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 2016.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OUGHTOPIA』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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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1)
정 승 현**
목차
Ⅰ. 서론: 문제의 제기
Ⅱ. 중심부에 의한, 중심부를 위한: 문
명의 이름으로
Ⅲ. 문명의 권리와 주변부: 주변부는 독
자적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Ⅳ. 주변부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유
럽 혁명을 촉발하는 수단으로서의
주변부
Ⅴ. 맺는말
요약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가 문명 개념을 기반으로 삼아 세 가지 측면에서 서구중심
주의의 인식 틀을 갖고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문명을
통해 비서구 사회 및 유럽 주변부에 대한 유럽 중심부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당대의
서구중심주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둘째, 마르크스주의에서 주변부는 중심부
에 의한 문명화의 대상이자 중심부의 혁명을 촉발하는 촉매제로 배치되며 서구와
주변부의 위계 설정, 중심에 의한 주변의 지배가 정당화되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셋째, 비서구 혹은 유럽 후진 지역은 독립적인 존재 의의를 갖는 고유한 역사단위체
가 아니라 유럽에 의해 역사의 무대로 끌어올려지고, 유럽 혁명에 대한 수단으로서
중심부에 의해 이끌어지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를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 문명담론으로 내세우려는 최근의 마르크스주의자
들이 실효성을 확보하려면, 먼저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서구중심주의의 인식 틀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제어: 마르크스주의, 서구중심주의, 문명, 중심과 주변, 역사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NRF-2014S1A3A2043763).
** 서강대학교 /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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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문제의 제기
1. 선행 연구의 검토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는 비
교적 익숙하면서도 다소 낯선 주제이다.1)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할 때 오래전
부터 지적되었던 사항들, 예컨대 경제결정론, 인류역사발전의 5단계설, 사회
주의혁명의 필연성, 제국주의의 식민지 침투에 대한 긍정적 평가 등은 그
자체가 서구중심주의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러한 주제들은 마르크스의 역사발전 모델이 유럽에만 국한되는 것인
지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관철되는 보편적 법칙인지에 관한 논쟁과 연결되고,
다시 이를 확대하면 제3세계의 전(前)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사회주의혁명
의 문제에 접맥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기된 문제인 것이 사실이다.2)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상과 서구중심주의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여러 갈래로 퍼져 진행되고 있어 정리조차도 쉽지 않은
형편이지만, 필자가 입수 가능했던 문건들을 중심으로 거칠게 나누자면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 일반과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을 논의하는
연구들이 있다. 논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마르크스 역사이론이
이른바 역사발전 5단계론으로 대변되는 단선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비서구 사회는 서구의 발전 경로를 모델로 삼아 단계적으로 나아간다는 진화
론과 목적론을 내세우고 있다는 점을 서구중심주의의 가장 중요한 근거로서
내세우고 있다. 이 분야의 연구들은 주로 역사학계에서 진행되었는데, 특히
1) 이 글에서는 유럽중심주의와 서구중심주의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외국의
논자들은 주로 유럽중심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국내 학계에서는 서구중심주의
라는 용어가 보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2차 문헌을 언급하거나 당대의
역사 상황과 관련된 곳이 아니면 서구중심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서구중심’ 혹은 ‘유럽중심’이라는 주제 아래 고찰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사회정치사상에 관련된 글들을 편집한 Jessop
and Wheatle eds. 1차분 4권(1990)에는 서구중심주의 항목 및 관련 논문들이 없다.
2차분 4권(1999) 중 제6권에 비로소 서구중심주의와 관련된 글들이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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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민(Samir Amin)의 유럽중심주의(Amin 2009), 프랑크(Andre Gunder
Frank)의 리오리엔트(Frank 2003), 블라우트(James Morris Blaut)의
‘역사의 터널’(Blaut 2008) 등의 문제제기 이후 큰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러
한 주장들은 역사학계에서 상당히 공유되며 김준호(1987), 강성호(2003)
등은 마르크스 엥겔스가 비서구 사회를 정체론에 입각하여 파악하고, 근대
유럽이 걸어온 길을 나머지 세계도 따를 것이라는 19세기의 통념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둘째, 비서구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문건들을 중심으로 서구중심
주의의 문제를 논하는 접근이 있다. 이 연구들은 마르크스주의의 비서구사회
론에서 나타난 정체되고 게으른 비서구 사회와 역동적 유럽의 대조, 비서구
사회는 유럽에 의해서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타율적 발전론, 유럽의 역사발전
패턴이 모든 인류역사의 모델이자 정점이라는 주장, 유럽의 식민지 침탈에
대한 긍정적 평가 등을 서구중심주의의 표상으로 지적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이른바 오리엔탈리즘이다.
사이드(Edward W. Said)는 마르크스 역시 19세기 유럽의 동양에 관한
인식을 그대로 계승하여 “동양과 아프리카에 대한 무지와 미신에 관한 이론
을 구상”했고, 이것은 “프랑스와 영국의 정부 대변인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고까지 성토했다(Said 2005, 334).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터너
(Turner 1978)와 이민호(2002)는 마르크스의 역사 모델은 역동적 서구와
정체된 비서구를 대조시키며, 비서구 사회는 서구에 의해서만 비로소 역사무
대에 들어설 수 있다는 오리엔탈리즘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또한 차크라바
르티(Dipesh Chakrabarty 2014)와 영(Robert Young) 같은 탈식민주의자
들도 마르크스주의 또한 서구의 지배를 후원하는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의
하나라고 비판하는데, 특히 영은 “세계사의 합리적 체계의 전개라는 마르크
스주의의 보편적 서사는 단지 유럽 제국주의 역사의 부정적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Young 2008, 75). 한때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
켰던 아시아적 생산양식 역시 오리엔탈리즘과 무관하지 않은데 대표적으로
송영배는 인도와 중국에 관한 마르크스의 문건을 토대로 그의 아시아적 생산
양식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하였다(송영배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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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주장들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을 부
정하는 반론들도 만만치 않다. 정치경제학비판요강(Grundrisse) 중 “자본
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형태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마르크스의 비서구
사회 분석은 역사의 단선론ㆍ단계론적 발전론을 내포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
하는 연구(Hobsbawm 2012), 마르크스의 역사서술은 역사의 다양한 층위와
발전경로 및 대안을 열어놓기 때문에 단선론적 발전모델에 입각한 서구중심
주의가 아니라는 반론들이(김택현 2014; 김세연 1995) 대표적이다. 또한
앤더슨(Perry Anderson)과 만델(Ernest Mandel)은 아시아적 생산양식 개
념의 유용성 자체를 부정하였고(Mandel 1986; Anderson 2014), 마르크스
주의는 유럽 중심 혁명이 아니라 전 지구적 혁명론, 선진자본주의 국가와
후발국 혁명의 상호의존성이라는 범세계적 관점을 갖고 있었다는 이유에서
서구중심의 혁명론을 부정하는 연구도 있다(Nimitz 2002).
이처럼 마르크스주의의 서구중심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은 그 근원을
마르크스 사상과 이론에 내재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 마르크스 이후 마르크스
주의자들에 의해 왜곡됨으로써 발생했다고 보는 입장(김세연 1995; 방인혁
2011)까지 다양하다. 또한, 이 문제를 자본, 정치경제학비판요강,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같은 이론적 주저(主著)를 통해 접근할 것인지, 혹은
식민지 관련 문건 같은 비교적 실천적이며 현실적인, 그러나 다소 주변에
속하는 저작들을 통해 규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저마다 입장이 다르다.3)
그러는 가운데 논자들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자신에게 알맞은 전거를 인용하
여 어떤 부분은 실제보다 과장하고, 어떤 부분은 무시하면서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의 방대한 저작 속에서 논쟁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들을 수월하게 동원할 수 있었고, 또 각각의 주장들은 그 나름의
타당성을 갖고 있다.
3) 린드너(Kolja Lindner)는 심지어 마르크스 엥겔스의 독일어 전집(MEW), 영역본
전집(MECW)에도 수록되지 않은 단편(斷片) 문건들을 동원하여 마르크스는 서구
중심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글은 HAL이라는 전자저널에서 검색했지만,
Radical Philosophy(2010)에 최초로 수록되었다. 인용과 참고문헌에는 최초 출간
연도로 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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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서술방식과 논점
서구중심주의를 여러 각도에서 규정할 수 있겠지만, 필자는 강정인의 개념
규정을 따르고자 한다. 강정인은 서구문명이 신봉하는 세계관, 가치, 제도를
보편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서구중심주의로 규정하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명제로 구성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첫째, 근대 서구문명
은 인류역사의 발전단계 중 최고의 단계에 도달해 있다. 둘째, 서구문명의
역사경로는 동양을 포함한 전 인류사에 보편적으로 타당하다. 셋째, 역사발
전의 낮은 단계에 있는 비서구사회는 서구문명을 모방ㆍ수용함으로써 발전
할 수 있다. 즉 서구우월주의, 보편주의ㆍ역사주의, 서구화ㆍ근대화로 구성
된 태도 혹은 이론을 서구중심주의로 규정하는 것이다(강정인 2004, 2장).
앞에서 보았듯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을 논한 연구들도
대체로 이러한 개념 규정에 따라 다음과 같은 문제를 검토하였다.4) 첫째,
마르크스주의는 서구문명을 인류 역사의 최고단계로 보았는가? 둘째, 서구
문명의 역사경로는 비서구 지역에도 보편타당하게 적용된다고 보았는가?
셋째, 내부적으로 발전의 동력이 결여된 비서구 사회는 – 필요하다면 강제를
동원해서라도 – 서구문명을 모방ㆍ수용할 때에만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는
가?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각 논자들은 저마다의 근거를 동원하여
찬반 의견들을 제기함에 따라 평행선을 달리는 무성한 논의들의 결론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았다. 따라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역사이론이나
비서구 사회 분석의 배후에 있는 근본 인식을 규명함으로써 그들 사상과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에 접근하고자 한다.
필자가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서구중심주의의 인식론적 측면이다. 서구
중심주의는 서구를 준거로 한 역사발전의 단선적이고 진화론적인 발전도식
에 따라 진보적이고 문명화된 서양, 그리고 아직 문명화되지 못한 후진(後進)
4) 이 글에서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후(死後)에 덧대거나 보완
된 이론을 포괄하는 ‘총칭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그들에 의해 축조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를 가리킨다. 또한 엥겔스와 마르크스를 분리시키려는 시도에
도 반대한다. 그들의 오랜 협력관계를 감안할 때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두 사람의 공동 기여와 책임이 인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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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부를 이분법적으로 대립시키며, 지구상의 모든 역사단위체가 오직 하나
의 보편적 역사도정을 밟는다고 보는 명시적ㆍ묵시적 인식체계이다. 이러한
인식의 밑바탕에는 서구문명을 인류의 표준으로 보고 여타 세계를 ‘야만’으
로 규정하는 19세기 유럽의 ‘문명론’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구분, 경계 짓기,
위계의 사다리, 차별은 서구가 주변부에 대해 표출했던 일관된 태도이자
서구중심주의를 특징짓는 기본 요소 중의 하나이며, 마르크스 엥겔스에게도
문명 개념을 통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물론 그들은 문명론을 본격적으로
전개한 적도 없고 또 문명에 대해 세세한 언급이나 분석을 가한 문건도 남기지
않았지만, 식민지 문제와 유럽의 주변부를 논의하는 문건들은 문명 개념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었다. 이 문명 개념을 토대로 마르크스주의는 서구를
항구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놓고, 여타 세계는 서구의 불완전한 반영이자
잔여물로서 세계의 주변부에 배치했다.
필자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첫째, 마르크스
주의에서 문명 인식은 어떻게 표출되었는지 구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마르
크스 엥겔스가 문명론을 통해 비서구 사회 및 유럽 주변부에 대한 유럽 중심부
의 패권을 정당화하는 당대의 서구중심주의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고자 한다. 둘째, 문명 개념에 입각하여 비서구 사회 및 유럽 주변부의
역사발전 경로를 분석한 그들의 접근법에서 사회주의혁명론과 유럽 중심
문명 개념이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는지 살펴본다. 주변부는 중심부에
의한 문명화의 대상이자 중심부의 혁명을 촉발하는 촉매제로 배치되며 서구
와 주변부의 위계 설정, 중심에 의한 주변의 지배가 정당화되었음을 지적하고
자 한다. 셋째, 비서구 혹은 유럽 후진 지역(혹은 소수민족)은 독립적인 존재
의의를 갖는 고유한 역사단위체가 아니라 유럽에 의해 역사의 무대로 끌어올
려지고, 유럽 혁명에 대한 수단으로서 중심부에 의해 이끌어지는 수동적
존재로 인식되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이 글은 마르크스주의가 서구문명을
유일하고 보편적인 문명으로 상정하며, 자체의 역사발전 능력을 결여한 주변
부는 유럽에 의해 자본주의 발전에 들어서야 한다는 타율적 역사발전론을
주장하고, 비서구 지역이 유럽 중심부에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혹은 편입되어
지배받는 것을 정당화했다는 점에서 그의 사상을 서구중심주의, 보다 좁혀서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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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 중심론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을 다루고자 할 때 어떤 문건을
대상으로 삼을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첨예하다. 크게 구분한다면, 이 분야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비서구 지역에 초점을 맞춘 연구, 유럽 내의 소수민족
해방운동이나 민족문제에 중점을 두는 연구, 두 개의 영역으로 갈라져 있다.5)
그래서 마르크스 엥겔스가 오직 비서구 사회에 대해서만 서구중심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도 있고, 마르크스주의는 항상 유럽의
소수민족 해방운동을 지지하는 저항의 원리였다는 잘못된 이해를 얻게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에 관한 그들의 문건을 종합적
으로 고찰함으로써 지금까지 비서구 혹은 동유럽 주변부를 별개로 논의했던
연구들의 결점을 보완하고자 한다.6) 그리고 결론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신
자유주의에 맞서는 새로운 문명담론으로 제시하려는 최근의 시도들을 간략
하게 언급하며, 탈서구중심의 문제는 낡고 현학적인 주제가 아니라 오늘의
맥락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실천적 과제라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Ⅱ. 중심부에 의한, 중심부를 위한: 문명의 이름으로
마르크스 엥겔스는 당시 유럽의 식민지 침탈을 비판하고, 피식민지인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표하였다. 마르크스는 1870/1/1 인터내셔널 총평회의에
서 각 나라의 지부에 보내는 회람을 작성했다. 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이 글에서 아일랜드를 탄압하는 영국에 대해 마르크스는 “다른 민족
5) 임지현(1990)은 비서구 사회와 유럽 내 소수민족 해방운동에 관한 마르크스의
관점을 서구중심주의라고 지칭하며, 두 개의 영역을 유기적으로 다루었다. 임지현에
게 서구중심주의는 마르크스 엥겔스가 진화론적 역사발전법칙의 필연성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비유럽ㆍ후진 지역도 서유럽과 같은 발전경로를 따라야 한다고 보았
다는 뜻이다. 필자와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훌륭한 작업이지만, 그의
관심이 어디까지나 ‘민족해방문제’에 있었기 때문에 서구중심주의라는 문제가 끝까
지 심도 있게 추적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6) 식민지 및 유럽 주변부 관련 문건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이론적 원칙을 실천의
측면에서 적용한 것이기 때문에 그 사상의 본령(本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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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억압하는 그 어떤 민족도 그들 자신의 사슬을 만든다”고 비판했다(“비공
개 통신(발췌)” 식민지론, 274).7) 또한, 영국이 인도에서 ‘문명화의 사명’
을 달성한다고 했지만, 인도가 겪는 고통과 참상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영국
을 비판했다. 특히 세포이봉기를 진압하며 영국인이 자행한 끔찍한 학살과
고문에 대해 격렬한 비판을 퍼부었다. 예를 들면, 영국군이 봉기 진압 과정에
서 자행한 약탈을 가리켜 “영국군이 아니라 단지 이제 그곳에서 쫓겨 간
세포이보다도 훨씬 무법적이고 흉폭하며 탐욕스러운 강도단”에 불과했다고
비판했다(“러크나우 공략에 대한 상보(詳報)” 식민지론, 189).
이처럼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식민지 문제를 격렬하게 비판했으나, 그들의
기본 관점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예비단계로서 자본주의 문명의 발전, 유럽
중심부에 의한 문명의 발전이라는 논리였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말하는 문명
은 유럽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발전된 자본주의 문명을 가리킨다. 1847
년 “공산주의의 원칙들”에서 “공산주의 혁명은 결코 일국적인 혁명이 아니라
모든 문명국들에게서, 즉 적어도 영국, 아메리카, 프랑스, 독일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혁명”이라는 지적은(저작선집 Vol.1, 333) 그가 당시 문명국을
서유럽이나 북미의 자본주의 국가들에 한정했음을 알 수 있다.8) 이러한 생각
은 1875년 “오늘날의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며, 이 사회는 모든 문명국에
실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되었다(“고타강령 비
판 초안” 저작선집 Vol.4, 385).
이와 반대로 유럽의 주변부와 비서구는 야만 혹은 미개로 표현된다. 동양을
미개 혹은 야만으로 묘사한 사례는 너무 잘 알려져 있지만, 터키와 러시아
역시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러시아는 “아주 야만의 땅”에 속하며
터키는 이집트, 튀니지, 페르시아와 함께 “야만의 나라들”로 분류되었다
(“The Movement of 1847” MECW Vol.6, 527, 528).9) 그 외에도 ‘유목
7) 앞으로 인용되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문건들은 제목과 출전을 병기한다. 식민지론
은 Marx, Karl and Engels, Friedrich 저. 주익종 역의 식민지론(1989)으로 앞으
로 식민지론으로 표기한다.
8) 저작선집은 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1991-1995) Vol.1-6.을
가리킨다. 인용문에서는 권수와 쪽수를 병기했다.
9) MECW는 Marx, Karl and Engels, Frederick. Collected Works를 가리킨다.
각 문건의 저자, 권수, 쪽수를 병기한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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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 보헤미아ㆍ크로아티아ㆍ불가리아, ‘강도 민족’ 베두인족, ‘게으른
멕시코인’, ‘광신적’ 슬라브민족’ 등등의 표현은 이와 관련된 문건들에서 손쉽
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표현에 주목하여 오쿨리는 비서구 사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은 “유럽중심주의적 편견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
다”고 격렬하게 비판했지만(Oculi 1999, 216, 221), 이것은 당대 유럽에
널리 퍼져있던 인식이었으며 그들은 당대인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고 평한 논자도 있다(Paul 1981). 필자는 비서구 사회에 대한 표현 방식보다
는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통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표출했는가 하는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유럽인은 근대 이후 자신을 문명으로 규정함으로써 자신과 타자를 구분하
였다. 문명 개념에서 자주 동반되는 생각은 문명이 인류의 역사적 진보와
동일시됨으로써 세계를 문명과 비문명으로 구분하고, 문명화의 정도에 따라
세계를 위계적으로 이해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인식에서 서구는 미발달
된 주변부를 세계사의 행로에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하는 역사의 주체가 되는
반면, 주변부는 서구가 찾아와 자신을 문명의 행로로 인도해주기를 기다리는
수동적 대상이 된다. 문명은 단순히 서구와 비서구의 구분 짓기가 아니라
서구 중심부의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권력의 담론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것
은 마르크스가 이른바 ‘비문명’ 사회를 서술하는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미개 혹은 야만에 속하는 유럽 지역 중 마르크스 엥겔스의 관심을 끌었던
곳은 단연 러시아였다. 1848년 당시 그들은 러시아가 신성동맹의 축이며,
유럽의 혁명운동에 무력간섭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서 러시아를
적대시했다. 한동안 러시아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그들은
1853년 크리미아 전쟁의 발발로 인해 다시 관심을 갖게 되는데, 그 이전과
달리 터키를 놓고 벌어진 유럽과 러시아의 투쟁을 문명 유럽과 야만 러시아의
충돌로 묘사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장악을 둘러싼 서유럽과 러시아의 투쟁
은 비잔틴주의가 서구문명 앞에서 굴복하느냐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
콘스탄티노플은 동양과 서양을 잇는 황금의 가교이다. 서구문명은 그 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태양처럼, 세계를 순환할 수 없다. 러시아에 대한 투쟁이
없으면 그 다리를 건널 수 없다”고 논평했다(“Traditional Policy of Rus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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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x et al. 1952, 169). 태양처럼 세계를 순환하면서 광명을 비추는 서구문
명 앞에 ‘동양적 야만’ 러시아는 굴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이 문명을 우월과 열등으로 나눈 기준은 이른바 정체된 사회와 역동적
사회의 차이, 즉 생산력 발전에 따른 자본주의적 문명화의 정도에 있었다.
마르크스는 러시아가 아무리 유럽의 강대국이라고 해도 식민지를 운영하거
나 유럽의 후진지역을 장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전략적
고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러시아가 자본주의 문명권에 속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다. 자본에서도 영국은 공산품 수출을 통해 중국이나
인도에서의 토지공유제에 기반을 둔 촌락공동체를 궤멸시켰지만, 산업발전
이 뒤진 “러시아의 상업은 영국의 상업과 반대로 아시아적 생산의 기초를
손상시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자본 Vol.III-2, 406). 강대국과 문명국은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며, ‘비문명국’ 러시아는 세계의 자본주의 문명 발전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식민지 진출을 해서는 안 된다. 유럽
문명국에게만 식민지 진출이 허용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유럽과 식민지 관계도 자본주의 문명의 우열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였다. 그는 인도가 역사적으로 이민족의 정복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을
거론하며 “문제는 영국이 인도를 정복할 권리를 가졌던가가 아니라, 영국에
의해 정복된 인도보다는 차라리 터키나 페르시아, 러시아에 의해 정복된
인도를 낫다고 여겨야 하는가”라는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영국의 인도 지배
의 장래 결과” 식민지론, 84). 즉 ‘야만적 정복자’에 불과했던 터키, 타타르,
무굴인에 의한 인도 정복과 달리 “보다 더 우월한 문명을 가진 최초의 정복
자”(“영국의 인도 지배의 장래 결과” 식민지론, 85) 영국은 인도의 낡은
촌락공동체와 사회구조를 해체시키며 새로운 발전의 여정으로 이끌고 있다
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적ㆍ자생적 발전 능력이
없는 후진지역들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통합 혹은 정복되어 문명의 세계역
사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마르크스 엥겔스가 맹목적으로 문명을 찬양하지는 않았다. 그들
은 문명의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적극적으로 비판했다.
엥겔스(1848)는 ‘야만 지역’을 문명화시킨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알제리 정복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77
을 환영했지만, 그 문명의 이면에는 “탐욕에 의해 지배”되는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Extraordinary Revelations”
MECW Vol.6, 472). 마르크스 또한 영국의 인도 지배를 문명의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했지만 “부르주아 문명의 철저한 위선과 고유의 야만
성은, 그것이 체면을 차리고 있는 모국으로부터 이 문명이 벌거벗은 채로
있는 식민지로 눈을 돌리면 우리 눈앞에 정체를 드러낸다”고 지적하면서(“영
국의 인도 지배의 장래 결과” 식민지론, 89) 문명의 이름을 빌린 부르주아
지의 야만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부르주아지의
주도에 의한 자본주의 혁명을 이룩함으로써 인류문명의 미래에 길을 닦아놓
은 일이라고 평가했던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서구문명을 유일한 문명으로 보았으며, 일차적으로
그것은 생산력의 발전에 따른 자본주의적 문명화를 의미했다. 그러나 비서구
지역 및 유럽 주변부에 관한 문건들을 보면 그들이 문명을 물적 차원에만
해당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음을 잘 알려준다. 그들에게 문명은 기술ㆍ생산의
측면뿐 아니라 문명국의 규범ㆍ예절ㆍ사고방식 등이 복합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용어였다. 예를 들어 애로우호 사건(1856) 당시 중국에 횡포를 부리고
북경조약을 맺은 영국을 비판하면서 “변덕스러운 외교 에티켓 규약을 위반했
다는 이유로 사전 선전포고 없이 평화로운 나라를 침략하는 이런 방식을
세계의 문명국들이 승인할지는 필시 의문”이라고 지적했다(“영국과 중국의
분쟁” 식민지론, 100). 여기서 ‘문명국’은 당시 국제정치 무대를 좌지우지
하던 서구 강대국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지만, ‘문명국이라면’ 문명인이 지켜
야 할 규범에 어긋나는 일을 승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었다. 또한, 2차 아편전쟁(1857-1858)을 논평하며 “만약 영국이 문명세
계의 전반적인 압력에 의해 인도에서의 강압적인 아편 재배와 중국에 대한
무력적인 아편 보급을 포기하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면”(“아편무역” 식민지
론, 224) 이번 전쟁도 아편무역의 합법화로 귀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명세계는 아편무역을 용인할 리 없을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이면서, 문명국
에는 그와 같은 무법의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 어떤 법도와 규범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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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이러한 생각은 태평천국운동에서 중국인의 잔학행위를 비판하는 글에도
나타나 있다. 엥겔스는 태평천국이 “중국 민족의 존속을 위한 인민전쟁
(popular war)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인민전쟁에 있어서
는 반란 국민이 사용하는 수단은 … 다만 그 반란 민족이 도달한 문명의
정도에 의해서 평가될 수 있을 뿐”이라고 논평하였다(“페르시아와 중국”
식민지론, 128). 이 부분은 얼핏 보면 식민지 독립을 옹호하는 글귀로
보이지만 그 속뜻은 다른 데에 있다. 엥겔스는 여기서 태평천국을 유럽 제국
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으로 인정하면서도 그 잔학성은 결국 중국 문명
수준의 반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일 유럽에서 이런 전쟁이 벌어졌으면
유럽의 문명 수준에 따라 그 잔학성은 훨씬 완화되었을 것이라는 가정이
묵시적으로 깔려 있는 것이다.
그들의 문명 개념이 정신적ㆍ문화적 측면까지 복합적으로 아우른다는 점
을 잘 보여주는 사례는 스칸디나비아주의(Scandinavianism)로 표현되는
북유럽 민족에 대한 묘사이다. 그들이 비서구 사회의 삶이나 심성 등을 ‘전통
적 규율 아래 노예화된 삶’, ‘모든 웅대함과 역사적 에너지가 박탈된 인간’,
‘야만적 자기중심주의’, ‘비천하고 침체된 삶’, ‘수동적 생존 방식’, ‘난폭하고
맹목적이며 끝없는 파괴’ 등의 용어로 묘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러한 표현이 아시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1848년의 한 문건에서
엥겔스는 “스칸디나비아주의는 잔인하고, 추악하며, 도적질이나 일삼는, 낡
은 스칸디나비아의 민족적 특징”이라고 표현하며, 여성에 대한 무례함, 술독
에 빠져 있기, 미친 듯이 길길이 뛰면서 화를 내다가 그 다음에는 눈물을
흘리며 애수에 젖는 변덕 등등을 그 특징으로 지적했다(“The DanishPrussian Armistice” MECW Vol.7, 422). 그나마 독일과의 교류를 통해
어느 정도 문명화 단계에 들어선 덴마크는 다른 스칸디나비아 민족에 비해
‘진보적’이라고 평하면서 “한 민족이 원시적일수록, 그 관습과 생활방식은
낡은 스칸디나비아 인민의 그것에 훨씬 더 가까워진다”고 매도했다(MECW
Vol.7, 422). 자본주의 문명화에서 멀어질수록 그 지역은 생산력 발전에
뒤처진 반동성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어린아이ㆍ여성ㆍ변덕ㆍ감정의 폭발
같은 이른바 비문명의 심성이 더한층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79
여기서 서구중심주의라는 용어를 다시 생각해보자. 서구문명은 그 자체로
‘보편 문명’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주변부라는 타자에 의해, 타자를 통해서만
중심 혹은 보편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세계에 어떤 중심이 존재한다는 것과
중심주의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 중심이 권력으로서의 힘을 갖고 주변을
강제ㆍ배제ㆍ억압하는 것이 중심주의이다. 바로 이 권력의 언어가 문명의
담론이었다. 김택현이 잘 지적했듯 “서구(유럽)는 지리적 개념일 뿐만 아니라
이론적 개념이기도 하다. 그것은 세계의 지역들을 일정한 위계적 질서 안에
배치해온, 비서구 주민들의 종속성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온 지배의 코드 혹은
권력의 기호이다”(김택현 2006, 99). 서구에서 발원한 문명 담론이 권력의
기호로서의 서구를 사유의 중심에 두면서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보편적인
것으로 사유하고 배치해왔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학문이나 인식의 체계
를 떠난 권력의 한 양식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이와 같은 당대의 문명론을 공유했다. ‘철학은 자신이 속한 시대를 넘을 수
없다’는 경구를 상기할 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로 인정해주어야
하지만, 인류의 해방을 위한 철학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위상과는 정반대의
결과, 즉 유럽 문명에 – 비록 그것이 그들의 소망과 같이 사회주의라고 해도
– 의한 비서구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원리로 연장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는 안 된다. 이러한 ‘문명화의 사명’은 마르크스가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
를 고찰할 때 그대로 나타난다.
Ⅲ. 문명의 권리와 주변부: 주변부는 독자적으로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
마르크스 엥겔스가 세계의 자본주의화 = 문명화로 본 것은 사회주의혁명
을 위해서는 먼저 전 세계를 자본주의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정치경제학비판을 위하여에서 제시된 원시공산사회, 아시아적
생산양식, 고대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이른바 역사발전 5단계설이 모든
사회에 적용되는 단선론적 역사법칙인지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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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있었다. 찬반 양쪽 모두 타당한 근거가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또한 정치경제학비판요강 중 “자본주의적 생산에 선행하는 형태
들”에서 제시된 아시아적 소유형태, 고대노예제사회, 게르만적 소유까지 고
려할 경우 문제는 보다 복잡해진다. 필자는 자본주의 이전의 생산양식을
모두 전(前)자본주의라고 규정할 경우, 결국 역사 이행은 전자본주의, 자본주
의, 사회주의라는 단선론적 역사인식으로 해석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전
자본주의 생산양식들이 각자 어떤 경로를 통해 자본주의로 이행하건, 인류역
사의 전자본주의 단계는 자본주의로 이행해야 하고, 그 위에서 혁명적 변혁을
수행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를 향한 필수적 계기로 자리 잡고 있으
며, 생산력의 발전은 문명의 진전으로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문명 개념은 유럽이 거둔 물질적ㆍ제도적ㆍ정신적 성과에 대한 자기 확신
의 표현이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원한
핵심 개념이다. 이 문명의 논리에 따르면 내재적 발전능력을 결여하고 있는
유럽 주변부와 비서구 사회는 유럽 중심부의 손에 이끌려, 유럽에 동화 혹은
정복되어서라도 문명으로 향하는 열차를 타야 한다. 마르크스 엥겔스도 부르
주아 문명관과 똑같은 시각에서 아시아로 대변되는 비서구 사회나 유럽의
주변부는 보다 큰 문명국에 흡수되거나 정복되어 문명화에 들어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물론 그러한 주장은 사회주의라는 보다 높은 단계로 이행하려
는 혁명의 논리 속에서 전개되고 있지만, 거기에 내포되어 있는 서구중심주의
인식 틀은 그들의 애초 의도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먼저 비서구
사회의 경우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마르크스가 중국이나 인도를 묘사할 때 항상 동원한 표현은 격리, 고립,
정체, 밀봉 등의 표현이었다. 마르크스는 중국 자체에는 사회의 근본적 변혁
을 향한 그 어떤 동력도 찾을 수 없다고 보았다. 이것은 당시 중국을 휩쓸고
있던 태평천국에 관한 논평(1868)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평천국은 “왕조의
교체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없다 … 아무런 슬로건도 없다”고 논평했던 것이
다(“Chinese Affairs” On Colonialism 442).10) 마르크스는 태평천국 같은
10) 앞으로 이 책(Karl Marx on Colonialism and Modernization(Avineri 1969))은
On Colonialism으로 표기한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81
반란이 아니라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 밀려들어오는 서구의 공업제품에 의해
중국이 붕괴될 것이라고 보았다(“Chinese Socialism?” On Colonialism,
50).
인도의 경우도 같다. 인도에서 영국이 낡은 아시아 사회를 폐기하고 서구사
회의 물적 토대를 아시아에 구축하는 이른바 ‘이중의 사명’을 수행한다는
부분은 너무나 유명해서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 관한
논평에서 우리는 아시아와 유럽 주변부가 하나로 묶어지는 계기를 발견할
수 있다. 마르크스는 분열과 반목으로 점철된 인도는 역사적으로 정복되는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도에 역사다운 것이
있다고 하면 인도의 과거의 전 역사는 인도가 겪은 연속적인 정복의 역사이
다. 인도 사회는 전혀 역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적어도 아무런 알려진 역사를
갖고 있지 않다”고 논평했다(“영국의 인도 지배의 장래 결과” 식민지론,
84). 여기서 ‘역사’는 자신의 힘으로 발전된 역사, 자율적 발전의 역사를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에는 남에게 침입 받은 타율의 역사만 존재하는
나라, 자체적으로 생산력을 발전시켜 인류의 보편적인 역사발전에 참여할
수 없는 나라, ‘역사 없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는 서구 자본주의 국가들에
의해 강제로라도 문명의 행정(行程)에 편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이와 똑같은 생각을 유럽의 주변부 소수민족에게도 적용하였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유럽 주변부를 ‘역사 없는’ 민족이라고 부를 때도 그
기준은 생산양식의 발전이었다. 엥겔스는 다른 민족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각 민족은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민족체의 원리(the principle
of nationalities)’에 따라 폴란드가 해방되어야 한다는 당시의 주장에 대해,
모든 소수민족이 독자적인 단위로 존재하는 권리보다는 “유럽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민들이 민족 단위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가 더 중요하다고 반박했
다(“노동자 계급은 폴란드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작선집 Vol.3,
125).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민’이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같은 유럽 혁명의
반동세력을 해체하는 데 기여하는 인민, 자체의 생산력 발전을 통해 자본주의
적 문명화에 들어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민을 말하는데, 엥겔스는 이탈리
아, 폴란드, 독일, 헝가리를 꼽았다. 반면 폴란드인, 러시아인, 기껏해야 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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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내의 슬라브인을 제외한 “그 외 모든 슬라브 인민은 독립과 활력에 필수적인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ㆍ지리적ㆍ정치적ㆍ산업적 전제조건을 결여 … 자신의
역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인민들”이라고 부르며(“Democratic Panslavism”
MECW Vol.8, 367), 그들은 그 어떤 종류의 독립도 획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에 따라 그는 바스크족, 브레튼족, 스코틀랜드의 게일
족 등 서유럽 국가 내의 소수민족, 그리고 체코인,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
인 등을 비롯한 남부 슬라브민족들을 ‘역사 없는 민족’이라고 불렀다. 이들이
독립된 민족으로 존속하는 것 자체가 유럽의 혁명을 가로막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유럽 소수민족의 자결권이나 독립보다는 자체의 생산
력 발전을 통해 ‘문명’에 동참할 수 있느냐의 여부를 중요시했다. 그들에게는
독일인ㆍ폴란드인ㆍ마자르인처럼 “진보의 담지자이며, 역사에서 적극적 역
할을 맡았으며 완전한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는 민족과 인민 외에 “그 밖의
모든 크고 작은 다른 민족체(nationalities)와 인민은 세계적인 혁명의 폭풍
속에서 사라질 운명”이었다(“The Magyar Struggle” MECW Vol.8,
230). 이때 진보는 자본주의 문명화를 향한 진전을 의미하며, 사라진다는
것은 보다 강한 국가에 의해 흡수 합병됨으로써 독자적인 정치적 단위로서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엥겔스는 자신의 역사를 갖지 못한 채 “사멸
해 가는 민족들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운명은 더 강한 인접 민족들에 의한
이러한 해체와 흡수 과정의 완성을 허락하는 것”, 즉 유럽 중심국에 의한
병합이라고 강조했다(“혁명과 반혁명” 저작선집 Vol.2, 249). 중요한 것은
소수민족 혹은 주변부 민족의 자결권이나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유럽 혁명에
대한 공헌, 자본주의 문명화의 능력이었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유럽 주변부에서도 소위 문명화 과정이 폭력과 정복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분명히 지적했다. “그러나 무력이 없다면, 강철과
같은 무자비함이 없다면 역사에서는 아무런 일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유럽 중심부에 의한 유럽 주변부의 정복을 문명화의 이름으로 옹호했다
(“Democratic Panslavism” MECW Vol.8, 371). 또한, 엥겔스는 프러시
아와 덴마크의 전쟁을 논평하는 글에서(1848) 이 전쟁으로 인해 독일이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83
덴마크령 슐레스비히(Schleswig)를 장악한 사실을 두고 “그것은 야만에 맞
선 문명의 권리, 정체에 맞선 진보의 권리이다. … 이 권리는 모든 조약보다
더 중요성을 갖고 있다. 그것은 역사적 진화의 권리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
다(“The Danish-Prussian Armistice” MECW Vol.7, 423). 소수민족의
해방이나 자결권보다는 문명화의 사명을 갖고 있는 유럽 중심부 강대국에
의한 합병이 더 중요하다며, 그것을 문명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옹호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문명의 발전과 관련하여 유럽 주변부와 아시아는 한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엥겔스는 유럽의 경우 문명화, 즉 부르주아 혁명을 위한 생산력
발전은 꼭 정복이나 무력이 동반되지 않아도 된다고 지적한다. 터키 지역에
살고 있는 다양한 슬라브민족들 중 세르비아는 “서유럽과 교섭을 더욱 늘리
도록” 노력하여 “문명이 뿌리를 내리고 교역이 확장되며 새로운 생각들이
솟아나오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Turkey” On Colonialism, 58). 유럽
의 주변부라고 하더라도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면 서유럽과의 교류를 통해
자율적으로 그리고 평화적으로 문명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유럽에서는 그렇다. 반면 중국이나 인도처럼 ‘문명세계로부터의 미개하고
밀봉된 격리’를 유지하고 있는 비서구는 평화적 교류에 의한 문명화가 불가능
하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비록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가 문명 유럽에 의해
흡수된다고 해도, 그것을 통해 사회주의혁명의 발판이 마련되고, 궁극적으로
혁명은 ‘전체 인류’를 위해 유익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 잔인한 방식을 동원하여 – 인도의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시켰지만,
문제의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다. 즉 “문제는 인류가 아시아의 사회상
태의 근본적 변혁 없이 그 운명을 실현할 수 있는가이다. 만약 실현할 수
없다면 영국의 죄악이 무엇이든지간에 영국은 그러한 변혁을 가져오는 데서
무의식적으로 역사의 도구 역할을 했던 것”이라는 유명한 구절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영국의 인도 지배” 식민지론, 43). 그는 사회주의혁명을 인류
사의 관점에서 파악하며, 아시아를 제외한 유럽만의 혁명은 인류의 역사발전
이라는 큰 틀에 비추어 불완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세계
84
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규모의 사회주의 변혁을 통해 그 결실은 인류 전체에게 돌아가고, 비서구
스스로도 착취의 역사를 조기에 종식시킬 수 있기 때문에, 비록 단기간의
희생이 있다고 하더라도 더 나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혁명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할 경우 서구와
비서구는 문명화의 여정에서 ‘역할의 차이’가 날 뿐이지 서구중심주의적 사
고가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혁명이론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주목하여 마르크스 엥겔스는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에 대해 서구중심적 시각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논자
들은 상당히 많다. 예컨대 산 후안은 “마르크스가 제국주의의 문명화 사명에
대한 유럽중심주의적 옹호자라고 한다면, 그의 자본주의 비판과 사회주의
혁명은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일일 것”이라고 반박했다(San Juan 2002,
228). 또 “마르크스를 유럽중심주의라고 비판하는 주장들은 자본주의 발전
과 그 타도 가능성이라는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논점을 놓치고 있다”는
반론도 있다(Jani 2002, 94). 더 나아가 마르크스주의가 유럽중심주의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회주의와 민족해방이라는 대의에 자신들의 삶을 바친 이들
에 대한 기억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격렬하게 반발한 논자도 있다(Callinicos
2000, 297).11)
물론 서구가 도달한 그 시점에서의 발전, 즉 자본주와 민주주의 같은 것을
역사발전의 최고단계로 보는(일반적인) 서구중심주의와 마르크스주의 사이
에는 한 가지 결정적 차이가 있다. 전자는 그 시점에서 서구가 도달한 발전상
을 인류역사의 완성형으로 설정한다는 점에서 현상유지의 성격을 갖는다.
반면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주의, 그리고 그 다음의 공산주의
가 인류역사의 목표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 비록 그 과정까지의 발전 단계가
서구의 모델에 입각한 보편적 경로로 제시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 현상타파
적이고 미래지향적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의 대상
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서구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비판, 주변부가 겪고 있는 고통의 폭로, 자본주의의
혁명적 타도 주장 등이 서구중심주의를 부정하는 근거로 제시될 수는 없다고
11) 국내의 논자들 중에는 방인혁(2011)이 대표적이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85
본다.
서구중심주의는 혁명과 현상유지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에서
이룩된 진보는 본질적으로 우월하며 최종적으로는 전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
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을 갖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규정되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사회주의혁명은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후진국은 이 혁명에 의해 해방될 수 있다고 보았다. 기본적으로 이것
은 유럽의 자본주의 선진국이 보여주는 역사경로를 진보로 해석하며, ‘보편
적’ 역사발전 경로와 대립되는 요소들을 분쇄하고, 유럽 중심부의 발전모델
에 따른 세계의 동질성을 의도하는, 좌파 버전의 서구중심주의에 해당한다.
그 의도가 현상타파와 혁명에 있다고 하더라도, 비서구 사회는 자체의 역사적
실존과 독립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유럽 중심부에 통합됨으로써 그 ‘이질성’
이 해소되어야 하고, 유럽에 의한 문명화의 ‘계도’를 통해서만 비로소 세계사
의 무대에 동참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주변부
상황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결여했다거나 기술(記述)의 정확도가 떨어진다
는 점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문명이라는 보편에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
주변부의 ‘차이’를 확인하고, 그것을 제거하려는 것이 관심이기 때문에 –
부정확하다고 하더라도 – 그 차이가 부각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은 그들이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를 유럽 중심부의 혁명에 대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곳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 장은 이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Ⅳ. 주변부는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유럽 혁명을
촉발하는 수단으로서의 주변부
마르크스주의는 인류해방의 비전임에 틀림없지만, 일차적으로 그들이 유
럽 주변부나 식민지를 다룰 때 기본 관점은 이 지역에서의 사태 변화가 유럽
선진국의 해방에 얼마나 기여하느냐는 데 있었다. 자본주의적 근대화 혁명이
건 사회주의 혁명이건 주변은 중심의 혁명을 촉발하는 수단으로서 존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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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받고, 중심이 만들어내는 세계사의 조역으로서 강제 편입된다. 비서구
사회는 서구혁명의 계기 혹은 수단으로 이해되고, 그럴 때만 주목받는다.
주변부는 중심의 필요를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그 존재를 인정받고, 중심의
필요에 따라 그 가치를 부여받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은 유럽 주변부의 경우
아일랜드, 폴란드에 관한 그들의 인식에서 잘 나타나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아일랜드 문제를 영국의 혁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파악
했다. 이러한 인식은 마르크스가 인터내셔널 총평회의에서 각 나라의 지부에
보내는 회람(1870/1/1)을 통해 공식적으로 표명되었다. 이 회람에서 그는
아일랜드 문제에 대한 인터내셔널의 “첫째 요구는 영국에서의 사회혁명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서는 아일랜드에서 거센 반항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했다(“비공개 통신(발췌)” 식민지론, 274). 1870년
당시 그들은 아일랜드와 영국의 강제 합병을 해체시키면 아일랜드에는 토지
혁명이 발생하고, 이 여파로 인해 영국 지주제가 붕괴되면서 사회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았다.
만년에 들어서면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견해가 다소
바뀐다. 그들은 후진지역에 자본주의의 침투한다고 해서 꼭 자본주의 발전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일랜드의 사례에서 보았다. 이미 자본 1권
(1867년 출간)에서 마르크스는 아일랜드 농업경제에 미치는 영국 자본주의
의 파괴적 영향을 생생하게 묘사하였고, 엥겔스는 1885년의 논평에서 영국
의 자본주의 침투에도 불구하고 아일랜드는 여전히 빈곤과 저발전을 면치
못한다는 점을 인정하였다(“1845년의 영국과 1885년의 영국” 식민지론,
282). 또한, 엥겔스는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를(1882/9/12) 통해 식민지
혹은 유럽 피압박민족의 무조건 독립을 지지하는 내용을 서술하기도 했다(
식민지론, 321-322).
이것을 놓고 “늦어도 1860년대 후반기에 오면 식민주의와 민족해방에
관한 마르크스의 입장이 수정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논자도 있지만(Lindner 2010, 12), 사실 그 내용은 린드너 자신의
논평과 같이 “영국 식민주의의 역할에 대한 견해가 보다 균형 있게 변화”했다
는 것뿐이다(Lindner 2010, 16). 즉 선진 자본주의의 후진국 침투가 반드시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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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발전을 동반하지 않고,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부등가교환을
통해 영원히 이 지역을 낙후된 원료생산지로 전락시킨다는 사실을 깨달음으
로써 식민지의 긍정ㆍ부정 두 측면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뿐이다.12) 아일랜
드 관련 문건들은 전체적으로 그들이 아일랜드 문제를 영국 혁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평가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한 시발점으로서
영국의 혁명을 촉발시키는 데 아일랜드가 담당하는 역할에 주목했다. 아일랜
드와 같은 식민지 민족해방은 선진국의 혁명과 접합 가능성이 인식될 때
비로소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아일랜드가 영국의 사회주의 혁명과 관련하여 파악되었다면, 폴란드 문제
는 유럽의 부르주아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해방투쟁이라는 맥락 속에서 검
토되었다. 1848년 혁명 이후 마르크스 엥겔스는 폴란드 민족해방투쟁을
두 가지 관점에서 보았다. 한편으로 ‘반혁명의 보루’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하
는 방파제 역할, 다른 한편으로는 민족해방을 통해 신성동맹을 해체함으로써
아직 부르주아혁명을 완수하지 못한 유럽 국가들, 특히 독일의 부르주아혁명
을 완성시키는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 1851/5/23일 마르크스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에는 위와 같은 견해가 잘 나타나 있다.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폴란드는 러시아가 농업혁명에 휩쓸릴 때까지 수단으로서
만 이용될 수 있는 끝장난 민족이라는 사실이 더욱더 분명해집니다. 그 순간
부터 폴란드는 아무런 존재 이유를 더 이상 갖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MECW Vol.38, 363). 이 입장은 일관되게 유지되었다. 엥겔스는 1868년의
문건에서 폴란드 해방이 “러시아의 유럽 침략에 대한 저항”인 동시에, 모든
독일 노동자에게 “폴란드의 재건은 그들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나라가 러시
아의 종속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라고 내세웠다(“노동자 계급은 폴란드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저작선집 Vol.3, 120, 122). 또한, 공산당선언
“1892년 폴란드어 제2판 서문”에서도 “전 유럽의 노동자들은 폴란드 노동자
12) 다른 논자는 아일랜드에 관한 마르크스 엥겔스의 후기 입장은 “비유럽중심주의
분석에 적합한 개념적 정식화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며 서구중심주의의 비판을
부정했다(Katz 1999, 155). 그러나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할 수 있는 개념적 재정식
화를 할 수 있는 틀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지 마르크스가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한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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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폴란드의 독립을 필요로” 한다고 밝혔다(저작선집
Vol.1, 392). 폴란드 독립은 러시아를 해체시킴으로써 유럽 혁명을 촉진ㆍ완
성하는 수단, ‘유럽 노동자들의’ 궁극적인 해방을 위한 수단으로 파악되고
있는 것이다.
임지현이 잘 지적했듯, 마르크스 엥겔스에게는 폴란드 봉기의 성격이나
계급구성은 부차적 문제였다. 1830년의 바르샤바 봉기는 귀족적 성격이었지
만, 그들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한,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유럽에
는 먼저 부르주아혁명과 자본주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의 명제에 비추어보면 폴란드는 독일에 편입되어 자본주의적 발전의 길을
걸어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폴란드 독립이 이루어지면 러시아와의 전쟁을
유발시켜 독일혁명을 가속화하고, 또 한편으로 강력한 폴란드의 존재는 유럽
혁명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간섭을 저지하는 방파제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
서 독립을 옹호하였던 것이다(임지현 1990, 112-113).
마르크스 엥겔스가 인도와 중국을 보는 관점 역시 위와 같은 것이었다.
흔히 아시아적 생산양식, 식민지에서 자본주의의 발전, 역사의 단선론적 해
석 등의 주제와 관련하여 마르크스의 아시아 관련 문건들을 이용하지만,
마르크스가 아시아 문제를 파악했던 기본 관점은 이 지역에서의 사태 변화가
유럽의 혁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데 있었다. 인도의 경우, 1853년
마르크스는 영국 자본주의 침투가 인도의 사회적 변혁을 이끌어내는 결과에
관한 두 편의 대표적인 글을 남겼다(“영국의 인도 지배”; “영국의 인도 지배
의 장래 결과”). 그 외의 글들은 인도에서 진행되는 상황에 대한 분석이
주요 내용을 차지하는데, 그중에서도 인도 지배로 인한 영국의 재정위기
문제가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과 이득의 대차대조표 계산, 세포이봉기 이후
영국의 군사비 지출이 급증에 따른 재정위기, 이로 인한 공황의 발생 가능성
등이었다.
예를 들면 “다가오는 인도 공채”(1858)에서 마르크스는 세포이봉기로
영국에 “거액의 국채가 더욱 증가”했고(식민지론, 184), 또 다른 글에서는
(1857) 세포이봉기를 진압하고 인도 국내를 재정비하는 “엄청난 사업의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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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은 모두 영국 국민들에게 부과될 것”이라고 논평했다(“인도에서의 반
란” 식민지론, l42). 이러한 분석에 따라 마르크스는 세포이봉기 이후 영국
의 재정파탄을 예측하였고, 엥겔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1858/1/140) 인도
통치에 과도한 비용이 소요됨에 따라 영국에는 재정위기가 닥치고 혁명의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언급하며 “인도는 이제 우리의 최선의 동맹자”라고
주장했다(식민지론, 297).
중국에 관한 문건들은 제국주의의 자본주의 침투가 중국의 내적 변혁을
이끌어내는 측면에 대해서는 분석이 별로 없고(아직 그와 같은 결과가 본격
적으로 나타나기에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사태 변화
가 세계공황을 이끌어냄으로써 세계혁명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주로 집중하였다. 예를 들면 “중국과 유럽에서의 혁명”(1853)에서
마르크스는 “영국이 중국의 변혁을 초래한 이래로, 문제는 어떻게 그러한
혁명이 조만간 영국에, 그리고 영국을 통하여 유럽에 반작용을 미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중국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식민지
론, 23). 이러한 관점은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1858년의 평론에서 마르크스
는 2차 아편전쟁은 “무한한 시장이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고 잘못된 투기를
조장함으로써 … 새로운 공황을 준비하는 데 조력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
했고(“아편무역” 식민지론, 224), 엥겔스 또한 카우츠키에게 보낸 편지
(1894/9/23)에서 청일전쟁의 결과 중국의 대규모 노동자가 유럽으로 이민하
여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리에게는 붕괴의 가속화와 위기에까지 이르는 충돌
의 격화”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전망했다(식민지론, 327).
지금까지 보았듯 마르크스 엥겔스가 유럽 주변부와 비서구 사회를 관찰할
때 가졌던 기본 관점은 이 지역들의 사태 변화가 유럽의 사회혁명을 완성하는
데 어떤 기여를 하느냐에 있었다. 여기서 유럽의 후진지역과 비서구는 유럽
중심부의 혁명에 종속된 존재로서의 지위를 가질 뿐이었다. 이러한 사회들은
개별적인 역사단위체로서의 권리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어디까지나 유
럽 중심부의 혁명을 뒷받침하는 주변적 존재로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13)
13) 마르크스 엥겔스의 비서구 사회에 관한 논의를 시기의 변화에 따라 추적한 라레인
은 1860년대 이후 그들의 식민지관에 일정한 변화가 오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체
적으로 볼 때 마르크스 엥겔스가 몇몇 식민지의 독립과 자치를 옹호할 때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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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지역은 스스로를 대변할 수 없고 유럽 혁명과 관련해서만 유럽에 의해
대변되고, 중심부의 필요에 의해 그 지위를 배정받음으로써 역사의 무대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실천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는
설사 세계 규모의 사회주의 혁명이 실현되더라도 또다시 사회주의 중심부에
의한 주변부의 강제 편입, 그리고 그 중심부에 의해 주변부의 삶의 방식이
결정되는 또 다른 중심주의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 우리는 그와 같은 사례를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에서 잘 목격했다. 그것은 소련을 사회주의의 중심
으로, 그 외의 지역을 사회주의의 주변부로 규정하는 서구중심주의의 좌파
버전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에 의한 팔레스타인 정착촌 건설이 팔레스
타인의 전통적 사회구조를 붕괴시킴으로써 이 지역의 역사발전을 촉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던 1970년대의 아비네리(Shlomo Avineri)의 주장(Turner
1978, 25-26) 또한 스탈린 못지않은 좌파 서구중심주의에서 나온 발상이었
다. 그동안의 역사가 보여주었듯 우리는 다양한 중심주의 속에서 살아왔으며
지금은 이것들을 깨뜨리는 여러 형태의 저항운동을 힘겹게 전개하고 있다.
남성중심주의, 강대국 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가 환경과 삶에 초래한 부작용
은 익히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보다 나은 삶을 쟁취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하위주체들을 희생시키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V. 맺는말
필자는 지금까지 마르크스 엥겔스의 사상을 서구중심주의로 규정하며 문
명론으로부터 출발하여 비서구 사회와 유럽 주변부를 파악하는 그들의 기본
관점을 추적하였다. 물론 여기에 대해 많은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마르크스
그들의 준거 출발점과 기본 목표는 영국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 그리고 인류의
해방을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세계의 가장 발전된 나라에서 사회주의의 진전이었
다”고 결론 내렸다(Larrain 1999, 190). 필자는 그의 해석에 동의한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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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비서구사회론과 서구중심주의의 관계를 부정하는 연구들은 비서구 사회
에 관한 단편적 문건들이 아니라 관련 저작물 전체를 놓고 이 문제를 평가해야
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접근을 취하고 있는 논자들은 인도의 세포이봉기에
관한 마르크스의 문건(Jani 2002), 러시아 문제에 관한 문건(Shanin 1999),
아일랜드 문제에 관련된 글(Katz 1999), 식민지 및 러시아에 관한 저작 전체
(Lindner 2010; Nimitz 2002)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식민지 및 민족해방
문제와 서구중심주의의 관련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를 요약하자면
인도 및 중국에 관한 1850년대의 문건은 일정 부분 서구중심주의를 보여주
는 것이 사실이지만, 1860년대 후반기에 오면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분석을
통해 서구중심주의와 최초로 결별하고, 1870년대 후반부에 들어서는 러시아
의 상황을 분석하는 가운데 자본주의 이행의 필연성을 부정하고 역사의 다선
적 발전을 인정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이다.14)
필자도 이와 같은 지적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필자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러시아 관련 분석에는 서구중심 편향성을 탈피할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이 담겨 있을 뿐 서구중심주의를 탈피하지 못했다고 파악한다.15)
이 가능성을 현실로 전환시킴으로써 마르크스주의 역사이론의 다차원성을
실천적으로 입증한 사람이 레닌이었다. 현재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창조적 발상이다. 마르크스주의가 당대의 부정확하고
제한된 정보에 의거하여 주변부를 분석했고, 이런 점에서 서구중심주의적인
관점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은 필자 역시 인정한다.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치열하고 정밀한 탈자본주의적 인간해방의 비전으로서 –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 계속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맥락에서 보다
현실성 있는 해방담론으로 존속하고자 한다면 먼저 오늘의 관점에서 마르크
스주의를 냉정하게 평가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 다소 낡은 주제로 보이는 –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관계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
14) 러시아에 관련하여 마르크스 엥겔스는 자본주의의 필연성을 강조했을 뿐이라는
반론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Vujačić 1999).
15) 임지현 역시 마르크스 엥겔스의 러시아 관련 서술은 단지 서구중심적 사유의
‘발상의 전환’, 서구중심주의로부터 탈피 ‘가능성’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한
다(임지현 1990,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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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서는 마르크스주의를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문명담론으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반발하여 “현재의(신자유주의: 필자) 체제가 세계에 내린 저주인
불의, 고통, 파괴”에 대한 “도덕적 반발”을 강조하며 환경파괴를 비롯하여
전쟁의 위험을 극복하는 ‘새로운 사회의 원리’로서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것
이다(Callinicos 2003, 189).16) 신자유주의도 결국 자본주의 발전의 한 형태
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것을 제어할 수 있는 이론적ㆍ실천적 자원을 – 지금까
지 제기된 자본주의 비판 이론 중 그 치열함과 이론적 치밀성에 가장 앞서
있는 – 마르크스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은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가 자본주의의 혁명적 변혁을 지향하는 비판이론이라고 해서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적 문명담론으로서의 위상이 저절로 부여되지
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신자유주의는 패권국가와 다국적 독점자본이 결합된 자본주
의 중심부의 모델에 따라 세계를 편성하려는 서구중심주의적 발상을 기반으
로 삼고 있다. 역사적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를 지양하는 혁명이론이
자 해방담론으로서 존재해왔지만, 그것 또한 문명의 관점에서 세계를 중심과
주변으로 나누고, 주변을 중심의 필요에 따라 배치하며, 중심의 지배를 정당
화하는 서구중심주의의 인식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19세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축조된 마르크스주의에 담겨 있는 서구중심주의 인식 틀이
세계 연대와 인류의 공동운명체를 강조하며 새로운 문명담론을 모색하려는
21세기의 세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 문명담론으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상에 내장되어
있는 서구중심주의를 걷어내고 21세기의 문제의식에서 다시 다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한 작업이 먼저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안적 문명담론
혹은 해방의 비전으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내세우려는 시도는 실효성 있는
결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그 구체적 성과를 마련하는 작업은 마르크스주의
자들의 몫이다.
16) 국내에서도 박노영(2004)과 장석준(2006)이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으로서 마르크
스주의는 21세기에도 계속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명, 역사, 주변부: 마르크스주의와 서구중심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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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
고
일 : 2016년 03월 31일
▣ 심 사 마 감 일 : 2016년 05월 23일
▣ 수
정
일 : 2016년 05월 25일
▣ 최종게재확정일 : 2016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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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GHTOPIA: The Journal of Social Paradigm Studies
Abstract
Civilization, the History, and Periphery:
Marxism and Eurocentrism
Seung Hyun Jung
This paper contends that Marxism was built on three principles of
euro-centrism on the basis of the concept of civilization. First, Marxism shares
the view of western centrism that justifies rule of the centric Europe to
non-western societies and periphery of the Europe in the name of the mission
of western civilization. Second, the periphery in Marxism is treated only as
an object of world history to be guided and led into a path of civilization by
the centric Europe, and this idea upholds the center-periphery relations and
the rule of center to periphery. Third, the periphery is recognized as a negative
subject that is valuable only in a sense that it causes revolution in the center.
The non-western societies and periphery of the Europe are not independent
historical entities, and they have to repeat the pattern of European historical
evolution. Marxism, first of all, needs to break these eurocentric cognitions,
if it is to assert itself as an alternative discourse of civilization against the
neo-liberalism of 21th century.
Key words: Marxism, Eurocentrism, Civilization, Center and Periphery, the History
저자 정승현은 서강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서강대학교 사회과학
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연구 관심분야는 한국 근현대정치사상, 한국 사회과학의
탈서구중심주의, 동서양 정치사상 비교 등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1980년대 진보학술운
동과 탈서구중심 기획”(2016), “과거사 청산의 정의(正義) 논쟁과 그 사상적 함
의”(2014), “동서양의 정치적 현실주의: 한비자와 마키아벨리”(2014. 강정인 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