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북한 갑산파의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의 종결

제  목: 1967년 북한 갑산파의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의 종결

저  자: 조 우 찬

1967년 북한 갑산파의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의 종결 193

1967년 북한 갑산파의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의 종결*
1)

조우찬 |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

| 국문요약 |
갑산파는 1965년 말에 공개적으로 그들의 결집력을 드러낼 기회가 있었다 . 박금철의 처인
서채순의 부고기사가 󰡔로동신문󰡕에 보도되면서 1930년대 중반 박금철이 이끈 한인민족해방
동맹의 항일운동이 부각되었고 서채순의 장례식과 관련하여 갑산파의 동정이 󰡔로동신문󰡕에
보도되었다. 그러나 갑산파의 혁명전통 다원화 시도는 1965년 말을 기점으로 하여 해체되어
가는 과정에 들어섰다. 이듬해 비서제 도입에 이어 문학예술 부문에서 혁명전통 논쟁이 불거졌
다.
박금철의 혁명전통에 대한 인식은 1930년대 중반 한인민족해방동맹의 활동과 연결된다 .
혁명전통의 유일성에 대해서 갑산파는 혁명전통 다원화로 대응하였다 . 그러나 1967년 봄부터
항일무장투쟁을 강조한 혁명전통교양이 대두되기 시작하였고 언론과 정기간행물에서 이전과
다른 변화가 나타났다. 본 논문은 혁명전통 다원화를 시도한 갑산파의 몰락은 북한체제의 변화
와 직결되었고 혁명전통은 여전히 북한체제를 지탱하는 이념적 틀로써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주목하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