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호. 2016. “세계사로 본 이슬람사와 반서구중심주의: 마셜 호지슨을 중심으로.”
<호서사학 역사와 담론 79집(2016.7) 게재확정논문>
세계사로 본 이슬람사와 반서구중심주의: 마셜 호지슨을 중심으로1)
강성호(순천대학교 사학과)
목 차
I. 머리말
II.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인식 성립과정
III. 호지슨의 세계사 연구방법
IV. 세계사로 다시 보는 이슬람사
V. 맺음말
「국문초록」
본 논문은 마셜 호지슨의 새로운 세계사연구방법론과 반서구중심주의적인 이슬람
사에 대한 반서구중심주의적인 새로운 해석을 다룬다. 호지슨의 세계사에 대한 인
식은 1940년대 초부터 1968년까지 4반세기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다. 서구이외의
다른 세계사를 서구중심주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세계 전체 입장에서 다시 볼 필요
가 있다는 생각이 호지슨의 반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 접근의 출발점이 되었다.
호지슨의 세계사연구는 문명연구 접근방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존 문명론
과 다르게 문화와 문명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이슬람문
명은 이슬람적 이상을 공유함으로써 통일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호지슨은 기존문
명연구를 비판하면서 시작했지만 문화주의, 엘리트주의, 본질주의라는 한계를 근본
적으로 탈피하지 못했다. 호지슨은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을 대체하기 위해 ‘농경
시대’와 ‘기술주의’라는 막스 베버식 ‘이념형’ 개념을 사용하였다. 호지슨의 새로운
세계사 연구전략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복합체’로 ‘아프로-유라시아 사회’를 상정
하고, ‘반구적 간지역적 접근(hemisphere interregional)’이라는 새로운 세계사 연
구방법론을 제창하였다
호지슨 세계사 저술의 중요한 초점은 서구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재평
가하여, 서구의 역사를 유럽중심주의적 목적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동
시에 호지슨은 이슬람사를 그 자체 내부에서가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하
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하였다.
주제어: 마셜 호지슨, 이슬람사, 서구중심주의, 세계사, 문명
1)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NRF-2014S1A3A2043763).
재원으로
– 1 –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I. 머리말
이슬람사에 대한 연구는 오랫동안 유럽중심주의(Euro-centrism) 관점에서 진행되었고,
이슬람사에 대한 인식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이었다.2) 이슬람사에 대한 서구중심주의 해석에
대한 전환점을 제공한 대표적 역사가로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였던 마샬 호지슨(Marshall
Goodwin Simms Hodgson, 1922-1968)을 들 수 있다. 그는 시카고대학교에서 이슬람문명
에 대한 강의를 진행하면서 이슬람문명과 이슬람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평가를 시도하였다.
그 연구 성과는 사후에 출판된 3권으로 된 이슬람의 모험과 마샬 호지슨의 세계사론에
잘 담겨있다.3) 호지슨은 면밀한 이슬람관련 텍스트분석에 근거하여 이슬람사를 세계사 안
에 위치시키는 작업을 하였고, 오리엔탈리즘에 근거한 이슬람사를 뛰어넘었다는 점에서 높
이 평가를 받는다.4) 그는 이슬람 사회는 서로마가 멸망한 이후 서유럽이 다시 일어설 때까
지 지중해지역을 주도했고, 당시 중국과 더불어 세계최고 수준의 문명을 지녔다고 재평가하
였다. 그러나 호지슨이 1968년 47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함으로써 책을 완성할 기회를 갖
지 못해 저작의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한계이기도 하다.5)
서구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세계사 인식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으로 호지슨은 서구중
심주의를 들었다. 호지슨은 크리스트교적이거나 유대-크리스트교, 헤겔과 마르크스주의의
세계사인식 등을 그 예로 들고 있다. 크리스트교는 서구의 종교를 중심으로 세계를 인식한
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적이다. 헤겔은 세계사를 미개, 동양(Oriental), 서구(Western)으
세 개의 범주로 나누고, 동양을 고대시기 이후에 쇠퇴한다고 보면서 서구의 보완적 존재로
보았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적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아시아적 생산양식론’을 통해 아
시아사회의 정체와 예외주의를 주장했다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에 속한다고 호지슨은 보았
다.6) 그에게 서구중심주의 세계사해석은 근본적으로 교정되어야 할 대상이었다.7)
호지슨 당시에 같은 시카고대학교 사학과에 근무하고 있던 윌리엄 맥닐이 서구의 부상
을 통해 서구중심주의 세계사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8) 맥닐은 문명이 발전한 세계의 주요
4지역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고,
인류학에서
‘전파주의
(diffusionism)’ 관점의 영향을 받아 세계 각 지역 사이를 상호 교류의 관점 속에서 파악하
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닐이 문명화된 세계를 중심으로 보면서 세계사 전체를 포괄
2)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오래된 편견, 변화하는 선입견, 고안된 “타자관”」, 경주사학 28집(2011. 3),
pp. 90-99.
3) Marshall G.S. Hodgson, Rethinking World History: Eassays on Europe, Islam, and World History,
edited with an Introduction and Conclusion, by Edmund Burke III,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이 책은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보기, (사계절, 2006)로 한국에
서 출판되었다.; Marshal G. S. Hodgson, The Venture of Islam: Conscience and History in a World
Civilization, I, II, III (Chicago and Lon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74); Marshall G.S.
Hodgson, The Secret Order of Assassins, (Philadelphia: University of Pennsylvania Press, 2005).
4) 이은정, 「옮긴이 후기」,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보기, (사계절, 2006), p. 501.
5) Saul Bellow, To Jerusalem and Back: A Personal Account (New York: Macmillan, 1976), pp. 105~109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보
기, (사계절, 2006), p. 490).
6) 마셜 호지슨, 「세계사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155-156.
7) 마셜 호지슨, 「세계사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159.
8) William H. Mcneil, The Rise of the West: A History of the Human Communit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63).
– 2 –
하지 못하였고9), 특히 근대와 전근대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1,500년을 선택함으로써 서구중
심주의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했다고 호지슨은 비판하였다.10)
호지슨의 세계사 재인식은 ‘근대 유럽’의 출현을 강조하는 해석이나 인류사 전체 맥락에
서 유럽근대를 보려는 해석들과는 다르다.11) 마르크스주의적 전통 속에서 연구한 학자들은
자본주의 발달에 대한 관심으로 1,500년대 이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12) 이에 비해 맥닐
이나 맥닐과 입장을 같이 하는 학자들은 인류사의 맥락에서 ‘근대’ 유럽을 다루고자 하였다.
이에 비해 호지슨은 7세기 이후 이슬람사 재해석을 통해 세계사 속의 ‘근대 유럽’의 출현을
재해석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전통에 선 해석이나 맥닐식 ‘전지구적 시간의 관점’ 해
석과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
서구중심주의적 이슬람사 해석에 대한 호지슨의 비판은 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 전반에 대
한 재해석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호지슨은 이슬람사가 서구중심주의 담론을 비판하는 데
적절한 지점이라고 생각하였다.13) 이슬람사에 대한 호지슨의 재해석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
해서는 세계사 전반에 대한 호지슨의 새로운 연구방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따라서 여
기에서는 먼저 마셜 호지슨의 반서구중심주의적 새로운 세계사 연구방법론을 살펴보고, 이
어서 이슬람사에 대한 호지슨의 새로운 해석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II.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 인식 성립과정
세계사 속의 이슬람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있다. 이슬람권 사회
가 출현하면서 이슬람사회에 대한 기독교사회의 편견과 오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교적
차이에 대한 인식”과
다.14)
“현실적 대립을 통한 물리적 대결”이 이러한 편견과 오해를 증폭시켰
중세유럽의 이슬람사회에 대한 인식은 “무지와 무관심, 증오와 갈등, 상호인정과 공
존이 혼재된 상태”였다.15) 근대 유럽이 이슬람세계를 침략해가면서 이슬람사회에 대한 유럽
의 도덕적 우월감이 실질적 우월감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1683년 빈(Wien)에서의 이슬람
세계의 패배와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집트 원정 등을 대표적 전환점으로 들 수
있다.16)
유럽이 19세기에 세계적 우위를 점하면서 이슬람세계를 후진적으로 보는 견해들이 학문
적으로
정립되기
시작했다.
독일의
경우
칼
하인리히
베커(Carl
Heinrich
Becker,
1876-1933)는 “이슬람이 계몽, 합리화, 세속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후진적”이라고 평가
9)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469.
10) 마셜 호지슨, 「세계사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157-158.
11) 에드먼드 버크 3세, 「서론: 마샬 호지슨과 세계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9-10.
12) Immanuel Wallerstein, The Modern World System, 2 vols (New York: Academic Press, 1974, 1977);
Eric Hobsbawm, The Age of Revoulution 1789~1848 (New York: New American Library, 1962); Eric
Wolf, Europe and the People Without History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2; Andre
Gunder Frank, World Accumulation, 1492~1789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1978); Samir
Amin, Unequal Development (New York: Frank, 1976).
13) 에드먼드 버크 3세, 「서론: 마샬 호지슨과 세계사」, p. 18.
14)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 p. 90.
15)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 p. 93.
16)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 p. 94.
– 3 –
했다.17) 베커는 이슬람 문화가 초기에는 번영했지만 후기 근대 사회에서는 후퇴했다고 본다
는 점에서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스트였다. 그는 유럽과 이슬람은 그리스-로마문명이란 공동
의 뿌리에서 출발했지만, 유럽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기점으로 근대화를 이룬데 비해 이
슬람이 중세에서 벗어나지 못해 낙후되었다고 보았다.18) 독일 이슬람학자 마틴 하르트만
(Martin Hartmann, 1851-1921)은 이슬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구식 근대화개혁과 민족
국가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19)
프랑스의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
1823-1892)도 인종주의적 관점에서 이슬람 사회의 셈족이 과학과 학문이 아니라 종교만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유럽의 아리아족보다 열등하다고 판단했다.20)
부정적인 이슬람사 인식을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대표적인 역사가로 시카고대학교 사
학과 교수였던 마셜 호지슨을 들 수 있다. 그는 무슬림 신도가 아니었고 미국 퀘이쿼 교도
였다. 그는 금욕적 성격, 비타협적인 채식주의, 그리고 좌파적 정치신조를 지녔다. 그는 일
에 대한 의욕이 강했지만 세부사항에 천착하는 과정에서 주변동료들과 협력적 관계를 잘 구
축하지는 못했다. 그가 1968년 47세 나이로 죽었을 때, 그의 비사교적 인간관계는 결과적
으로 그의 작업을 이어나갈 학자집단의 형성을 방해하였다.21)
호지슨의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1940년 초부터 1968년까지 4반세기동안 발전하
면서 체계화되었다. 세계사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은 1941년 19세 때 세계사에 대한 수
필에서 처음 나타났고, 인쇄된 형태로는 1944년에 「세계사와 세계사관」이 처음으로 출판되
었다. 이 글은 서구중심 세계사에서 벗어나 세계사 전체를 보아야 할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
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호지슨은 서구이외의 다른 세계사를 서구중심주의적 입장에서 보지 말고 세계 전체입장에
서 다시 볼 필요성에 대해 문제제기하였다.22) 첫째, 미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6%에 불
과하고, 유럽인 전부와 해외에 있는 유럽인 자손을 다해야 전 세계 인구의 3분의 1에 지나
지 않기 때문에 (통계는 1944년 글 출판당시) 유럽인 이외 지역의 세계사를 보아야 한다.
둘째, 세계사에 대한 서구중심적 불균형적 연구방식을 버린다면 유럽과 인류사회에 대한 균
형적인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다. 셋째, 세계사 전체 연구를 통해 자민족중심주의를 무너
뜨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이러한 필요성에 근거하여 그는 유럽을 쓸데없이 부각시키지 않고 구세계 전체의 다양한
문화발전을 하나의 그림으로 그리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저술을 권장하고, 일반인들에게
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 인식을 심어주는 잘못된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제
안하였다.23)
이제 우리 역사가들과 사회과학자들이 ‘전 지구적인’ 세계관을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인식했다면, 우리가 이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이 있
17) C. H. Becker, Das Erbe der Antike im Orient und Oksident (Leipzig, 1931)(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
람관」, p. 97).
18) 박용희, 「유럽중심주의 극복을 위한 일모색」, 대구사학. 100집 (2010), pp. 13-16.
19) M. Hartmann, “Der Islam 1907”, Mitteilungen des Seminars fuer Orientalische Sprachen zu Berlin,
vol. 2 (1908)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 p. 98).
20) 박용희, 「유럽인들의 이슬람관」, pp. 98-99.
21) Saul Bellow, To Jerusalem and Back: A Personal Account (New York: Macmillan, 1976), 105~109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59).
22) 마셜 호지슨, 「세계사와 세계사관」,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78-79.
23) 마셜 호지슨, 「세계사와 세계사관」, p. 80.
– 4 –
다. 구체적으로 우리는 두 종류의 일을 해야 한다. 첫째,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저
술을 권장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유럽을 쓸데없이 부각시키지 않고 구(舊)세계 전
체의 여러 곳에 있었던 문화의 발전을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하려고 시도한 역사책
은 한 권도 없었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 비록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더라도 일반인들에게 세계에 대한 왜곡된 상을 심어주는 용어들을 계속 사용해서
는 안 된다. 이런 용어들은 사람들이 전 지구적인 세계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
는 가능성을 막아버리고, 우리가 가진 한심스럽도록 편협한 생각들을 유지하는데
힘을 실어준다.24)
또한 그는 유럽의 지리적 위치는 유라시아대륙의 반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을 대
륙의 지위로 격상시키는 관행을 버리자”고25) 주장하였다. 호지슨은 유럽의 잘못된 지리적
위상을 수정하기 위해 다음 네 가지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기하였다.
그러므로 유럽이 유라시아의 나머지 부분과 동등한 대륙이라는 생각을 조장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해야 한다. (1) 유럽 ‘대륙전체’를 언급하지 말고
대산 유럽 ‘본토’ 혹은 유럽 ‘반도전체’를 언급하고 (2) 러시아 가운데를 통과하는
의미 없는 경계선을 그려 놓은 지도들을 쓰지 말고 (3) ‘아시아적’이라는 말이 마치
‘유럽의’ 혹은 ‘미국의’라는 말들처럼 특별히 구체적인 특성을 지칭하는 듯이 쓰지
말고 (4) ‘아시아’나 그 하위구분들에 대해 우리가 하는 말들을 잘 살펴서 혹시 유
럽과 그 하위구분들에 대해 말도 안 되는 비교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야 한
다.26)
이와 더불어 그는 “‘동’과 ‘서’가 세계문명의 상호보완적인 반쪽”이라고 보지 말 것을 제
안하였다.27) ‘서’에 있는 문명들은 동질성이 있을 수 있지만, ‘동’에는 아랍문자를 쓰는 ‘근
동’, 힌두 문자를 쓰는 인도, 한자를 쓰는 ‘극동’ 등 적어도 세 개의 거대한 문명들로 구성되
어 있어서 ‘동’과 ‘서’를 균등하게 보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지슨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호지슨이 제기한 이러한 인식들은 오늘날 반서구중심주의 세계사서술에서는 일반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제기가 1944년에 벌써 제기되었다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호지슨은 “유럽이 산업혁명 이래 중국에 끼친 영향은 중국이 유럽에 끼친 영향보다 크다”라
는 것을 인정하고,28) ‘근동’과 ‘극동’ 등 서구중심적 지리용어를 여전히 사용하였고, 세계사
속에서 아프로-유라시아 전체의 각 부분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 시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호지슨의 세계사 출판에 대한 계획은 194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호지슨은 1945년
에 마거릿 캐머론의 논문 제목에서 힌트를 얻어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자신의 세계
사 저술에 “동양은 없다(There is no Orient)”라고 제목을 붙이려 했다. 1955년에는 토인
비의 저작을 대체할 수 있는 “일종의 신곡(Divina Commedia)”를 구상하였고, 1960년에는
구상중인 책 제목을 ‘세계사의 구조: 중세와 근대 유라시아에 대한 에세이’(The Structure
24)
25)
26)
27)
28)
마셜
마셜
마셜
마셜
마셜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세계사와
「세계사와
「세계사와
「세계사와
「세계사와
세계사관」,
세계사관」,
세계사관」,
세계사관」,
세계사관」,
p.
p.
p.
p.
p.
80.
81.
82.
82.
79.
– 5 –
of World History: an Essay on Medieval and Modern Eurasia)로 붙이려고 생각하였다.
1962년 호지슨은 자신의 세계사 논문들을 묶어서 책으로 출판하려는 출판메모를 남겼는데,
이 책의 각장 윤곽은 호지슨의 유고 세계사의 통일성과 비슷한 형태를 띠었다. 호지슨이
출판하지 못하고 남긴 유고 세계사의 통일성은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대학교(University
of California, Santa Cruz)의 에드먼드 버크 3세(Edmund Burke III)가 편집한 마셜 호지
슨의 세계사론: 유럽, 이슬람, 세계사 다시보기로 보완되어 출판되었다.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은 미완성 원고 상태였기 때문에 에드먼드 버크 3세가 아니었
으면 출판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호지슨의 유고는 일부가 논문으로 출판되었거나 이슬람의
모험에 넣기 위해 발췌되었기 때문에 당시 출판사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이러한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버크 3세는 이미 출판된 논문들과 원고의 일부를 재구성하여 책으로 출
판하고자 하였다. 그는 호지슨의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접근적 방법과 방법론적 엄
격성이 새로운 세계사학의 모색에 중대한 공헌을 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호지슨의 친필메모
를 참조하여 이슬람과 세계사에 대한 가장 우수한 글들을 추려 모아 책으로 출판하였다.29)
버크는 크게 세부분으로 호지슨의 논문들을 모았다.30) 제 1부 ‘세계사적 맥락에서 본 유
럽’은 유럽중심주의적 세계사를 비판하는 호지슨의 글들을 모았다. 제 2부 ‘세계사적 맥락에
서 본 이슬람’은 이슬람과 세계사에 대한 호지슨의 글들을 담고 있다. 제3부 ‘세계사라는 분
야’는 호지슨이 출판하지 못한 세계사의 통일성의 마지막 부분을 이루는 세 편의 글이 들
어 있다.
세계사의 새로운 틀을 만들기 위해 서구중심주의 세계사서술의 기본전제들을 체계적으로
비판하는 대표적인 초기 저작으로 1954년에 발표한 「세계사에 대한 접근으로서의 지역간
반구의 역사」를 들 수 있다.31) 그가 후에 주장한 새로운 세계사 서술의 초기 윤곽들이 이
논문에서 제시되었다. 이슬람문명과 유럽문명을 모두 세계사 속에서 파악하는 개념상의 혁
신을 1963년에 발표된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32)에서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서 그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문명의 역사를 보면 아프로-유라시아 전체지역에 있는 주요 5
개 문명 중 4개가 아시아에 위치했기 때문에 아시아가 중심적 역할을 했다고 보았다. 그래
서 서구 역사를 세계사서술의 중심에 놓지 말고, 아프로-유라시아 반구 전체 지역을 다루는
역사적 접근을 해야 된다고 호지슨은 주장했다.33)
1966년의 「세계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뉴햄프셔 대학교 존 볼에게 호지슨이 보낸 1966
년 12월 16일자 편지의 발췌문이다. 이 글은 윌리엄 맥닐의 서구의 부상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맥닐, 마르크스주의, 헤겔, 크리스트교 등의 서구중심주의의 주요해석들을 비판하였
다.34) 이글을 보면 호지슨이 자신의 세계사연구방법론과 당시의 다른 접근과의 차별성을 명
료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재도 쟁점이 되고 있는 근대화이론의 서구중심주의를 세계사적 맥락에서 비판하는 호
지슨의
「서구의
대변동」이
1967년에
발표되었다.35)
호지슨은
근대화를
서구화
29) 에드먼드 버크 3세, 「서론: 마셜 호지슨과 세계사」,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13.
30) 에드먼드 버크 3세, 「마셜 호지슨과 세계사」, pp. 13-15.
31) Marshall Hodgson, “Hemispheric Inter-regional History as an Approach to World History,” Journal
of World History, I-3 (1954).
32) Marshall G.S. Hodgson, “The interactions of societies in history,” Comparative Studies in Society
and History, 5 (1963), pp. 227~250.
33) 에드먼드 버크 3세, 「서론: 마셜 호지슨과 세계사」, p. 19;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40.
34) 마셜 호지슨, 「세계사를 연구한다는 것에 대하여」, pp. 156~159.
– 6 –
(Westernization)와 혼동해서 보지 말고 세계사의 전개과정에서 서구가 아니더라도 중국이
나 이슬람사회에서 발생할 수 있었던 일로 파악하였다. 즉 서구의 근대화는 서구에서만 예
외적으로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진행되고 있던 ‘기술적 전문화’ 과정이 서구
에서 먼저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호지슨이 1968년 사망할 당시 그의 주저인 이슬람의 모험은 약 3분 2정도 작업이 끝
난 상황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협력자인 루벤 스미스가 남은 원고를 편집하여 1974년 세
권으로 구성된 이슬람의 모험을 출판하였다.36) 이 책은 호지슨의 주저로서 이 책은 1958
년부터 시카고대학교 학부에서 호지슨이 가르친 이슬람문명개론 강의교재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시카고대학교는 학부교육과정에서 세계 주요문명들을 각 지역 고전을 통해 가르
쳤고, 1950년대 말에는 인도, 중국, 이슬람이 추가되었다. 호지슨의 이슬람 문명연구는
1950년대 시카고대학교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학풍 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당시 시카고대학
교 문명강좌 흐름의 전체적 틀을 제공한 로버트 레드필드(Robert Redfield)나 밀턴 싱어
(Milton Singer)가 발전시킨 문명개념이 호지슨의 문명개념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1950
년대와 1960년대 초의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사회사상협동과정(the Committee on Social
Thought)을 같이 운영했던 존 네프(John U. Nef), 미르체 엘리아데(Mircea Eliade), 그리
고 에드워드 실즈(Edward Shils) 등도 호지슨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37)
이슬람의 모험의 주요 기여로 이슬람의 ‘중간시기(the Middle Periods)’를 높이 재평
가한 점을 들 수 있다. ‘중간시기’는 서기 945년경 압바스조 관료제 제국의 쇠퇴시기부터
16세기 화약제국이 발전하는 시기이다. 945년 이후 이슬람사회가 장기간 쇠퇴과정을 걷는
다는 기존 견해에 맞서 이 책은 이슬람문명의 위대한 인물들이 지속적으로 출현하였고, 이
슬람문명은 아랍어뿐만 아니라 페르시아어와 터키어를 통해 다양하게 발전하였다는 점을 들
어 중간기 이슬람 문명이 쇠퇴하지 않았다는 반론을 제기하였다.
1968년 호지슨은 47세에 사망하였다. 이른 사망으로 호지슨의 새로운 시도는 지속되지
못했다. 호지슨이 새로운 세계사서술을 계속 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세계사연구방법과 이
슬람사 재해석 작업에 큰 진전이 있었을 것이다.
III.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 연구방법
호지슨의 세계사연구는 문명연구 접근방법에 근거하고 있다. 호지슨의 문명연구는 위에
서 이야기한 것처럼 1950년대 미국 시카고대학교의 문명개념에 영향을 받고 있다. 문명개
념을 사용하는 연구자들은 문명은 영구적으로 변하지 않고, 시작되는 순간 운명이 결정된다
고 보는 경향이 있다.38) 이슬람문명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이러한 입장에서 대부분 이슬람
35) Marshall G. S. Hodgson, “ The Great Western Transmutation,” Chicago Today (1967), pp. 40~50.
이 글은 뒤에 이슬람의 모험 제 3권 제6책 제 1장과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제1부 4장으로 다시 출판되
었다.
36) Reuben W. Smith, “Marshall Hodgson and The Venture of Islam,” The Venture of Islam: Conscience
and History in a World Civilization, I, pp. viii-x.
37)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60.
38) 문명이라는 용어 사용에 대한 논의는 다음 문헌을 참고하면 된다. Robert McC. Adams, The Evolution of
Urban Society (Chicago, 1966); Ruth Tringham, “The Concept of ‘Civilization’ in European
Archeology,” in Jeremy A. Sabloff and C. C. Lamberg-Karlovsky, eds., The Rise and Fall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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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보았다. 문명연구는 문명(civilization)과 문화(culture)를 구별하기 어렵고, 문명사이
의 경계설정이 모호하고, 문화주의적 편향성을 지닌다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 문명연구는
문자화된 엘리트문화에 많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인 성격을 띠기도 한다.39)
호지슨은 기존 문명연구에 대한 비판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
다. 먼저 그는 문화와 문명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역동적인 것이고, 지속적으
로 내부적인 분화를 거치고, 문명이 추구하는 이상(ideal)들의 지위도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과거에 갇혀있지 않는 것으로 보려했다.40)
역사적 변화는 계속되고 모든 전통은 그들이 항상 내부적으로 불균형하다는 필연
적 사실 때문에 열려있고 변화한다…주요한 지향들이나 조직을 이루는 원칙을 유효
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우리가 어떠한 패턴의 통일성을 발견하든지, 즉 문화에서
어떤 공통된 스타일의 감각을 발견하든 지간에 그것은 널리 퍼지고 지속적일 수 있
지만 본질적으로 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긍정적인 가능성이 열리자마자 패
턴의 통일성은 취약해진다.41)
무슬림들의 사회적 결정은 보수적인 사회적 결정은 보수적인 정신에 따른 것일지
라도 일차적으로 과거에 대한 경외 때문이 아니라 주요 사회집단들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이해관계를 만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다. 잘못 인식되고 있는 것
이 ‘동방’이든 ‘전근대’든 간에, 본질적인 불변성이라는 명제는 대변동시대에 여러
민족들이 취하고 있었던 구체적 자세들이 대변동의 충격 아래에서 어떻게 그들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는지가 하는 중요한 의문을 가려버린다.42)
그에게 문명은 다양한 광범위한 문화들이 서로 상호의존적이고 누적적인 전통을 같이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복합적 문화로 보았다. 이 문명은 주로 도시에 거주하면서 문자를 사용하
는 상층의 문화적 경험에 의존 하는 것으로 호지슨은 생각했다.
만일 우리가 광범위한 문화들의 묶음을 거기에 속한 문화들이 상호의존적이고
누적적인 전통들을 공유하는 한(아마도 ‘상층 문화’-도시가 있고 문자가 있는 정도
의 복잡성과 세련됨의 수준에서 비교적 널리 공유된 문화형태들-의 수준에서는) 하
나의 ‘문명’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른다면 그렇게 공유된 전통들은 그러한 문화들이
공통으로 구속되어 있는 ‘상층’문화적 경험의 어떤 범위에 집중될 것이다.43)
호지슨은 이슬람문명을 접근하는 데 있어 “감정이입과 존중”을 강조하였고, 이러한 접근
Civilizations(Menlo Park 1974)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77).
39) 호지슨은 오리엔탈리즘이나 서구문명 담론 모두 각 문명에는 본질이 있고, 각 문명의 본질은 그 문명들이 낳
은 위대한 고전들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는 ‘텍스트주의’ 관점에 근거에 서있다. 호지슨은 본질주의
(essentialism)가 문명연구의 기본적 속성이라고 보았다 (에드먼드 버크 3세, 「서론: 마셜 호지슨과 세계사」,
pp. 16~17).
40)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77.
41) 마샬 호지슨, 「문명연구의 역사학적 방법론」, 마샬 호지슨의 세계사론, p. 152.
42) 마샬 호지슨, 「문명연구의 역사학적 방법론」, p. 154.
43) 마샬 호지슨, 「문명연구의 역사학적 방법론」, pp. 144~145; Marshall G. S. Hodgson, The Venture of
Islam, I, p.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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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는 ‘객관적’ 연구와 구별된다. 그는 이슬람신앙을 존중하려고 노력했고, 이슬람 문명을
내부로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했다.44) 이러한 접근방식은 루이 마시뇽의 심리사회학적인 ‘감
정이입의 과학’과 빌헬름 딜타이와 칼 융의 ‘이행의 원리’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45)
그는 이슬람적 이상의 존재가 이슬람문명을 다른 문명들과 구별되게 만든다고 보았다.46)
이러한 이상들, 무함마드에게 제시된 쿠란의 메시지와 여러 세대 무슬림들 사이의 대화가
이슬람 문명을 구성한다. 그는 이중에서 “샤리아” 이상을 중요한 이슬람 이상으로 높이 평
가했다. 이슬람문명은 7세기 이후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고 아프로-유라시아대륙의 대부분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호지슨은 이슬람문명은 무슬림들이 이슬람문명을 형성하는 이상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왔기 때문에 통일성을 지닌다고 보았다. 무슬림들은 공통의 출발점, 공통
의 어휘, 그리고 몇 몇 공동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통일성이 가능했다는
것이다.47)
그러나 공통의 문화유산과 아랍어와 (대부분의 지역에서) 페르시아어의 공통된
학습은 사회와 종교의 관계에 대한 공통의 태도와 더불어 여러 이슬람 지역 사이에
최소한의 상호교류와 연속성을 보장해주었다. 따라서 이들 지역 모두에서 간혹 서
로 비슷한 일들이, 혹은 서로 대조되기 때문에 서로 관련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
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신앙으로서 이슬람에 대한 공감은 지구상의 점점 더 넓은
지역에서 문화적 관행의 거대한 체계를 대체로 전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동반하
였고, 문화적 관행은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다양성 속에서도 어느 정도 그 자체로
하나로 통합된 이야기를 갖춘 문명을 이루었다.48)
그러나 이슬람문명의 통일성에 대한 호지슨의 강조는 근대시기에 이르러 큰 벽에 부딪히
게 된다. 근대시기에 이슬람권 문명사회 내에 다양한 지역 언어와 전통들이 부흥되면서 국
제적인 엘리트 문화가 기반을 상실하게 되어 이슬람문명권의 통일성이 크게 위협받았기 때
문이다.49)
호지슨은 기존문명연구를 비판하면서 시작했지만 문명연구가 지니는 문화주의, 엘리트주
의, 본질주의라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했다. 호지슨의 이슬람문명연구는 무함마
드나 주요한 종교지도자들의 이상을 분석하면서 평범한 무슬림 남녀들의 역할이 제대로 분
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엘리트주의적이다.50) 호지슨이 문명연구는 문자 텍스트에 기반에
주요 이슬람 이상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주의적 성격을 띤다. 또한 그가 이슬람 문
명의 이상의 하나인 ‘샤리아’를 이슬람 사회의 지속적인 조직원리로 격상시켰다는 점에서
‘본질주의’적 측면을 드러내기도 하였다.51)
막스 베버(Marx Weber)의 이념형은 호지슨 세계사방법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호
지슨은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을 대체하기 위해 ‘농경시대’와 ‘기술주의’라는 막스 베버식
44)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61.
45)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62.
46)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78.
47) Marshall G. S. Hodgson, “The Unity of Later Islamic History,” Journal of World History 5 (1960), p.
479.
48) 마샬 호지슨, 「후기 이슬람사의 통일성」, 마샬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272~273.
49)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p. 490.
50)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82.
51)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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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형’ 개념을 사용하였다.52) ‘농경시대’는 문명의 시작에서 약 1,800년까지의 모든 인간
역사를
포함한다. ‘기술주의’ 이념형은 약 1600년경부터 농경생활의 기반이 침식되어가면
서 시작된 ‘기술주의’시대를 표현한다. 호지슨에게 있어 근대를 농경시대와 구분하는 특성은
기술화이다. 기술화는 “계산적인 (따라서 혁신적인) 기술적 특화의 상태이며, 그 안에서는
여러 가지의 전문성이 사회 주요 부문들에서의 기대의 패턴을 결정할 만큼 충분히 큰 규모
로 상호의존적이다.”53)
‘기술화과정’의 핵심은 ‘계산적이고 합리적인 원칙에 의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변화했
다는 점’이었다. 이를 보면 호지슨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술주의’라는 개념은 베버의 ‘합리화’라는 이념형의 호지슨 판이라고 할 수 있
다.54) ‘기술주의’라는 개념은 문화사의 요구에 맞추어져 있다. 호지슨의 용례에 따르면
1960년 고전적인 근대화이론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어 ‘근대화론’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지
만, 동시에 근대화과정을 세계적 맥락 속에서 즉, 유럽과 나머지 세계의 관계 속에서 보려
했다는 점이 새로운 점이다. 호지슨에게는 근대화론을 긍정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는 양
면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지슨이 좀 이슬람 모험의 마지막 근대부분 6책
을 완성할 수 있었더라면 근대화에 대한 양면적 태도가 좀 더 명확하게 정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55)
호지슨의 새로운 세계사 연구전략은 ‘하나의 거대한 역사복합체’로 ‘아프로-유라시아 사
회’를 상정하는 것이었다. 이 사회는 농경이 시작된 이래 산업혁명 때까지 계속 성장하면서
지역을 초월하여 아프리카와 유라시아 대륙에 존재했다고 가정되는 거대사회였다. 호지슨은
아프로-유라시아 반구를 다시 유럽, 중동, 인도, 동아시아로 나누었고, 이러한 구분은 약 기
원전 1000년경부터 서기 1800년 정도까지는 상당히 현실에 부합된다고 보았다.
여기서는 동반구의 주요 문명지역을 논하는 것으로 그 칠 수밖에 없다. 인류의
압도적 다수는 지난 두 세기 이전에는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지역에 살았다. 그곳
은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뻗어 있는 아프로-유라시아 지역이고, 그 중에서도 근대
이전에 농경과 도시생활을 발전시켜 인구밀도가 높아진 지역은 대체로 적도 이북이
었다. 이러한 아프로-유라시아 문명을 네 개의 핵심적 지역들, 즉 유럽, 중동, 인도
그리고 중국과 일본이 있는 극동지역으로 나누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한 구분은 약
기원전 1,000년경부터 적어도 서기 1,800년 정도까지는 상당히 현실에 부합되었
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지역의 각각에는 대체로 연속적인 전통을 갖는 중심지
역이 있었고, 그 지역에서 주변의 넒은 지역으로 지속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전파했
다.56)
52)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71; 호지슨의 이슬람의 문명은 6권의 책으로 구성
되어있고, 이것은 6단계의 이슬람 문명발전과 일치한다. 6단계는 초창기(692년까지), 칼리프국의 융성기(945
년까지), 국제적인 문명(1238년까지), 몽골집권기(1303년까지), 화약제국의 시기(1800년까지)이다. 이슬람사
를 6시대로 나누기도하였다. 이러한 6시기 시대구분은 호지슨이 상정한 6개의 이념형과 상호 조응하는 것이
다. 이러한 이슬람사의 6단계에 대해 호지슨은 6개의 이념형을 제시하였다. 아랍 부족의 집권, 칼리프 절대주
의, 아얀-아미르 시스템, 군사-원조국가(military patronage state), 화약제국, 근대 국민국가이다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 p. 487).
53) Marshall G. S. Hodgson, The Venture of Islam, III, p. 186.
54)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과 이슬람의 모험」, p. 475.
55)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과 이슬람의 모험」, p. 476.
56)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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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지역의 각각에는 대체로 연속적인 전통을 지닌 중심지역이 있었고, 그 주변지역에
지속적으로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3,000년 이상 문화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모든 지역들은 함께 상호작용하면서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하나의 거대한 역사복합체를
이루었다.57)
유라시아의 역사를 공부할수록, 이러한 상호관계들이 각기 독립된 사회들 사이
의 단순히 피상적이고 우연한 문화적 차용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
들은 모든 문화적 수준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의 연속과 문화적 패턴을
반영한다. 4대문명권이라는 추상적 역사개념은 불완전하다. 모든 지역들은 함께 문
화적으로 발전하는 하나의 거대한 역사복합체를 이루었다.58)
우리는 대략적으로 지역 간 관계발전의 중심이 되는 선들과 가장 중요한 전환점
들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지역 간 관계 발전에 대한 문제이며, 따라서 인간 역사
자체의 주요 사건들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아프로-유라시아 지
역구성의 발전은 각 지역 역사의 가장 중요한 측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었
다. 그러므로 이 대략적인 밑그림은 간략한 세계사에 가까워진다.59)
호지슨은 ‘반구적 간지역적 접근(hemishphere interregional)’이라는 새로운 세계사 연구
방법론을 제창하였다. 호지슨은 아프로-유라시아 역사 복합체 속에서 뚜렷한 경계선을 긋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있어 아프로-유라시아 문명지대는 지역 간 교류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프로-유라시아 문명지대는 정태적인 역사적 배경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욱 분명해질 것이다. 그것은 상호관계들의 묶음으로서 고유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
다. 여러 문명지역들은 지속적인 역사적 배치를 이루었고, 그 안에서 각각의 지역
은 자신의 특징적인 위치, 다른 문명과의 반복되는 특징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지역 간 구성은 그 자체의 주요한 성격을 유지하면서도 세부적인 상호
관계에서는 항상 변하는 것이었다. 전체로서의 문명지대는 그 자체의 역사를 가지
고 있었다.60)
이러한 접근법은 유럽 중세시기의 유럽과 이슬람사와의 상호작용을 다루었던 피렌느와 볼
린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61) 피렌느는 마호메트와 샤를마뉴에서 이슬람이 아프리카 북
부, 이베리아 반도, 시칠리아 등을 점령하게 됨에 따라 지중해의 원거리 상업이 중단되어
프랑크 카롤루스 마그누스(샤를마뉴) 시대에 경제적 쇠퇴가 발생했다고 보았다.62) 이러한
57)
58)
59)
60)
61)
62)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40.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40.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53.
마셜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50.
파멜라 카일 크로슬리, 글로벌 히스토리란 무엇인가, 강선주 역, 휴머니스트, 2010, pp. 198-199.
H. Pirenne, Mahomet et Charlemagne (Bruxelles, 1937); H. Pierenne, Les Villes et les Instituions
urbaine, t. I (Paris et Brxells, 1939). 피렌느 테제는 다음처럼 요약될 수 있다. “중세가 시작된 것은 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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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느의 주장에 대해 스웨덴 고전학자 볼린은 1939년에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그리고 루
릭이라는 논문에서 프랑크 왕국이 여전히 이슬람 세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었다고 반
박하였다.63) 볼린은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마구누스가 이슬람 디르함 은화를 모델로 하여
프랑크 왕국의 주화인 데나리우스 은화를 만들었고, 이슬람 세계와의 교류를 통해 카롤루스
마그누스 시대의 경제가 여전히 활기를 띠었다고 주장하였다. 호지슨은 피렌느보다는 지속
적인 상호교류를 강조한 볼린의 주장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IV. 세계사로 다시 보는 이슬람사
호지슨 세계사 저술의 중요한 초점은 서구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재평가하여,
서구의 역사를 유럽중심주의적 목적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64) 호지슨은 이슬람사
를 그 자체 내부에서가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를 하
였다.
호지슨은 이슬람문명의 출현을 세계사 흐름의 맥락에서 연속적으로 파악하려고 했다. 이
슬람의 모험은 추축시대 이후 이슬람권 사회에 세 개의 주요 지적전통이 지속적으로 작용
했다고 본다. 예언자적 유일신론, 그리스적 자연과학과 철학, 그리고 페르시아적 제국 전통
이 새로 등장한 이슬람문명사회에서 재구성되어 발전되었다는 것이다.65) 그리고 이슬람문명
이 이란-셈계 문화의 비교적 평등주의적이고 세계시민적 경향을 발전시킨 것이 세계사 속
에서 이슬람이 행한 주요한 역할이라고 그는 평가했다.66)
그는 이 아프로-유라시아 역사복합체에서 이슬람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
을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그의 통일적인 시대구분에 잘 나타나 있다. 그 시
대구분에 따르면, 700년 이전은 초창기, 700년~1000년은 압바스 고전시대, 1000년~1250
년은 중간시기 전반, 1250년~1500년은 중간시기 후반, 1500년~18000년은 오스만, 사파
비, 무굴 3대 제국의 시대, 그리고 1800년 이후는 이슬람사가 쇠퇴하면서 유럽이 주도권을
쥐는 근대시기였다.67)
만약 1,000년에서 1,250년을 중간시기 전반이라고 한다면, 1,250년에서 1,500년
까지는 중간시기 후반이 될 것이고, 이 시대에슨 바로 전 시대에 발전된 대부분의
문화적 조류들이 계속되지만 그만큼 광채를 발하지는 못했다. 그러고 나서는 눈에
만 족 침입이 아니라 이슬람 세력의 진출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즉 피렌은 중세의 개막과 관련해서는 거의 고
려되지 않았던 이슬람에 주목하여, 게르만 침입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던 고대의 전통과 지중해의 통일성이 예
기치 않은 이슬람 침공으로 파괴되어 새로운 시대인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았다.” (강일휴, 「피렌테제와 이
슬람」, 서양사론 108호 (2011. 3), pp. 212-213, p. 219)
63)Strue Bolin, “Mahommed, Charlemagne and Ruric,” Scandinavian Economic History Review, no. 1
(1953), (강일휴, 「피렌테제와 이슬람」, p. 223)
64)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과 이슬람의 모험」, p. 469.
65)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과 이슬람의 모험」, p. 486.
66) Marshall G. S. Hodgson, “The Role of Islam in World History,” International Journal of Middle East
Studies I, 1 (1970), pp. 99~123; 에드먼드 버크 3세, 「결론: 세계사로서의 이슬람사: 마셜 호지슨과 이슬
람의 모험」, p. 484.
67) 마셜 호지슨, 「후기 이슬람사의 통일성」,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284-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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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게 다른 시대, 약 1,500년에서 1,800년까지의 오스만, 사파비, 무굴 세 거대제국
들의 시대가 이어졌다. 이 들 두 시기는 4권의 범위에 해당된다. 이들 시기에는 중
간시기 전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의 변화는 이미 성립되어 있는 문화적 기
반을 전제로 하였고, 많은 중심지들이 그 위에서 다양하게 그러나 서로 연관성을
갖고 이슬람 사회의 통일성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가는 일 없이 발전하고 있었다.
초창기 이후의 이슬람 시대들은 한 문명의 새로운 등장을 연구하듯이 연구될 수 없
으며, 잘 정리된 단선적인 역사로 축소될 수도 없다. 그러나 다른 대규모의 역사부
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넓은 관점에서 적절하게 연구될 수 있고 연구되어야만
하는 측면들을 갖고 있다.68)
이러한 시대구분은 이슬람권 문화가 초기 칼리프국의 융성이 끝난 후 혹은 늦어도 13세
기 몽골의 침입이후에 쇠퇴하거나 붕괴했다고 보는 시각을 전면 부인한다.69) 이슬람 세계가
초기에만 발전하고 그 이후에는 정체되었다는 견해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것이었다. 오히
려 호지슨은 1000년에서 1500년 사이의 중간기 동안 이슬람 사회가 크게 팽창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1000년경부터 무슬림 신앙과 그에 부수적인 문화의 영역이 거의 모든 방향으
로 쉴 새 없이 팽창하였고, 그 결과 16세기가 되면 이슬람의 영역은 거의 세배로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70)
그러면 어떤 요인으로 인해 이슬람 영역이 지속적으로 팽창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호지슨은 이슬람사가 상업을 강조함으로써 도시적인 공동체적인 관념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점과 평등주의적 세계시민적인 경향을 제도화하였던 점을 들었다. 이러한 요인에 근
거하여 이슬람 세계는 아프로-유라시아 반구에서 18세기 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
던 것이다.
확실하게 역동적인 점만 참조하여 아주 넓게 말하자면, 아프로-유라시아의 역사
에서 이슬람의 역할은 상업의 우세와 관련된 도시적이고 공동체적인 관념들에게(비
록 가장 주된 역할은 아니더라도) 핵심적인 역할을 부여하면서, 이란-셈계 문화의
비교적 평등주의적이고 세계시민적인 경향들을 제도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란-셈계의 전통들이 반구전체에 걸쳐 공통의 신앙으로 결속된 하나의 질서 아래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사회질서는 마침내 반구의 다른 사회들을 위에
입각한 넓은 세계사적 맥락의 주요한 일부를 구성했다. 아프로-유라시아 땅덩어리
의 가장 서북쪽 끝과 가장 동북쪽 끝에 있는 반구의 다른 사회들만이 이슬람에 대
한 적절한 대안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슬람권 역사의 중간시기,
즉 945년(칼리프의 파탄)과 1500년(크고 새로운 관료적 제국들의 등장) 사이의 세
기들을 그들의 분권화와 군사화에도 불구하고 쇠퇴기였다고 볼 수 없다.71)
호지슨은 이러한 아프로-유러시 복합체 안에서 서유럽은 계속 주변적, 후진적 역할을 했
고, 십자군운동이 끝날 때 쯤 아랍인들과 대체로 비슷한 문화적 수준이 되었다고 보았다.
68)
69)
70)
71)
마셜
마셜
마셜
마셜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후기 이슬람사의 통일성」, p. 285.
「세계사 속에서 이슬람의 역할」,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170.
「후기 이슬람사의 통일성」, p. 277.
「세계사 속의 이슬람의 역할」, pp. 196-197.
– 13 –
유럽은 이때까지 다른 지역의 문화 중심지에 대해서 종속된 관계에 놓여있었다.72)
문화적 학습 흐름은 중국, 인도, 중동 그리고 동지중해에서 유럽으로 일방적으로 흘러가
고 있었다. 호지슨에 따르면, 유럽은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아프로-유러시아
의 다른 주요 문명들의 문화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고, 유럽의 도약은 1600년과 1800년
사이에 일어났다. 이슬람 세계는 18세기부터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그 빈 공백을 유럽이 차
지하기 시작했다. 호지슨은 18세기에 들어서 유럽이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지
만, 그 영향력은 해양무역에 국한되었을 뿐이지 18세기까지 육상에서는 여전히 열세를 면치
못했다고 보았다.
호지슨은 약 1600년에서 1800년 사이에 서유럽에서 전반적인 문화적 변동이 발생했고,
이 시기의 대표적 사건으로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을 들었다.73) 그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를
‘대변동(great transmutaion)’라고 불렀다.74) 대변동은 그 이전과 다르다는 점에서는 새로운
사건이지만 다른 변화들과 연결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생물학적 돌연변이와는
다르다고 보았다.
나는 이러한 사회적 힘으로 연결되었던 1,600년에서 1,800년 사이 유럽에서 있
었던 문화적 변화들을 대변동(transmutation)이락 부른다. 여기서 나는 생물학적
비유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적 힘의 이러한 증폭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그
러한 변화들은 서로 연결된 통일성을 갖고 있고, 적절한 주의를 기울인다면 비록
거대하고 복잡하지만 하나의 사건으로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75)
유럽이 18세기 이후 세계의 중심으로 발전하게 된 이유를 호지슨은 유럽내부와 외부 모
두에서 찾고 있다.76) 유럽내부적인 요인으로 유럽 토양의 상대적인 미활용과 광대함, 다른
도시문명 사회에 대한 용이한 접근성이 거론되었고, 유럽 외부적인 요인으로는 오랜 세월동
안 대대적인 파괴나 외부인의 정복이 상대적으로 적었고, 대서양 항해가 태평양에 비해 상
대적으로 수월했다는 점 등이 이야기되었다.
또한 유럽의 팽창에 이슬람권의 발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호지슨의 지적에 주목할 필
요가 있다. 무슬림 상인들이 뒤에 유럽인들이 해상활동을 할 수 있는 항로를 개척해주었고,
주요 무역거점의 토착 세력을 정지 작업해줌으로써 유럽의 진출을 용이하게 해주었다는 것
이다.
이슬람권의 발전은 서구의 팽창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컨대 무슬
림 상인들의 광범위한 활동은(기존에 만들어진 항로를 그냥 넘겨받기만 하면 되었
으므로) 유럽인들이 항로를 개척하는 데, 그리고 전통적인 힌두교와 불교세력을 수
마트라와 자바 같은 곳에서 약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구세력이 밀려들
어올 수 있는 문화적 · 경제적 공백을 남긴 것은 이슬람의 내적 쇠약이 있었기 때
문이다.77)
72)
73)
74)
75)
76)
77)
마셜
마셜
마셜
마셜
마셜
마셜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호지슨,
「역사상의 사회들 사이의 상호관계」, p. 63.
「서구의 대변동」, p. 89.
「서구의 대변동」, p. 92.
「서구의 대변동」, p. 92.
「서구의 대변동」, p. 123.
「후기 이슬람사의 통일성」,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 322.
– 14 –
아프로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역사적 복합체는 농경이 시작되면서 산업혁명 시기까지 계속
성장하였고, 7세기부터 17세기까지는 이슬람권 사회가 아프로 유라시아 반구에서 가장 광
대하고 영향력이 큰 사회였다.
1800년경에야 서구가 이슬람권 사회를 제치는 세계사적 ‘대
변동’이 일어났는데, 막스 베버(Max Weber)와 다르게 호지슨은 이러한 변동을 유럽적 사건
이 아니라 세계사적 과정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서구의 대변동을 하나의 역사적 사건 내지 과정으로 분석해야지 단순히 인간문
화의 새로운 상태나 새로운 시대의 존재로 보면 안 된다.”78)
18세기 이후 유럽에서 시작된 대변동은 유럽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이 대변동은 근대특유의 가속화, 기술적 혁신의 제도화, 상호작용 이라는 세 가지 주요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호지슨은 분석하였다.79) 이러한 대변동은 전통사회에서 근대로 전환
하는 시점이 아니라 농경주의 단계에서 기술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호지슨은 대변동은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나 다른 어느 곳에서도 가능했었을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에서만 대변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근대주의 패러다임을 비판했다.
아마도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면 그 말은 서구의 발전에 뭔가 중단이 있었다
면) 비슷한 대변동이 다른 농경단계의 사회들에서 조만간에 각각의 배경에서 형성
된 그 자체의 고유한 형태로 일어났을 지도 모른다. 중국인들이 송대의 성취 – 철
과 강철 생산의 거대학고 갑작스런 증가, 새로운 기술적 발전의 증가, 전반적인 문
화적 활력 – 를 더욱 성공적으로 반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또한 이슬
람권이 인도에 궁극적으로 대단한 역동성을 줄 수 있었을 조건들도 상상해 볼 수
있다.80)
VI. 맺음말
이상으로 호지슨의 세계사인식 성립과정, 반서구중심주의적 세계사연구방법론, 그리고
이슬람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살펴보았다. 호지슨의 세계사에 대한 인식은 1940년대 초
부터 1968년까지 4반세기를 거치면서 체계화되었다. 서구이외의 다른 세계사를 서구중심주
의적 입장에서 벗어나 세계 전체 입장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호지슨의 반서구
중심주의적 세계사 접근의 출발점이 되었다.
호지슨의 세계사연구는 문명연구 접근방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존 문명론과 다르게
문화와 문명은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에게 이슬람문명
은 이슬람적 이상의 존재로 인해 이슬람문명이 다른 문명들과 구별되고, 무슬림들이 이슬람
문명을 형성하는 이상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왔기 때문에 통일성을 지니는 것이었다.
호지
슨은 기존문명연구를 비판하면서 시작했지만 문명연구가 지니는 문화주의, 엘리트주의, 본
질주의라는 한계를 근본적으로 탈피하지 못했다. 호지슨은 전통과 근대라는 이분법을 대체
78) 마샬 호지슨, 「서구의 대변동」, p. 96.
79) 마셜 호지슨, 「근대성과 이슬람의 유산」, 마셜 호지슨의 세계사론, pp. 335-337.
80) 마셜 호지슨, 「서구의 대변동」, pp. 123~124.
– 15 –
하기 위해 ‘농경시대’와 ‘기술주의’라는 막스 베버식 ‘이념형’ 개념을 사용하였다. 호지슨의
새로운 세계사 연구방법론에 ‘하나의 거대한 역사복합체’로 ‘아프로-유라시아 사회’를 상정
하는 것과 ‘반구적 간지역적 접근(hemishphere interregional)’이라는 새로운 세계사 접근
방법이 포함된다.
호지슨 세계사 저술의 중요한 초점은 서구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 속에서 재평가하여,
서구의 역사를 유럽중심주의적 목적론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동시에 호지슨은 이
슬람사를 그 자체 내부에서가 아니라 세계사적 맥락에서 파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큰 기여
를 하였다. 그는 이 아프로-유라시아 역사복합체에서 이슬람 사회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
는 과정을 통일적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는 그의 통일적인 시대구분에 잘 나타나 있다.
이슬람세계의 지속적 성장원인으로 이슬람사회가 상업을 강조함으로써 도시적인 공동체적인
관념을 확산시킬 수 있었던 점과 평등주의적 세계시민적인 경향을 제도화하였던 점이 제시
되었다.
호지슨은 1800년경을 전후로 아프로 유라시아세계에서 서구가 영향력있는 사회로 전환하
는 ‘대변동’의 시기로 보았다. 막스 베버와 다르게 이러한 변동을 유럽적 사건이 아니라 세
계사적 과정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고 호지슨은 주장했다. 이러한 대변동은 전통사회에서 근
대로 전환하는 시점이 아니라 농경주의 단계에서 기술주의 시대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호지
슨은 이것은 유럽이 아니라 다른 어느 곳에서도 가능했었을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 유럽식
근대주의 패러다임을 비판했다.
호지슨은 이슬람사의 중간시기에 주목하여 이슬람사가 중간시기 이후 정체되었다는 부정
적 인식을 비판하였고, 유럽 근대를 세계사적 맥락 속에서 재위치 시켰고,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슬람사를 세계사 전체 흐름 속에서 복원시켰다. 이러한 기여에도 불구하고
호지슨의 세계사론은 몇 가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세계사연구방법이 체계화되지 못했고,
문화주의적 세계사 접근으로 인해 구체적 세계사현실에 대한 파악이 부족하고, 세계사 속의
이슬람문명의 위치를 너무 과대평가했다는 점 등을 한계점으로 들 수 있다. 이러한 한계에
도 불구하고 호지슨의 문제제기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사 연구방법과 성과가 확산되었다는
점은 여전히 높이 평가할 만하다.
[논문접수: 2016. 6.10, 심사시작: 2016. 6.15, 심사완료: 2016.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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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lamic History in a global context and Anti Euro-centrism
Kang, Sungho
This paper examines Marshall Hodgson’s rethinking Islamic history in a global
context and his anti Euro-centrism. He is the most influential American historian of
Islam due to his Venture of Islam: Conscience and History in a World Civilization
that has radically reconsidered the study of the Civilization of Muslims. His works
on world history was rediscovered and published by Edmund Burke III.
Hodgson’s papers and books were a precursor to the modern world history
approach. He was dissatisfied with
the prevailing Euro-centrism and had tried to
place Islamic history in a wider global context. Central to Hodgson’s method of
doing world history is his use of ideal types of Max Weber. He developed ideal
type
of
‘Agrarian
age’
and
‘Technicalism’
to
replace
the
tradition/modernity
dichotomy.
He thought that ‘the Great Western Transmutation’ of modern Europe was the
end-product of millennia-long evolutionary development in Eurasian society. So
‘modernity’ could have originated somewhere else unlike Max Weber and Sung
China in the 12th century was close to an industrial revolution. So he denied
original western exceptionalism.
Key words: Marshall Hodgson, World history, Euro-centrism, Islamic history,
Civi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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