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현. 2016. “1980년대 진보학술운동과 탈서구중심 기획: 과학, 마르크스주의, 주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45

1980년대 진보학술운동과 탈서구중심 기획:
과학, 마르크스주의, 주체성*
1)

정승현 | 서강대학교

| 국문요약 |
이 글은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을 한국 사회과학계의 탈서구중심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파악
하며, 진보학술운동의 기본 인식과 그 학문적 지향점을 검토하고 , 주체적 사회과학을 세우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가 좌절된 이유를 분석함으로써 학문의 서구종속을 탈피하려는 앞으로의 노
력들에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 첫
부분에서는 탈서구중심 기획으로서 진보학술운동의 기본 인식을 신식민지 사회구조 , 민족․
민중학문,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로 분류하여 그 구체적 내용을 서술했다 . 둘째 부분은
진보학술운동이 의도했던 탈서구중심 기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다 .
이 글은 진보학술운동의 민족 ․민중학문 기획이 인식론적으로 좌파 판본의 서구중심주의에
침윤됨으로써 탈서구중심 기획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 그 비판적 정신과 문제의식이 계승
되어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지적했다 .

주제어 | 진보학술운동, 서구중심주의, 사회구성체논쟁, 민중․민족학문, 마르크스주의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3A204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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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는 말

한국 근현대사에서 1980년대의 의미는 여러 각도에서 평가될 수 있겠지만, 필
자는 이 시대를 해방 이후 한국의 정치․사회․경제는 물론 일상세계까지 강고
하게 지배해왔던 서구(미국)중심의 근대화 발전모델을 거부하고 그 대안으로 사
회주의적 근대성을 실현하고자 했던 탈서구중심 기획의 시대로 자리매김하고 싶
다. 그것은 해방 이후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해왔던 친미․반공․자본주의
를 근간으로 하는 서구(미국)중심의 발전모델을 거부하고, 서구 선진국을 선망하
던 ‘강대국 욕망’으로부터 벗어나 ‘민중이 주인 되는’ 새로운 대안사회를 만들고
자 했던 기획이었다.1) 이 기획의 실천을 위해 이른바 ‘운동권’은 한국 사회가 당
면해 있는 문제의 본질과 성격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의 확보, 대안
사회의 모델, 변혁 주체의 규정, 사회변혁의 방법론을 찾고자 했다. 흔히 사회구
성체논쟁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이론적․실천적 논의에서 참가자들은 운동노선
과 방향을 둘러싸고 때로는 격렬한 상호대립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지만, 서구중
심의 발전모델과 인식체계를 벗어나 우리 스스로의 역사 방향을 설정하려는 탈
서구중심의 기획을 실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운동권의 사회구성체논쟁과 더불어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은 서구(미국)의2) 지
배적 패러다임을 거부하고 우리의 주체적 인식에 입각한 민족․민중학문을 정립
함으로써 한국사회의 변혁이라는 실천적 과제에 대한 과학적 방법론을 확보하고
자 했다. 한국사회의 지배질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지탱하는 서구중심 학문의 인

1) 이 논쟁의 진행 과정․쟁점․공과(功過)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글에서 평가가 이루어졌던
만큼 필자가 새삼 재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회구성체논쟁의 주요 문건들은 박현채․
조희연 편 󰡔사회구성체논쟁󰡕 1-4 (죽산, 1989 – 1992)에 수록되어 있다. 특히 각 권의 서문
으로 수록된 조희연의 글들은 시기별 쟁점, 운동세력들의 노선과 이론 투쟁, 실천 방향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항을 망라하여 상세하게 분석했다. 보다 간략하게 이 시기의 논
쟁과 평가를 다룬 문건으로서는 조희연(1998) 제3장, 최형익(2003), 정성기(2005), 이병천
(2005)을 참조하면 충분할 듯하다.
2) 서구(미국)중심은 앞으로 서구중심으로 표기한다. 한국에서 ‘서구’라는 용어에는 서유럽
과 미국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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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체계로부터 벗어나 변혁운동의 이론적 기초를 마련하려는 이 운동을 진보학술
운동이라고 부른다. 이 운동은 한국의 국가발전모델인 서구적 근대화를 이론적으
로 뒷받침하며 한국 사회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구조기능주의․행태주의․근
대화론 등 서구중심의 학문체계와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의 주체적 입장으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확립하려는 시도였다. 그것은 서구문명의 보편성과 유일
성에 대한 믿음을 토대로 만들어진 서구의 사회과학이론을 거부하며 대안적 발전
모델을 이론적으로 구축함으로써, 한국사회의 탈서구중심 변혁이라는 운동권의
‘변혁적 실천’을 학문영역에서 실현하려는 ‘이론적 실천’이었다. 운동권이 한국사
회의 근본적 구조변화를 통해 탈서구적인 사회주의 근대성을 추구했다면, 진보학
계는 자본주의적 발전모델을 학문적으로 지탱하는 한국 주류 사회과학의 서구중
심 이론체계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대안적 이론체계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양자는 탈서구중심 기획이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진보학술운동에 대한 기존의 연구는 운동 중심의 분석(김명환․조희연 1990;
금인숙 1999), 사회구성체 논쟁을 포함한 진보학술운동 전체의 분석(조희연 1998,
제3장; 김동춘 1997), 그 이론적 특징과 쟁점에 관한 분석(김동춘․조희연 1990;
금인숙, 2006) 등 많은 작업이 이미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이 연구들로부터 유용
하고 의미 있는 내용을 얻을 수 있었지만, 논의의 중심이 사회구성체논쟁에 있었
기 때문에 진보학술운동이 심도 있게 검토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도 기존의 연
구들은 ‘운동’으로서의 위상에 치중하여 당시의 학술운동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탈서구중심 기획이라는 그 학문적 의미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
쉬움을 준다. 또한 금인숙의 연구를 제외하고, 대부분 당시 진보학술운동에 직간
접적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의 입장에서 작성된 문건이라 – 아쉬움이 큰 탓인지
– 운동의 성과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글의 구성과 분석 방법 – 이 글은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을 한국 사회과학계의
탈서구중심 기획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하며, 진보학술운동의 기본 인식과 그 학
문적 지향점을 검토하고, 주체적 사회과학을 세우고자 했던 당초의 의도가 좌절
된 이유를 분석함으로써 학문의 서구종속을 탈피하려는 앞으로의 노력들에 몇
가지 중요한 함의를 도출하고자 한다. 사회구성체논쟁이나 진보학술운동에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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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게 논의되었던 실천방안이나 한국사회성격 규정을 둘러싼 구체적 쟁점이 아
니라, 그 논쟁들을 떠받치고 있던 한국 사회과학의 탈서구중심 기획에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당시 사회구성체논쟁을 주도적
으로 이끌었던 경제학과 사회학을 비롯하여 사회과학 전반에서 전개되었던 민
족․민중학문운동을 다룰 때 보다 종합적이고 객관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사회과학 일반과 정치학에만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사회구성체논쟁도 그랬지만 진보학술운동 역시 경제학과 사회학이 주도했으
며, 진보학술운동의 이론적 파급력은 정치학에서 상대적으로 늦게 나타났고 그
성과에 대해서도 후한 평가를 주기 어렵다. 진보학술운동을 다룬 기존의 연구들
조차 정치학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으며, 심지어는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정치
학자들조차 회고담에서 간간이 당시 상황을 전할 뿐3) 진보학술운동에서 정치학
이 지향했던 문제의식, 성과, 한계 등에 대해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그러나 정치
학도 한국 정치사회의 구조적 변혁이라는 당대의 과제에 동참하며 사회주의 지향
성을 분명히 밝히는 가운데 탈서구 기획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 글은 기존의 문건
들에서 다루지 않았던4) 정치학의 사례를 중심으로, 특히 한국정치의 지배구조에
대한 분석과 대안 모델의 제시에서 탈서구중심 기획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봄
으로써,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다차원성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한다.
당시 운동진영에서는 민족해방론(NL)이 대단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진
보학계에서는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강단 PD 그룹’
이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탈서구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주체’에
입각한 NL 계열이 오히려 더 적절한 분석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민족해방 계열이 공개적으로 펴낸 문건들은 주체사상을 요약 소개하고 있는데
그쳐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내용을 남겨놓지 않았고,5) 주로 실천영역에서 활동

3) 김세균 외(1996), 이이화 외(1996)의 문건에 잘 나타나 있다.
4) 사회구성체논쟁에서 경제학 분야는 이병천, 정성기의 연구, 사회학에서는 김진균․조희
연(1990), 김명환․조희연(1990), 김동춘․조희연(1990)의 연구에서 잘 분석되어 있다. 또
한 김동춘(1990)에 수록된 「레닌주의와 80년대 한국의 변혁운동」 「80년대 후반 이후 한
국 맑스주의 이론의 성격 변화와 한국 사회과학」은 사회학과 경제학에서의 사회구성체논
쟁을 훌륭하게 분석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문건들에서 정치학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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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며 변혁의 주체와 방향에 관한 논쟁에 노력을 집중했기 때문에 진보학술운동
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하다. 따라서 이 글은 주로 ‘강단 PD 그룹’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었다. 진보학술운동에 대한 필자의 비판 역시 PD계열에 한정되는
것이지만, NL 역시 그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다는 점을 밝혀둔다.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 부분에서는 1980년대 진보학술운동
을 탈서구중심 기획으로 보려는 필자의 의도와 분석 방법을 보충 설명하고자 한
다. 서론에서 쓰기에는 다소 분량이 많아 별도로 공간을 마련했다. 그리고 탈서
구중심 기획으로서 진보학술운동의 기본 인식을 신식민지 사회구조, 민족․민중
학문,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로 분류하여 그 구체적 내용을 서술했다. 둘째
부분은 진보학술운동이 의도했던 탈서구중심 기획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지 못
한 이유를 분석한다. 필자는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고자 했던 진보학자들이 좌
파 판본의 서구중심주의, 즉 좌파 식민지의식으로부터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애
초에 의도했던 ‘주체적’ 학문의 정립에 실패했다고 본다. 필자는 좌파 판본의 서
구중심주의가 진보학계의 민족․민중학문운동에서 어떻게 투영되었는지 서술했
다. 결론에서는 80년대의 비판적 문제의식이 90년대 이후 이어져 의미 있는 학문
적 결실을 맺었으며, 서구중심주의를 극복하려는 시도에서 중요한 교훈을 남겨
놓았음을 밝히고자 한다.

II. 진보학술운동의 탈서구중심 기획의 기본 인식
1. 탈서구중심 기획으로서 80년대의 진보학술운동
서구중심주의는 서구문명이 신봉하는 세계관, 가치, 제도를 보편적이고 우월

5) 예를 들어 󰡔새시대 정치학원론󰡕이라는 제목의 책은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정치학을
요구한다”고 주장하며(이진규 1990, 5) 주체사상의 정치론에 해당하는 내용을 그대로 수
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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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나 태도를 말한다. 강정인의 논의에 따르면 서구중
심주의는 비서구인들로 하여금 서구문명의 우월성 및 보편성을 받아들이게 함으
로써 서구의 문화적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만든다. 서구는 보편적 문화,
보편적 가치, 중심의 지위를 차지하고, 주변부로서의 비서구인은 서구의 세계관,
가치, 제도, 관행을 보편적이고 우월한 것으로 인식하면서 스스로를 주변화하고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의 의식을 갖는다(강정인 2004, 제2장). 역사적으로 서구중
심주의는 서구제국주의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고, 지금까지도 우
리의 정치․사회․경제는 물론이고 일상인식조차 압도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으로 대변되는 서구문명의 압도적인 영향력 아래 서구중심주의를
가장 강렬하게 내면화한 국가로 출발했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말이래 한국이
겪어온 독특한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다수 한국(남한) 국민들은 19세
기 말 개화기부터 형성된 서구문명에 대한 동경 의식,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직접
적으로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반서구 의식이 약했다는 점, 해방정국과 6.25전쟁
기간에 형성된 숭미(崇美)의식 등으로 인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문명을 한국
인(=남한인)의 구원자, 근대성의 시혜자로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유선영 1997).
이에 따라 남한은 서구적 근대성을 보편적이고 유일한 근대성으로 물신화하여 친
미․반공․자본주의를 기본 축으로 삼는 서구적 근대화의 길로 들어섰다. 미국은
한국이 따라야 할 모델이었고, 근대화는 곧 서구(미국) 문명화의 달성이었다
한국사회의 서구중심 발전모델에 대한 회의는 1980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1979년 박정희의 죽음, ‘서울의 봄’, 그리고
5.18 광주민주항쟁의 비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우리 사회를 지금까지와
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도록 만들었다. 특히 1985년경에는 자본주의체체를 극
복하고 사회주의체제를 수립해야 한다는 인식이 진보적 운동진영에서 널리 퍼지
고 프롤레타리아독재 수립의 당위성이 공감되기에 이른다. 아직 사회주의라고
명시적으로 표현되기보다는 민중적 체제라는 말이 사용되었지만 그것이 사회주
의체제의 한 형태라는 것은 분명했다(조희연 1992, 233). 그리고 87년 이후에는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독재라는 용어가 공개적으로 사용되며 해방 이후 한국사
회를 지배해왔던 서구중심 발전모델에 근본적 도전장을 내밀었다. 6.25 전쟁 이
후 처음으로 서구중심 근대화 모델에 입각한 역사발전 기획을 거부하고 사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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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적 근대화를 추진하려는 세력이 공개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필자는 이런 점에
서 80년대 민중운동의 실천을 탈서구중심 기획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서구중심적 근대화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1948년 제정된 ‘미국
정보교육 교환법’에 따라 1950년대 중반부 ‘한미 교환교수협정’이 체결되었고,
이 법에 의거하여 미국 대학에서 단기 연수나 학위취득 과정을 이수한 30-40대
학자들이 교수직으로 충원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미국 유학출신들’이 한국 대학
사회의 주류를 형성함에 따라 구조기능주의, 행태주의, 발전론, 근대화론 등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학문체계가 한국의 학문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정영태 2003).
해방정국과 6.25 전쟁을 거치며 남한에 남아 있던 좌익세력이 일소되고, 그나마
남아 있던 소수의 좌파들조차 지속적 탄압 아래 질식하며 이러한 서구중심 근대
화 기획에 반대하는 세력은 지식계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미국 학문의
압도적 우위는 정치․사회․경제 부문에서부터 대중의 일상인식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의 삶 속에서 내재화된 서구중심 발전모델의 학문적 반영물이었던 것이다.
1980년대에 들어오며 진보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학술진영에서도 한국사회
를 지배해 왔던 서구중심 세계관과 발전모델이 형성된 역사적 연원, 제국주의
지배구조가 만들어낸 제반 사회적 모순을 규명하며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대안
적 발전모델을 제시하려는 운동이 일어난다. 통상 진보학술운동이라고 부르는
이 운동은 운동권의 변혁노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것이었지 탈서구를 의
도하고 출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한국사회의 지배적 역사기획이었
던 서구중심 발전모델의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근대성의 기획을 제시하고, 우리
의 주체적 입장에서 현실을 분석하고 실천전략을 확보하는 분석 틀로서 마르크
스주의를 내세웠던 그들의 문제의식은 정치사회적 실천영역에서의 탈서구중심
기획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본다. 즉 근대성의 모델로서 사회주의의 당
위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가운데 서구중심 학문체계에 종속된 한국 사회과
학계를 비판하고 그 대안을 제시했다는 의미에서 학문영역에서의 탈서구중심 기
획이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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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기본 인식
1) 한국 사회과학의 대외종속 : 식민지 구조와 사회과학
한국 사회과학에서 서구중심주의 혹은 서구의존성 문제는 그 심각성이 일찍부
터 널리 인식되고 있었다. 정치학의 경우 이 문제는 한국정치학의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60년대 이후부터 계속 논의되었는데,6) 대체로 다음과 같은 지적들이
있었다. 첫째, 한국정치학은 외국 (특히 미국) 정치학에서 사용되는 개념, 모델,
이론, 방법 등을 모방하고 소개하는 수입상의 역할에 그쳤다. 둘째, 수입이론에
기대어 우리 현실을 설명하는 데 그쳐 한국정치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고 한국
정치의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을 결여하게 되었다. 셋째, 우리 고유의 개념,
모델, 이론, 방법 등을 창안해내는 노력이 소홀하여 한국정치학 고유의 이론 및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했다. 넷째, 이와 같은 학문의 대외의존성으로 인해 정치학
의 주요 문제와 관심사가 수입이론의 틀에 맞추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문제를 우리 시각에서 다루는 독자적인 한국정치학을 확립하려는 학자들의 용기
와 분발, 학계 전반의 학문적 성숙이 함께 이루어지면학문의 서구 종속성이 극복
될 수 있다고 주장되었다. 이와 같은 지적은 정치학계에서 나온 것이지만, 정치
학을 사회학이나 경제학으로 바꾸어도 그대로 의미가 통용될 정도로 이 문제는
한국 사회과학 전반에서 널리 인정되고 있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서구중심주
의가 한국 사회과학에 끼치는 학문적 폐해의 심각성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열의
가 동반되면 –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 우리의 고유한 사회과학 이론을 개발하
고, 한국사회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의 입장에서 제시하는 주체적 학문으로 성장
할 수 있게 된다는 낙관적 진단이었다.
당시 거의 모든 진보적 학자들은 한국 사회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구조기능
주의․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으로 글을 시작했다. 분단 이후 한국의 사회과학은

6) 한국정치학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작업들에 대한 이론사적 고찰은 강정인․정승현
(2010), 정치학 입문서에 나타난 서구중심주의의 문제와 극복 방안에 관해서는 강정인․
정승현(20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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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서구이론의 맹목적 도입에 몰두하거나 한국 현실을 그 이론의 실험대상으
로 삼는 학문적 비주체성”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비판은(한국산업사회연구회
1986, 12) 진보학술진영에서 펴낸 문건들의 서문에서 거의 예외 없이 나오던 지
적들이었다. 그러나 그 논점은 전혀 달랐다. 주류 사회과학계가 이와 같은 현상
의 원인을 우리의 부족한 학문적 역량에서 찾았던 데 반해 진보학술운동은 미국
에 의해 형성된 제국주의 지배질서에서 찾았다. 진보학계의 인식에 따르면 한국
사회과학에서 행태주의(정치학), 구조기능주의(사회학), 근대 주류경제학이 지배
적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현존 서구사회를
이상적인 상태로 상정하고, 후진국을 자본주의적 발전 모델에 따라 재편하여 미
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권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욕구가
있었다.
1980년대 진보학계의 ‘어른’으로서 외풍(外風)을 막아주고 진보학자들을 격려
했던 김진균은 해방 이후 “자주적 노선과 종속적 노선, 나아가 민주적인 세력과
종속적 세력 사이의 대립에서 전자의 길과 노선․세력이 패배하면서, 자주화의
길은 봉쇄되고 새로운 의미의 종속적 질서가 창출되게 되었다”고 주장하면서(김
진균 1988, 14) 그것을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라고 불렀다. 이러한 인식에 따르
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과학계를 지배해온 행태주의․발전론․구조기능주의는
제국주의 질서를 이론적으로 지탱하는 지배도구이다. 예를 들어 한국 정치학의
지배적 패러다임이었던 행태주의 정치학은 “반공-분단체제와 군부정권의 이익에
봉사하는 기형적인 이론”이라는 점에서 비판받았던 것이다(김세균 외 1996, 20).
사회과학의 서구종속성 탈피는 학자 개인의 의식․용기․분발․각성 차원의 문
제가 아니라, 한국사회에 제국주의 모순을 착근시킨 서구중심 발전모델을 부정
하는 근본적 인식 전환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김진균은 이러한 인식 전환을 친미반공분단종속체제라고 하는 “지배적 세계
관 및 소시민적 세계관과 민중적 세계관의 단절”이라고 표현하며(김진균 1988,
23), 한국사회의 근본적 변혁의 방향이 – 비록 민중적 체제라는 말로 표현되기
는 했지만 – 사회주의로 분명하게 정리되며 세계관의 전환을 이루었던 1985년을
진보학술운동이 태동하게 된 중요한 시점으로 꼽았다. 또 다른 논자 역시 사회주
의적 변혁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사회운동이 심화되던 과정을 ‘자유주의 세계관’,

154 현대정치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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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세계관’, ‘소시민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변혁의 세계관’, ‘민중의
세계관’으로 바뀌는 세계관 변화와 결부시키기도 했다(조희연 1992, 235-43). 요
약하자면 진보학술운동은 제국주의를 지탱하는 서구중심 모델의 세계관을 사회
주의적 변혁의 민중적 세계관으로 전환시키려는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 차원에
서 운동이었다.

2) 사회과학의 주체성 : 민족 ․민중 학문
한국사회 일반, 사회과학의 대미종속성을 극복하기 위한 진보학계의 대안은
1988년 6월 3일-4일 ‘학술단체연합 심포지엄’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었다. 김진균
은 「기조발표」를 통해 “‘자주․민주․통일’을 소망하는 이 땅의 민중에게 희망을
만들어내는 … ‘민족적․민중적 학문’”을 만들 것을 주장했다(김진균 1988, 25).7)
기본적으로 민족․민중학문이란 민족자주의식에 철저하고 현 시대 민중의 실천
적 요구를 대변하며 민주주의와 통일이라는 한국사회의 변혁 과제를 지향하는 학
문을 의미했다. 여기에는 민족자주의식에 투철한 ‘주체성’과 한국사회의 변혁 과
제를 지향하는 ‘실천성’이라는 이중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기조발표」 이전에
도 김진균은 해방 이후 ‘낯선 서구이론의 맹목적 도입에 몰두해온’ 한국 사회과학
계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발 딛고 선, ‘보고 경험하는’ 현실 그 자체의 독특한
문제구조를 우리의 주체적 시각에서” 해명함으로써 “한국적 사실의 새로운 이론
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주체적 학문이라고 주장했다(김진균 1983, 4-5).
위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80년대에는 역사현실의 발전을 ‘우리의 실천적 요
구’에 따라 새롭게 방향 정립하는 것, 즉 우리의 시각에 의한 역사발전의 기획을
추구하는 것이 주체적이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었다. ‘낯선 서구이론’은 그것이
서구에서 왔다는 것보다는 한국 민중의 염원과는 반대로 자본주의적 근대화를
역사발전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모델로 설정하며 분단과 권위주의를 정당화함으
로써 ‘우리’의 주체적 역사발전 기획에 대해 ‘정면 배치’된다는 점에서 ‘낯선’ 것
이었다. 자본주의적 발전기획을 뒷받침하는 발전이론을 서구의 역사적 경험으로

7) 이 글에서 인용된 문건들의 강조(‘ ’) 부분은 모두 원문에 그렇게 표기된 것이다.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55

부터 도출된 “서구중심적이며, 비역사적” 이론이라고 비판하며 “제3세계의 종속
적 자본주의의 재생산 메커니즘”에 대해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민중적 시각’을
그 대안으로 내세웠던 최장집 역시(최장집 1985, 13) 김진균과 같은 문제의식을
보이고 있었다.
1980년대 진보진영의 인식에서 주체성은 변혁․실천의 관점을 의미했던 만큼
사회과학의 실천 지향을 대단히 강조했다. 예컨대 조형제는 “실천적 관점에서
명확히 떠오르는 이론적 쟁점과의 연관성 속에서” 연구가 이루어질 때 그것을
“주체적 입장”이라고 불렀던 것이다(조형제 1988, 9). 여기서 정치학의 임무는
외세의 민족 억압과 지배세력의 민중 수탈에서 벗어나 사회주의적 변혁을 위한
실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학문이 되는 것이었다. 당시 소장 진보학자들의 학술
모임이었던 한국정치연구회는 한국의 국가를 ‘신식민지파시즘’으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현재의 파시즘을 PD권력으로 궁극적으로 대체하지 않고서는 신식민지
국독자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도 불가능하다고”하면서, 각주를 통해 PD권력이란
“소비에트를 모델로 하는 새로운 국가유형(부르주아민주공화제가 아닌)으로 제
기되는 혁명적 민주주의권력”이라고 풀이하였다(한국정치연구회 1989, 39; 40n).
이상에서 보았듯 80년대의 진보학술운동에서 말하는 주체성은 ‘한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변혁의 관점’과 같은 뜻이었다. 이때 변혁의 세계관은 제3세계의 종
속적 자본주의의 재생산 메커니즘을 정착시킨 서구중심 발전기획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우리의 필요에 따라 주체적으로 지향’하는 사회주의적 근대성을 그
내용으로 갖고 있었다. 그 세계관을 떠받치는 이론은 꼭 한국산 혹은 한국발(發)
이 아니더라도 ‘사회주의적 변혁’이라는 ‘주체적 시각’에 입각하여 한국사회의
‘은폐된 본질’을 포착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전략, 더 나아가 미래의
비전을 제시해준다면, 그것이 외국산 수입이론이라도 주체적인 것이었다. 주체
적이라는 말이 민족적, 민중적과 동일시되고 “정치경제학 방법론․사적 유물론
의 원칙․변혁적인 시각 위에 정초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하게 민족적이고 민중
적”이라고(김동춘․조희연 1990, 34) 생각되던 당시의 인식에서 그 이론은 마르
크스주의였다. 80년대의 인식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외국에서 왔다는 것과 주체
적이라는 것이 충돌하지 않았으며, ‘과학’으로서의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학문의 주체성을 훼손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156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3) 마르크스주의 : 과학과 주체성
1980년대 변혁운동의 기본은 의식화된 노동계급이 독자성을 견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력을 장악함으로써 민중민주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리
고 이러한 변혁의 올바른 지침과 방향을 제시하고, 한국의 사회성격 분석을 위한
유일한 과학적 이론은 마르크스주의라고 내세웠다. 물론 1980년대 진보진영의
지배적 인식이 마르크스주의로 확립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
다. 이 과정을 추적하면 마르크스주의가 ‘주체적’ 이론으로 인정받게 되었던 근
본 원인을 잘 알 수 있다.
80년대 진보학계의 논쟁사를 분석한 정민은 “일정 시기마다 특정 전공분야에
상관없이 주류라고 할 수 있는 공통적인 이론적 경향이 존재”한다고 지적하며(정
민 1989, 22-23), 각 이론들의 의거하고 있는 사상에 따라 ‘뉴레프트 시기’와 ‘정
통 마르크스주의 시기’로 나누었다. 뉴레프트시기는 시기적으로는 1980-85년에
해당하는데, 종속이론․종속적 발전론, 그리고 알뛰세 등의 구조주의적 마르크
스주의에 기초한 국가론․계급론․사회구성체론이 지배적 이론으로서 풍미했
던 시기를 말한다. 그 뒤를 이어 1985-86년 이후 노동운동이 고양되고 운동권에
서 마르크스-레닌 저작의 대량 번역 및 보급이 이어지면서 정통마르크스주의의
시기가 따라왔다. 물론 주체사상이 여기에 가세하며 주체사상과 마르크스주의
중 어떤 입장에 설 것인지 양자택일의 물음을 강요받기도 했다.
1970년대 말과 80년대 초중반에는 종속이론과 네오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이 유
행처럼 번졌다. 무엇보다 종속이론은 대외종속과 군부권위주의정권이라는 남미
와 한국의 유사성 때문에 한국사회의 종속성과 그로 인한 정치․경제․사회의
왜곡을 파악할 수 있는 이론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제국주의 질서를 떠받치면
서 민중을 억압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필요성
때문에 국가론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두 이론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신식민지
혹은 대미)종속의 문제를 사회성격 논의 속에 확고히 놓음으로써 그 변혁론적 지
향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비판적 사회과학의 확산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8)

8) 1980년대 초반에는 이런 주제들에 관한 석사학위논문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57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종속이론과 국가론은 그 이론들이 태동했던 사회적
맥락이 우리와 판이한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무분별하게 적용되었다는 비판을 받
게 된다. 종속이론의 경우 제3세계라는 개념이 포괄할 수 있는 동질적 사회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론의 제3세계 일반으로서의 효력
을 맹신하여 한국의 ‘사례’에 피상적으로 적용시켜보는 수준의 연구”에 그쳐 “적
용시킨 이론과 한국 현실과의 괴리를, 단지 사례적용 시에 나타나는 편차 정도로
간주하는 연구”에 머물렀다는 것이다(조형제 1988, 8). 이러한 비판은 국가론에
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부르주아 계급지배의 기반이 공고하게 정착되어 있고, 의
회정치를 통한 계급이익의 실현이 보장되어 있는 서구 정치의 맥락을 결여하고
있는 한국에서 국가론 논의는 국가의 지양과 민중권력으로의 변혁이라는 실천적
변혁 과제에 기여하지 못한 채 추상적 이론화 작업에 몰두함으로써 “외국의 제
이론과 개념들의 무분별한 적용”에 그쳤다고 비판받았다(정관용 1989, 284).
앞에서 지적했듯 진보학술운동의 인식에서 몰주체성 혹은 비주체성의 극복은
‘한국에서 만든 이론’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우리의
주체적 역사발전 기획에 따른 변혁을 이론적․실천적으로 규명하는 ‘과학’을 통
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80년대에 가장 많이 읽혔던 책 중의 하나는 “개개의 특
정 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관계 속에서 그 사회의 제변화를 합법
칙적으로 파악하는 것”, “필연적으로 관철될 수밖에 없는 법칙에 기초하여 그 사
회를 파악하는 것”, “어떤 한 계급의 입장에 서서 변혁의 목적의식 하에서 대상세
계를 일관되게 분석”하는 것을(이진경 1990, 39, 82, 27) 과학이라고 규정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 변혁의 관점에서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보편적이고 본
질적인 관계를 분석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과학적 방법론’이라는 이진경의 주장
은 8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었
던 종속이론가 아민(S. Amin)의 주변부자본주의론이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역사
발전법칙과 사회구성체의 발전사를 폐기”했다는(임휘철 1989, 200) 점에서 비판

것이 유행이었다. 많은 학생들은 이런 책으로부터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 종속이론 및
제3세계론과 관련된 책은 김진균 편, 󰡔제3세계와 사회이론󰡕 (한울, 1983), 국가론에 관해
서는 최장집 편 󰡔한국자본주의와 국가󰡕 (한울, 1985)가 대표적이다.

158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받았던 배경에는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은 마르크스주의는 필연적이고 객관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역사발전의 보편법칙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였으며, 그 보편법칙이 예외 없이 관
철되는 한국사회의 분석에 적용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학술운동은 마르크
스주의가 역사발전 법칙을 규명해주는 과학으로서의 보편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 현실에도 타당성을 가지는 동시에, 우리의 주체적 입장에서 사회변혁을 추
진하고자 하는 이론적․실천적 기획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비록 그 원산지가 한
국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주체적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과학으로서의 보편성과
학문의 주체성은 충돌하지 않았다. “고전이론들에 대한 든든한 철학적 기반 위에
서만 한국의 국가연구는 주체적 입장에서의 방법론을 확립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장은(조형제 1988, 9)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적 입장이 동일하게 이해되던 당시
의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III. 진보학술운동의 지적 식민지의식

1980년대를 휘감았던 진보학술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열기와 의미는 퇴
색되었고 ‘주체적 이론’을 만들겠다던 야심도 실현된 것 같지 않다. 신정완은 진
보학술운동이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의 형성에 실패했음은 물론 대학의 제도와
관행에 미친 영향력도 의의로 작았다고 지적하며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
다. 첫째, 운동이 초기부터 대학 외곽의 연구회나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전개됨
으로써 학문 활동의 중심지인 대학에 미치는 파장이 작았다. 둘째, 전체 교수 중
에서 이 운동에 참여한 교수의 비중이 작았다. 셋째, 주도 세대가 전국 대학으로
분산된 이후 대학의 제도와 관행에 대해 큰 비판의식 없이 적응하고 흡수되며
후배 연구자들의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넷째, 학문 후속 세대의 양
성에도 소홀하였다(신정완 2003, 385). 또한 열정에 비해 역량이 부족했던 점, 진
보학술운동의 인적 자원이 한정되었던 점, 새로운 이론으로 쉽게 끌려가면서 그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59

이전에 있었던 학문적 성과가 축적되지 못했던 점도 추가될 수 있을 것이다.
이론적 측면에서는 이른바 ‘정통’ 권위에의 절대적 의존, 역사․현실과 이론의
검증이 결여된 논증에의 집중, 과학주의와 당파성이라는 기치 아래 오직 자신의
이론체계만 고집하는 이론적 폐쇄성과 교조주의, 고도로 추상적인 경제결정론이
나 구조론으로 인하여 변화된 현실에 대처하지 못하는 이론적 경직성, 모든 문제
를 계급 혹은 분단으로 환원하였던 근본주의적 환원론 등이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온 것들이었다. 이런 지적에 대해서는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노정시킨 근본 원인에 대한 분석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그것을 진보학술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또한 서구보편
이론에 대한 지적 식민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찾고자 한다.

1. 좌파 판본의 서구중심주의 혹은 지적 식민지의식
진보학술운동은 한국 사회과학의 서구중심주의가 신식민지 대미종속구조에서
연원한 것이며 이 구조가 타파될 때 비로소 인식․학문의 종속도 청산된다고 하
면서 ‘주체적’ 시각을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과학’ ‘정통’ ‘보편’이라는 이
름 아래 소련 국정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 서구의 대표적 좌파이론가들, 혹은
주체사상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를 가리켜 “1980년대 한국의 좌파 지식
인들 역시 미국․유럽 등 강대국 지성의 압도적인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
했다”는 지적은(김동춘 2006, 99)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압도적 영향력’
이라는 말로는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문제점을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그보다
는 마르크스주의라는 ‘과학’에 묶여 있었던 진보학술진영의 지적 식민지의식 혹
은 좌파 버전의 서구중심주의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패러다임이었던 마르크스주의는 기본적으로 서구중
심 발전모델을 깨뜨림으로써 서구학문에 대한 ‘지적 식민지’ 혹은 ‘학문의 소작
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학문영역에서의 탈서구중심 기획이었다. 필자는 마
르크스주의가 서구자본주의체제에 대한 혁명의 기획인 동시에 서구의 주류 사회
과학을 극복하려는 학문적 도전이라는 점에서 서구중심주의를 이론적․실천적

160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으로 지양하는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의 그 가치를 인정한다. 그러나 마르크스
주의의 이론 틀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서구중심주의가 저절로 극복되는 것은 아
니다. 우리가 서구중심주의를 이론적․실천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면 마르크스
주의에 내장되어 있는 ‘서구적 맥락’을 우리의 문제의식에 맞게 걸러내는 한편,
한국이라는 특수 혹은 개별의 입장과 마르크스주의라는 보편 사이의 길항․대립
관계를 비판적으로 해소시켜야 한다. 즉 서구중심의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는 받아들이되, 그것을 또 하나의 서구이론으로 보고 다시 우리의
맥락에서 ‘재비판’하는 작업, 그리고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건전
한 회의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과학 혹은 보편이라는 이름
아래 마르크스주의에 함몰될 경우 또 다른 서구중심주의, 이번에는 좌파 버전의
서구중심주의에 포획될 수 있다.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진보학문마저 서구종속을 벗어나지 못했던 사실에 대해 조희연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일정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그는 “우리가 우리 현실․역사․문화․
사회를 대면하는 자세의 근저에는 ‘식민지성’ ‘종속성’ 등으로 규정될 수 있는
어떤 정신적 상태가 존재한다”고 했다(조희연 1997, 163). 구체적으로 그것을 첫
째 외국인(서구학자)의 시각을 준거로 하여 우리 현실을 보는 것, 둘째 우리 현실
을 비하하는 시각, 셋째 거창한 일반론의 대상은 서구의 것이고 우리 현실은 서
구적 일반론을 시험적용하는 대상 정도로 인식하는 시각이라고 규정했다. 조희
연은 진보적 학문세계에도 예외 없이 관철되는 이 현상을 “마르크스주의의 발전
적 해석은 서구의 유수한 학자들에게만 있고, 우리는 그것의 충실한 번역자이며
모방자”에 그치는, 보편적 지침이나 “일반론적 지침을 서구이론, 특히 서구의 좌
파이론에서 찾으려는”(조희연 1997, 167) ‘좌파 식민화적 사고’라고 불렀다. 이러
한 설명은 타당하지만 보다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의 학문전통이 독창적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리고 서구에
서 온 어떤 ‘일반’이론이 우리 현실을 ‘그 이론의 개별 사례로서’ 잘 설명해줄
뿐 아니라 우리의 시급하고 중요한 현실적 문제의 해결에 도움을 준다면, 그 이
론에 의존하여 우리의 현실을 분석하는 것을 ‘의식의 식민화’라고 비판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문제는 수입이론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없는데도 계속 그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61

틀에 매몰되어 현실을 이론에 꿰맞추려는 데 있다. 즉 그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
그 이론이 의도하는 현실적 함의, 그 이론이 대결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을 읽어내
고 그것을 우리의 문제의식에 따라 재맥락화면서 이론이나 개념 틀을 수정 혹은
변용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적 정합성을 높이려는 시도가 동반되었는가 하는 것
이다.

2. 지적 식민지의식의 구체적 형상
강정인은 학문의 영역에 나타난 서구중심주의의 문제점을 ‘학문적 문제의식의
서구화’, ‘서구 이론에 따른 한국 현실의 동화주의적 해석’, ‘서구중심주의에 의
한 한국(비서구) 현실의 주변화’, ‘학문의 대외(서구) 종속성’이라는 네 가지로 분
류했다(강정인 2004, 10장). 그의 지적은 80년대 진보학술운동에도 그대로 나타
났다. 즉 마르크스주의를 ‘보편이론’ ‘과학’으로 받아들였던 진보진영의 인식에
서 우리의 현실은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 되었고, 우리 현실은 그 이론에 맞추어
동화적으로 해석되었던 한편, 그 이론이 말하지 않거나 말할 수 없는 부분 – 그것
이 우리에게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 에 대해서는 침묵함으
로써 학문의 종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정치학의 사례를 중심
으로 이 문제를 검토하기로 하자.9)
첫째, 학문적 종속성의 문제. 앞에서 지적했지만 진보학술운동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분석하고 변혁의 전망과 실천 방안을 제시해주는 이론이라면 그
것이 외국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충분히 주체적인 것이라고 보았다. 정치학에

9) 정치학계의 대표적인 진보학술운동단체인 한국정치연구회는 “대학 1,2학년 대상의 정치
학 교재를 의도하고 기획”한(한국정치연구회, 1989a: 9) 네 권의 정치학 교재를 「정치학
강좌 시리즈」로 책으로 출간했다. 제1권 󰡔현대자본주의의 정치이론󰡕(1989), 2권 󰡔한국정
치사󰡕(1990), 3권 󰡔한국정치론󰡕(1989), 4권 󰡔북한정치론󰡕(1990)으로 출간되었고, 시리즈
에 속하지는 않지만 󰡔한국전쟁의 이해󰡕(1990)까지 넣을 경우 모두 5권이다. 필자는 이
글과 직접 관련이 없는 󰡔한국전쟁의 이해󰡕, ‘북한 바로알기’에 가까운 󰡔북한정치론󰡕 을
제외하고, 정치학 일반과 한국정치학을 다룬 세 권의 책만 검토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162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서 주체적․민족적 정치학을 지향하는 운동은 소장 진보학자들의 연구모임인 한
국정치연구회를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당시 한국정치연구회 회장 이수인은 시리
즈의 공통 서문에서 정치학은 분단시대의 현실에 눈을 감은 채 ‘외국의 시각’으
로 자기 현실을 바라보는 ‘학문의 소작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
리고 이제부터 정치학은 과거의 이러한 행태를 반성하고 “민족의 정치현실에 성
실하게 답변”하는 “‘민족정치학’의 건설”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한국정
치연구회 1989b, 8).
이러한 의도에 따라 출간된 일련의 진보정치학 교재에서 일관되게 주장된 것
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기본 법칙인 생산양식과 “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상부
구조 간의 모순에 의한 상호대립과 조응으로서의 사회구성체 발전이라는 명제”
를 분석의 기본으로 삼는다는 원칙이었다(한국정치연구회 1989a, 6). 그리고 이
기본 원칙이 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적용되면 “철의 필연성을 갖고 자신의
법칙을 관철시키는 경향으로서의 자본운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변증법적으로
통일”시킨(한국정치연구회 1989b, 38)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민족정치
학’의 분석 틀로 정립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사회로서 한국
에도 필연적으로 관철되는 역사발전의 보편법칙을 밝힌 과학이며, ‘민족정치학’
의 요구인 사회주의 변혁을 실현하는 과학이기 때문에, 과학으로서의 보편성과
한국 민중의 주체성이 ‘변증법적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어떤 서구이론을 ‘보편’ 혹은 ‘과학’으로 받아들여 세상을 보게
되면 그 이론이 속해 있는 사유의 전통을 벗어나기 대단히 어려워진다. 우리 현
실이 그 이론과 어긋나면 – 고전적 이론가들의 답변이 부족할 경우 – 가급적이면
같은 전통에서 나온 최신 이론가들을 찾아서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것은 1980년대 진보진영이 왜 그렇게 서구의 최신 마르크스주의 이론에
의존하여 나의 현실을 파악하고자 했는지 설명해준다. 진보학술운동은 마르크스
-레닌에서 시작하여 알뛰세․풀란차스․그람시, 최근에는 캘리니코스 등 서구
마르크스주의 최신이론들을 찾아내 거기서 해답을 찾고자 했다. 학문 체계 자체
가 마르크스주의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얻어냈던 것은 알뛰세의 눈으로 본 한국, 그
람시의 이론을 통해 파악된 한국이었지 지금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한국 현실의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63

‘주체적’ 파악은 아니었다.
둘째, 문제의식의 종속. 1980년대 진보진영의 문제점에 대해 이구동성 일치하
는 부분은 그들이 한국사회의 시급하고 독특한 문제들, 예컨대 여성․민족주
의․지역감정․분단으로 인한 여러 문제들, 그리고 한국정치와 사회에 만연한
일상적인 비민주성의 극복 등에 대해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답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들이 보편이론에서는 중요하고도 시급한 문제로 인식
되지 않은 채 침묵으로 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론은 애초부터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담아낼 능력이 없었으며, 그 이론에 입각해 있는 한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동춘이 잘 지적했듯, 식민지반(半)봉건을 강조하고 한국사회
의 민족적 측면을 절대적으로 보는 민족해방노선(NL)은 1930년대의 문제의식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민중민주주의(PD) 노선에서 한국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의 유럽과 같은 전형적인 계급사회였을 뿐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사회
적 경험은 망각되고 있었다(김동춘 2006, 85-89). 하나는 한국을 여전히 식민지로
보며 한국사회의 자본주의적 현실을 설명해주지 못했고,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
의 일반적 경험에 집착하여 민족문제라는 한국사회의 특수한 현실을 외면하였던
것이다.
정치학의 경우에도 이런 현상은 쉽게 포착된다. 87년 민주화 이후 지역문제가
그토록 심각하게 대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중의 의식 변화는 허구적 반
공의식 → (지역의식) → 계층의식․계급의식 등의 순서로 변화되리라 예상된
다”고(정해구 1988b, 86) ‘교과서’에 충실하게 답할 뿐이었다. 또한 3저호황을 계
기로 한국경제가 다시 고성장에 접어들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민중운동의 성격이
더 이상 체제변혁이 아니라 경제투쟁이나 시민운동으로 변화되는 심각한 상황에
서도 문제의식은 여전히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갇혀 있었다.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아래 한국 국가는 식민지 초과이윤과 독점이윤 확보를 위한
잉여가치의 초과착취, 이를 위한 고도의 민중수탈, 종속강화와 독점강화 때문에
항상 고도의 민중수탈과 폭력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와 민중권력의 역사적 전망”을 확보하여(한국정치연구회
1989b, 398) 한국 국가를 변혁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길이
라고 초지일관의 결론을 내렸다. 즉 수입이론이 다루지 않거나 문제로 인식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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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문제의식의 종속’, 혹은 ‘학문적 문
제의식의 서구화’가 재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보편이론에 의한 한국 현실의 주변화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적 종
속은 우리의 현실을 중심이 아니라 주변으로 보게끔 만든다. 1980년대 진보진영
도 근대화론의 이분법과 단선적 역사관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단지 근대의 모델
이 사회주의국가였을 뿐이다. 진보진영은 식민지반봉건사회․신식민지파시즘․
국가독점자본주의 등의 개념을 동원하여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설명하고자 했지
만 이러한 개념들 자체가 단선적 역사발전의 경로를 확인해주는 수단이었다. 한
국사회는 자본주의사회구성체라는 일반 규정 아래 이러저러한 특수한 사회성격
을 부여받고 있지만, 결국 소련의 경험에 입각한 사회주의혁명 혹은 북한 중국의
경험에 입각한 민족해방으로 나아간다는 단선적 역사발전 도식을 예증할 뿐이
고, 한국의 과거․현재․미래는 이 보편 개념을 예증해주는 사례일 뿐이었다. 예
컨대 박현채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은 식민지 시절부터 1980년에 이르기까지 한
국사회가 독점자본주의의 발전법칙에 따라 이행되어 왔음을 밝히고자 했다. 그
의 분석에서 한국사회는 국가독점자본주의에 의해 철저히 규정되었고,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대안은 노동계급의 헤게모니 확립과 사회주의 민중혁명이었다
(박현채 1985). 그러나 여기에는 한국사회의 고유한 역사적․사회적 특수성은 실
종되어 있다. 식민지 이후 한국의 역사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 산업자본, 금융자
본으로 이어지는 역사였고, 해방 이후에는 관료자본주의, 국가자본주의, 국가독
점자본주의로 계기적으로 이행하는 역사였다. 서유럽의 자본주의의 발전사가 세
계사의 보편적 합법칙으로 전제되어 있고, 한국은 그 역사발전법칙을 예증해주
는 개별사례로 주변화되어 있을 뿐이다. 곧 ‘보편이론에 의한 한국현실의 주변
화’라는 서구중심주의의 문제점이 좌파이론의 형태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보편이론에 따른 한국 현실의 동화주의적 해석이다. 동화주의적 해석은
서구이론에 맞지 않는 자기 사회의 현실을 억지로 맞추어 왜곡되게 해석하거나,
아니면 자기 사회의 후진적인 현실이 선진적인 서구이론을 적용을 받을 만큼 충
분히 성숙하고, 그 이론이 적용되는 시기가 도래할 것을 기다리는 대기주의적
경향을 말한다(강정인 2004, 402). 한국정치연구회에서 출간한 󰡔한국정치사󰡕는
한국 근현대사에 있었던 “모든 민족해방운동의 정치적 지향은 반제반봉건의 성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65

격을 분명히 하였”다고(한국정치연구회 1990, 432) 주장하며, 한국 근현대 정치
사는 사회주의적 변혁으로 이행하는 “민족운동의 발전의 역사적 필연성”을(같은
책, 27)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즉 한국사회는 근현대사의 풍랑을 겪으며 이제는
사회주의혁명을 대기 혹은 예비하고 있는 사회, 마르크스주의 역사발전법칙의
타당성이 검증되기를 ‘대기’하고 있는 사회였다. 그런데도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그 무엇이 한국에는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의 인식에서 그 부재 혹은 결여는 혁명적 계급의식의 결여, 대중을
올바로 인도할 전국적 전위조직의 부재, 혁명적 품성을 갖춘 혁명 전위대의 부재
등 온갖 종류의 부재로 나타났다. 한국은 보편이론에서 말하는 모든 객관적 조건
이 완비되었지만 주체적 조건이 부재 혹은 결여되어 있는 사회, 그 부재와 결여
를 채움으로써 서구 역사발전의 보편법칙을 입증하도록 대기하고 있는 사회였
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 속에서 파악되는 실체는 현실의 한국사회가 아니라 그렇
게 ‘되어 있어야 한다’고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에 따라 동화주의적으로 해석
된 한국의 현실이었다. 출발은 분명히 나의 현실이었지만, 그 현실은 마르크스레닌의 눈을 빌려서 본 현실로 전도되어 있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좌파”의
몰락을 “눈을 뜨고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사상의 색안경에 가리어, 있는
그대로의 이 땅의 현실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었고, 남의 이론 속의 현실을 제
눈으로 보는 현실이라 착각했기 때문”이라고 평한(정성기 2005, 61) 지적은 바로
이와 같은 동화주의적 해석의 맹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보편적 지침은
서구이론이 설정하고 우리는 그 지침에 맞추어 현실을 해석하고 열심히 그것을
실현하면 되는 것이며, 실천의 지체는 전적으로 우리의 역량 부족의 문제가 되는
것이다.10)
이러한 좌파 서구중심 인식에서 나의 현실은 남의 눈으로 분석되고, 그 이론들
이 대답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침묵하며, 나의 현실이 그들의 이론과
얼마나 잘 부합하는 것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마르크스주의가 한국의 구체적 현

10)“최소한 비서구 마르크스주의자에게 서구의 이론적 동향을 무시하면서 현지 우선적 주
장을 내세우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Chakrabarty 1999, 223) 탈식민주의 이론가의 논평
은 서구에 포획된 비서구 마르크스주의자의 지적 식민지의식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166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실과 역사에 과연 부합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거꾸로 한국의 현실과 역사가
얼마나 마르크스주의와 잘 부합하는가의 문제가 중요했던 것이다. 한국의 현실
과 역사는 마르크스주의를 검증하는 데 동원되는 사례에 불과했고, 한국은 마르
크스주의의 역사발전법칙이 실현되기를 대기하는 사회이며, 한국의 미래는 마르
크스주의가 실현됨으로써 그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이 식민지의
식은 진보학술운동 전체에 공유되어 있었는데, 필자는 바로 이와 같은 좌파 판본
의 서구중심주의에 진보진영이 포획됨으로써 주체적 학문을 지향하려는 탈서구
기획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한다.
필자의 위와 같은 비판에 대해, 이러한 문제들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한 경험
적 사례연구가 질적 양적으로 부족하고 아직 그 학문적 축적이 심화되지 못했던
당시의 시대상황을 도외시한 일방적 비판이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의도했던 것은 ‘서구’ 일반이 아니라 미국식 사회과학을
남미 혹은 유럽의 사회과학을 통해 극복하려는 것이었을 뿐인데 – 마르크스주의
주의까지 서구 일반에 포함시켜 – 마치 진보학술운동이 ‘모든’ 서구이론을 거부
하고 독자적인 한국 사회과학을 구축하려는 의도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취지의
잘못된 비판을 하고 있다는 반박도 나올 수 있다.
첫 번째 반론에 대해 필자는 학문의 축적과 주체적 문제의식이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하고자 한다. 부족한 이론적 자원을 서구에서 빌려와 지식을 축적하
고 현실 분석과 실천적 대응의 모색에 도움을 받을 때, 우리가 그것을 서구중심
주의 혹은 지적 식민지라고 비난할 수는 없다.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부족한 이론적 자원을 서구에서 수입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필요에 의해 받아
들인 수입이론의 문제의식과 분석 틀을 한국현실에서 재맥락화하는 작업이 따르
지 않으면 애초에 의도했던 현실 분석과 실천적 대응은 제대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이 작업 과정에서 수입이론의 가설이 부정되었을 때에는 가설 자체를 재검
토하거나 가설과 이론의 연결과정을 면밀히 검토함으로써 이론을 수정해야 한
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문제의식이 – 시간적으로 비록 늦게 확립된다고 해도
– 확립될 것을 전제로 한다. 나의 문제의식에 따라 수입이론과 객관적 거리감을
확보하지 못하고 과학 혹은 대가(大家)의 권위에만 의존하는 한, 지식이 ‘축적’된
다고 해도 지적 식민지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11) 내가 발을 딛고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67

서있는 곳의 주체적 문제의식을 상실한다면 아무리 학문적 축적이 이루어져도
별 소용이 없다는 역사적 사례는 끝까지 중화라는 틀에 묶여 대응력을 잃었던
조선 유학의 경우로 충분할 것이다.
두 번째 반론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하고자 한다. 진보학술운동이 겨냥했던 것
은 ‘서구 일반’이 아니라 ‘미국식 사회과학’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종속이론
이나 국가론으로 대변되는 남미 이론, 마르크스주의로 대표되는 유럽 이론을 천
착했던 것은 – 필자가 앞에서 계속 설명했듯 – 서구중심 기획의 세계관을 거부
하고 궁극적으로 우리의 주체적 인식에 입각한 사회주의적 근대성 기획을 이론
적․실천적으로 확립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되었다. 진보학술운동의 최종적 의도
는 미국 사회과학 패러다임을 유럽 이론으로 대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론의
도움을 받아 나의 주체적 패러다임을 만들려는 것이었다. 마르크스주의는 단순
히 미국 중심 세계관을 유럽 패러다임으로 바꾸어놓는 이론이 아니라 한국에서
도 관철되는 보편적 역사법칙을 구명하며 한국 민중의 주체적 욕구에 따른 사회
주의적 변혁을 제시한 탈서구중심 발전기획의 주체적 이론으로 인식되었다. 그
러나 과학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보편의 논리에 얽매
어 오히려 한국 현실이 주변으로 밀려나고 주체가 실종되었음을 필자는 밝히고
자 했던 것이다. 또한 필자는 진보학술운동이 우리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세계
관이나 이론 틀을 구축하지 못했다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결과를 기대하
기에는 아직도 한국 사회과학계 전반의 역량이 미치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과잉 혹은 전면적인 의존성에서 비롯된 주체적 문제의식의 상실을 비판하
는 것이다.
진보학술운동의 지적 식민지성은 진보이론의 설명력과 설득력을 크게 떨어뜨
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과학 이론은 기본적으로 그 사회의 현실이 형성․구
조화된 역사적 경로의 발견, 이 현실을 움직이는 기본 구조나 운동법칙의 식별,
현실의 진행 혹은 방향 경로 분석, 그리고 변화의 전망이나 새로운 사회의 청사
진을 제시할 때 설명력과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반면 진보학술운동은 87년 이

11)1960년대에 들어온 구조기능주의․근대화론이 80년대 중반까지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는 사실은 지식의 축적이 문제의식의 주체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168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후 민주화와 3저호황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낡은 틀에 묶여 ‘임박한 붕괴
혹은 파국’ 명제를 되풀이 하고 있었다. 또한 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당면
한 특수하고 구체적인 쟁점 – 분단, 성차별, 지역차별, 민주화, 환경 등 – 에
대해 효과적인 대답을 하지 못함으로써 진보이론의 설명력과 설득력은 크게 떨
어지게 되었다. 진보학술운동의 급격한 쇠퇴를 초래한 가장 직접적 원인은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였지만,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많은 진보학자들이 그토록
빨리 자신의 입장들을 ‘청산’하거나 각종 포스트주의로 ‘방향 전환’을 한 것은
이미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에 대한 자각이 진보진영에 쌓이고 있었음을 외면해서
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IV. 맺는 말: 진보학술운동의 여운

지금까지 필자는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을 민족․민중학문의 정립과 탈서구중
심주의 기획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자 했다. 필자는 진보학술운동의 패러다임
이었던 마르크스주의가 한국 사회과학계의 지배적 패러다임인 자유주의 이론 틀
과 차별성을 갖는다는 사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서구중심주의에 맞서는 이론
적․실천적 대안으로서 대단히 유용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정한다. 그러나 대
안 틀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체적 학문이 정립되는 것은 아니다.
비판적 혹은 대안적 패러다임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유용성이 아무리 뛰어나다
고 해도, 그것이 우리의 필요와 관점에 입각하여 한국사회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이론이 되기 위해서는 앞서 지적했던 좌파 판본의 서구중심주의로부터 벗어난
‘주체적’ 문제의식이 먼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글은 탈서구중심 기
획으로서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분석을 통해 민족․민중학문운동이 인식론적
으로 좌파 판본의 서구중심주의에 침윤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탈서구중심의 기본 원리를 다시 한 번 검토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제로 탈서구중심의 기획과 관련하여 80년대의 진보학술운동에 대한 평가는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69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 김세균은 진보정치학의 과거․현재․미래를 검토하는 진
보정치학자들의 좌담회에서 그동안의 노력에 불구하고 “한국의 정치현상을 분
석하고 진단할 합당한 방법론적-이론적 시각을 발전시키는 데에까지 발전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김세균 외 1996, 20). 진보적 정치학자들의 연구단체인 한국
정치연구회의 부회장 정해구는 진보정치학이 “한국정치의 대안적 방향과 그 길
을 논의하고 제시하기는커녕 진보정치학의 내용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
는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정해구 2000, 8). 그런가 하면 “미국식 주류 사회
과학의 무비판적 이식을 비판하고 나온 ‘민족적․민중적 학문’ 운동도 학문사적
으로 보면 대체로 외래 학문의 ‘수입선 다변화’로 귀착하고만 것”이라는 혹독한
비판도 있다(신정완 2003, 383).
이러한 지적들은 타당하다.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은 마르크스주의라는 또 다른
서구 보편이론에 빠짐으로써 – 수많은 ‘주체성’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 서구중심
주의를 극복할 토착적 이론의 발견에는 실패했다. 정치학으로 범위를 좁힌다면,
한국정치의 분석에서 대안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던 진보정치학의 구상이 만
족스러운 성과를 거두었다고 평가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정치학을 포함하여 진
보학술운동의 기획은 결국 당대의 한국 사회과학의 수준 안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정치학을 포함한 진보학술운동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면
에는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사회과학의 정립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
는 한국 사회과학계 전체의 한계가 있었다.12)
그러나 다른 한편, 필자는 진보학술운동이 비록 애초의 포부는 이루지 못했더
라도 그들의 비판적 문제의식과 방법론적 지침은 – 마치 연주가 끝난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여운처럼 – 지금까지 계승되어 훌륭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는 데

12) 손호철은 진보정치학의 성과를 검토하며 연구의 구체적 성과는 정치학의 다양한 이론
적 자원, 나아가 사회과학의 이론적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결국 한국정치연구의
수준은 “한국정치학계의 이론 수준, 즉 한국정치학의 수준을 그대로 반영할 수밖에 없
다”고 지적했다(손호철, 2003: 16). 또한 80년대 한국정치학에서 정치경제학 분야의 연구
성과들을 주요 쟁점별로 검토한 이호철은 국가론을 비롯한 그동안의 “몇 번의 논쟁은
결국 ‘현실의 이론적 재단’과 ‘재단되지 못하는 현실’간의 논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이호철 2000, 315). 독자적 시각에 입각한 주체적 정치학의 구축은 결국 한국
사회과학계의 전반적 수준에 따라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70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과거 진보학술진영에서만 내세울 수 있었던 연구 주
제와 내용이 이제는 널리 공유되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그 운동은 실패로 단
정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주류 정치학계를 대표하는 한국정치학회에서
펴낸 저작에서도 80년대 중반의 마르크스주의 패러다임이 기존의 자유주의 인식
틀에 접맥됨으로써 “한국정치학이 그만큼 이론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이념적으로
도 신축성을 갖게 되었다”는 평가를 내렸다(김호진 1995, 23).
1980년대는 우리에게 보편이론․거대담론에 파묻히지 말 것, 우리 현실을 중
심에 두고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제한된 주제에 우선 몰두할
것을 교훈으로 남겼다. 손호철은 현재 단계에서는 일반론이나 원칙론이 아니라
구체적 수준에서 현실을 분석할 수 있는 “중범위 수준의 이론화” “실증연구의
비교분석과 그 역순서로의 이론분석”을 진보적 시각에 입각한 한국정치학의 연
구 방법으로 내세웠다(손호철 1993, 21).13) 그와 같은 교훈을 바탕으로 정치학에
서는 한국 현실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집중한 훌륭한 연구 성과를 만들어냈다.
특히 해방공간에 대한 연구가 확대되고, 그동안 입수 불가능했던 자료들이 발굴
되며 출간된 박명림의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1996)은 그 중에서도 백미에
속한다고 평할 수 있다. 또한 48년 남한 단정의 성립을 보수적 패권체제의 성립
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박찬표의 저작들(2007; 2010), 한국의 지역주의를 분석한
박상훈(2009)의 작업도 뛰어난 성과이다.
진보학술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가치와 사실의 분리라는 공허한 구호에서 벗
어나 학문이 현실의 개선에 공헌해야 한다는 실천적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밝히
는 진보 학술저널의 창간을 유도했다는 데 있다. 사회학의 󰡔경제와 사회󰡕를 비롯
하여 󰡔동향과 전망󰡕 󰡔마르크스주의 연구󰡕 󰡔정치비평󰡕 󰡔역사비평󰡕 등 각 분야에
서 진보적 학술저널이 창간되며 진보학문을 위한 독립적 학문공간이 마련되었다
는 점은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대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에서 중요

13) 이러한 주장은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하던 80년대 말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예컨대 한
국산업사회연구회 – 현재는 비판사회학회 – 가 출간하는 󰡔경제와 사회󰡕 창간호는 사회
구성체논쟁에서 “확인된 쟁점들과 구체적인 연구과제들을 실증적으로 검증”하고, 나아
가 이를 실천과 접맥시키는 것이 “민족적․민중적 학문의 건설의 성패를 가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편집위원회 1998, 8, 9).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71

한 이슈를 정치학이 다루어야 한다는 인식이 학계에서도 공유되며 국가/자본/노
동의 관계, 민주주의 이행론, 시민사회론 등 한국사회의 실천적 과제에 대한 연
구들이 계속 이어지도록 했다. 또한 한국 정치학의 서구의존이 한국사회의 대미
종속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고 그 극복 방안을 모색하려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학술단체협의회 엮음 2003). 더 나아가 우리의 문제를 보편으로 인식
하고, 서구에서는 볼 수 없는 보편적 진실을 우리 현실에서 찾아냄으로써 우리의
특수성을 보편화하는 ‘우리 현실의 보편적 독해’를 제안하며 서구중심주의를 극
복하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김경일 외 2006). 진보학계는 물론 주류학계에서도
80년대 진보학술운동의 성과와 교훈이 충분히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은 80년대가
학문사적으로 대단히 의미 있는 시기였으며, 그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왔던 사람
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172 현대정치연구

󰠐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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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봄호(제9권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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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6.03.01.

심사일: 2016.03.04.

게재확정일: 2016.03.23.

지방정치와 정당정치의 윈윈 전략연구: 지구당부활과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논쟁을 중심으로 175

【 ABSTRACT 】

On the Progressive Academic Movement of 1980’s and
its Eurocentrism: Science, Marxism and Subjectivity
Jung, Seung Hyun | Sogang

University

This essays is intended to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Eurocentrism
and the Progressive Academic Movement of 1980’s, which aimed to establish
‘minjung and minjok science’ founded on Marxism. The movement blamed
the neo-colonial structure for implanting the eurocentric bias in Korean mainstream
social sciences, and hoped to make an independent ‘minjung and minjok’ science.
But it also was trapped in the leftist version of Eurocentrism and did not make
an independent science which could overcome the eurocentric bias of Korean
social sciences. In the first part, I examined the fundamental claims of the
movement and what their implications were in the 1980’s. In the second part,
I showed how the leftist version of Eurocentrism brought their orignal conception
making an alternative science to naught. Lastly, I emphasized the movement
left some lessons for overcoming the Eurocentrism in social sciences.

Key Words | Progressive Academic Movement, Eurocentrism, Social Formation Debate,

Minjung and Minjok Science, Marx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