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정치전통에서 성속의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 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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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의 정치전통에서
성속(聖俗)의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 일고
이삼성│한림대학교
│논문요약│
정치권력의 권위가 누린 범위와 영역에 관해서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시기에 있어서
동서양의 차이는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았다. 로마의 ‘황제’ 개념은 원래 ‘군사적 영웅’의 의
미를 띤 것으로 신성을 전제하지는 않았다. 반면에 동양의 ‘황제’는 처음부터 신성을 내포
한 개념들의 조합이었다. 로마의 황제는 머지않아 가톨릭의 교권과 공존해야 했다. 중세에
는 속권 그 자체도 신권에 의해 제약당하는 상황에 처했다. 근대 초기 절대주의 시기에 한
때 왕권신수설이 유행하였으나, 그 수명은 길지 못했다. 절대주의 시대에도 가톨릭은 가톨
릭대로, 그리고 루터와 칼빈의 개신 기독교는 그 나름으로 ‘두 개의 왕국’론을 전개했다. 이
를 기초로, 정신 영역에 대한 세속 권력의 권위의 한계를 날카롭게 정의하였다. 더욱이 근
대 서양에서는 현실 권력의 제국적 팽창 과정의 중심에 선 국가들일수록 정치권력의 한계
를 명확히 하는 정치혁명이 전개된다.
중국의 지배자는 상고시대부터 신성한 초월자를 대리하여 인간사회를 다스리는 존재임
을 자처했다. 이러한 천인관계론적 최고권력 개념은 곧 유학과 결합하면서 형이상학적 체
계를 갖춘 천인우주론으로 정식화된다. 지상의 지배자는 유교적 형이상학에서 궁극적 존재
또는 원리로서의 ‘천’의 신성성을 전유했다. ‘리법적 천’이 강조되면서 유교 안에서의 신성
의 개념은 합리화 현상을 보인다. 그로써 ‘주재적 천’의 개념은 박제되거나 리법적 천과 일
체화된다. 그런 가운데 ‘상제’는 인격신적 신성의 권위를 유지하는 흐름도 있게 된다. 이러
한 철학적 흐름을 유의하면서, ‘천명’ 혹은 ‘천도’의 대리자를 자처하는 동양 지배자의 천인
우주론이 중국, 일본, 한국에서 보이는 차별성과 공통점을 시기별로 살펴보았다.
한국의 정치사상도 19세기 말까지는 세속적인 정치권력과 천상의 권위와의 연속성을 전
제하는 전통적인 사유체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정치적 권위의 본질에 대한 전통적 사유
의 지속성을 보여주는 사상가의 예로 19세기 초 개혁적인 유학 이론가였던 정약용의 사상
을 논의하였다. 그는 주자학이 강조하는 ‘리법적 천’ 대신에 전통 유학 안에 기왕에 잔존하
여 있던 ‘상제’ 개념을 취하여 나름의 천인우주론을 전개했다. 결국 그도 성속의 연속성을
전제한 천인우주론적 관념체계 안에 머물러, 그 안에서 천과 군주, 그리고 민 사이의 관계
를 사유하였다. 한국의 정치사상이 성속의 연속성을 전제하는 전통적인 사유로부터 명확하
게 이탈하는 언술의 단초는 유길준의 정치학에서 비로소 찾아볼 수 있다.