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모. 2017.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장경(蔣慶) 유교헌정론에 대한 비판
忠南大學校 儒學硏究所 論文集
儒學硏究 第39輯 2017. 5. pp.321-347
10.18216/yuhak.2017.39..013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55)
– 장경(蔣慶) 유교헌정론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정종모(서강대)
<한글요약문>
주지하듯이 21세기 들어 대륙신유가 진영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유교헌정론
을 주장하는 장경(蔣慶)의 활약은 괄목할 만하다. 그는 정치유학, 제도유학의 차원에서
기존 홍콩대만신유가의 심성유학, 생명유학 전통을 비판한다. 그리고 중국 나름의 헌정
질서체계를 의회삼원제(議會三院制)란 이름으로 구상한 뒤, 서구민주주의를 극복할 대
안으로 중국고유의 유교헌정론을 제시한다.
한편, 모종삼(牟宗三), 서복관(徐復觀), 당군의(唐君毅) 등을 주축으로 한 홍콩대만신유
가 노선을 계승하는 대만학자 이명휘(李明輝)는 장경의 유교헌정론 구상을 비판하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이들 사이의 논쟁은 대륙신유가와 홍콩대만신유가 간의 이론적 논쟁으로
발전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먼저 이명휘의 관점의 연원으로서 모종삼의 입장을 소개한
다. 모종삼은 유학이 비록 서구민주주의에 상응하는 제도를 구현하지는 못했지만, 유학의
이념이 서구민주주의와 배치되지 않으며, 도덕주체에 대한 강조를 지성주체로 일부 전환
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수용과 토착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보았다(양지자아감함설). 이처
럼 이명휘는 모종삼의 이른바 ‘개출설(종자설)’을 받아들여, 내성외왕(內聖外王)의 연속
성을 긍정하고, 내성에 입각한 정치유학 혹은 민주주의의 발전과 내면화가 가능하다는 이
론을 고수하면서, 장경의 입장과 날카롭게 대립한다. 이상의 논쟁을 일별하고, 그 연원과
맥락을 분석함으로써 본 논문은 21세기 현대신유학의 현황의 일단을 살피고자 한다.
주제어 : 정치유학, 심성유학, 유교헌정론, 홍콩대만신유가, 대륙신유가, 장경(蔣慶), 이
명휘(李明輝)
*
이 논문은 2014년 정부(교육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4S1A3A204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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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學硏究 第39輯(2017. 5)
1. 들어가며
많은 학자들이 동의하듯, 현대 중국의 사상계는 좌파, 우파, 신유가 세 진영이
삼족정립(三足鼎立)의 형세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경제적인 성장에 더하여 정치
적 지위에서도 미국과의 패권을 다투는 중국굴기(中國屈起)의 추세 속에서 대국
의 역량에 어울리는 문화적, 사상적 재건을 향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그 가운데
대륙신유가 진영은 유교를 통치, 문화, 윤리를 포괄하는 이데올로기로 격상시키
고, 단일국가의 틀을 넘어서 제국 혹은 문명국가로서의 사상적 토대와 비전을 제
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현대신유가를 포함하는 중국사상계의 거시적 지형도에 관
해서는 근래 조경란이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에서 일목요연한 정리를 시도했
는데, 중국 사상계의 최근 형세를 크게 대륙신유가, 자유주의, 신좌파 셋으로 나
누면서 대륙신유가의 대표 노선으로 유교국가론(유교헌정론)을 주장하는 장경(蔣
慶), 유교국교화론을 주장하는 강효광(康曉光), 공민유교를 주장하는 진명(陳明)
세 사상가를 거론했다. 본 논문은 이러한 기존의 성과 위에서 각론 차원에서 대
륙신유가에 속하는 개별 사상가의 논의를 살펴보고자 하는 시도로서 특히 장경
(蔣慶, 1953-)의 논의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장경은 작금의 대륙신유가 진영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유교중국의 사상적 시스
템 구축에 매진하는 학자이다. 그가 중국 사상계에 두각을 나타낸 계기는 2003
년에 출간한 정치유학(政治儒學)을 통해서이다. 이 책에서 그는 유학의 핵심이
협애한 도덕 담론 위주의 심성유학(心性儒學), 생명유학(生命儒學)이 아니라 국가
이념과 통치질서를 구축하고자 하는 정치유학(政治儒學), 제도유학(制度儒學)에
있으며, 따라서 21세기 중국의 현실에 맞는 유교헌정(儒敎憲政) 체계를 건립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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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란, 현대중국지식인지도, 글항아리, 2013, 87-94쪽. 蔣慶, 陳明, 康曉光의세노선에
대한 陳明 자신의 개괄적 설명으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陳明, 大陸新儒學略說: 蔣慶,
陳明, 康曉光的分析與比較 , 文化儒學: 思辨與論辯, 四川人民出版社, 2009, 116-129쪽.
약력을간단히살피면, 그는重慶의西南政法大學법학과를졸업하고(1982) 모교에서재직
했으며, 1988년 深圳의 深圳行政学院으로 옮겼다가 2001년에 퇴직했다. 이후 고향인 貴州
省 貴陽市에 건립한 개인 연구소라 할 수 있는 陽明精舍에서 연구와 저술에 매진하고 있
다. 보다상세한약력은다음을참조. Jiang Qing, A confucian constitutional order: how China’s ancient
past can shape its political futu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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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질서를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논지를 그는 재론정
치유학(再論政治儒學)(2011), 광론정치유학(廣論政治儒學)(2104), A confucian
constitutional order: how China’s ancient past can shape its political future(2013) 등을 통해 일관
되게 피력하였으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대륙신유가 진영을 대표하는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2014년 12월 중국의 인터넷 신문 펑파이신문(澎湃新聞, www.thepaper.cn)
은 대만의 저명한 철학 연구자 이명휘(李明輝, 1953- ) 교수의 인터뷰를 게재했
다. 이명휘는 유가 철학, 칸트 철학, 동서비교정치사상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업
적을 내놓은 대만의 중견학자이다. 특히 그는 서복관(徐復觀, 1902-1982), 당군의
(唐君毅, 1909-1978), 모종삼(牟宗三, 1909-1995) 등으로 대표되는 홍콩대만신유가
의 계보를 이으면서 기존의 철학적 성과를 재해석, 발전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치사상 측면에서 그는 모종삼 등의 관점을 수용하여 유학의 가치와 신념이 서
구 민주주의 체계와 양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서구 민주주의의 토착화와 내면화
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최근 이러한 입장이
대륙신유가 진영의 비판에 직면하면서 관련 논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
런 상황에서 대략 A4용지 10페이지 안팎의 분량에 해당하는 펑파이신문 인터
뷰는 그 핵심이 장경을 필두로 한 대륙신유가의 정치유학 노선, 특히 유교헌정
담론을 비판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해당 인터뷰는 중국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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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현재 儒敎憲政에 대한 논의가 중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최근 동향에 대해서는
대표적으로 아래의 저술을 참고할 수 있다. 杜維明 등 저, 儒家與憲政論集, 中央編譯出
版社, 2015. 姚中秋, 儒家憲政論, 香港城市大學出版部, 2016.
李明輝, 專訪臺灣儒家李明輝: 我不認同大陸新儒家 , 澎湃新聞, 2015년 1월 24일자.
그는 政治大學 철학과(학부), 臺灣大學 철학과(석사)를 거쳐 독일 Bonn대학에서 칸트의 도
덕정감연구를주제로박사학위를받았다. 현재는대만중앙연구원중국문철연구소연구원
으로 재직하고 있다. 연구분야는 공맹유학, 송명유학, 칸트철학, 동서비교철학, 정치사상,
현대유학등을망라한다. 주요저술로는 四端與七情. 儒家與康德(한국어번역본, 유교
와 칸트), 孟子重探, 當代儒學之自我轉化(한국어 번역본: 중국현대신유학의 자아전
환), 儒家視野下的政治思想 등이 있다. 또한 칸트의 도덕형이상학, 도덕형이상학정
초, 프롤레고메나, 역사철학논문집 등을중국어로옮기기도했다. 참고로현대유학의
계보안에서이명휘의학술적성취를논한내용으로다음을참조할수있다. 彭國翔, 重建
斯文: 儒學與當今世界, 北京大學出版社, 2013, 159-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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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몇 차례 반론이 연이어 실리기도 했다. 이에
대만의 학술지 사상(思想)(29期, 2015년 10월)은 이명휘의 재반론을 게재하고,
이 사태를 분석하는 대만 학자들의 비평문을 함께 덧붙였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
의 연장선에서 2016년 1월 9일 대륙, 홍콩, 대만의 현대신유학 진영의 주요학자들
이 사천(四川省) 성도시(成都市)에 모여 ‘양안신유가회강(兩岸新儒家會講)’이란 대
규모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장경과 이명휘 간의 논쟁의 배경과 양상, 의미를 검토하고
자 한다. 이 논쟁은 단순히 장경과 이명휘 두 사람의 충돌에 그치는 것이 아니
라, 거시적으로 볼 때 20세기 중반에 대두했던 ‘홍콩대만신유가’의 학술적 공헌에
대한 최근 ‘대륙신유가’ 진영의 비판적 반성과 그에 대한 재반론을 반영하고 있다
는 점에서 중국현대유학의 흐름과 갈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또
한 이러한 논쟁이 서구의 자유, 민주, 인권 등의 가치의 수용을 둘러싸고 중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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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이명휘의인터뷰이후干春松, 李存山, 唐文明, 方旭東, 曾亦등중국소장학자들의
평론이연이서 펑파이신문에실렸는데, 비록개개의논점이일치하지는않지만, 대륙신유
가의 입장에서 대만홍콩신유가에 대한 이론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兩岸新儒家會講에는 대만에서는 李明輝, 林月惠, 謝大寧, 陳昭英이 참석했고, 홍콩에서는
鄭宗義가참여했다. 참고로李明輝, 林月惠, 謝大寧은모종삼의제자이고, 정종의는劉述先
의 제자로서 이상 네 명의 학자는 홍콩대만신유가 진영을 계승하는 학자들로 볼 수 있다.
한편대륙에서는陳明, 唐文明, 曾亦, 干春松, 任劍濤, 李淸良, 陳壁生, 陳贇등이 참석했다.
당시 토론 내용과 발언은 四川省 사회과학 분야 연합학술지라 할 수 있는 天府新論
(www.tianfuxinlun.com), 2016年2期에 소개되었다. 필자는 별도의 논문을 통해 이 토론회의
내용과 의의에 대해 고찰할 계획이므로, 본 논문에서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본 논문의 초고를 한 학회에서 발표한 후, 수정을 하는 과정에서 필자와 동일하게 장경과
이명휘의 논쟁을 다룬 송인재의 논문 21세기 중국 정치유학의 이념과 쟁점 (2015년11월)
을발견하였다. 송인재의논문은해당논쟁을실마리로姚中秋, 干春松을포함하는정치유
학이라는대륙학계의커다란조류에대한요긴한정보와담론분석을제공한다. 한편필자
의 본 논문은, 비록 동일한 논쟁을 다루었지만 홍콩대만유학의 전통과 맥락에서 이명휘
관점의 배경에 보다 치중했으며, 논쟁의 한 주제로서 서구중심주의/탈서구중심주의 시각
에 보다 관심을 기울였다. 따라서 장경과 이명휘 간의 논쟁을 보는 상이한 시각을 제공한
다는점에서송인재의연구와는별개로본논문의독립적의의가있다고생각한다. 지면으
로나마 이 주제에 관해 선구적 안목과 성찰을 보여주신 송인재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덧붙여 필자의 초고를 읽고 귀중한 논평을 해 주신 양일모 선생님과 이현선 선생
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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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일고의 가치가 있다. 아래에
서는 먼저 이명휘의 입장의 배경을 살펴보고, 이어서 장경의 유교헌정론의 핵심
을 정리하고자 한다. 그리고 끝으로 장경의 논지에 대한 이명휘 비판의 요지와
그 의미에 대해 검토하고자 한다.
2. 이명휘의 이론적 배경: 홍콩대만신유가의
개출설(開出說)
장경과 이명휘의 대립은 사상가 개인의 우발적 의견 충돌이라기보다는, 20세기
이후 대두한 현대신유학 진영의 분화와 갈등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구조적, 맥락
적 이해와 접근이 필요하다. 주지하듯이 현대신유학 진영은 20세기 초반 5 4신문
화운동 전후로 양수명(梁漱溟), 풍우란(馮友蘭), 전목(錢穆) 등이 전통문화에 대한
계승과 존중을 피력하고 서구화의 물결에 대항하면서 성립하였다. 그리고 1949년
중국 공산화 이후 이들 문화보수주의 진영의 활동이 위축되고, 일군의 학자들이
홍콩과 대만으로 이주하여 유민(遺民) 지식인을 자처하면서 그 계보가 이어졌다.
홍콩대만신유가에 속하면서 동시에 현대신유학 연구자인 유술선(劉述先, 19342016)은 현대신유학의 계보를 정리하면서 3세대 이론을 내세웠는데, 그는 홍콩대
만신유가 진영의 주축으로 서복관, 당군의, 모종삼을 거론하면서 이들을 현대신
유학 2세대에 편입시켰다. 이명휘는 모종삼의 직계 제자라는 점에서 현대신유
학 3세대 혹은 3.5세대에 편입시킬 수 있는데, 그의 학술활동은 홍콩대만신유가를
계승하면서 근래에는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대두한 대륙신유가를 견제한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아래에서는 먼저 정치사상 영역에서의 이명휘의 관점이 홍콩
대만신유가의 관점을 계승한다는 점을 서술하고자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1949년 이후 많은 중국 지식인들이 홍콩과 대만으로 이주했
고, 동시에 문화보수주의 진영에서 세대교체가 일어나면서 홍콩대만신유가 진영
이 성립한다. 이때 이들의 학술적 공헌 가운데 하나는 서양철학의 자원을 토대로
9)
9)
劉述先, 現代新儒學之省察論集, 中央硏究院中國文哲硏究所, 2004, 1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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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국철학의 현대적 재해석이며, 이 과정에서 유학 전통과 서구의 자유민주주
의의의 정신과 가치를 어떻게 소통시킬 것인가에 대한 이론적 고민도 성숙되었
다. 특히 장군매(張君勱, 1887-1969), 서복관, 당군의, 모종삼 네 사람은 1958년에
발표한 중국문화에 관해 세계의 인사들에게 알리는 선언(爲中國文化敬告世界人
士宣言) (약칭 문화선언 )에서 유가의 심성학이 건립한 ‘도덕실천의 주체’와 민
주정치가 요구하는 ‘정치적 주체’는 동일시할 수 없으므로 유가의 심성학과 민주
정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유가사상이 민주
주의의 수용과 토착화에 적대적으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자유주의 진영의
유가전통에 대한 비판에 맞섰다. 예컨대 문화선언 에서는 “중국은 오늘날까지도
민주정치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정치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민주제
도의 건립을 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으며, 더욱이 중국문화에는 민주
사상의 종자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고 하면서, 서구민주제도의 수용과 확산
이 유가사상의 내재적 요구와 문화적 이상에 부합한다고 역설했다. 이들은 동서
양 문화와 철학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중국철학을 재해석 하는 데 크게 공헌하
였을 뿐 아니라, 서구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전통을 동아시아에 이식할 때 유학 전
통이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구 근대적 가치의 긍정과 확산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진단했다. 예컨대 그들은 중국의 민본사상, 간관(諫官)제도,
재상제도, 공천하(公天下)의 이념 등이 서구 민주사상의 이념 및 제도와 호응할
수 있는 자원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을 우리는 학계의 용례를
감안하여 ‘개출설(開出說, 혹은 種子說)’로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개출설(종자설)은 동아시아 국가는 서구민주주의를 수용해야 한다는 점을 전제
하면서, 다만 전통과의 결별이 아니라 전통에 대한 창조적 계승을 통해 민주주의
의 수용과 내면화가 가능하리라 전망한다.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이후 홍콩과 대
만으로 건너온 자유주의 노선 지식인들의 반론을 초래했다. 즉 자유주의 지식인
들이 보기에, 유학의 가치체계는 동아시아 근대화나 민주주의 수용을 저해하는
사상적, 문화적 기저로 작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결국
이를 놓고 5, 60년대 자유주의 노선과 홍콩대만신유가(문화보수주의) 노선이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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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牟宗三, 김병채 외 역, 모종삼 교수의 중국철학강의, 예문서원, 2011, 2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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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서 당대 사상계의 중요한 담론을 형성했다. 물론 이른바 개출설(종자설) 역
시 유가의 심성학이 건립한 ‘도덕실천의 주체’와 민주정치가 요구하는 ‘정치적 주
체’는 동일시할 수 없으므로 유가의 심성학과 민주정치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하
며, 서구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홍콩대만신유가
진영과 자유주의 진영 간의 논쟁은 유가로 서구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아니었고, 서구민주주의 수용 여부를 둘러싼 찬반 논쟁도 아니었다. 양쪽
진영이 충돌한 지점은 민주정치의 철학적 기초에 대한 이해이자, 민주정치의 수
용과 확산에 있어서 유학의 잠재적 역할에 대한 문제였다. 이명휘는 이들 양 진영
의 논쟁에 주목하면서, 자유주의 노선 지식인 가운데 특히 은해광(殷海光,
1919-1969)과 은해광의 제자인 장호(張灝, 1937- )의 논의에 주목하였는데, 철학자
나 사상사가로서 그들이 유학의 사상적 기초 문제에 천착하여 논의를 진전시켰기
때문이다. 특히 장호의 경우 유학의 성선설이 민주정치와 양립하기 어려우며, 서
구의 민주정치는 오히려 성악설에 토대를 두었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고 주
장했다. 그는 성악설보다는 ‘유암의식(幽暗意識)’이란 표현을 선호하는데, 그는 유
암의식에 관해 “인간의 본성이나 이 세계가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각종 어두운
측면을 직시하고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 즉 이러한 어두운 측면이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이 세계는 결점이 있고, 완전할 수 없으며, 인간의 삶에도 각종 추악한 면
과 불만이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깨닫는 것이다” 라고 규정하면서, 서구의 경우
기독교 전통 이래 이어져 내려온 유암의식, 즉 인성의 악한 측면에 대한 자각과
경계심이 근대에 와서 견제와 균형을 통한 민주질서의 제도적 건립을 가능케 했
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인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강조한 유학의
관점은 서구민주주의의 정신과 대척점에 있다. 장호의 논지를 수용하는 학자 가
운데 한 명인 하신전(何信全)은 이러한 관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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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12)
대만과홍콩에서자유주의노선과신유가노선사이의갈등, 특히전통유학의가치와서구
민주주의가치사이의관계를둘러싼견해차이에대해서는신유가진영의서복관과대만
자유주의 노선의 대표 인물인 은해광을 다루고 있는 다음의 논문을 참조할 수 있다. 李明
輝, 서복관과은해광 , 李明輝, 최대우등역, 중국현대신유학의자아전환, 전남대출판
부, 2013, 136-185쪽.
張灝, 幽暗意識與民主傳統, 聯經出版社, 1992,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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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근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정치생활 속에서의 인성(人性)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가졌고, 따라서 법치관념을 이끌어 냈다. 즉 법률제도의 안배를 통해 정치적
인간(political man)이 악을 행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는 정
치생활 속에서의 인성에 대해 낙관적인 태도를 지녔다. 이러한 낙관적 태도는 성선
설로부터 덕치를 도출하는 데서 드러난다. 덕치사상은 한 편으로는 ‘풀 위로 바람이
불면 풀이 눕게 마련이듯(草上之風必偃)’ 일반인을 ‘덕으로써 이끌(導之以德)’ 수 있
다고 믿으며, 다른 한 편으로는 다스리는 자들도 ‘덕으로써 다스리고(爲政以德)’ ‘올
바름으로써 솔선수범(子帥以正)’하리라 믿었다. 이렇게 정치생활 속에서 천리가 반
드시 인욕을 이길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는 법치관념이 발 디딜 틈을 없게 만들었
다. …… 인성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탓에 유가 정치철학은 인치(人治)의 구조
에서 벗어나기 어려웠고, 이는 성선론의 부정적 효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13)
이처럼 하신전 역시 성선설에 토대를 둔 유학전통을 중국문명이 민주주의를
발전시키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보았다. 이러한 논지는 유학의 내성외
왕(內聖外王) 이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다시 말해 민주주의 발전 측면에
서 유학의 실패는 단순히 외왕(정치적, 제도적 측면) 방면에서의 미성숙 때문이
아니라, 성선설을 근간으로 한 내성 방면에 원초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장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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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일부 학자들이 ‘내성외왕’ 관념을 해석한 것을 보면 재고의 여지가 있다.
그들은 유가 전통의 ‘내성학’은 이미 완전한 경지에 이르렀고, 전통에 문제가 있다
何信全, 儒學與現代民主: 當代新儒家政治哲學硏究), 中央硏究院中國文哲硏究所籌備處,
1996, 145-146쪽.
흥미롭게도 마루야마 마사오 역시 성악설과 성선설에 착안하여 근대 정치학의 성립을 논
한다. “예로부터정치는그다지아름답지 않은인간상을상정한다는것이 통념이다. 칼슈
미트등은 ‘진정한정치이론은반드시성악설을취한다’라고까지말하고있다. 분명히정치
적인 것과 정면으로 마주한 사상가는 이른바 성악론자였다. 동양에서는 정치(治國平天下)
를개인도덕(修身)에 귀속시킨유가가성선설을 취한것에비해서, 법이나정치의고유한
의의를 강조한순자나한비자 계통은정도의차는있지만성악론자였다. 유럽에서마키아
벨리나홉스와같은근대정치학을세운사람들이모두철저한비관적인간론자였던것은
잘 알려져 있다.” 가루베 다다시, 박홍규 역, 마루야마마사오, 논형, 2011, 151쪽에서 재
인용.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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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이는 외왕학의 한계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내성학의 정수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 내성과 외왕은 상호의존적이며 분리될 수
없는 이념이다. 따라서 전통 유가가 정치사상 측면에서 민주자유 관념을 열 수 없
었던 것에 대해, 우리는 유가의 외왕사상만 탓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앞의 분석에
근거하면, 외왕사상의 한계는 내성사상의 편파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15)
결국 성선설과 내성외왕에 대한 장호의 비판은 이른바 개출설(종자설)에 대한
비판에 다름 아니다. 성선설을 통해서는 애당초 민주주의의 ‘개출’은 물론 ‘종자’
로서의 기능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인 셈이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명휘는 스승
인 모종삼의 관점을 옹호하면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현대신유가의 민주이론은 종종 형이상학적 추상의 영역에만 머물러 있고, 정치,
법률, 사회, 경제 등 구체적인 영역으로 실현될 수는 없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이런
비판은 오해에 기인하겠지만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 성선설과 민주
정치의 관계를 예로 들면, 이와 관련된 신유가의 이론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있는 모종삼의 ‘양지자아감함설’을 보더라도 원론적인 설명을 제시할 뿐 구체적
인 문제에 나아가 이론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론의 유효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자는 그 비판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현대신유가의 민주이론은 심성론을 기초로 삼기 때문에 전통 유가의 ‘내성외왕’의
사상 구조를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성인 군주와 현명한 재상(聖
君賢相)’이라는 전통 정치의 구조에 머무르려 하지 않고 민주정치 발전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모종삼의 ‘양지자아감함설’은 ‘내성’(심성학)이 ‘외왕’(민주정치)으로 통하
는 사상 과정을 간접적인 변증과정으로 이해하여, 곡통(曲通)으로 직통(直通)을 대
체한다. 즉 ‘내성외왕’의 사상구조 안에서 민주정치를 알맞게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이론은 가치론의 기초 위에서 민주정치를 증명할 수 있는 동시에, 도덕
과 정치의 경계를 분명히 밝혀서 정치영역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시 말하
면, 내성과 외왕의 관계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부즉불리’의 관계인 것이다.
16)
인용문에서 언급했듯, 개출설(종자설) 논의에서 모종삼이 제기하는 핵심 이론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양지자아감함설(良知自我坎陷說)’이다. ‘양지감함설’이
17)
15)
16)
張灝, 위의 책, 77쪽.
李明輝, 儒家視野下的政治思想, 臺灣大學出版中心, 2013, 65-66쪽.
330
儒學硏究 第39輯(2017. 5)
라고 약칭되는 이 이론은 모종삼이 역사철학(歷史哲學)(1955), 정도와 치도(政
道與治道)(1961) 등에서 피력한 것으로, 모종삼에 따르면 유학의 덕성지지(德性
之知) 혹은 양지(良知)의 직접적 발현을 통해서는 민주제도나 과학지식을 발전시
킬 수 없겠지만, 그러한 도덕주체의 내면적 역량을 변증적으로 운용하여 확장시
키면 민주와 과학의 발전을 추동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 전통유학에서
는 도덕주체가 지성주체를 압도했다는 점을 인정하는 동시에, 도덕주체의 역량을
일부 억제하고 이를 과학과 민주를 향한 지성적 역량으로 전환, 확대하는 과정,
즉 양지의 ‘자아감함(self-negation)’이란 전환적 계기를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모종
삼의 양지감함설은 그것을 통해 유학의 도덕주체(덕성주체)와 민주주의 간의 이
질성과 거리를 확인하는 동시에, 양자의 공존 가능성을 긍정할 수 있었다는 점에
서 이론적 의미를 갖는다. 모종삼은 유학의 도덕정신과 내성학(성선설)에 기초한
‘새로운 외왕(新外王=민주주의)’의 건립을 ‘직통(直通)’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곡통(曲通)’의 논리로는 설명이 가능하다고 표현했는데, 이명휘
에 따르면 ‘직통’의 논리란 ‘인과적 필연성’, ‘논리적 필연성’만을 고집하는 관점을
말하며, ‘곡통’의 논리는 유학과 민주주의 사이의 우호적 관련성을 ‘변증적 필연
성’, ‘실천적 필연성’을 통해 설명하는 방법이다.
이명휘는 모종삼의 이상과 같은 논지를 충실히 계승하여 곡통의 논리를 활용
한 개출설(종자설) 이론을 견지한다. 이로써 그는 유학의 내성외왕의 이상이 여전
히 유효하다고 보았으며, 유학의 내성학과 신외왕(서구민주주의의 수용과 발전)
의 원만한 결합이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8, 90년대 이명휘는 ‘개출설’이나 ‘양지
18)
19)
17)
18)
감함(坎陷)이란단어는 주역 설괘전 의 ‘坎, 陷也’라는 구절을 차용한 것이다. 이는 ‘빠지
다’, ‘위험에 처하다’는 의미를 갖는데, 유학에서는 성선(性善)이나 양지(良知)로 대표되는
도덕주체로서의위상(본체계측면)을우선하는 까닭에경험적세계의구체적 변혁에 필요
한, 예컨대 민주주의 성립과 과학 발전에 요구되는 지성주체(현상계 측면)의 건립과 발현
은이차적인목적에 속하게된다. 이러한딜레마에직면하여모종삼은민주주의와과학의
발전을위해서도덕주체를절대시한유학의편향성을억누르고지성주체의확장의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을 도덕주체의 자기억제라고 보면서 이를
‘자아감함’이란단어로표현했다. 모종삼의 자아감함설에대한간명한개념정리로는다음
을참조할수있다. 중국현대철학연구회, 처음읽는중국현대철학, 동녘, 2016, 159-164쪽.
牟宗三, 政道與治道,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6, 48-51쪽.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31
감함설’에 대한 여러 비판에 대항하여 홍콩대만신유가의 논리를 발전시켰다.
거시적으로 본다면, 장경과 이명휘 간의 논쟁은 유학과 민주주의 간의 관계를 둘
러싼 2차 논쟁 성격이 짙으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은 5, 60년대 자유주의자들과의
논쟁을 배경으로 하여 그 근거와 맥락을 파악해야 한다. 장경의 논의는 이러한
모종삼과 이명휘의 관점에 대한 거부를 함축한다. 아래에서는 먼저 장경 유교헌
정론의 요지를 기술하고, 이어서 이명휘의 재비판을 다루도록 하겠다.
20)
3. 대륙신유가의 대두와 장경의 유가헌정론 건립
앞서 보았듯이 유학과 서구민주주의 간의 우호적 관련성을 철학적으로 설명하
려고 했던 모종삼의 시도는 홍콩대만 자유주의 진영의 반발을 초래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나고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유학의 정치사상적 전망과 관련하여 커다
란 변화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홍콩대만신유가 진영의 논쟁 대상은 자유주의자들
이 아니라, 같은 문화보수주의 전통을 공유하고 있는 대륙신유가 진영의 지식인
들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륙신유가 진영의 태동은 가깝게는 지난 8, 90
년대 이른바 문화열(文化熱) 혹은 국학열(國學熱)의 대두 속에서 중국문화와 전통
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과 관련이 있으며, 멀게는 20세기 전반을 휩쓴 전반서화론
(全般西化論)의 횡류에 저항한 문화보수주의 세력의 부활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대륙신유가 진영 역시 홍콩대만신유가 진영과 마찬가지로 유학전통의 현대적 재
해석과 계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유학의 어떤 전통을 계승할 것이며, 어떻게 현실에 적용
할 것인지를 놓고 대륙신유가 진영과 홍콩대만신유가 진영 사이의 대립이 점차
19)
20)
李明輝, 儒學與現代意識, 文津出版社, 1991, 7-9쪽.
개출설’과 ‘양지감함론’에 대한 또 다른 대표적인 비판적 관점으로 張灝와 함께 殷海光의
高足이라 할 수 있는 林毓生(1934-)이나, 모종삼의 선배이자 동료였던 역사학자 錢穆
(1895-1990)의제자로역사학자의관점에서비판을 가한余英時(1930-)의견해를 참고할수
있다. 林毓生, 新儒家在中國推展民主的理論面臨的困境 , 政治秩序與多元社會, 聯經出
版社, 2001, 337-349쪽및余英時, 錢穆與新儒家 , 現代學人與學術, 廣西師範大學出版社,
2006, 31-36쪽.
‘
332
儒學硏究 第39輯(2017. 5)
격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사상 영역에서는 특히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입장
에서 선명하게 대비되는데, 장경의 경우를 예로 들면 그는 홍콩대만신유가의 입
장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으며, 여전
히 서구중심주의의 그늘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홍콩
대만신유가 진영의 노선을 ‘자유주의적 문화보수주의’, 그리고 장경을 비롯한 대
륙신유가 진영의 노선을 ‘민족주의적 문화보수주의’ 혹은 ‘탈서구적 문화보수주
의’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륙신유가 진영의 스펙트럼도 다양화되는 추
세이므로, 이러한 대별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장경이 민족주의나 탈
서구중심주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은 자명하다. 여기에서는 장경의 저술과 인터
뷰에 드러난 주요 관점을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하고자 하며, 이를 실마리로 이명
휘와의 논쟁 지점을 살피도록 하겠다.
첫 번째 주목할 지점은 유학 전통에 대한 거시적 구별로서 장경이 제시하는 심
성유학(心性儒學)과 정치유학(政治儒學)의 구별이다. 그는 현대유학의 과제는 심
성유학에서 정치유학으로의 전환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이때 정치유학이란
‘외왕유학(外王儒學)’, ‘제도유학(制度儒學)’, ‘실천유학(實踐儒學)’ 등으로 지칭되기
도 한다. 장경은 중국문화와 유학전통의 고유성은 바로 구체제의 제도적 혁신에
있다고 보면서 이러한 제도주의 전통을 되살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장경이 보기
에 장군매, 서복관, 모종삼 등은 지나치게 송명유학의 심성유학 노선에 경도되었
으며, 정치유학을 심성유학의 부산물 또는 종속적인 것으로 파악했다. 그는 인터
뷰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21)
21)
정치유학은 공자가 춘추에 근거해 창립하고 다른 여러 경전의 정치적 지혜와
예제(禮制) 정신을 융합한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이성, 정치적 실천, 정치적 비판,
제도의 우선성과 역사적 희망을 체현한 것으로 심성유학 또는 정치화유학과는 구
이명휘도이점을꼬집고있다. “물론대륙신유가를자임하는이들이자신을 ‘대국국수주의
자’로 규정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문화민족주의자’로 자임하기는 합니다. 어떤 인터뷰
에서장경은심지어다른사람들이그를 ‘유가원리주의자’로칭하는데에대해서반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문화민족주의’나 ‘유가원리주의’와 ‘대국국수주의’ 간에명확한경계선
이 있는가 하느냐하는 점입니다.” 李明輝, 關於新儒家的爭論: 回應澎湃新聞訪問之回應 ,
思想, 29期, 聯經出版社, 2015, 278쪽.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33
별된다. 이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지니면서 자기소외를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서,
춘추시대에서 한대를 거쳐서 현대까지도 이어져 내려온 순수한 유학전통이다. 이
러한 규정에 따르면 장군매나 모종삼이 말한 정치유학은 다른 전통에 속한다. 이명
휘는 장군매나 모종삼이 말한 정치유학이 대만에서 이미 현실정치에 일정부분 구
현되었다고 말했지만, 그가 말하는 정치유학은 ‘정치를 논하는 유학’일 뿐이지 내가
말하는 ‘정치유학’이 아니다.
22)
장경은 심성유학 전통에 정치유학 요소가 있으며, 정치유학 전통 속에도 심성
유학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예컨대 앞서 보았듯 모종삼은 양지감함설을
통해 신외왕을 열고자 했으며, 이는 분명 심성유학과 정치유학의 종합을 모색한
시도였다. 그러나 장경이 보기에 모종삼의 전략은 심성유학에 대한 정치유학의
종속화를 탈피하지 못했다. 장경은 맹자를 심성유학의 대종(大宗)으로, 동중서를
정치유학의 대종으로 삼는데, 맹자가 말한 왕도정치 역시 정치유학의 한 갈래라
는 점을 긍정한다. 그럼에도 그가 여전히 심성유학을 문제 삼는 것은, 심성유학
전통이 여전히 성선이나 심선(心善)을 유교정치질서의 전제로 삼고, 정치유학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치유학이 아
닌, 단지 ‘정치를 말하는 유학’ 또는 ‘정치화유학(政治化儒學)’일 뿐이라고 폄하한
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화유학’을 탈피하지 못한 것이 홍콩대만신유가의 결정적
한계라고 지적한다.
장경이 보기에 현대 중국에서 필요한 노선은 모종삼 등이 계승한 사실상 맹자
를 대종으로 삼고 주자, 왕양명을 주축으로 하는 송명유학이 아니다. 그는 도덕가
보다는 개혁입법가로서의 공자의 형상에 주목하고, 이러한 정신을 발현한 춘추공
양학(春秋公羊學) 전통을 되살려 정치유학, 제도유학 측면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거울로 삼아야 할 전통은 한대(漢代) 동중서(董仲
舒)이래로 근대 강유위(康有爲)까지 이어지는 금문경학(今文經學) 노선이며, 한 세
기 전 강유위가 대동서(大同書) 등을 통해 지향했던 탁고개제(托古改制), 개제
입법(改制立法)의 구체적 혁신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홍콩대만신유가의 신외왕(新外王) 기획은 실패했다고 진단
22)
蔣慶, 蔣慶回應李明輝批評: 政治儒學並非烏托邦 , 澎湃新聞, 2015년4월7일자.
334
儒學硏究 第39輯(2017. 5)
하고, 그 구체적 이유로 극단적인 개인화 경향, 극단적인 형이상학화 경향, 극단
적인 내재화 경향, 극단적인 초월화 경향을 제시했다. 간단히 말해, 장경은 공맹
으로부터 송명유학으로 면면히 이어지는 성즉리(性卽理)나 심즉리(心卽理), 양지
설(良知說) 등을 핵심 강령으로 하는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 위주의 유교 이해를
통해서는 현대 중국이 요구하는 정치질서 개혁에 부응할 수 없다고 본다. 그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이유로 홍콩대만신유가의 심성유학을 비판한다. ① 천도(天道),
성명(性命) 등의 추상적 담론에 천착하는 신유학은 유가의 정치적 이상을 현대 중
국의 사회 현실 속에 구현할 수 없다. ② 신유학은 유가의 정치적 이상이 요구하
는 구체적인 정치, 법률 제도를 건립할 수 없다. ③ 신유학은 유학을 심성유학에
국한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유학의 또 다른 전통인 정치유학을 외면했다. ④ 중국
인이 당면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치, 제도상의 로드맵
이 제시되어야 한다. 심성유학이 말하는 유학의 현대화는 탁상공론의 수준에 머
물고 있다. 장경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자.
23)
앞서 말한 것처럼, 중국의 유학 전통에는 오로지 정치의 측면만을 논의의 대상으
로 삼은 외왕유학이 존재한다. 이러한 외왕유학은 객관적 예법제도를 건립하는 것
을 사명으로 삼는다. 그로써 ‘수평적 관계’의 사고방식을 통해 내성외왕을 평면적이
고 대등한 관계로 놓는다. 외왕이 내성에서 확대되어 나오는 것(開出)이 아니라, 그
자체로 독립적인 규정성과 권능을 지닌다고 간주한다. 또한 세계를 심체(心體)의 작
용으로 바라보지 않고, 단지 사물의 상호연관구조를 통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심
체 외에 세계가 갖는 독립적 가치를 긍정한다. 말하자면 이렇다. 전통적 외왕유학은
송명유학을 대표로 하는 심성유학과는 다르며, 그것의 본질은 정치유학으로서 외
왕을 확립하는 기능을 지닌다. 그것은 신외왕을 건립하기 위해 필요한 신유학의 세
가지 기본조건, 즉 제도건립의 학문이라는 유학의 조건에 부합한다.
24)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장경은 유학에서 추구하는 이상적 정치질서는 맹자가
제시하듯 성선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개인윤리의 확장을 통해서가 아니라, 결국
구체적인 제도상의 개혁을 통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건립 가능하다고 본다.
23)
24)
蔣慶, 政治儒學, 養正堂文化, 2003, 50-54쪽.
위의 책, 90쪽.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35
그렇다면 장경이 제시하는 정치유학 건립의 구체적 방법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주목할 지점이다. 단적으로 말해 그는 유학의 이념에 입각한 입헌정
치질서의 구축을 도모하는 유교헌정론을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장경이 여타 대륙
신유가 진영의 학자들에 비해 급진적인 이유는 그가 유교헌정론을 제도적 디테일
을 포함한 헌정제도 구상 통해 제시하기 때문이다. 간략히 말해, 그는 의회삼원
제(議會三院制)를 통해 실질적 삼권분립을 구현하자고 하면서, 통유원(通儒院), 서
민원(庶民院), 국체원(國體院) 세우자고 말한다. 세 기관은 각각 유학의 이상에 입
각하여 천지인(天地人) 삼재를 합법성을 근원으로 삼으며, 여기에서 이른바 삼중
합법성(三重合法性) 논의가 대두한다. 예컨대 통유원은 초월신성(超越神性)의 합
법성(天道)을, 서민원은 인심민의(人心民意)의 합법성(人道)을, 국체원은 역사문화
의 합법성(地道)을 각각 대표하고 구현한다. 그렇다면 이들 기관의 구성원은 어떻
게 뽑는가? 서민원의 경우 보통선거를 통해 대표자를 뽑는다. 그리고 국체원은
세습과 지명을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는데, 예컨대 공자의 후손인 연성공(衍聖公)
들이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통유원은 일정한 시험과 추천을 통해 구성원을 뽑는
데, 민간과 정부 등에서 추천을 받거나 경력을 쌓은 관료나 지식인, 유교에 정통
한 학자 등으로 구성되며, 20년까지도 임기를 보장한다. 장경은 일종의 귀족정
치, 혹은 상원의회 성격을 갖는 국체원과 통유원을 통해 중국 고유의 현능정치(賢
能政治)나 사인정부(士人政府) 전통을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 주목할 지점은, 그가 구상하는 유교헌정론이 유교적 통치질서의 계승,
부활을 외치면서 자연스럽게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거부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그
는 자신의 저술 도처에서 유교헌정론이 결국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초월(초극)’을
25)
26)
27)
25)
26)
27)
크게 보면 姚中秋 역시 유교헌정론자라고 할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유가헌정론
(儒家憲政論)’으로, 장경의 입장을 ‘유교헌정론(儒敎憲政論)’으로 칭하면서, 장경의 입장이
강유위의 공교론(孔敎論)을 답습한 것에 불과하며, 자신의 ‘유가헌정론’은 문교(文敎)에 기
반한반면, 장경의 ‘유교헌정론’은 ‘신교(神敎)’에기반했다고하면서장경의 기획이정교일
치의 공상에 가깝다고 비판한다. 姚中秋, 儒家憲政論, 246-248쪽.
蔣慶, 再論政治儒學,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14, 22-27쪽.
蔣慶, 廣論政治儒學, 東方出版社, 2014, 18-19쪽. 참고로 Daniel Bell 역시 유가민주주의의
한특성으로서유교엘리트에의한일종의귀족정치혹은상원제의가능성과의의에대해
논의하고 있다. Daniel Bell, Beyond Liberal Democrac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6, 165-172쪽.
336
儒學硏究 第39輯(2017. 5)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서구민주주의 역시 그들 고유의 역사적, 문
화적 배경 속에서 잉태된 것일 뿐이며, 중국 전통에 근거한 새로운 정치제도의
창출이 가능할 뿐 아니라,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특히 서구민주주주의 사실상 민
의합법성에만 정당성의 근거를 두면서 포퓰리즘 등의 부작용을 초래한 데 비해서
유교헌정론은 삼중합법성을 통해 권력분립을 실현할 뿐 아니라, 성속불이(聖俗不
二)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홍콩대만신유가가 서구민주주
의의 수용을 당연시하면서 유학전통과의 조화를 도모했다면, 장경은 유학을 통해
서구민주주의를 대체하고자 한 것이다. 장경과 이명휘의 인터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반응 역시 장경과 마찬가지로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내포한다.
현대신유가가 주장하는 가치의 출발점에는 ‘5.4운동’이래의 계몽주의 전통이 자
리 잡고 있다. 때문에 (홍콩대만)신유가는 비록 전통사상의 어떤 특정한 부분을 애
지중지하고 계승하려고 하지만, 결국에는 ‘추상적 계승’에 머물러서 실제 중국의 고
대 제도와는 무관하게 된다. 결국 최종목표는 서구세계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즉
서구의 가치만이 보편적 가치이며, 서구 세계만이 중국의 미래라는 사고에 빠져 있
다. 중국사상에 대한 그들의 부분적 긍정도, 결국 그 중에서 서구 가치의 ‘배아(胚
胎)’를 찾아내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륙신유가의 입장은 이와는 다르다.
수천 년 지속된 중국 고유의 노선에 입각하여 자신의 가치를 사유할 뿐 아니라, ‘추
상적 계승’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체적 계승’을 실현하고자 하며, 제도적 측면에서
전통을 잇고자 한다. 홍콩대만신유가는 이 점에서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그들의
1958년 중국문화선언 에서 확인되듯, 당시 중국의 정치체제를 비판하고, 동시에
중국의 전통적 정치체도를 비판하고자 한다. 중국 전통에 대한 그들의 긍정은 미약
하다. 대부분 도덕 측면에서 한정되고, 고대인의 정치, 법률, 사회 측면의 구조에 대
한 존중이 매우 부족하다.
28)
이상의 견해는 전적으로 장경의 논의를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다. 장경은 그의
저술 곳곳에서 홍콩대만신유가의 서구 편향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시각은 당대
중국의 자유주의 진영에 대한 비판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데, 그는 현대 중국사
상계를 자유민주사조, 좌파사조, 유가사조로 구분하면서, 자유민주사조에 대해
28)
曾亦, 大陸儒家再回應: 港臺新儒家對傳統中國政治肯定得太少 , 澎湃新聞, 2015년1월27
일자.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37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중국대륙은 너무 크다. 역사적으로 누적된 문제가 너무 많다. 곧바로 민주
화를 시도해도 전면적 혼란이 발생하지 않는 대만이나 홍콩과는 여건이 다르다. 중
국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지면 전면적 혼란이 초래될 것이다. 둘째, 포퓰리즘은 이
미 현재 중국이 마주한 가장 큰 위협이다. 일단 민주화를 통해 포퓰리즘에 불이 붙
으면 그 결과를 감당할 수 없다. 셋째, 중국의 정치는 반드시 중국의 역사와 문화의
특질이 담긴 ‘중국식 정치’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반드시 ‘유교헌정’을 기본적인
제도의 구조로 삼는 ‘왕도정치’가 되어야 한다. 다당제 선거민주 제도는 중국의 역
사와 문화의 특질과 맞지 않는다. …… 안타깝게도 중국의 급진 자유주의 사조는
여전히 중국의 현실정치의 형세를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서양의 다당제 선거민주
만을 고집하면서, 철저한 민주화를 중국 정치의 유일한 목표와 개혁 방향으로 삼는
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중국은 서양의 다당제 선거민주를
실현할 수 없다.
29)
장경의 정치유학에 대한 견해나 제도주의적 입장에 대한 중국 내의 견해는 분
분하다. 그러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적지 않은 소장학자들이 서구 민주주의의
한계 및 자유, 민주, 인권의 가치에 대한 장경의 비판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 따라서 장경의 논의를 실마리로 하여 우리는 현대 중국사상계의 현황에 대
해 보다 면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보았듯이 장경은 홍콩대만신유가를 겨
냥하여 그들이 정치유학을 배제한 채 심성유학에만 경도되었으며, 중국의 규모와
현실에 맞는 정치제제를 고안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덧붙여 홍콩대만신
유가 노선이 서구민주주의에 무비판적으로 영합하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에, 그들
이 걸었던 서구중심주의의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고 제창한다. 이명휘는 이러한
장경의 비판, 혹은 대륙신유가의 비판에 대해 대륙신유가가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몰이해와 자국문화중심주의의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고 역공을 펼친다. 아래
30)
29)
30)
蔣慶, 廣論政治儒學, 東方出版社, 2014, 101-102쪽.
예컨대 매킨타이어의 ‘Whose Justice? Which Rationality?’를 패러디한 何謂普世? 誰的價值?:
當代儒家論普世價值, 華東師範大學出版社, 2013에서는이들대륙신유가신진학자들의대
담을 모았는데 홍콩대만신유가의 입장 또는 서구중심주의 입장에 대한 다양한 성토가 잘
드러나 있다.
338
儒學硏究 第39輯(2017. 5)
에서는 장경에 대한 이명휘의 비판을 정리하고, 그 의미와 과제에 대해 논의하고
자 한다.
4. 이명휘의 장경 비판, 그리고 사상사적 의미
유학전통의 현대적 재해석과 제도화 가능성에 천착하는 대륙신유가의 활약은
눈부시다. 경학이나 철학 측면에서의 이론적 작업 뿐 아니라, 경전독송운동, 유교
헌정운동, 공민종교운동, 생활유학운동 등 현실과 밀착된 형태의 유학부흥운동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특기할 만하다. 다만 우려되는 측면은 이러한 유학, 유교의
부흥 이면에는 자문화중심주의의 경향이 도사리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주의나 민족주의와 손쉽게 결합한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충분한 이론적 검토
없이 서구보편주의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펑파이신문에서 벌어진 이명휘와 장경 사이의 지상(紙上) 논쟁도 유
학 전통의 재해석 방향을 놓고 벌어진 논쟁인 동시에, 서구민주주의나 인권과 자
유의 가치 수용을 놓고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초극할 것인가의 문
제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데, 이러한 측면을 포함하여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 측면
에서 장경의 관점에 대한 이명휘의 반론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이명휘의 이해에 따르면, 장경의 생각과는 달리 홍콩대만신유가는 결코
정치유학을 배제한 심성유학만을 중시하지 않았다. 예컨대 모종삼은 역사철학,
정도와 치도 등을 통해 정치유학의 전통에 대해 상세히 고찰했으며, 장군매나
서복관은 헌법학자나 정치학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명휘가 강조하듯, 그들은
단순히 상아탑 속의 도덕철학자에 머물지 않았으며, 이론적, 실천적 측면에서 정
치유학을 발전시켰다. 모종삼 등은 내성외왕의 유학적 이념에 충실하면서, 개인
의 도덕적 각성이 결국 정치질서의 합법성과 정당성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견지했을 뿐이다. 이명휘는 내성과 외왕의 연속성을 긍정하는 것 자체가 유학의
본령이라 말하면서, “유학은 본래 내성과 외왕을 통합해서 말한다. 내성을 배제하
고 외왕만을 말할 수는 없으며, 반드시 내성을 통해 외왕을 개척해야 한다. 때문
에 장경의 방법론은 문제가 많다. 만약 심성유학을 도외시하고 정치유학만을 말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39
한다면 이미 유학 전통이라 할 수 없다” 고 말한다. 이러한 이명휘의 견해는 유
교헌정론의 토대라고 할 수 있는 춘추공양학 이념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31)
장경 등이 말하는 정치유학은 제가 볼 때 유토피아 이론입니다. 공양가의 논법은
모두 상상에 근거한 것입니다. 중국역사에서 실현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장군매와
모종삼이 말하는 정치유학은 적어도 대만에서 이미 헌법 등에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경의 유토피아 이론보다 훨씬 실질적입니다. 지금 대만은 정치유학
을 따로 말하지 않는데, 이미 현실적으로 구현되었기 때문입니다.
32)
이처럼 이명휘의 관점에 따르면, 현실적으로 정치유학을 역사 속에서 구현한
쪽은 장군매 등의 정치이론을 헌법에 수용한 대만이다. 반면에 장경의 유교헌정
론은 공상적인 유토피아 이론에 가까운 것이며, 때문에 그러한 정치유학을 현실
화하는 것은 오히려 불가능에 가깝다.
둘째, 모종삼 등과 마찬가지로 이명휘 역시 유학과 자유주의는 충돌하지 않으
며, 유학은 오히려 자유주의 확산의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비록 역
사적으로 유학은 민본주의에 머물렀으며, 나름의 민주주의를 창안하지 못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수용은 단순히 제도의 도입만으로 가능하지 않으며, 그것을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내면화할 수 있게 하는 기존의 가치체계나 문화적 배경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유학은 동아시아에서 민주
주의가 안정적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문화적 배경이나 촉진제가 될 수 있다.
이명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 생각에는 유가와 자유주의 간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홍콩대만)
신유가는 자유주의의 핵심에 대해 긍정적이었습니다. 1950년대 신유가와 자유주의 간에
벌어진논쟁의주원인은 중국의전통문화에대한 태도에의견대립이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유가진영의입장은민주제도를 건립한다는 것이옷 한벌 갈아입듯이금방되는 게아
니라는 겁니다. 민주제도의 건립은 반드시 기존의 문화와 조화, 적응되어야 하고, 때문에
기존의 전통문화 안에서 필요한 자원을 끌어와야 한다는 겁니다.
李明輝, 專訪臺灣儒家李明輝: 我不認同大陸新儒家 , 澎湃新聞, 2015년1월24일자.
李明輝, 위의 인터뷰.
李明輝, 위의 인터뷰.
33)
31)
32)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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儒學硏究 第39輯(2017. 5)
홍콩대만신유가의 입장은 존 스튜어트 밀의 언급을 연상케 한다. 밀은 대의정
부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들의 생각이나 기호, 습관이 어떤 제도 또는
일련의 제도들과 친화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그 제도를 훨씬 쉽게 받아들이고 배
우게 될 것이다. 또 처음부터 그런 제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것들을 더욱 쉽게
처리하며, 그것이 최선의 결과를 낳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유용
한 관습과 감정이 존재하는데도 입법자가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른다면 이
는 크나큰 손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모종삼이나 이명휘의 입장도
이러한 밀의 통찰에 부합한다. 문화적 관습 및 정신적 자원으로서 유학이 갖는
민주주의에 대한 친화성을 적극적으로 발굴,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이명휘가 보기에 장경이 말하는 ‘유교헌정’ 논의는 결국 보통선거 등 현
대 민주질서의 근간을 거부하므로 위험하다. 장경의 적극적 옹호자인 다니엘 벨
(Daniel Bell) 같은 경우 장경의 논의가 서구 민주주의 제도가 지니는 문제점(예컨
대 포퓰리즘)을 겨냥한 대안적 성격이 있다고 보고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서구민
주주의에 대한 장경의 이해는 기껏해야 ‘구유가(舊儒家)’로 회귀하려는 시대착오적
보수주의나 맹목적 애국주의로 흐를 우려가 있다. 이명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34)
저는 일전에 장경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만약 민주제도를 반대한다면 군
주전제로 회귀하자는 말입니까? 장경은 예컨대 공양학 같은 중국의 전통에 입각해
서 서양민주제도보다 훌륭한 제도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공양학의
제도는 상상의 산물일 뿐, 역사적으로 구현된 적이 없습니다. 정치제도는 막연한
상상에 기댈 수 없습니다. 플라톤이 상상에 의해 세운 이상국은 실현된 적이 없습
니다. 장경이 구상하는 제도는 그가 정치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
의 희망사항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컨대 그는 투표도 없이 연성공(衍聖公)을 통해
국체원의 의원을 선출하자고 말합니다. 연성공은 유혹에 강합니까? 무엇에 근거하
여 모든 연성공들이 현능(賢能)할 것이고, 매수되지 않을 거라 단정합니까? 더구나
연성공은 세습 지위입니다. 결국 군주세습제로 가자는 얘기입니까?
35)
34)
35)
존 스튜어트 밀 저, 서병훈 역, 대의정부론, 아카넷, 2013, 17-18쪽.
李明輝, 위의 인터뷰.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41
물론 장경의 이론에 따르면 서민원의 경우 보통선거를 통해 구성된다. 그러나
국체원과 통유원은 추천 등을 통해 구성된다. 형식적으로는 삼권분립으로 볼 수
있겠지만, 행정권력 등의 정당성은 물론 권력 간의 균형 면에서도 여전히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또한 연성공의 지위나 그 근거 면에서도 논란이 많기 때문에, 그
들을 국가권력 체계로 흡수하는 것 역시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 결국 이명휘의
관점에서는 장경의 유교헌정론은 그 기획의 공상적 면모, 현능정치의 제도적 구
현 가능성, 권력의 집중 혹은 국가주의의 대두 가능성 등 다양한 우려를 낳는다.
물론 서구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나 부작용에 대한 장경의 경각심이 무의미한 것
은 아니겠지만, 그것에 기대어 정치유학, 유교헌정론을 통한 서구민주주의에 대
한 초극을 말하는 것은 결국 자국중심주의, 맹목적 애국주의, 패권주의로 흐를 여
지가 크다는 게 이명휘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같은 이명휘의 장경 비판, 혹은 그 토대로서 장경과 이명휘
간의 논쟁이 갖는 의미나 과제는 무엇인가? 물론 여러 가지 차원에서 논의가 가
능하겠지만, 필자는 경학 논쟁으로의 회귀이라는 측면에서 그 의미를 찾고자 한
다. 다시 말해, 장경과 이명휘의 논쟁은 비록 현대유학 담론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 구조적, 형식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경학 논쟁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장경의 유교헌정론은 가깝게는 강유위의, 멀게는 한대 동중서의 국가유학
노선을 계승하고 있다. 물론 동중서의 이론에서 더 소급하여, 맹자의 성선설에 대
항하여 예악질서로 상징되는 외적인 공권력과 사회규범의 역할을 강조한 순자의
관점을 소환할 수도 있다. 동중서와 강유위 모두 금문경학 전통에 충실했다는 점
에서 장경 역시 유학전통에 내재된 미언대의(微言大義)를 밝히고, 이를 역사적,
제도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실천적 지향이 매우 강하다. 최근 중국학계에서 강
유위 사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도, 유학을 개인의 내면과 도덕성을 제어하는
윤리학 담론에 정위시키는 데에서 더 나아가 문명국가의 이념적 토대 혹은 제도
적 토대로 활용코자 했던 대동서 등의 전략을 재현하려는 시도와 결부되어 있
다. 혹자는 중국이 패권주의 국가가 아니라, 문명국가(건강한 의미에서의 제국)로
도약하기 위해 강유위 사상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송대 이후 유학
36)
36)
흥미롭게도가라타니고진(柄谷行人)은 ‘주권국가(헤게모니국가)’의 이념과 ‘제국(세계공화
342
儒學硏究 第39輯(2017. 5)
의 운명을 놓고 보면, 유학의 지위나 성격이 20세기 들어 성리학에서 윤리학으로
성공적으로 전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21세기 대륙신유가의 대두는
유학의 핵심을 윤리학에서 정치학으로 재차 전환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
나 이처럼 성리학, 윤리학, 정치학 담론 사이의 변환이 순조롭기 위해서는 고문경
학과 금문경학 간의 충돌, 혹은 유학 내 제도주의(예컨대 왕안석) 노선과 도덕주
의 노선(정주리학) 사이의 갈등에 대한 보다 면밀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명휘와
장경 사이의 대립도, 기존의 역사에서 누차 대두하였던 맹자, 춘추, 주례
등을 둘러싼 논쟁을 복기함으로써 그 심층적 의미를 고찰할 수 있으며, 그 윤리
적, 정치적 의미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풍우란이 한 세기 전에 갈파했듯, 선진 이후의 중국철학사는 모두 경학 체계
내의 철학이다. 대륙신유가 진영의 많은 학인들이 경학에 골몰하는 이유도 여기
에 있는데, 이러한 경학 논쟁의 재현, 반복이라는 차원에서 현대신유학 연구의 맥
락과 실마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명휘와 장경 간의 논쟁은
동시에 서구민주주의에 대한 이해, 나아가 서구보편주의나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성찰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그러나 대륙신유가의 탈서구중심주의적 태도
를 단순히 국수주의, 민족주의로의 보수적 회귀로만 평가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논쟁이 단순히 근현대 서구의 충격에 따른 ‘도전과 응전’의 맥락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학 내부의 ‘경학 담론의 반복’이라는 보다 거시적, 역사적, 내재적 맥락
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21세기 현대 중국유학의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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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38)
국)’의이념을대비시키면서후자, 즉칸트의 ‘영구평화’나 ‘세계공화국’의이상을강유위가
대동서에서 피력한 이상주의와 동일한 지평에서 논의할 수 있으리라고 보았는데, 강유
위사상에대한재해석시도로서경청할만하다. 고진의견해에대해서는다음을 참조. 인
디고연구소, 가능성의 중심: 가라타니 고진 인터뷰, 궁리, 2015, 119-120쪽 및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역, 제국의 구조, 도서출판b, 2016, 206-207쪽.
이 지점에 대한 연구로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黃進興의 從理學到倫理學, 允晨出版,
2013. 황진흥은이책에서성리학적세계관이 어떻게 청말민국시기를거치면서형이상학
이 약화되고 근대적 도덕관, 윤리학으로 전환되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현대중국의자유주의, 신좌파, 신유가각진영의서구중심주의에대한입장에대한간략한
기술로는 다음을 참고. 劉擎, 중국 사상계의 서방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 강정인 편, 탈
서구중심주의는 가능한가: 비서구적 성찰과 대응, 아카넷, 2016, 107-132쪽.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43
성은 동시에 ‘경학의 현재성’이기도 하며, 동시에 ‘철학과 경학의 중첩’이자 ‘전통,
근대, 탈근대의 중첩’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복합적 성격에 대한 이해 속
에서 21세기 현대신유학 담론의 의의, 그리고 장경의 유교헌정론을 둘러싼 옹호
와 비판이 갖는 의미가 제대로 드러날 수 있으리라 본다.
5. 나오며
이상의 논의를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유학 전통의 재해석과 계승, 또한 전통
유학과 민주주의의 관계, 서구의 자유, 민주, 인권 등의 수용 문제를 둘러싸고 홍
콩대만신유가와 대륙신유가 간의 논쟁이 현재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유학을
단순히 전통의 일부분 또는 사상사의 유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현실
속에서 그것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과정에서의
논쟁이라는 점에서 중화권의 담론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대륙신
유가 진영은 전통유학에 대한 재평가의 흐름 속에서 유학의 이념이 어떻게 정치
제도, 시민사회의 윤리, 개인의 생활과 도덕관념 속으로 침투, 확산되어 공공질서
와 개인윤리에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아직 장경이 말하는 헌정제도 차원에서의 현실화는 시기상조라 해도, 유교적 이
념을 정치가의 윤리와 중국 사회의 이상에 투영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는 광범
위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이런 조류 속에서 홍콩대만신유가의 유학 해석에
대한 힐난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회의적 시각 역시 대륙
신유가 진영의 공통된 인식으로 확산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이론적 깊이와 정
치한 논리를 통해 적극적 반론을 제기하는 이명휘의 활약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일단 이명휘와 장경의 논쟁과 그 배경, 의미를 간략하게 살피는
데 그쳤다. 향후 우리 학계에서도 동시대 중화권의 현대신유가 진영이 고민하는
사상적 과제는 무엇인지에 대한 활발한 관심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에서 유교, 유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은 계발
을 받을 수 있으리라 본다. 한편 유학 내부의 담론을 넘어서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동아시아 사상계의 반성과 대응이라는 점에서도 중화권 현대신유가의 논의는 많
344
儒學硏究 第39輯(2017. 5)
은 시사점을 준다. 보편주의와 특수주의 간의 대립, 서구중심주의와 탈서구중심
주의 간의 긴장은 한국의 유학 연구자들 역시 직면할 수밖에 없는 담론이다. 유학
의 보편성과 현재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이며, 서구의 근대적 가치나 정치제도를
수용, 비판, 극복하는 과정에서 유교적 가치의 위치와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
가? 이는 장경과 이명휘 등의 과제일 뿐 아니라, 같은 유교문명권에 속한 우리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국의 유학 연구자로서 우리는 어쩌면 경기장의 선수가 아니
라 관중의 입장에서 이명휘와 장경 사이의 논쟁 혹은 현대신유학 담론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그들 논쟁의
연원과 본질적 성격에 보다 객관적으로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제공하리
라 생각한다. 그러한 문제의식의 일단을 내비친다는 측면에서 본 논문의 작은 의
미를 찾고자 한다.
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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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신유학 내부의 충돌과 분열 (정종모)
347
[Abstract]
A Debate in Contemporary Neo-Confucianism
– Focused on Jiang Qing’s Confucian Constitutionalism –
Jung, Jong-Mo(Sogang Univ.)
The growth of Contemporary Neo-Confucianism in China this century is amazing.
蔣慶) became a very important Confucian thinker in Chinese
philosophical world. In view of the ‘political Confucianism(政治儒學)’ and ‘Confucian
constitutionalism(儒敎憲政論)’, he criticized the stream of ‘moral Confucianism(心性儒學)’
in HongKong and Taiwan. In the middle part of the 20th century, Mou Zongsan(牟宗三),
Xu Fuguan(徐復觀) and Tang Junyi(唐君毅) devoted themselves faithfully to creative
Especially, Jiang Qing(
interpretations of Confucianism, and established contemporary Neo-Confucianism in
李明輝) is in succession to this school of thought,
HongKong and Taiwan. Li Minghui(
and insists that ‘moral Confucianism’ is not at odds with the democracies of the modern
West. On the other hand, Jiang says that China’s political future and political system have
to be based on Chinese heritage and Confucian tradition. For example, in a Western
democracy, political legitimacy is based on the sovereignty of the people. But in Jjiang’s
天道), way
system, there are three kinds of legitimacy. They come from way of heaven(
地道) and way of human(人道). In this paper, we can see the main issue and
of earth(
context of the debate between Jiang and Li.
Key words : Political Confucianism, Moral Confucianism, Confucian Constitutionalism,
Neo-Confucianism in HongKong and Taiwan, Neo-Confucianism in China,
Jiang Qing, Li Minghui
❖논문투고일 : 2017년 4월 15일, 심사일 : 2017년 5월 4일, 게재확정일 : 2017년 5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