부과하
고 별도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통해 그러한 금기를 강화해 왔다는 것이다(이봉지 2001, 47).
이를 논증하기 위해 식수는 자신의 초기 저서 외디푸스의 이름(Le Nom d’Œdipe 1978)에서
프로이트(S. Freud)에게 큰 영감을 주었던 소포클레스(Sophocle)의 외디푸스대왕을 외디푸
스가 아닌 그의 부인 이오카스테(Jocaste)의 입장에서 재해석한다. 여기서 식수는 이오카스테
를 철저하게 죽음으로 몰고 가는 부조리가 그녀에게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녀의 외부에서

빗장을 들이대는 남성중심주의적 금기의 구조들 식수의 용어에 의하면 ‘남근중심주의

(phallocentrisme)’ 임을 고발한다(이현연 1998, 14-27). 다시 말해 이 이야기는 이오카스테의
신체(텍스트)에 남성중심적 상징질서를 각인시키는 전형적인 남근중심적 글쓰기였다는 것이
다. 식수는 단언한다. “남근중심주의. 역사는 결코 이것 이외의 다른 것을 산출한 적도, 기록한

적도 없다. [ ] 모든 사람들의 적은 바로 이 남근중심주의이다(Cixous & Clément 1975, 130).”
그렇다면 이러한 남근중심주의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 지점에서 식수는 기존 상
징질서에서 소외되고 배제되었던 ‘신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그동안 인류는 ‘이성/신
체’의 위계적 이항대립 속에서 ‘이성’ 중심의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성의 영역 외부에 다른
세상, 즉 신체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거부해 왔다(Cixous & Clément 1975, 152).
식수는 탐험이나 접근이 금지된 이러한 신체를 기존의 질서나 역사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 할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억압하고 구속해 왔다는 의미에서 미지의 ‘검은 대륙(Cixous &

9) Nancy Huston, Le Journal de la Création, Paris: Babel, 1990. 필자는 보봐르에 대한 휴스턴의 비판을 배지선
(2015, 5-8)의 글에서 참고하였다.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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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ément 1975, 123)’이라 표현한다. 그러나 이 ‘검은 대륙’은 그 동안 접근이 금지되어 탐험할
수 없다고 믿게 되었을 뿐, “어둡지도 않으며 탐험이 불가능하지도 않(Ibid., 123)”은 세계이다.
왜냐하면 신체는 ‘욕망’이라는 혹은 ‘쾌락’이라는 빛을 통해 자신의 언어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
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누군가가 금지되고 배제된 신체의 빗장을 욕망 혹은 쾌락의 언어로 열
어젖힐 수만 있다면, 로고스 혹은 이성에 대항할 새로운 무기가 신체의 언어를 통해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 식수의 생각이다(Cixous 1975, 43; Cixous & Clément 1975, 179-180). 이것이 바
로 그녀가 실천하고자 하는 여성적 글쓰기이며, 신체에 각인된 남근중심주의를 벗어나기 위해
그 어떠한 정치적 투쟁보다도 먼저 실천해야할 최우선의 과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는, 그 형식이 무엇이건 간에, 적어도 기존의 의미체계에 종
속되지 않는 글쓰기, 남성중심적 상징질서를 문제 삼는 글쓰기, 본질 정신 이성 등과 같은 관
념적인 요소들을 거부한 글쓰기, 따라서 욕망 쾌락 감성 등에 의해 주도되는 이른바 ‘신체의
글쓰기’로 정의하는 것이 보다 합당할 것이다(윤학로 2003, 197). 모더니즘이 ‘남성/여성’ 혹은

‘이성/신체’의 위계성과 단절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글쓰기 남성적 글쓰기 가 이
러한 위계성과 단절성에 종속된 글쓰기라고 정의될 수 있다면, 이것을 거부하는 글쓰기가 바로
여성적인 글쓰기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식수는, 모더니즘의 발전논리, 지배논리, 보편
논리에 종속되어 있는 단선적 제한적 한정적 글쓰기를 넘어서서, 모더니즘의 단선적인 발전논

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탈’의 글쓰기, ‘지배/종속’이라는 제한적이고 위계적인 관계를 넘어서는
‘넘침’의 글쓰기, 특정 영역에 한정된 보편논리를 거부하고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심연으로 향
하는 ‘지속’의 글쓰기를 실천적으로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Cixous & Clément 1975, 62).
이것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식수에 의하면 지금까지 실천된 거의 모든 글쓰기는 남근중
심주의에 종속된 이른바 ‘단성적 글쓰기(이봉지 2001, 51)’에 불과했다. 따라서 이것을 거부하
는 ‘여성적 글쓰기’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성들’의 글쓰기가 아니라, ‘주체/타자’의 이분구
조와 ‘남성/여성’의 이항대립을 무화시키는 글쓰기, 즉 ‘양성적인 글쓰기’라고 주장한다. “여성
성은 양성성과 공존한다(Cixous & Clément 1975, 159)”는 식수의 말은 이런 차원에서 이해가
능하다. 그녀에게 사회변혁적인 실천은 ‘남성성’ 혹은 ‘여성성’에 대한 개별적인 파괴 거부를 지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남성성’이나 ‘여성성’을 독점하지 않는, 달리 말해 욕망이나 쾌락
그 자체가 어느 한 성에 종속되지 않는 이른바 ‘양성적인 주체’, ‘양성적으로 욕망하는 주체’ 혹
은 ‘양성적인 욕망을 표현 발산하는 주체’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한다(Ibid., 159-160).

여기서 식수의 실천 ‘여성적 글쓰기’ 이 성공했는가, 혹은 최소한의 의미 있는 사회적 변
혁을 이끌었는가의 문제는 별도의 논의를 필요로 한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한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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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식수를 비롯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기
존 질서를 거부하면서 새롭게 창조(실천)하고자 했던 ‘신체적 주체’가 이를테면 ‘남성/여성’ 혹
은 ‘주체/타자’의 이항대립을 넘어 누구라도 자신의 욕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소비
할 수 있는 이른바 ‘소비주체(들)’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에게 욕망은 모더니즘의 논리에 따라 한
성에 의해 독점되지 않으며, 또한 다른 성이 일방적으로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되지 않는다. 그
들은 공히 자신의 욕망과 쾌락을 만끽하고 발산하며 기꺼이 자신들의 욕망과 쾌락을 소비하는
데 몰두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기존 질서를 해체하기 위해 전면에 내세우
는 ‘신체적 주체’ 혹은 ‘탈중심화된 주체’는 바로 특정 집단 혹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의해 독점되
지 않은 욕망, 따라서 절대자유의 수준에 도달한 해방된 욕망을 소비하는데 전념하는 소위 ‘소
비주체’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소비주체’의 비밀을 푸는 것, 그것이 바로 포스트모던 페미
니즘에 대한 본 연구의 최종적인 목적이 될 것이다.

IV. ‘소비주체’, 혹은 ‘탈중심화된 주체’의 종말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에게 있어서 ‘탈중심화된 주체’는 데카르트에 의해 수동
적인 것으로 폄훼되었던 신체, 즉 쾌락과 욕망을 자유롭게 소비하고 발산하는 신체가 필수적으
로 요청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신체는 젠더, 계급, 이데올로기 등과 같은 외부적인 제약만 없
다면, 언제든지 자기만족적이고 해방적인 욕망의 에너지를 마음껏 소비하고 발산하여 이전 세
계의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상징체계를 뒤집을 수 있는 혁명적인 소비주체로서 등장한다. 이러
한 주체와 관련하여 맑스주의의 주요 이론가 중 한 명인 제임슨(F. Jameson)은 원할 때 언제든
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새로운 기계’의 등장이라 선언한다(제임슨 1993,
176-197). 들뢰즈(G. Deleuze)와 가타리(P. Guattari)의 표현을 빌자면, “어디서나 작동하는

[ ] 때로는 멈춤도 없이, 때로는 중단되면서 [ ] 숨쉬고 [ ] 뜨거워지고 [ ] 먹고 [ ] 똥을 누

고 성교를 하는 [ ] 기계들(들뢰즈 & 가타리 1997, 15)”, 즉 “욕망하는 기계들(op. cit.)”의 등장
인 것이다. 이러한 ‘기계들’은 과거의 기계, 즉 ‘물체’와는 달리 철저히 능동적이라는데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아마도 해러웨이(D. Haraway)의 사이보그 선언문 은 모더니즘의 이원론으로부

10) 알렌(C. Allen 1992, 191-194)의 글에는 식수의 ‘여성적 글쓰기’와 관련된 영미권 학자들의 주요 비판서들의 목록
을 찾아볼 수 있다.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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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선언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그녀는 적는다. “사이보그는 […]
터 해방된 신체가 능동적인 기계로 재탄생하는 것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사이보그’의 출현

단일 정체성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럼으로써 끊임없는 적대적 이원론도 발생시키지 않는다.

[ ] 기계 기능상의 강력한 기쁨은 더 이상 죄가 아니며, 체현의 한 양상일 뿐이다. [ ] 기계는
우리이며, 우리의 과정이며, 우리의 체현의 한 양상이다(해러웨이 2002, 323).” 이와 같이 욕망

─ ─
을 인식론의 수준에 내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넘어 존재론적 혹은 사회이론적 가설─해방─로
하는 기계들, 달리 말해 ‘욕망을 소비하는 신체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론적 가설 해체

의 연장을 모색하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장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방대한 저서 앙띠
외디푸스(1972)에서 프로이트가 정의한 외디푸스의 갈등구조를 해체하고 보다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정신분열증적 욕망의 발산과 소비를 칭송하고 있는데(들뢰즈 & 가타리 1997,
133-163),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세계, 즉 생물학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세계, 정신착란증세 내지 행복감에 적어 있는 상태를 찬양하는 세계, 그리고 모든 관계 및 역할
을 넘나들면서 이동하는 급진적인 변동의 세계(테일러 1993, 80)”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실상 이 세계는 성적 관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된 욕망이나 쾌락 등과 같은 감

성들 ‘내적 본성의 감성들’ 을 소비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춘 나머지, 그러한 욕망들이 중첩

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복합적이고 상호모순적인 갈등의 관계들 ‘외적 본성의 감성들’

─을 포기해 버리는 무모함 역시 내포하고 있다(테일러 1993, 63-64).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스
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은 욕망이나 쾌락 등과 같은 이른바 ‘내적 본성의 감성들’을 제외하고는 고
전적 모더니즘의 또 다른 지배적인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 ‘고통’, ‘불안’, ‘갈등’ 등과 같은 소위
‘외적 본성의 감성들’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변혁을 주

장하는 사회이론으로서는 심각한 약점이 아닐 수 없다. 테일러는 반문한다. “우리가 고통의 본
질에 대한 생생한 증거를 갖고 있는 게 일종의 망상이란 말인가(테일러 1993, 80)?”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서 ‘탈중심화된 주체’라는 개념은 따라서 그것이 ‘탈중심화’라는 해체의 인식론적 차
원에서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그러한 해체가 욕망을 소비하는 신체를 통해서 해방의
근거가 마련되고 있다는 존재론적 혹은 사회이론적 수준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소비’ ‘생산’이 아니라 를 추구(욕망)하는 후기자본주
의와 결합되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제임슨은 서구자본주의의 역사적
이행단계를 분석하면서 이에 조응하는 일종의 문화적 이행단계가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의하면 자본주의는 시장자본주의에서 독점(제국)자본주의로 그리고 오늘날에는 소비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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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불리는 후기자본주의로 이행해 왔으며, 이러한 자본주의 이행단계에는 각각 리얼리즘, 모더
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논리가 뒷받침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 포스트모더니즘은
텔레비전의 연속물, 거대자본이 장악한 헐리우드 영화, 자극적인 상품광고 등을 총동원하여 대
중들의 소비욕구를 최대한 자극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들의 비판의식마저 마비시키는 소
비자본주의의 중추적인 문화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제임슨 1989, 141-142). 하비(D. Harvey)
역시 포스트모더니즘이 어떤 수준의 사회문화와 관련을 맺고 결합되고 있는가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자본이라는 공통된 가치체계를 바탕으로 시 공간의 압축을 강요하는 이른바 ‘후기자본
주의의 소비문화’라고 주장한다(하비 1994, 331-357). “전후 붐 시기에 영국의 젊은 노동자들은

자기 주머니가 제법 두둑함을 발견하고서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적극 동참한다. [ ] 결과적으
로 다양한 하위문화들 내부에서는 두루 취향이 민주화되는데, 이는 강력하게 조직화된 상업주
의에 맞서 상대적으로 낮은 지위의 사람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권리를 취합시켜 자기 나름의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 ] 즉 포스트모더니즘은 후기자본주의의 문화논리에 다름 아니라는 테
제에 도달하게 된다(하비 1994, 88 & 91, 강조 추가).” 일부 학자는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K.
Marx)의 비판이 비껴간 곳이 바로 이러한 소비사회의 측면이었다고 지적한다(H. Lefebvre
1992). 실제로 20세기 초중반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구)사회들이 공산주의보다는 사회민주주
의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경우 자본주의적 생산사회에서 소비사회로의 전환 때문이었
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소비사회에서 노동자는 자본가들이 소유한 생산수단으로부터
배제되어 있지만 자기 몫의 임금을 통해 ‘소비시장’을 향유할 수 있었고, 따라서 한편으로는 자
본주의적 생산양식에 의해 자신의 주체성이 부정되어 왔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개
척해 놓은 소비사회 내에서 제한적인 그러나 당당한 ‘소비주체’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이다.
그렇다면 후기자본주의가 소비주체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인가? 많은
학자들이 이에 동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본주의적 소비사회는 누구나 욕망
을 소비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보편적 사실을 고려하기보다는, 누가 무엇을 얼마만
큼 소비하는가를 고려하면서 자본의 유무에 따라 소비주체를 또 다시 서열화 할 것이기 때문이
다. 그런 이유로 바우만(Z. Bauman)의 자유는, 비록 인간이 소비를 통해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으로 소비사회는 자유에 대한 이율배반이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소비
사회에서의 “자유는 무엇보다도 소비자의 자유(바우만 2002, 22)”를 의미하기 때문에 소비할
자유가 없는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함으로써만이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소비
사회는 욕망의 대상인 상품의 가치를 왜곡시켜 소비주체의 욕망의 소비를 더욱 혼란에 빠뜨릴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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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젝(S. Zizek)은 소비사회가 ‘상품’의 본질적 가치가 아닌 그러한 상품에

달라붙어 있는 물신주의(fétichisme)적 욕망에 따라 소비 예를 들어 ‘상품’이 아닌 ‘상표’를 소

비하는 현대인들 하도록 조장할 것이기 때문에, 소비주체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욕망을 실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욕망을 상실할 것이라고 진단한다(지젝 2003, 37). 그러
므로 소외된 노동자의 생존조건인 ‘노동’은 사실상 임금(자본)의 획득부분을 제외하고는 소비
사회 내에서 아무런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며, 따라서 노동자는 오로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금
(자본)에 의해, 그리고 정확히는 그 임금(자본)의 규모만큼만 겨우 ‘소비주체’로서의 가치를 인
정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고전적 모더니즘에 의해 억압되었던 타자를 해방시키는 과정이
아니라, 이전의 억압을 무화시킴과 동시에 자본에 새로이 종속시키는 또 다른 억압과정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탈중심화된 주체들’, 즉 ‘욕망을 소비하는 신체들’이 기존의 상징질서를 뒤집을 수
있을 정도로 마음껏 욕망을 소비 발산할 것이라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그런 의
미에서 대단히 제한적이고 협소한 것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소비를 위해 자본(임금)이 필수적
으로 요청되고, 정확히는 그러한 자본의 규모만큼만 자신의 욕망을 소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의 논의에서 이러한 제한적 조건에 대한 신중한 고
려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본의 가치가 절대적 가치이고, 소유하고 있는
자본의 규모의 차이가 바로 다양성의 표준이 되는 세상을 거의 문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제 ‘타자’의 자리를 대신하여 자본에 종속된, 따라서 자신의 해방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

면 안 되는 ‘소비자’ ‘해방된 주체’ 혹은 ‘탈중심화된 주체’가 아닌 가 등장한다(이글턴 2000,
165). 그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비용을 지불한 경
우에 한에서, 그리고 자신들이 지불한 비용만큼만 그러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블랙쇼(T.
Blackshaw)는 소비사회를 ‘카지노’에 비유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비사회 속에서) 인간
은 ‘카지노 문화’에서 살도록 운명지워져 있으며, 그 문화는 ‘당신에게 게임을 지속하기만을 원
하며, 충분한 동전을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지속하기를 요구’한다.”11) 자본을 소비할수
록 인간의 자유가 제한되는 모순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은 해방의 기획을 부적절하게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그
들이 주장하는 ‘탈중심화된 주체’, 즉 ‘욕망을 소비하는 신체적 주체’가 자유로워 보이는 것은 사

11) Tony Blackshaw, Zigmunt Bauman, Routledge, 2005, 120; 이유선, “소비문화와 자율성의 문제”, 사회와 철학
제14호, 사회와 철학연구회, 2007, 211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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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비할 수 있는 욕망과 자본을 향유한 경우에 한하여, 그
리고 그들이 소비할 수 있는 욕망과 자본의 규모만큼만 그러한 것이다. 이것은 결국 포스트모
던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해방이라는 원대한 사회적 목표가 소비할 수 있는 자본과 욕망을
소유한 자들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말해 그러한 물적 토대를 갖춘 오늘날의 ‘서구사회’의
논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탈중심화된 주체들’은 이전 시기에 자신의 정

체성을 드러내는데 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저항을 위해서도 요청되었던 특수한 관계들 성별,

인종, 민족, 계급, 이데올로기, 지정학 등 을 상실하게 되고, 새로이 등장하는 단 하나의 가치
체계인 이른바 ‘자본관계’를 통해 또 다시 서열화 되고 또 다시 속박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V. 결론: 누구를 위한 ‘해체’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제안하는 다양한 해방의 기획들과는 별도로,
그 이면에 존재할지도 모를 어떤 숨겨진 의도를 들춰내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만
한다. 누구를 위한 ‘해체’인가? 포스트모더니즘이 출현하였을 때 적지 않은 학자들은 이것이 페
미니즘에 유용한 돌파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로 다양한 분야에서 해체의
실험들이 시도되었고, 해방의 기획들이 모색되었다. 그리고 해방된 주체로 이른바 ‘탈중심화된
주체(들)’이 제안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적어도 존재론 혹은 사회이론의 수준에서는 회의적
인 것으로 판단된다. 그 이유는 스피박(G. Spivak)이 명쾌하게 지적했듯이, 포스트모더니즘이
인종, 사회, 문화, 계급, 국가 등을 고민해 왔던 페미니즘 일반이 아닌 ‘욕망’의 자유로운 소비를
염려하는 이른바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일차적으로 공모하고 있기 때문이다(스피박 2003,

─ ─

164-194). 요컨대 자본주의적 물적 토대 자본 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 부르주아 페미니스트
들의 이해관계를 일차적으로 반영하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만일 포스트모던 페미니스트들이 인종, 사회, 문화, 계급, 국가 등과 같은 사회문제들에 앞
서 개별적인 신체와 욕망이 주인공이 되는 담론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그러한 사
회문제에서보다는 신체와 욕망의 수준에서 더 심각한 억압을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

일 수 있다. 그러나 제3세계 부르주아 역시 인종과 국가 특히 남북문제 의 문제로부터 자유
롭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그 주체는 부르주아 일반이 아니라 인종, 사회, 문화, 계급,
국가 등의 문제를 공통적으로 회피 배제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서구사회’라고 일반적으로 정
의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서구적 소비자본주의의 문화논리에 대해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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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을 정당화하고 옹호한다는 차원에서 특히 그러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과 함께 일군의 페미니스트들이 주창했던
‘탈중심화된 주체’에 대한 가설은, 비록 인식론의 차원에서는 기존의 지배적인 가치체계를 적절
하게 문제 삼았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회이론의 수준에서는 기존의 서구중심주의적 ‘주체/

타자’의 위계적 이항대립 특히 ‘서구/비서구’의 위계적 이항대립 을 해체하기보다는 오히려
공고히 하는 서구중심적 기획에 동참하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할 것이다. 그것은 왜 포스트모더
니즘이 다른 곳도 아닌 서구사회에서 탄생하고, 유독 그곳에서 논의되고 있는지, 그리고 더 나
아가 다수의 사회이론가들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여러 문제들을 제쳐두고 오늘날 선진적인 서

구사회의 후기자본주의적 조건 소비사회 을 유독 강렬하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사실 인식론의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이론의 차원에서도 해체는 매력적일 수 있다. 특
히 억압이 중첩되는 비서구사회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비서구사회의 입장에서 해

체의 결과는 서구사회에 대하여 평등을 요구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초들 인종, 사회, 문

화, 계급, 국가 등 에 대한 지속적인 해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비서구사회에서는 아직 요원한
서구중심의 소비자본주의 논리 속으로 편입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 속에서 비서구사회는
서구사회가 촘촘하게 짜놓은 소비시장에서 제한된 자유를 누리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종속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비서구사회는, 인식론의 차원에서는 추상적인 평등 공히 ‘신체

적 주체’라는 차원에서 을 구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존재론 혹은 사회이론의 차원에서는
욕망의 소비에 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자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단 하나의 이
유로 인해 지극히 불평등해질 것이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에 대한 본고의 비판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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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2017년 02월 28일
심사개시일: 2017년 04월 06일
심사완료일: 2017년 05월 08일

‘탈중심화된 주체’, 혹은 ‘소비주체’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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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entered Subject’, or the emergence of
the ‘Consuming Subject’
Critique on the Western-Centrism inherent in Postmodern Feminism

Choi, Il Sung (Hanseo University)

On the problem of Subject, it is true that there are many varieties of criticism in or
out of feminism. Despite the specific theoretical differences, the major critique of
Postmodern feminism as a social theory is probably : what does ‘liberation’ through
‘deconstruction’ mean (on the epistemological level)?; and does it bring about
meaningful social transformation (on the ontological level)? In this article, we try to
clarify the western centric characters inherent in Postmodern feminism. It will be
specifically a task to reveal that its hypothesis of Decentered Subject or Consuming
Subject read in fact, or at least at the level of social theory, to the subordination of such
Subject, rather than the liberation; thus, it will consolidate the hierarchical dualism of
the western centric ‘Subject/Other’, rather than deconstruct it. In these respects,
Postmodern feminism could be also considered as a western centric social theory.

Key words: Postmodernism, Postmodern Feminism, Modernism, Subject,
Decentered Subject, Body-Subject, Consuming Subject,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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